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42화 (442/649)

442화. 폭우

10분 정도 후,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집 앞쪽으로 향했다.

그때, 셀마와 산드로의 눈꺼풀이 동시에 꿈틀거렸다. 집 안에서 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유적 사냥꾼인가?”

데니스 역시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다른 유적 사냥꾼도 거친 비바람에 비교적 지대가 높은 곳에 숨어든 모양이었다.

아무도 이 집에 누군가 여전히 살고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주위 논밭은 심각하게 오염돼 농작물을 심어도 먹을 수가 없었고, 이 부근은 거점이란 게 형성될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

물론 사냥에만 의지한다면 몇몇은 먹고 살 수도 있겠지만 천재지변과 무심자, 변이 생물, 강도 등에 맞설 수 있는 이는 그중에서도 극소수뿐이었다.

물론 어느 유적 사냥꾼들의 임시 가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그냥 갈까?”

산드로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북안 불모지 내에서 동종 업계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양쪽 모두에게 그랬다.

막 답을 하려던 셀마는 순간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앞으로 보이는 얼룩덜룩하게 녹이 슨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잡초가 무성한 정원엔 차 바퀴 자국에 여러 번 다져진 평탄한 길이 나 있었다.

그리고 본채 밖 지붕이 달린 주차장에는 녹회색 지프 한 대와 짙은 검은색 SUV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로비로 시선을 돌리면 모닥불이 보였고, 그 위에 걸린 휴대용 냄비에선 뭔가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 모닥불 주위에 여자 셋, 남자 셋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중 둘은 경계를 담당했고, 둘은 모닥불을 지켰으며, 나머지 둘은 옮겨온 의자와 개인용 소파에 웅크려 앉은 채 눈을 붙이고 있었다.

셀마와 산드로 팀이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부분은 그들의 숫자가 아닌 그들이 가진 무기였다.

자라목, 돌격 소총, 연합 202⋯⋯.

상황을 빠르게 확인한 셀마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떠나는 것도 그렇게 좋은 생각은 아냐. 저들은 우리가 내려가는 틈을 타 총 몇 발로 타이어를 터뜨릴 수도 있어. 그럼 더 위험해지지.”

이런 날씨에 타이어가 터져버린다면 그 결과는 더 끔찍할 터였다.

“그래, 가서 인사하는 척 우리 근육을 보이고 떠나도 늦지는 않아.”

산드로도 동의했다.

“어쩌면 유용한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고.”

끝으로 데니스까지 긍정했다.

동료들의 지지를 얻은 셀마는 차를 대문 안쪽으로 몰았다.

그때 맞은편에서 바로 총구를 겨누자, 셀마는 알아서 브레이크를 밟고 차창을 내린 후 크게 외쳤다.

“너희들, 어디서 왔어?”

“퍼스트 시티! 너희는?”

누구보다 앞서 신나게 답한 이는 바로 성건우였다.

구조팀은 퍼스트 시티를 성공적으로 빠져나와 비를 피할 겸 이곳에서 저녁을 준비 중이었다.

현재 장목화와 성건우는 모닥불을 지펴 통조림을 데우는 중이었고, 용여홍과 백새벽은 주위를 산책하듯 경계를 맡고 있었으며, 좋지 못한 몸 상태로 하루 넘게 강행군을 한 한명호, 정도연은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게네바는 따로 할 일이 없어서, 이 집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구세계의 책과 신문, 자료를 찾고 있었다.

“노스 앙헤포드.”

셀마의 목소리가 비바람을 뚫고 구조팀 모두에게 닿았다.

노스 앙헤포드는 구세계에서 기인한 지명으로, 레드리버 북안의 한 불모지였다.

구조팀이 뭐라 답변하기 전, 셀마가 다시 물었다.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

“응, 저쪽에 차 대고 와.”

자리에서 일어난 성건우가 건물 옆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서 로비까지 오는 길에는 비를 피할 차양이 설치돼 있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실제로는 조심스럽게 주차한 셀마는 동료들과 함께 각자 무기를 챙긴 채 차에서 내렸다.

한 명은 퍼스트 시티산 트롱그 돌격 소총을, 한 명은 사워오렌지 기관단총을, 한 명은 경기관총, 한 명은 호크아이 저격 소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화력도 꽤 강력한 편이었다. 또한 이는 그들이 어디에서나 타인에게 친절한 대접을 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로비에 접근하기 전부터 진한 음식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거의 폐를 통과해 심장까지 파고드는 듯한 냄새였다.

‘감자 소고기 조림⋯⋯. 물자가 상당히 풍족한 모양이네.’

셀마 일행은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로비로 다가갔다.

모닥불 덕에 이제야 구조팀의 생김새가 또렷이 드러났다.

셀마는 눈앞이 확 밝아지는 듯한 구조팀의 외모에 좀 흠칫했다.

‘애쉬랜드인이다. 유전자 개량을 한 건가? 든든한 뒷배를 뒀네.’

경험 많은 유적 사냥꾼 무리는 화이트 기사단 구성원들과 교류한 적이 있어 유전자 개량자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

성건우와 장목화는 그 특징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얼굴이었다.

셀마 일행의 태도는 한층 더 진지해졌다.

이내 책상다리를 하고 모닥불 옆에 앉은 장목화가 고개를 들었다.

“노스 앙헤포드에서 왔다고?”

정도연의 초봄 마을이 바로 그 지역에 있었다.

“그래, 거기 오염이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 꽤 오래 있었어.”

셀마는 답하는 사이 전보다 더 진해진 감자 소고기 조림 냄새에 정신이 다 아찔해졌다.

이들은 북안 불모지에서 벌써 2주간 모험했던 지라 마른 식량과 장작 같은 식감의 고기에 질리도록 물려있던 참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장목화가 일어나 그들을 슥, 훑으며 웃었다.

“괜찮다면 같이 먹자. 물론 소고기랑 감자는 못 나눠줘. 이건 우리 몫이라서. 근데 너희들이 가진 건량에다 이 소스는 얼마든 얹어 먹어도 돼.”

셀마 일행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상당히 좋은 제안이었다. 서로가 남의 음식을 먹고 독이 들었을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산드로와 데니스가 각자 무기를 가지고 주위를 경계하는 사이, 셀마와 나머지 일원 톨레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다.

“노스 앙헤포드 상황은 어때?”

장목화가 물었다.

셀마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이전과 별 차이 없어. 퍼스트 시티 군대가 훈련하고 있지. 특정 지역에 접근하다가 그들을 마주치면 그 이상은 진입할 수 없어.”

‘그렇군.’

장목화는 몸을 틀어 1인용 소파에 앉은 정도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있었다.

셀마가 이 틈을 타 물었다.

“퍼스트 시티는 요즘 어때?”

장목화는 몇 초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질서의 손이 한 사람들을 쫓는 중이라 온 도시가 떠들썩해.”

“그런 난리가 났다고?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셀마의 동료 톨레가 놀란 듯 물었다.

퍼스트 시티에서 몇 년을 머무르는 동안 질서의 손이 목표를 체포한답시고 그렇게나 대대적으로 움직인 적은 거의 없었다.

상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온 도시가 떠들썩하다는 묘사만 들어도 셀마 일행은 단번에 그 분위기를 대강 짐작했다.

이번엔 모닥불을 쑤시던 성건우가 장목화를 대신해 답했다.

“퍼스트 시티를 노린 거대한 음모를 꾸몄대.”

“뭐?”

주위 경계를 맡고 있던 산드로와 데니스가 저도 모르게 내뱉듯 외쳤다.

평소 같으면 농담으로 여겼을 말이지만 질서의 손의 반응을 감안하면 보통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성건우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임무에 나와 있더라고. 질서의 손이 한 얘기라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하게 들리는데⋯⋯.’

잠시 고민하던 셀마가 물었다.

“질서의 손이 길드에 임무를 의뢰했다고? 현상금은 얼마나 되는데?”

그는 한 사안이 얼마나 긴급한지 그 심각성을 확인할 때 주관적인 말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현상금이 가장 객관적인 지표였다.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음, 한 명씩 잡을 때마다 1만 오레이를 주겠다던데. 물론 이건 우리가 도시에서 나오기 전의 금액이었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다.”

“한 사람당 1만 오레이?”

셀마 일행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정말 뒷걸음질을 치게 할 정도의 현상금이었다. 그만한 현상금이 걸린 일이라면 자신들의 힘으로는 완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에 따르는 위험을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돈으로 바꿀 수 있을 정보나 찾아봐야겠다.’

이내 성건우가 유적 사냥꾼들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너무 적은 것 같아.”

셀마는 바로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적다니, 절대 아니야. 이런 임무는 한 해를 통틀어도 몇 개도 안 돼.”

곧이어 장목화는 천천히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 불모지를 탐색하기 시작한 건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잖아. 더 이상 가치 있는 수확을 얻기는 힘들겠지?”

구조팀은 전부 애쉬랜드인으로 레드리버 북안 불모지에 익숙지 않아 보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굳이 그 사실을 숨길 이유도 없었다.

‘이 사람들은 이 주위에 처음 발을 들인 유적 사냥꾼 팀인가 보네.’

자체적인 판단을 내린 셀마는 상대의 뛰어난 외모나 친절한 태도, 또 쉽고 간단한 질문 수준에 그냥 웃으며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이곳의 적잖은 지역이 심각하게 오염돼 있어. 몇 년 전부터 그 오염도가 최저 수준으로 줄어서 겨우 탐색을 시작한 거지.

아, 그리고 방화복이나 방사선 방호복으로 온몸을 꽁꽁 감쌀 게 아니라면 여전히 진입이 권장되지 않는 구역도 있어.

폐허 탐색뿐만 아니라 변이 생물 사냥도 방법이지. 녀석들 연구 가치가 아주 높아서. 퍼스트 시티에서도 그것들을 사들이고, 일부 개인 연구자들도 혹할만한 가격을 제시하거나 그것들에 직접 현상금을 걸어.”

‘그런 개인 연구자 중 최소 3분의 2는 각 대형 세력에서 생물 재료 수집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요원이거나 정보원이겠지.’

속으로 생각하던 장목화는 의도적으로 질문했다.

“너희가 간 노스 앙헤포드도 최근에야 진입할 수 있게 된 폐허 도시야?”

“그럼, 그건 비밀도 아냐.”

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감자 소고기 조림이 다 데워졌다.

구조팀은 일제히 귀리빵을 꺼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셀마 일행은 침을 꼴깍 삼키다가 눅눅해진 비스킷을 꺼내 그 소스에다 적셔 먹었다. 소스의 진한 향과 풍부한 맛이 입 안에 감동을 선사했다.

순서대로 돌아가며 저녁 식사를 마친 셀마 일행은 이내 작별을 고했다.

이 애쉬랜드인 팀은 굉장히 호의적인 것처럼, 아무런 악의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 같았다. 조금이나마 불침번을 서는 사람의 압박감을 줄여주고 싶어서였다.

또 셀마는 근육을 똑똑히 보여줬으니 심각한 이익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들도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습격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산드로, 데니스, 톨레가 고도의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 차에 시동을 건 셀마는 천천히 또 다른 고지대를 향해 나아갔다.

장막처럼 쏟아붓는 비는 빠르게 그들의 흔적을 가려주었다.

셀마 일행이 떠나고,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했다.

“우리도 얼른 휴식을 취하고 마저 갈 길 가자.”

레드리버 북안에 도착한 후, 구조팀은 퍼스트 시티의 드론 수색을 피하고자 상식에 어긋나는 야간 이동을 택했다.

어두운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능인 게네바가 있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잠재된 위험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차의 속도를 마냥 높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했다.

퍼스트 시티는 북안 불모지에도 초소 여러 개와 관측소를 설치하고 드론 등의 장비도 배치해둔 상태였다.

오늘은 낮에도 하늘이 컴컴해 길을 더 재촉했었고, 구조팀은 다행히 폭우가 쏟아붓기 전, 퍼스트 시티 드론 수색 범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장목화가 막 말을 마쳤을 무렵, 게네바가 본채 2층에서 걸어 내려왔다.

“왜 나한테 위에 더 머물러 있으라고 한 거지?”

그가 붉은 눈빛을 번득이며 물었다.

눈동자를 살짝 굴리던 장목화는 어색하게 웃었다.

“손님을 놀라게 할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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