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62화 (262/649)

262화. 여파

게네바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목을 틀어 주명희를 바라보았다.

“고맙군.”

그는 타르난의 치안과 방어 담당자였다. 이번 사건으로 사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했다면 면직처리 된 후 머신 헤븐 본부로 소환됐을 것이었다.

“달지기께서 비호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명희는 몸을 살짝 뒤로 젖혀 양손을 들어 올리고 허공의 깨진 거울을 향해 예를 갖췄다.

게네바는 다시금 장목화와 성건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습격을 받은 이들이 더 있나?”

“산 여우 강도단.”

장목화가 사실대로 답했다.

그 고등 무심자가 놀라 달아난 뒤 장목화는 내내 산 여우 강도단 열셋이 어떻게 됐을지 생각했다. 물론 거기까지였다. 그 강도들은 장목화가 자신들을 향해 총을 더 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장목화는 그들을 구하겠답시고 위험까지 무릅쓰고 싶지는 않았다.

게네바는 곧장 그의 몸에 장착된 통신 모듈을 이용해 주위를 수색하고 있는 지능 로봇팀에게 연락해 간단히 상황을 전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팀에서 결과를 보고해왔다.

“찾았습니다. 다섯 명이 죽었고 나머지는 피 웅덩이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추워서 벌벌 떨면서도 깨어나지는 않네요.”

“운이 좋았군.”

성건우가 평가했다.

장목화도 그 의미가 장아홉에 비교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이때, 산비둘기 술집을 담당하는 지능 로봇팀은 다친 마을 주민과 유적 사냥꾼, 상인단원들을 타르난 종합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중엔 외상은 없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게네바가 자신의 부관에게 명령했다.

“찰리, 각 대형 교파의 담당자를 불러와. 앞으로 잠재된 위험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상의해야겠다.”

그때, 주명희가 흠칫하며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아, 게네바 시장님이셨군요.”

‘……이제 알아본 거야?’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게네바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더 이상 필요 없겠지?”

조금 전 그들은 한 지능 로봇의 질문에 사건의 경과와 각종 세세한 진술들까지 다 마친 상태였다.

구조팀은 미리 입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전문적인 소양을 발휘해 날조하지 않고도 최대한 자신들 역할을 가린 채 가장 기본적인 사실만 밝혔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엮는 역할은 당연히 팀장인 장목화의 몫이었다. 나머지 세 사람은 여간해선 환각을 핑계로 잘 모르겠다고 둘러댔다.

“그래, 이만 떠나도 좋아.”

게네바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근데 앞으로도 몇 차례 더 질문할지 몰라.”

파란빛을 번득이는 그의 눈이 구조팀 네 사람을 한 번씩 훑었다. 뒤이어 그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정말 대단하군.”

“그걸 어떻게 알아?”

반문한 건 성건우였다.

“장진의 상황을 보면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지. 산비둘기에서 아무런 참극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너희들 능력을 증명하는 거지. 고맙다.”

게네바가 간단히 설명한 뒤 덧붙였다.

“고마워할 것 없어. 형제 사이에 무슨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래.”

성건우는 매우 의리 있게 말했다.

하지만 게네바의 프로그램 속엔,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호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정은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게네바에게 작별을 고한 구조팀은 주위를 경계하며 세린 드림 여관으로 돌아갔다. 이동하는 도중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구조팀은 여관 프론트에 도착하자마자, 주인 아이노가 잔뜩 웅크린 채 컴퓨터만 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러세요?”

장목화가 물었다.

아이노는 손수건을 들어 눈가를 훔치며 전전긍긍한 목소리로 답했다.

“귀, 귀신 영화를 보고 있어서 그래.”

‘눈물이 나올 정도로 놀란 건가?’

아이노는 겉보기엔 30대 정도로 보였지만, 말투를 들어보면 50대를 훌쩍 넘긴 듯했다. 하지만 연륜이 넘치는 어투와는 달리 담은 또 콩알만 한 모양이었다.

장목화가 생각에 잠긴 사이, 성건우와 용여홍은 아이노의 말을 대충은 이해했다. 그들은 귀신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반고 바이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따금 귀신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고개를 쑥 내밀어 아이노의 모니터를 보았다.

갑자기 확대된 모니터 속에 창백한 얼굴이 새빨간 입을 쩍 벌렸다.

화들짝 놀란 용여홍은 귓가에도 심하게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몸을 물리고 싶었지만, 또 세 사람 앞에서 겁먹은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아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굴고 있었다.

“못생겼네.”

성건우가 중얼거렸다.

“일단 방으로 가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바로 장목화가 나섰다. 행여 성건우와 용여홍이 귀신 영화를 빌릴 생각도 하지 못하게, 적당한 핑계를 댄 것이었다.

성건우는 못내 아쉬워하며 시선을 거뒀고, 용여홍은 무섭긴 해도 뒷 내용이 궁금했는지 저도 모르게 아이노의 컴퓨터 화면을 몇 번 힐끔거렸다.

* * *

221호로 돌아와 문을 닫은 장목화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복기를 잊으면 안 돼. 첫 번째 질문부터 할게. 고등 무심자가 대체 뭐에 놀라서 도망간 걸까?”

일찍이 그에 대해 고민했던 백새벽이 냉정하게 답했다.

“그 팔괘, 팔괘 거울이요.”

백새벽은 당시 산비둘기 술집에서 갑자기 숨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벗어난 뒤, 일어나 창문을 열고 장목화와 성건우를 도와 그 고등 무심자를 함께 대적하려 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당시 남가관의 관주 주명희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장목화가 조금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반문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백새벽은 분석했던 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때 주 관주가 한 행동은 세 가지밖에 없었어요. 첫 번째는 손전등을 던지는 것,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고, 다음으론 음, 아마도 부수가 들어있을 병을 깨부쉈어요. 마지막으론 팔괘 거울로 그 고등 무심자를 비췄죠.”

솔직히 용여홍은 부수니, 팔괘 거울이니 하는 것들이 너무도 비과학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비과학적인 건 그것들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순수한 허구’라고 했던 이야기가 현실에 그대로 반영된 것만 같았다.

다시 백새벽의 말이 이어졌다.

“만약 그 고등 무심자가 부수를 두려워한 거라면, 피한 후 도망칠 필요까지는 없었을 거예요. 주 관주가 가져온 부수는 한 병밖에 안 보였었거든요.”

게다가 그 플라스틱병에 들어있던 부수는 이미 다 쏟아져 있었다. 남아 있던 소량의 부수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손전등과 부수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백새벽이 내릴 수 있는 결론도 명확해졌다.

장목화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부터 했다.

“맞아, 근데 그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넌 그 고등 무심자의 지능을 인간과 동급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거야. 우린 늪 1호 폐허에 있던 고등 무심자들을 봤잖아. 여기 무심자는 그 1호 무심자들이랑은 달라. 그들에 비교하자면 오늘 만난 무심자는 인간이라기보단 야수에 가깝지.

다급한 상황을 맞닥뜨린 야수는 적이 부수를 더 가지고 있는지, 그게 전부인지 분간할 수가 없어. 그는 그저 본능에 따라 위험을 피해 멀어진 거야.”

늪 1호 폐허의 고등 무심자들은 수종이의 교육을 받았거나 그의 영향을 받은 까닭에 더 인간처럼 행동하는 편이었다.

가만히 야수나 일반 무심자와 마주쳤던 지난날을 떠올려 보던 백새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네요. 워낙 강력한 고등 무심자였어서 무의식적으로 그 무심자를 인간처럼 여겼나 봐요.”

백새벽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이 부끄러워 억지를 부리거나, 지적에 거부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녀는 작은 실수가 위험으로 직결되는 황야유랑자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때론 누군가의 지적이 자신을 살릴 수도 있는 동아줄이 되기도 했다.

또 무엇보다 이 구조팀 네 사람이 복기할 땐, 과감한 비판과 자기반성의 분위기가 주가 되었다. 심지어는 팀장인 장목화도 팀원들에게 실수를 지적받을 때가 있었다. 그런 탓에 팀원들은 모든 과정을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장목화는 이제 성건우와 용여홍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용여홍이 머뭇거리다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아요.”

성건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는 귀신이니까⋯⋯.”

그는 귀신이라는 단어에 일부러 강점을 두며 음산한 느낌을 더했다.

그리고 또 언제나처럼 장목화가 그를 째려보았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

순간 진지한 표정을 드러낸 성건우가 꼭 전문가처럼 말을 이어갔다.

“그 물건들은 그를 제압할 수 있어요. 인간이 각성할 때 대가를 치르듯, 고등 무심자도 그럴 거예요. 환각의 신을 숭배하는 신룡교가 이러한 영역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뭔지, 어떤 약점이 있는지 알고 있는 건 아주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일이죠.”

‘뭐, 지금은 전문가 성건우라도 된 거냐?’

장목화가 말없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한편 용여홍은 그 말을 듣고서야 서서히 깨달았다. 주명희는 정말 무당의 도구 같은 그런 물건들로 고등 무심자를 쫓아버린 것이다.

그는 전에 각성자를 맞닥뜨렸을 땐 아예 그 상황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인지하지 못했거나, 상대가 치른 대가를 이용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를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애초에 그런 부분을 이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내 장목화가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순수한 웃음이라기보단 뭔가 의미심장한 웃음에 가까웠다.

“훌륭해. 이 점에서 볼 때 주 관주가 준비한 그 물건들은 아주 중요한 정보를 내포하고 있어. 환각 영역에 속한 각성자의 약점은 아마 물 공포증, 빛 공포증, 거울 공포증, 그리고 안면 인식 장애일 거야. 음, 그럼 메고 있던 자루가 대표하는 건 뭘까?”

물 공포증은 병에 든 부수로, 빛 공포증은 손전등에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였다. 거울 공포증은 설명할 것도 없었고, 안면 인식 장애는 주명희 본인이 앓고 있는 병이었다.

용여홍은 거침없이 이어지는 팀장의 말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혹시 내가 평소에 보인 모습에서도 그런 비밀들이 드러났나? 팀장님은 말만 안 했다 뿐이지, 이미 내 비밀들을 다 파악한 거 아냐?’

장목화는 주명희의 행동만 보고도 그 모든 걸 간파해냈다.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치곤 자루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했다.

“붙잡혀서 얻어맞을까 봐 겁이 났나 보네요.”

장목화가 대꾸했다.

“그걸 겁먹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 일단 빛 공포증은 배제할 수 있어. 주 관주는 고등 무심자가 가로등 아래에 선 걸 보고 바로 손전등을 집어 던졌으니까. 이는 주 관주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뜻이야.

안면 인식 장애는 겁을 먹고 도망칠 이유가 되지 못하니 그것도 배제 가능해. 물 공포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너희들도 알아차렸겠지만, 술집에 던져진 그 시체 목 부분에 물어뜯긴 흔적이 또렷했어. 상처에서 흐른 피도 상당했고. 피도 액체인데 고등 무심자는 피를 무서워하는 것처럼은 안 보였어.”

그리고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특정 종류의 액체만 무서워할 가능성도 있겠지. 안타깝게도 현장에 주 관주와 게네바가 있어서 플라스틱병에 들어있던 물을 챙겨올 수는 없었지만. 근데 그럴 가능성은 작아. 자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쓴 적이 없다고 해도 고등 무심자가 무서워했을 수도 있고. 어쨌든 고등 무심자를 겁먹게 한 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건 역시 거울이야.”

백새벽도 생각에 잠긴 얼굴로 동조했다.

“만약 그 가설이 맞다면, 고등 무심자가 술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도 설명이 되네요. 내부가 밝을 때의 창문은 거울처럼 보이니까요.”

그 말을 듣고 장목화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봐봐, 봐봐, 이게 바로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는 거야. 대담하게 가정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실증하는 거지.”

장목화의 칭찬에 백새벽은 약간 민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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