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허점
한편, 일찍이 대문을 닫아둔 장목화는 몸을 웅크리고 굴리며 가장 혼란스러운 곳에 접근했다. 그녀는 현재 이 혼란에 가담하는 대신, 무대와 카드 게임 구역 사이 낮은 벽 뒤에 몸을 숨기고 왼손을 들어 바깥쪽으로 뻗었다.
총소리는 간헐적이기는 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한데 뒤엉키기 시작한 무심자들은 전부 굉장히 광분한 듯 보였다.
숨을 멈춘 장목화는 그들은 개의치 않고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각기 다른 구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접근했다.
총을 꺼내 드는 데 성공한 소수의 몇몇이 마침내 각자 다른 창문 옆에 이르렀다. 창문으로 이 위험한 곳을 벗어날 일만 남은 상태였다.
퍽!
그런데 그중 한 명이 갑작스럽게 귀 아래로 날아든 일격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심지어 습격자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쪼그려 앉은 성건우는 이미 쓰러진 그에게 차분히 이유를 설명했다.
“밖이 더 위험해. 차라리 여기서 잠깐 기절해 있는 게 나아.”
다른 창문 근처에 자리한 용여홍과 백새벽도 그곳을 통해 나가려 하는 총 소지자들을 때려눕혔다.
창문과 문을 닫으라는 장목화의 두 번째 명령은 이곳에 있는 이들이 문이나 창문을 열지 못하게 막으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미리 생각해둔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1분 1초 흐르는 가운데, 적을 움켜쥐고, 깨물고, 꼬집던 무심자들은 점차 밀려드는 피로를 느낀 듯 하나둘씩 눈을 감았다.
“너는 짐을 지고, 나는 말을 끌고⋯⋯.”
성건우가 작은 스피커로 음악을 켰을 무렵, 무심자들은 반고 바이오 라디오 프로그램 속에 등장하는 수면제를 먹은 사람들처럼 풀썩풀썩 쓰러졌다.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장목화가 왼손을 통해 방출한 마취 가스를 마시고 기절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구조팀 네 사람은 사전에 중화제 나크다닝을 먹은 덕에 멀쩡했다.
이는 장목화가 생각해낼 수 있는 것 중 이곳 사람들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팀원들에게 문과 창문을 닫게 한 것도 가스를 방출하기 위해서였다.
무심자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들어온 사람은 없네?”
그 고등 무심자는 조금 전 일어난 혼란을 틈타 산비둘기 술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장목화는 전기 신호로 그 사실을 판단했다.
그녀는 그 고등 무심자가 이러한 방면의 기술과 지식을 알지는 못하리라 믿었다. 현재 이러한 기술과 지식을 장악하고 있는 건 반고 바이오뿐이었다. 그러니 상대가 아무리 그녀의 감각 기관을 왜곡하고 종적을 감출 수 있더라도, 문외한인 생물의 전기 신호까진 수작을 부리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더더욱 이 상황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전에 감지한 신호들에 비해 늘어난 신호가 없었다.
‘정말 여기 없다고? 무심자 주제에 이렇게 신중할 수 있나? 곁에 있는 이들을 모두 무심자로 인식하게 된 술집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모조리 자멸해버린 후에야 들어와 사냥할 생각이었던 건가?’
그때, 흐르는 음악 속에서 조금 커진 성건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한테 겁을 먹었나 봅니다!”
침을 탁 뱉으려던 장목화의 표정이 살짝 멍해졌다.
‘그 고등 무심자가 이 혼란을 틈타 사냥을 하지 않은 건 뭔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나? 이 건물에 있는 무엇이 겁을 먹게 한 거지?
인간이 각성자 능력을 갖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처럼, 무심자도 그만한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특정 규칙을 따라야 하나? 뭐, 무심병에 걸린 그 자체도 대가로 칠 수 있겠지만.’
장목화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고개를 든 성건우가 술집 안의 감시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말 좀 해봐.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그래, 술집 안에 카메라가 있었지. 타르난의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을 진 모르겠네⋯⋯. 어떻게든 여기서 발생한 사건을 로봇 경비대와 각 대형 교파에 알릴 방법을 떠올려야 해. 그들이라면 분명 무슨 수가 있을 거야.’
장목화는 마냥 이렇게 술집 안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나가버릴 수도 없었다.
동시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 무심자는 여태까지 환청을 유발하지는 않아서, 구조팀은 여전히 유효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시야에 비치는 동료들은 완벽한 무심자의 모습이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될지, 얼마나 갈지는 추측도 할 수 없었다.
장목화는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 얼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 * *
세린 드림 여관.
아이노는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등 뒤에서 배회하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목덜미에 차가운 숨을 불어넣기도 하고, 싸늘한 바람을 몰며 멀어지기도 했다.
아이노는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덜덜 떨며 혼잣말을 했다.
“하, 한 번만 더 다가오면, 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비, 비록, 네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격은 무, 무차별적으로 할 수 있어!”
* * *
산비둘기 술집.
장목화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로봇 경비대와 신룡교 등의 세력에 지금 가진 자원을 합리적으로 이용해, 환각으로 인한 곤경을 타개하고 적습 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때, 감시 카메라와의 대화에서 결국 아무 수확도 얻지 못한 성건우가 전술 배낭에서 확성기 하나를 꺼냈다.
음악이 반주처럼 흐르는 가운데, 확성기를 든 성건우가 술집 밖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의식들 여럿 중 하나에 집중했다.
“하늘이 어두워졌어! 바람도 이렇게 거세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지!”
언뜻 듣기엔 하늘의 색도 살피지 않고 밖에서 노는 이들을 질책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이는 사실 추리 광대의 실현 방법 중 하나였다.
다만 확성기를 통해 발휘되기에, 능력의 효과는 대폭 약해졌다. 그러니 일정한 유도를 하는 동시에, 한 개체만 정확히 겨냥해 능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성건우가 겨냥했던 의식은 2초간 멈칫하는가 싶더니 거리의 어느 한쪽으로 가볍게 뛰어갔다.
이 변화를 감지한 장목화는 성건우의 생각을 대강 짐작했다. 그 고등 무심자가 환각을 이용해 술집 손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건, 그와 성건우 사이에 상호 작용이 이루어졌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고등 무심자는 더 이상 성건우에게 자신의 의식을 숨길 수 없었다.
즉, 성건우가 감지한 인간의 의식 중 하나는 적의 의식일 가능성이 컸다.
적은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지도 몰랐다. 또한 적은 바람이 거세졌다는 전제 조건이 환각에서 비롯된 거짓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적은 추리 광대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이는 얼핏 적에게 좋은 일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과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 적의 존재는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법 아니겠는가, 혼자만의 차이는 밤하늘 반딧불이처럼 더 선명하게 도드라질 것이었다.
다만 성건우는 너무 급하게 나선 경향이 있었다. 대응은 완벽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금세 이 방안에 존재하는 몇 가지 허점을 파악했다.
첫째, 능력의 효력 범위가 성건우보다 훨씬 넓은 그 고등 무심자는 현재 성건우가 감지할 수 없는 구역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성건우가 감지한 인간의 의식 속 적의 의식이 포함돼 있진 않을 것이었다.
거기에 그 고등 무심자가 외부에 있는 이들에게 환청을 일으켜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이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바로 두 번째 허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성건우가 감지한 인간의 의식 중 조작된 환각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허점도 있었다.
‘성가시게 됐군. 하나하나 배제해가는 수밖에⋯⋯.’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협조하기 위해 전기 신호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추리 광대 능력에 영향을 받은 상대가 진짜 인간인지, 환각인지를 판단했다.
한편, 한 사람을 재촉해 결국 집으로 돌려보낸 성건우는 곧장 목표를 바꿔 조금 전 행동을 반복했다. 이 순간의 그는 꼭 확성기를 이용해 주민들에게 열심히 방송 중인 촌장처럼 보였다.
* * *
남가관의 관주 주명희는 굿을 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며 가장 강한 환각으로 뒤덮인 곳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같은 영역 내에 비슷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있다면, 상응하는 신호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힘드네⋯⋯.”
한참을 걸어온 주명희가 결국 못 참겠다는 듯 볼멘소리를 했다.
걸으면서 허리를 비틀고, 몸을 흔들고, 손까지 휘두르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녀처럼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성직자로서는 더더욱 힘들었다.
점차 쌓여가는 피로에 그녀는 급기야 신성 모독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위장하고 용광로 교파에 몰래 숨어들어 춤을 배울까?’
* * *
세린 드림 여관.
아이노는 짙은 불안감에 휩싸여, 컴퓨터 모니터만 노려보며 계속해서 경고의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녀의 등 뒤를 배회하며 수시로 목덜미에 숨을 불어넣는 그 사람은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다.
그로부터 수십 초 더 지났을 무렵, 아이노는 서늘한 무언가가 어깨 위에 얹히는 것을 느꼈다.
툭…….
정말로 이젠 이성을 붙잡고 있는 데에도 한계가 왔다.
“꺄악!”
그와 동시에 아이노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극도로 어두워졌다.
* * *
리버프론트 애비뉴, 어느 건물 안.
한 남자가 돌연 난데없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베란다로 튀어 나가더니 불어오는 광풍을 맞으며 오줌을 쌌다.
볼일을 다 본 후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기뻐했다.
혼란스러운 이유는 자신이 왜 갑자기 귀신에 들린 것처럼 조금 전 행위를 저지른 것인지 의문스럽기 때문이고, 기쁜 이유는 이 강풍을 이긴 자신의 오줌발에 난데없이 도취 되었기 때문이었다.
* * *
그 옆 건물, 어느 방 안.
한 여자가 폐허 도시에서 찾아낸 책을 들고, 자신의 아이에게 말했다.
“글을 모르면 유적 사냥꾼이 되어서도 많은 임무를 맡을 수가 없어!”
“글을 읽어줄 사람을 고용하면 되죠.”
아이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섰다.
그러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들어 올렸던 손으로 테이블을 매섭게 내리쳤다.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녀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려면 돈을 내야 하잖아! 그래도 안 배울 거야?”
그러나 그녀는 소리를 치자마자 이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매우 후회했다.
결국 씩씩한 편이었던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배울게요. 배우면 되잖아요⋯⋯.”
* * *
산비둘기 술집.
성건우의 방송을 들은 용여홍은 돌연 열이 오르는 느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꼭 해보고 싶었던, 충동적인 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들은 전부 무심자이니 더 이상 그 충동을 참을 필요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용여홍의 눈에 보이는 무심자들이 전부 몸을 굽힌 채 그를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일 따름이었다. 그의 총에서 쏘아져 나간 총알들도 전부 허공만 가를 뿐, 마취 가스에 취해 쓰러져 있는 실제 사람들에게 향하지는 않았다.
한편 창문 아래의 백새벽은 더욱 단단히 몸을 웅크렸다. 섣불리 움직이지도, 보지도, 듣지도, 반응하지도 않아야 환각에 영향을 덜 받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도 저지르지 않으리란 생각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