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산 요괴
깊은 밤, 침대에 누워있던 성건우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가면을 챙겨 들었다.
그러자 본인 침대에서 자고 있던 장목화도 깨어났다.
빠르게 가면을 착용하고 허리를 굽힌 성건우는 문 옆 창문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창문에 드리운 커튼이 바깥의 달빛과 별빛을 막아주고 있었다.
이내 몸을 반쯤 굽힌 그는 커튼을 움켜쥐고 있다가 옆쪽으로 홱 치워버렸다. 동시에 몸을 세우고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옅은 달빛 아래, 그곳에 있던 한 얼굴이 드러났다.
미약한 빛이 맴도는 시커먼 피부는 비늘에 뒤덮여 있는 듯했다. 거기에 양쪽 귀 아래로부터 목 사이 자리한 아가미는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고, 툭 튀어나온 눈은 흰 자에 비해 검은자가 매우 작았다.
그 낯선 이는 살이 눌릴 정도로 창문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의 모습은 상당히 기괴하고 이상했다.
그 시각, 창밖의 그 괴물도 방 안 광경을 똑똑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창문 앞에는 얼굴에 털이 부숭부숭하고 입이 뾰족한, 동시에 꽤 험상궂어 보이는 원숭이가 서 있었다.
괴물은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듯 소리를 지르며 홱 돌아서더니 여관 구역 밖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마찬가지로 흠칫 놀랐다가 곧 흥분한 성건우는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어가 상대를 쫓을 기세로 창문을 열었다.
“이미 억지쟁이 능력 효력 범위 밖이야. 사방이 컴컴할 때는 가만히 있는 게 나아. 혹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그의 뒤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장목화가 말했다.
그렇게 멈춰 선 성건우는 창밖을 응시하며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봤어?”
장목화가 물었다.
방금은 성건우가 시야를 막고 있어서 그녀는 방문자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단지 기겁한 듯한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성건우는 신이 난 듯 자신이 본 광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때 마찬가지로 놀라서 깨어난 백새벽과 용여홍도 옷을 걸친 채 이쪽 방으로 황급히 넘어왔다.
성건우의 설명을 들은 장목화는 생각에 잠긴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류 쪽으로 변이된 아류인인가?”
“이곳은 분노의 호수 근처니까요.”
백새벽이 거들었다.
큰 호수가 있으니 아류인이 생존하기 매우 적합한 곳이리라는 뜻이었다.
그때, 성건우가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어쩐지 친구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니.”
용여홍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안 놀랐냐?”
잠시 멍한 표정을 드러내던 성건우가 후회스럽다는 듯 답했다.
“내가 오히려 그쪽을 놀라게 했을지도 몰라.”
용여홍은 성건우의 답을 어떻게 비꼬아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해서, 그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같은 말을 되묻기만 했다.
“네가 본 게 엄청 충격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그게 뭐 어때서? 그래봤자 사람인데. 누군가에게 코가 없고, 귀가 없고, 눈꺼풀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놀라기라도 해야 한단 말이야?”
성건우는 예까지 들어가며 물었다.
잠시 상상해보던 용여홍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응.”
성건우는 그제야 가장 친한 친구와 서로 의견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또 다른 예를 들어보았다.
“그럼 누군가의 키가 175센티미터 밖에 안 되고, 생긴 게 평범하고, 성적도 그럭저럭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놀라도 된다는 거야?”
순간 용여홍은 짜증이 치밀었다. 이젠 그가 진지하게 묻는 건지, 평소처럼 자신을 놀리는 건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그게 같냐?”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기미도 없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이번에도 장목화가 나섰다. 그녀는 나른히 하품하며 입을 열었다.
“그만! 한밤중이야. 잠이나 마저 자자.”
“팀장님, 아까 그 아류인이 동료를 데리고 다시 돌아오면 어떡하려고요?”
용여홍은 날이 밝을 때까지 불침번이라도 서야 한다는 듯 물었다.
그 말에 장목화가 옅은 웃음을 보였다.
“훌륭해. 갈수록 신중해지네. 그래, 레드스톤 마켓의 핵심 구역에 아무 전조도 없는 습격이 일어날 리는 없다고 해도, 이곳 정세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지. 애쉬랜더, 레드리버인, 외부 암거래상, 유적 사냥꾼, 아류인, 경계 교파, 지하 방주⋯⋯.
하, 그야말로 무근자 상인단의 잡탕과도 같은 상황이야.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설 필요는 있겠네. 하지만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으니, 한 사람씩만 불침번을 서도록 하자. 큰 기척이 있는지, 없는지만 주의하면 될 거야.”
“예, 팀장님!”
용여홍이 곧장 답했다.
* * *
다음 날 오전, 언제나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레드스톤 마켓에 들어간 구조팀 네 사람은 디마르코 가문의 집사를 만나기 전 치안소에 한 번 더 방문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던데?”
한명호가 물었다.
레드스톤 마켓이 여관 구역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 솔직하고도 과감한 질문이었다.
우아한 중 가면을 쓴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마침 어떻게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어떻게 해야 그 물고기처럼 생긴 아류인이 어디서 온 건지 은근히 물을 수 있으려나, 고민 중이었는데.”
성건우도 의욕 가득한 모습으로 물었다.
“혹시 그 사람들, 밤중에 자장가를 부르기도 해?”
이 뜬금없는 질문을 듣고, 순간 멍해졌던 용여홍은 머지않아 이 질문을 꺼낸 이유를 깨달았다. 성건우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인어 이야기와 어류로 변한 아류인을 연관 지은 모양이었다.
다만 어째서 굳이 자장가를 부르냐고 물은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용여홍보다 더 혼란에 휩싸인 한명호는 성건우의 질문은 그대로 무시한 채 답했다.
“이곳에는 여러 섬에 사는 아류인이 있어. 분노의 호수 안에 있는 섬들이지. 우린 보통 그들을 어인이라고 불러.”
검은 쥐 마을의 아류인들을 떠올린 백새벽은 레드스톤 마켓의 명명에 일말의 어색함도 느끼지 않았다.
한명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 아류인들은 원래는 호숫가 어느 지역의 어민들이었어. 구세계 파괴 당시 일부 지역 수원지가 오염되는 바람에 변이돼서, 서서히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된 거야.”
이 대목에서 용여홍은 문득 의혹을 느꼈다.
“그런데 왜 다 똑같은 형태로 변이된 거지?”
‘비과학적인 일이잖아. 양적, 질적 목표를 가지고 변이 유도 실험을 진행한 것도 아닌데!’
장목화를 힐긋 바라보던 한명호는 그녀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당시만 해도 변이 양상은 다양했어. 대부분 며칠, 혹은 몇 달 만에 죽었지. 분노의 호수 환경과 가장 잘 맞는 존재가 어인이라, 그들만 남게 된 거야.
번식 능력도 있고, 깊이 잠수할 수 있어 오염되지 않은 암류도 찾을 수 있고, 호수 안에서 충분한 식량도 구할 수 있는 거지. 결국 그들은 점차 이 구역 2대 주류에 속하게 됐어. 그 외의 아류인 중 산 요괴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느새 절멸돼 버렸고.”
“산 요괴?”
장목화는 예리하게도 또 다른 중요 단어를 포착했다.
이내 한명호는 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교회당에 안 가봤어? 거기서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산맥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에도 아류인 한 무리가 살아. 어인보다는 훨씬 정상인처럼 보이지만, 피부가 좀 파랗고 치아도 날카롭지. 그뿐 아니라 그들은 절벽도 아주 편하게 기어올라. 우리가 폐허 사이의 길을 걷는 것처럼 말이야.”
장목화는 흥미가 동했는지 계속해서 질문했다.
“그들은 어째서 자연에 도태되지 않고, 이 구역 주류로 거듭난 건데?”
한명호는 약간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나도 잘 몰라. 내가 뭐 이 방면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고.”
그래도 그는 잠시 기억을 더듬은 후에 다시 말을 꺼냈다.
“레드스톤 마켓 사람들은 나한테 그 아류인들의 강점과 그들에게 대항하는 방법만 가르쳐줬지, 다른 얘기는 안 했어. 근데 유적 사냥꾼 일을 했을 당시 난 퍼스트 시티에서 온 한 연구자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산 요괴는 모종의 오염에 대한 저항력이 상당히 강하다고 했었어.”
장목화는 알겠다는 듯 주머니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 그 정보를 기록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살짝 놀란 한명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야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은 순수한 유적 사냥꾼 같지는 않단 말이지. 그보다는 연구원이나 조사원 같아.”
그러다 성건우에게 눈길이 닿는 순간, 한명호의 생각은 다시금 변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 대상에서 성건우를 배제해버렸다.
그런데 마침 성건우가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나섰다.
“대체 어떤 순수함을 말하는 거야? 담을 쌓고, 칠을 하고, 선생님이 되고, 쓰레기를 줍는 게 순수함이라면 우리는 네 말대로 순수한 유적 사냥꾼이 아닐지도 모르지.”
한명호의 직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성건우와는 절대 언쟁해서는 안 된다고, 공연히 말을 섞었다가는 상황을 수습할 수 없게 될 거라고. 그래서 그는 곧장 장목화와 백새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곧이어 장목화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유적 사냥꾼이라면 어쨌든 받은 임무를 완수해야 하잖아. 그러다 보면 아는 것도 많아지고, 기록의 중요성도 깨닫게 돼. 근데 말이야, 어인이랑 산 요괴랑 이곳 레드스톤 마켓은 그다지 친하지는 않은 모양이네?”
한명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자진해서 호수의 섬이나 산 깊은 곳처럼 악조건 속에 살려고 했을 것 같아? 지하 방주가 열린 이래, 이 도시 대부분 지역을 뒤덮었던 오염은 기본적으로 다 사라졌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쫓겨났어.”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들에게 동정심이라도 느끼는 거야?”
“성격 때문에 그래. 근데 이런 성격이 팀을 조직해 레드스톤 마켓을 보호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친 건 아냐. 내 총에 죽은 어인과 산 요괴는 셀 수도 없을 정도지.”
간단히 답한 한명호가 잠시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인이 여관 구역에 잠입했다라⋯⋯. 또 슬슬 움직이려는 모양인데⋯⋯.”
뒤이어 그가 구조팀에게 말했다.
“어인의 체표면은 비늘로 뒤덮여 있어. 구경이 작은 총으로는 이렇다 할 상해도 입힐 수 없어. 그 점을 유의해. 그리고 일반적인 총을 사용하더라도 첫 방에 그들의 머리를 터뜨리지 못했다면 한 방 더 먹이는 게 좋아.”
“고마워.”
장목화가 전 팀원을 대신해 감사를 표했다.
* * *
치안소를 나왔을 때는 딱 9시였다.
구조팀은 곧장 레드스톤 마켓 5층의 비자 무역 회사로 향했다.
이곳은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나무 카운터 앞에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어디로도 숨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다만 그녀의 얼굴은 험악해 보이는 파란 유령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것으로나마 마음속 두려움을 이겨내 보려는 것 같았다.
곧이어 그쪽으로 다가간 장목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를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어제 약속했어요.”
직원은 어찌나 긴장했는지, 불어오는 바람에 잎사귀 하나만 흩날려도 금세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갈 듯했다. 그녀는 겨우 입술을 떼고서 답했다.
“들었습니다. 가장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면 됩니다.”
장목화는 성건우가 혹시 또 무슨 말썽이라도 일으킬까 걱정되는 마음에, 제일 먼저 그를 끌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뒤이어 백새벽은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그렇게 경계할 것 없다는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