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진짜 무당
그 사이, 장목화는 몸을 날리고 굴리면서 문 앞에 이르렀다.
막 대문을 열고 전술 배낭에서 꺼낸 수류탄을 바깥에 던지려던 그때였다. 소란을 일으켜 지원군을 불러들이려 했던 그녀의 표정이 돌연 멍해졌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왜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했지? 건우를 도와 바깥 의식들을 배제하고 진정한 인간들을 물러나게 한 뒤에, 수류탄으로 로봇 경비대와 남가관에 통지하는 게 옳은 순서 아닌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의 시선이 성건우에게 향했다.
성건우는 이미 확성기를 집어 던진 채 그녀를 지나쳐 문밖으로 뛰쳐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놓인 작은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 길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다음 순간, 산비둘기 술집으로부터 수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거칠고, 높고, 야만스러운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렁찬 소리는 환각을 꿰뚫고, 장목화의 귓속까지 파고들었다.
그 포효에 광풍도 갑자기 멈춰버렸다.
동시에 용여홍은 무심자들이 전부 인간으로 돌아오고, 술집 안에 어둑해졌던 등불도 원상태로 회복된 것을 보았다.
반면, 성건우는 걸음을 멈추는 대신 그 고함이 울려 퍼졌던 곳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최대한 거리를 좁혀 상대를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 들이려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장목화는 망설임 없이 권총을 쥔 채 그를 뒤따랐다. 그녀는 연속 사격으로 목표에게 다시 환각을 만들어낼 틈도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단 몇 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몸을 굴리며 양손으로 땅을 짚은 성건우가 다른 거리의 어둑한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눈동자도 어둑해져 있었다.
억지쟁이 능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다음 순간,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를 한 인영이 튀어나와 가로등 불빛이 밝혀진 곳에 이르렀다.
성건우와 장목화의 눈앞에, 인영은 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헝클어진 회백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그는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다. 몸에 걸친 남루한 옷은 모양도, 색도 제각각인 것이 꼭 수많은 시체로부터 벗겨낸 것을 꾸역꾸역 겹쳐 입은 듯했다.
노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고, 눈빛도 혼탁한 데다 잔뜩 충혈돼 있었다. 입가에도 붉은 핏자국이 있었다. 스치듯 봐도 완벽한 무심자의 모습이었다.
장목화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권총을 쳐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거의 본능과도 같은 목표 발견부터 목표 겨냥의 과정에 실수가 일어났다.
그녀의 총구는 목표가 아닌 하늘을 겨냥하고 있었다.
탕!
장목화의 총알은 그대로 밤하늘을 갈랐다.
거의 동시에 그녀는 오른손을 드는 고등 무심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손엔 연합 202가 한 자루 쥐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땐 반드시 몸을 옆으로 날리고 굴려서 피해야 했다. 머리론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려는 자세까지 취해졌다.
무릎의 정확한 위치를 때렸는데도 종아리가 아닌 팔이 들어 올려진 것처럼 매우 비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그 사이, 당연히 양손 동작 불능 능력을 발휘해 목표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할 성건우는 난데없이 추리 광대 능력을 발휘했다.
“봐봐⋯⋯.”
그의 말이 떨어진 순간 고등 무심자의 총구는 이미 장목화를 향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굿을 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며 이동 중이던 남가관의 관주 주명희가 포효 소리를 따라 이 근처에 이르렀다.
그녀는 빛 아래 선 고등 무심자를 보자마자 생각할 것도 없이 손에 든 손전등을 내던졌다. 그런 뒤, 병 입구를 막고 있던 엄지를 풀고 부수가 든 그 플라스틱병을 목표를 향해 내던졌다.
허공을 가르며 회전하던 병에서 흘러나온 부수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거기다 주명희는 지금 자신이 목표에게 아직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이 틈을 타, 빈손으로 삼끈에 달린 팔괘 거울을 움켜쥐고 적을 비췄다.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은 이러한 동작이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고등 무심자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고, 황급히 양손을 거둬 얼굴을 가렸다. 그러더니 낮게 포효하면서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탁-
부수만 조금 남은 플라스틱병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고등 무심자의 인영이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장목화는 한숨을 돌리며 멀어지는 적의 뒷모습에 대고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헝클어진 회백색의 긴 머리카락뿐이었다.
“소용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남가관의 관주 주명희는 멀어지는 고등 무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런데 그녀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 길가 가로등에 달려 있던 감시 카메라가 갑자기 전자합성음을 냈다.
- 고장 난 회로의 수리가 완료됐습니다. 재부팅 합니다.
장목화는 주명희의 저 무당 같은 수단이 효력을 발휘했다는 것에 놀라는 한편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조금 전 맞닥뜨린 고등 무심자가 전자 신호와 회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저게 바로 전에 그를 잡으러 간 로봇 경비대원들과 연락이 끊긴 이유인지도 몰라. 그래도 다행이야. 아직 인체에서도 전기 신호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네. 그 부분까지 손을 대진 않았으니까. 역시 아는 게 힘이야.’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틀어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성건우는 주명희를 보며 호기심과 동시에 의욕을 빛냈다.
그 역시 부수가 든 플라스틱병과 팔괘 거울, 복숭아나무 검을 가지고 조금 전 도망친 그 고등 무심자와 제대로 붙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주명희가 가진 그 물건들의 정체는 구조팀이 전에 수집한 영원한 세월 교파 관련 자료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곧바로 소리를 낸 감시 카메라에게 눈길을 돌렸다.
“드디어 말하네! 난 네가 죽은 줄 알았잖아. 장례식이라도 치러야 하나 고민했다고⋯⋯.”
- …….
성건우는 무슨 오랜만에 고향 사람을 만난 듯 굴었지만, 감시 카메라는 아무런 호응도 없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성건우는 화제를 전환했다.
“얼른 게네바에게 목표가 산에서 내려왔다고 전해줘.”
그러자 감시 카메라에서 다시 전자합성음이 흘러나왔다.
-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게네바 장관에게 연결하겠습니다.
흠칫 놀란 듯한 성건우가 조금씩 상기된 눈빛을 반짝였다.
“넌 사실 카메라로 위장한 전화인 거야?”
감시 카메라는 신호를 전송하며, 아무런 감정도 없는 소리로 대꾸했다.
- 저는 다기능 감시 로봇입니다.
카메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게네바의 중음이 흘러나왔다.
-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당신의 형제.”
성건우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유창하게 답했다.
- ⋯⋯.
감시 카메라 너머의 게네바도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또렷하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성건우의 답은 깔끔히 무시한 채 물었다.
- 무슨 일이지?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그 고등 무심자가 타르난에 들어와서 술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기절시켰어. 빨리 와서 봐야 할 것 같아.”
성건우가 드디어 있었던 일을 전하자, 장목화는 산비둘기 술집 문가에 서 있던 용여홍과 백새벽에게 말했다.
“문이랑 창문 다 열고 사람들 상처도 간단히 처치해줘.”
환기를 시켜 안에 남은 마취 가스를 제거하라는 뜻이었다. 행여 마취 가스를 쓴 사실을 들키면 다음에 또 이런 수단을 쓰긴 힘들어졌다.
용여홍과 백새벽이 바쁘게 지시를 이행하는 와중, 장목화는 자루를 메고 팔괘 거울을 쥔 남가관의 관주 주명희에게 다가갔다.
“주 관주님, 이 물건들이 정말 효력을 발휘했네요.”
조금 전 주명희가 부수가 든 병과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팔괘 거울로 공격하자 고등 무심자는 기겁을 하며 도망쳤었다.
이내 주명희가 소리 내 웃었다.
“이것들은 전부 저희 교파의 전적 속에 기록된 법기랍니다. 저도 이것들이 정말로 효력을 발휘한다는 건 이제 막 알았네요.”
장목화는 고개를 틀어 산비둘기를 바라보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전 그 고등 무심자가 빛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술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환각으로 혼란을 조성한 뒤 사냥에 나서려고 한 게 아닐까 했어요. 근데 가로등 불빛 아래 당당하게 선 걸 보니 추측이 틀렸다는 걸 알았죠.
무엇보다 무심자는 대낮에도 산 서남쪽 구역에서 끔찍한 살육을 벌였잖아요. 주 관주님, 관주님은 가로등 아래 그 고등 무심자를 보자마자 들고 있던 손전등을 던져버리시던데, 혹시 저와 비슷한 추측을 하셨던 건가요?”
한동안 멍한 표정을 드러내던 주명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어디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녀는 장목화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미간을 살짝 구겼다.
“아, 참. 우리가 아는 사이였던가요?”
“저처럼 키가 큰 여자는 몇 명 못 보셨을 텐데요.”
장목화의 답에, 주명희가 그제야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아요, 맞아요. 전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당신 특징은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은 네 사람으로 이루어진 그 팀 일원이었잖아요. 맞죠?”
챙- 챙- 챙-
두 사람이 대화하던 사이, 웬 금속 마찰음이 가까워졌다. 돌아보니 산비둘기 앞에 검푸른 군복의 로봇 경비대원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자리해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는 타르난의 시장 게네바였다.
여러 대의 지능 로봇이 동시에 나타나자 주명희는 물론, 장목화 역시 머리가 아찔해지는 현기증을 느꼈다. 누가 누구인지 당최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자세히 관찰하니, 장목화는 이 지능 로봇들이 키와 팔 둘레, 얼굴 윤곽, 몸의 두께 등에서 일정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알고 보면 서로 완벽하게 일치하는 로봇은 없었다.
게네바는 얼굴형이 약간 네모진 편이고 키는 수하들에 비해 평균 이상으로 컸으며, 전체적으로 튼실하고 단단해 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0과 1의 상징이 새겨진 흑녹색 군모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게 다른 로봇들과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였다.
‘공장에서 만들어질 때부터 개체마다 특징이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쌓은 공헌 점수로 직접 부품을 사서 스스로 개조하는 건가?’
장목화가 속으로 물음표를 띄우는 사이, 게네바가 세 부하에게 명했다.
“너희 팀은 주민들 상태를 확인하고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은 주민들은 최대한 빨리 이송시켜라.”
로봇 경비대 팀은 서너 명의 지능 로봇과 그들을 보조하는 비 지능 전투형 로봇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니 산 서남쪽 구역에 갔다가 연락이 끊어진 그 로봇팀도 오로지 지능 로봇 열 대만 속한 건 아닐 것이었다.
“너희 팀은 주위를 수색해. 수시로 연락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게네바는 하나씩 명령을 전한 뒤, 구조팀원들 쪽으로 다가왔다.
“목표는 이미 도망쳤다고?”
성건우를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이미 듣기는 했지만, 게네바는 그래도 신중하게 한 번 더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게네바의 메인 모델링 칩은 성건우의 말과 행동을 분석한 끝에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듯한 그가 각성자로 의심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자신을 형제로 여기는 성건우의 태도에 게네바는 그의 병, 혹은 그가 지불한 대가가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곧이어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주 관주님께 큰 신세를 졌지.”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구조팀이 한 일을 숨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