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화. 정보
다행히 폭우는 밤 중에 그쳐서 셀마 일행은 날이 밝자마자 길에 올랐다.
여정은 순조로웠고, 레드리버 강변에 이를 때도, 다리를 통과해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는 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미 여러 개 임무를 맡고 있던 이들은 따로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곧장 사냥꾼 길드부터 방문했다.
동료들이 임무 완수 절차를 밟으러 간 사이, 데니스는 습관적으로 대형 패널을 살피며 접수할만한 임무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때,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셀마, 봐봐, 질서의 손이 의뢰했다는 그 임무야.”
고개를 튼 셀마는 간밤에 만난 애쉬랜드인들이 말한 그 임무를 발견했다.
‘퍼스트 시티를 겨냥한 거대한 임무를 계획했다라⋯⋯. 자, 잠깐, 현상금이 한 사람당 2만 오레이로 올랐네? 이렇게 빨리?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셀마의 간담이 점점 서늘해졌다.
단 며칠 사이에 현상금이 배로 오르다니, 사건의 심각성이 한층 더 심화된 게 틀림없었다.
퍼스트 시티의 안정성은 셀마 일행의 모든 기반이었다. 그들은 북안 불모지에서 갖가지 위험을 겪고 심신이 다 지친 상태였다. 퍼스트 시티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해서 불안에 떨고 싶지는 않았다.
산드로와 톨레 역시 그 임무를 보고 있었다.
곧 이들의 시야에는 체포 대상의 이름과 사진이 들어왔다.
“서시월⋯⋯. 장우병⋯⋯.”
순간 셀마의 눈빛이 굳어버렸다. 동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뻣뻣해져 있었다.
대형 패널에 떠오른 건 그들이 만났던 그 애쉬랜드인, 바로 이 임무를 알려줬던 그 팀이었다.
정신을 차린 셀마 일행은 충격을 억누를 새도 없이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렇게 위험한, 인당 2만 오레이 현상금이 걸린 팀과 30분 가까이 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통조림 소스까지 얻어먹었다니! 한두 마디만 잘못했어도 오늘의 태양을 볼 수 없을 뻔했다.
셀마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솟은 식은땀을 훔쳐냈다.
밖에서 우연히 만난 유적 사냥꾼 팀은 엄청나게도 위험한 존재였고,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본인들을 노리는 임무를 알려주기까지 했었다.
한참이 지난 후, 침묵을 깬 데니스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셀마, 정보 넘길 거야? 보수가 상당할 것 같은데.”
많이 잡으면 3백 오레이 정도는 받을 수 있을 듯했다. 최소한으로 적게 잡아봤자 50오레이였다.
몇 초간 고민하던 셀마가 말했다.
“넘겨야지. 나중에 그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어. 그렇게 겁먹을 필요 없어. 유적 사냥꾼으로서 어떻게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릴 수 있겠어?”
* * *
레드울프 구역, 로스타 스트리트 19호, 질서의 손 본부.
“서시월 팀이 한 유적 사냥꾼 팀을 만나 노스 앙헤포드의 상황을 중점적으로 물었다라⋯⋯.”
회의실에 들어온 시어도어가 테이블 위의 자료를 집어 들고, 그 내용을 한번 소리 내 읽었다.
그들은 이미 몇몇 정보원을 통해 목표가 특정한 루트를 통해 퍼스트 시티를 떠나 북안 불모지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현상금을 높인 이유이기도 했다.
질서의 손이 담당하는 건 시내와 교외 장원의 치안이었다. 불모지로 직접 파견을 나가 목표를 체포하는 사람은 아주 작아서 앞으로의 일은 주로 군대와 유적 사냥꾼에게 맡겨야 했다.
“곧장 소속된 세력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월은 서시월 팀의 동향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중요 정보를 입수한 뒤 왜 북안 불모지로 간 걸까.
이때 그의 상사, 레드울프 질서관 트레비스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어쨌든 이 정보를 공개해. 모든 유적 사냥꾼과 군대가 그곳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 * *
오랫동안 버려진 이 구세계 마을엔 각종 백골과 배설물이 널려 있었다.
이곳에 구조팀이 은밀한 곳에 차를 세워놓은 뒤, 어느 건물 꼭대기에 올라 마을 밖 검은 불모지를 망원경으로 살피고 있었다.
“유적 사냥꾼들이 지나갔어. 수도 적지 않아.”
한명호가 관찰 결과를 고했다.
장목화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전달한 정보가 효력을 발휘했나 보네. 이제는 저 유적 사냥꾼들이 우리 대신 노스 앙헤포드에 주둔한 퍼스트 시티 정규군 내부 사정을 탐색해줄 거야. 사람을 구하는 일에 덤벙거릴 순 없잖아. 마을을 구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고.”
우연히 만난 유적 사냥꾼 팀을 초대한 것에 이런 뜻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정도연은 구조팀의 술책에 흠칫 놀랐다.
짝짝짝!
성건우도 때를 놓치지 않고 손뼉을 쳤다.
* * *
띠- 띠- 띠-
“이 물의 방사선 오염도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 정화 가능한 수준이야.”
게네바는 검은 대지에 흐르는 개울 옆에 쪼그려 앉아 오염도 검측을 마쳤다.
이곳 잡초는 빽빽하고도 무성하게 자라나 있으며 녹색 식물은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을 뒤덮다시피 했지만, 방사선 오염도는 심각한 구역에 비해 훨씬 나았다.
보통 방사선 오염이 심각한 곳의 풀은 보통 사람 허리께까지 자라는 터라, 무려 3미터까지 자라는 야생 파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오염도의 구체적인 수치까지 판단할 순 없지만, 유적 사냥꾼은 그걸 토대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진 곳의 상태를 기초적으로 파악했고, 다음 행선지를 정할 때 참고하기도 했다.
“드디어⋯⋯.”
용여홍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북안 불모지를 탐험하는 데 가장 심각하고 현실적인 문제는 수자원이었다. 이곳 여러 수원이 정수 칩의 능력 범위를 초월할 만큼 심각한 오염 상태였다. 그런 물을 마신다면 지금 당장은 그 독성에 피해받지 않는다더라도 후에 어떤 병이나 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북안 불모지를 왕래하는 유적 사냥꾼은 무기와 식량뿐 아니라 정수 칩을 휴대하며, 비교적 덜 오염된 수원지 분포 파악에 집중했다.
현재 구조팀은 수배가 걸린 탓에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었고, 오로지 정도연의 경험, 장목화의 지식, 게네바의 오염 검측에 의지해 새로운 수원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음용수도 얼마 남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여러 차례 실패하고 실패한 끝에 마침내 수확을 얻은 것이었다.
감격한 구조팀은 개울물을 용기에 담고 칩으로 정수했다.
이때를 틈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장목화가 말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초봄 마을을 지키는 퍼스트 시티 정규군은 대략 2중대인 것 같아. 평소 교대로 주위를 순찰하고, 훈련 중인 척 위장해 유적 사냥꾼이나 황야유랑자들이 초봄 마을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있어. 아마도 한 중대가 자리를 지키는 동안 다른 한 중대가 순찰을 돌고 있나 봐.”
구조팀은 위장한 뒤 친구를 맺는 방식을 통해 최근 노스 앙헤포드 구역에 진입한 유적 사냥꾼들로부터 퍼스트 시티 정규군과 마주친 시간, 장소, 그 외 구체적인 세부 사항들을 파악했었다.
그 정보 덕에 적들의 상황을 분석하기는 훨씬 쉬워졌다. 주둔군이 2중대뿐이라 판단한 것도 그곳을 오갔던 유적 사냥꾼들이 몇 번 만에 익숙한 얼굴을 다시 봤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쪽은 최소 탱크 두 대, 장갑차 두 대, 드론 여섯 대가 있고 중기관총, 개인용 바주카포, 유탄 발사기도 적잖게 구비 중이야. 각성자와 유전자 개조인은 겉보기엔 티가 나지 않으니 몇이나 있을지 짐작할 수 없고⋯⋯.
겨우 이 정도밖에 파악이 안 된 상황에 바로 행동에 나서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일단 마을을 구해야 해. 잘못 걸려들어 포위되기라도 하면, 또 그런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없다면 몰살당할지도 몰라.”
한명호와 정도연은 침묵했다. 장목화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확한 사실을 육성으로 듣는 순간, 낙담은 더욱 짙어졌다.
이어, 결과를 분석해낸 게네바가 떠보듯 물었다.
“명호, 너희가 전에 세운 계획은 뭐였지? 참고할 수 있게 얘기 좀 해줘. 어쩌면 그 계획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
장목화와 용여홍은 움찔하던 손을 겨우 참았다. 그들도 상황이 심각해서 저 감정 지수가 바닥인 지능인을 미처 저지하지 못한 것이다.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던 한명호는 약간 난감한 얼굴로 답했다.
“계획까지 세울 시간은 없었어.”
사실 그는 초봄 마을 근처에 숨었다가 밤에 습격할 예정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안팎으로 호응해 포위망을 벗어나, 정도연이 미리 골라둔 희망의 땅으로 향한다면 완벽한 성공이라 말할 수 있었다.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한명호는 애초에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목숨을 바쳐 전우들이 철수할 수 있게 엄호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명호도 레드스톤 마켓 치안관이자 마을 경비대장이었다. 이 계획이 허점투성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장악한 자원과 자체적인 실력으로 세울 수 있는 계획은 이 정도밖에 안 되었다.
용여홍은 게네바가 더 깊이 파고드는 걸 막고자 얼른 정도연에게 물었다.
“초봄 마을에 혹시 지하도가 있어?”
말이 떨어진 순간, 이어지는 성건우의 웃음소리에 용여홍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자신이 또 뭔가를 빠뜨려 비웃음을 산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초기였다면 그런 쪽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었을 텐데, 퍼스트 시티가 초봄 마을을 통제한 지는 벌써 몇 달이 지났어. 그만한 자원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뭔가 파악하지 못한 건 없겠지. 설령 지하도가 있다고 한들, 우리가 그걸 노리는 건 스스로 함정에 걸어 들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아.”
‘하긴…….’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정도연이 답했다.
“지하도는 없어. 우리에게 마을은 최후의 의지처거든. 거기서 벗어나봤자 위험만 가중될 뿐이라 지하도를 뚫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어.”
북안 불모지 내에는 무심자도, 변이 생물도 굉장히 많았다. 지하도 출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위기의 순간, 온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적에게 맞서며 후퇴하는 것이 백번 나았다.
“마을 주위에 강은 없어? 산은?”
백새벽이 가담했다.
“뭘 어쩌려고?”
성건우가 짐짓 겁먹은 듯한 얼굴로 물었다.
백새벽은 제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자연재해를 일으켜 기회를 만들려고.”
“마을 주위에 작은 강이랑 개울만 있어. 구릉 가장자리라 산도 없고.”
이번에도 정도연의 답변에 또 하나의 가능성이 지워졌다.
장목화 역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인위적인 자연재해를 이용하는 방법은 위력을 조절하기 어려워.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 아니면 최대한 자제해야 해.
하…….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초봄 마을을 어떻게 구하느냐가 아닌 것 같네. 이건 나중에 고려해야 할 문제고, 일단 그곳에 주둔한 퍼스트 시티 정규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효과적인 방법을 세울 수 있어.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건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혹은 상응하는 수준의 돌연변이가 이 일을 주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정말 그렇다면 이 임무의 난도는 대폭 높아지는 거야. 거기다 두 중대엔 군용 외골격 장치가 몇 대씩 있고, 인공지능 갑옷이 배급돼 있을 수도 있어.”
현재까지 초봄 마을 주둔군이 드러낸 실력으로 볼 때, 구조팀이 가진 장비론 감히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다. 최소 깊은 밤을 노려야 할 텐데,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 상대의 실력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구조팀에게서 심령의 복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배운 한명호와 정도연은 모두 무거운 표정을 보였다.
만약 퍼스트 시티가 초봄 마을에서 진행 중인 실험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면 장목화의 걱정도 기우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실험이 여러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면 프로젝트의 주관자는 강자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