489화. 당랑포선(螳螂捕蟬)
‘안 돼, 반격해야⋯⋯.’
‘베울리스는 왜 갑자기 무심병에 걸린 거지⋯⋯?’
‘너무 공교로운 상황이야⋯⋯.’
‘설마 달지기의 벌을 받은 건가⋯⋯.’
‘아냐, 멈춰. 이런 생각 하면 안 돼.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능력을 써서 저 사람이 우리를 습격하지 못하게 막는 거야⋯⋯.’
‘베울리스가 중요한 순간 무심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앞으로 정세 발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까⋯⋯.’
‘일단은 원로원에서 벗어났다가 상황이 확실해지면 그때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순간 알렉산더를 포함한 모든 원로와 그들의 비서, 하인, 경호원들의 머릿속에 갖가지 생각들이 물꼬를 텄다. 그런 생각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심화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아무도 저항하거나 경계하거나 반격에 나서지 못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이 떠올라도 자연히 또 다른 쪽으로 흘러가 버렸다.
원로원 내부에선 베울리스와 외부 방어선을 담당하는 아류인 호위대를 제외하곤 나머지는 전부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넋을 놓고 멍하니 선 건 아니었다. 눈빛은 또렷했고 얼굴에 나타난 표정도 매우 다양했다. 긴장감, 의혹, 혼란, 경계가 갖가지 뒤섞인 얼굴엔 그들의 감정이 다 또렷이 드러났다.
다들 수많은 자신과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로 인한 극심한 소모에 누군가를 덮치는 무심자 베울리스를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피해자는 감찰관 알렉산더였다.
이성과 지능 대부분을 잃은 후에도 베울리스가 가장 먼저 해치우고 싶어 한 목표는 그의 최대 정적이었다. 이미 일종의 본능이 된 건지도 몰랐다.
무심자가 된 베울리스는 나이가 무색하게 이젠 원숭이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팔을 뻗어 정적의 어깨를 움켜쥔 그는 입을 쩍 벌리고 단숨에 알렉산더의 목을 물어 살점을 한 움큼 뜯어내려 했다.
가죽이 소리를 내며 당겨지기는 했지만, 아직 찢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알렉산더는 약간 부풀어 오른 듯, 피부 아래 누군가 공기를 주입해 공기주머니 한 층을 만들어낸 것처럼 보였다.
인공지능 갑옷 중 인간 시리즈였다.
알렉산더는 반고 바이오와 관계 깊은 한 루트를 통해 이런 하이테크놀로지 제품을 한 대 마련한 뒤 평소에도 외피처럼 입고 다녔다. 뜻밖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마침내 이처럼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인간 시리즈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알렉산더는 외재적인 자극을 받고 드디어 생각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사람 가죽을 물고 있는 베울리스를 바라보던 그가 청록색 눈동자를 번득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시각 박탈!”
사실 알렉산더가 가장 박탈하고 싶었던 건 베울리스의 의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이는 신세계에 들어간 각성자만이 순서를 무시하고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와 같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는 오감의 지각을 박탈한 다음에야 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순간 베울리스의 시야가 캄캄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주민들 돌격을 막고 있던 아류인 호위대 시야에선 집회 소집자 가이우스의 인영이 사라졌다. 신임 원로이자 동쪽 군단 군단장은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 * *
골든애플 구역, 라운드힐 스트리트 14호.
장목화와 성건우는 여전히 국방색 지프 안에 잠들어 있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입은 백새벽과 용여홍도 바닥에 꿇어앉아 차 문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비아의 고전적인 저택, 대문을 지키는 경호원도 돌기둥이나 대문에 기대 잠들었고, 저택 2층에서 즐겁게 얘기하던 칸나와 노부인도 각자 자리에 고꾸라진 채 팔걸이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안에 있는 모두가 잠에 푹 빠져버린 것 같았다.
곧이어 평범한 검은 세단 한 대가 부근의 어느 저택 안에서 나와 라운드힐 스트리트로 접어들었다.
운전자는 바로 짧지 않은 골든브라운색 머리에 파란 눈동자, 높은 콧대, 곧은 눈썹, 나잇살이 붙은 얼굴에 다듬지 않은 수염이 있는 각성자 카오였다.
카오는 라디오를 듣고 그 정보에 따라 오늘 오전 퍼스트 시티에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리라 점쳤다.
그래서 아침부터 내선의 도움을 빌려 골든애플 구역에 잠입한 그는 아비아와 그리 멀진 않고 가상 세계 범위는 벗어난 지역에 숨어있었다.
그러다 총성과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할 무렵, 카오는 곧장 가상 세계에 침입하는 대신 인내심을 가지고 더 기다렸다.
카오는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이가 있으리라 확신했다. 전에 마커스에게 출입 암호를 얻어낸 그 팀, 바로 구조팀을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카오는 구조팀이 먼저 길을 탐색하게 해서 습격이나 함정에 빠질 위험을 없애기로 했다. 그 신비롭고 무시무시한 꼬맹이 수종이만 나타나지 않으면 카오는 자신이 충분히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당랑포선, 황작재후(堂郞捕蟬, 黃雀在後).
카오는 조직 내 어느 애쉬랜드인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제 바로 카오 자신이 사마귀를 노리는 참새가 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카오는 수종이가 골든애플 구역에 있을 가능성은 낮으리라 생각했다.
상대가 전에 발휘한 능력은 퍼스트 시티 내 무시무시한 존재의 경계심을 유발했다. 그러니 그가 이쪽 상황에 참여했다간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카오는 당시 ‘그 사람’도 왔던 걸 목격했었다.
검은 세단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이동해, 곧 아비아에게서 4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당도했다.
카오의 기다림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칸나와 구조팀이 그를 도와 가장 골치 아픈 이 가상 세계를 깨뜨려준 것이었다.
카오가 상대를 강제로 잠들게 하기 위해선 반드시 일정 거리 안에 접근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카오 역시 가상 세계에 진입하게 될 위험이 컸다.
가상 세계 안에서는 모든 행동이 걸러지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환각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능해서, 카오는 목표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카오는 가상 세계의 효과가 해제된 걸 확인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바로 결단을 내린 그는 거리를 좁히며 목표 구역 내의 모두를 잠재웠다.
원래 카오는 이 기회를 틈타 실제적인 꿈으로 전환하면서 전에 자신의 손을 몇 번이나 벗어난 구조팀과 아비아라는 주요 목표를 모두 소리소문없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성건우의 돌발 행동에 어쩔 수 없이 꿈을 중단한 뒤 재차 강제 입면 능력을 발휘해야 했다.
몇몇 대형 목표를 죽이기 위해 카오는 40미터라는 굉장히 위험한 범위 안에 진입해야만 했다. 그가 가진 어떤 물건이 그 범위 안에서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제 입면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 카오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물질 간섭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물질 간섭은 평소보다 약하게 발휘되었다.
아비아와 구조팀을 처리하려면 어마어마한 수고와 시간을 들여야 했고 그래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조직에서 길러낸 훌륭한 사격수들은 구조팀에게 모조리 살해당했으며, 이제 남은 건 실력이 낮은 사격수들뿐이었다.
결국 카오는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진행하는 데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남은 사격수들은 대동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일단 카오의 계획은 홀로 골든애플 구역에 진입해, 심령의 복도 안 어느 방에서 얻은 물건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런 물건의 영향 범위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쓸 수 있는 능력만 못했다. 외부에서 기인한 그 물건들은 사용할 때마다 대폭 약화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카오가 사용하려는 이 물건은 능력적 특징 때문에 영향 범위가 특히 좁았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목표로부터 40미터 범위 안에 진입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브레이크를 밟은 카오는 강제 입면 능력을 계속 유지하며 오른손을 거둔 뒤 가슴팍에 매달린 은제 펜던트를 움켜쥐었다.
펜던트는 앞으로 날개를 뻗어 몸을 감싼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약간 검은 빛을 띤 펜던트는 스타일로 보면 구세계에서 기인한 것 같았다.
하지만 성스러운 천사의 모습과 달리, 안엔 무시무시한 비기가 숨어있었다. 은으로 된 이 작은 천사 조각상엔 심장마비 능력이 고체화돼 있었다.
펜던트를 움켜쥔 카오는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임무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는 칸나와 가상 세계의 주인이 깨어나거나 잠든 도중에 자신에게 영향을 발휘할 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대부분 대가, 즉 부작용이기 때문이었다.
카오가 두려워하는 것은 뜻밖의 상황밖에 없었다.
앞서 실제적인 꿈을 통해 이미 아비아의 위치를 확인한 카오는 목표를 특정한 뒤 바로 생명 천사란 목걸이를 활용할 준비에 나섰다.
바로 그때였다. 지프 안에 있던 장목화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일찍이 깨어나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방지책을 마련해둔 구조팀이 강제 입면에 대해 아무 경계도 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장목화는 오늘 오전 밖에 나설 때 보조 칩 안의 특정 정보를 바꿔 놓았다. ‘신체에 중상을 입었거나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잠들었을 경우’로 변경한 것이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그녀의 몸 상태를 감시하는 보조 칩은 장목화가 잠든 것을 감지하자마자 전류를 방출해 그녀를 깨우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
전에 실제적인 꿈에 빠져있었을 당시에는 그 안의 일거수일투족이 현실에 반영된 까닭에, 신체 상태가 수면 중일 때와 적잖은 차이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조 칩이 전류를 방출하지 않았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깨어나자마자 주위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그녀는 여기서 30여미터 떨어진 곳에 지금까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낯선 중대형 생물 전기 신호를 발견했다.
이 중요한 순간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운전석 쪽으로 달려들며 옆으로 왼손을 뻗었다.
조금 전 칸나에게 보조석을 넘긴 장목화는 뒷좌석에 잠들어 있었다.
파직!
한 줄기 은백색 아크가 나타나 뒷좌석 가운데 성건우 자리에 떨어졌다.
파르르 경련을 일으킨 성건우의 옷 표면엔 까맣게 탄 자국이 남았다.
그 사이 전기 충격을 받은 그의 눈이 움찔거리다 번쩍 뜨였다.
성건우가 깨어남과 동시에 장목화는 운전석으로 몸을 던졌다. 자세를 조정할 틈도 없었다. 앞으로 이상하게 구겨진 상태 그대로 핸드 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조정해 액셀을 밟으며 핸들을 돌렸다.
모조 엔진 소리 속, 거칠게 방향을 튼 지프가 목표를 향해 냅다 돌진했다. 당장이라도 교통사고를 내려는 듯 기세가 매서웠다.
검은색 세단 안의 카오는 그제야 반응했다.
그의 강제 입면에 상대의 상태를 감지하는 능력까지 포함되어 있진 않았다. 카오가 장목화가 깨어난 걸 바로 눈치채지 못한 건 그 때문이었다.
목표의 의식이 깨어난 것을 발견하고 카오가 한 번 더 강제 입면 능력을 발휘하려는데, 두꺼운 장갑을 장착한 지프는 이미 엄청난 무게와 무시무시한 속도로 카오의 평범한 세단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팅!
지프에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차가 움직이며 문에 기대 잠들었던 백새벽, 용여홍이 금속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그대로 쓰러진 것이었다.
제법 큰 소리라 순간 그들도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