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98화 (98/649)

98화. 상황 파악 (1)

이때,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그렇게 했을 때 확인되는 용의자가 없다면요?”

장목화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렇다는 건 범인이 해당 층에서 근무하는, 심지어는 물자 공급 시장 내부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뜻이겠지. 그럴 확률은 무척 낮지만, 아예 배제할 수는 없어. 당시 누가 물자 공급 시장에 접근했는지, 물자 공급 시장 직원들에게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겠네.”

여기까지 말을 잇던 그녀가 성건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각성자라면 누구나 한 가지 대가를 지불하고 세 가지 능력을 얻잖아? 대가를 지불했다면 분명 이상한 구석이 있을 거야. 그게 바로 단서인 거지.”

성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살짝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를 보고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이제 알았어? 그래, 이상하게 튀는 사고방식을 정신 질환으로 둔갑한 건 진짜 좋은 방법이었어. 하지만 회사가 보기엔 그것도 일종의 이상 현상이거든. 추적하고 관찰할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 고위층에서 각성자의 기본적인 자료도 파악하지 않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연구 프로젝트 지원자의 이상 현상을 그렇게 간단하게 넘겼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중증도 정신 질환자가 자원해서 구조팀에 배정되고, 아무렇지 않게 지상으로 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회사에선 원래 각기 다른 환경에서의 네 상황을 관찰하면서 네게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 했어. 내가 그 관찰자였고.”

성건우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지고 또 진지해졌다.

곧이어 장목화는 한숨 같은 웃음을 보였다.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으니 망정이지⋯⋯. 왜 그걸 숨기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숨기고 싶다면 숨겨.”

성건우는 잠깐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뒤를 노릴 수 있으니까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장목화는 곧장 화제를 전환했다.

“우정현 사망 사건은 우리가 방금 말한 대로 처리하자. 넌 일단 좀 참고 기다렸다가 신고를 시도해 봐. 난 그사이에 주변을 대상으로 기술적인 조사를 진행할 기회를 노려볼게.”

성건우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낮게 중얼거렸다.

“조심하세요.”

장목화가 환하게 웃었다.

“적당한 구실이랑 이유를 둘러댈 거야. 난 바보가 아니거든.”

이내 그녀는 금속 와우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한번 웃었다.

“하마터면 못 들을 뻔했네! 앞으로는 남을 좀 더 배려해줘. 목소리 크게 내는 거 잊지 말고.”

“예, 팀장님!”

성건우가 힘차게 답했다.

장목화는 한숨을 한번 토한 뒤, 책상 위 책들을 가리켰다.

“이건 구세계 자료들이야. 한 번 봐봐. 앞으로 오전에는 자료를 보면서 토론하고, 오후에만 훈련할 거야.”

자료를 건네받은 성건우는 자리를 잡고 앉아 얌전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새벽과 용여홍도 휴가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알아서 이곳을 찾아왔다.

* * *

저녁 무렵, 성건우와 용여홍은 간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밥을 다 먹곤 나란히 495층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두 사람이 막 활동 센터 근처에 도착한 그때, 갑작스럽게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 빠르게 그쪽으로 향했다.

곧 검은 제복 차림의 질서 지도자 두 명이 한 명을 이끌고 두 남자 앞을 스쳐 지나갔다. 질서 지도자 사이에 낀 그 사람은 양손도 수갑에 묶여 있었다.

그의 얼굴은 극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커다랗게 뜬 눈은 매우 혼탁했고, 동시에 잔뜩 충혈돼 있기도 했다.

그를 보고 용여홍이 화들짝 놀랐다.

“무심자다…….”

그 무심자는 성건우도 아주 잘 아는, 익숙한 남자였다.

심도환……. 그가 무심자로 변해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엔 엄마에게 꼭 안겨 엉엉 우는 한 아이도 보였다.

“아빠, 아빠……!”

심도환은 더 이상 예전처럼 점잖은 신사가 아니었다. 잔뜩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꼭 미친 야수처럼 보였으며, 눈빛에서도 지성을 읽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동물의 눈처럼 맑은 것도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혼탁하고 충혈된 그 눈은 꼭 악몽을 보고 있는 듯했다.

심도환은 계속 사력을 다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양손은 수갑에 묶이고, 건장한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그는 언제든 속박에서 벗어나 주위 생물을 사냥할 것만 같았다.

그 괴력 역시 이전의 그에게는 없었던 능력이었다.

낮고 거친 괴성을 내지르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멀어지는 심도환의 뒤에선 그의 아이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아빠! 아빠아아아!”

이 광경을 마주한 주변 모든 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두려움과 혼란에 휩싸인 채 그저 안타까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심도환은 그렇게 활동 센터에서 끌려 나갔다.

그가 사라진 이후로도 멀리서 계속 낮은 괴성이 들려왔다.

그때,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성건우가 갑자기 뒤돌아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심도환 아저씨지? 저 아저씨가 무심병에 걸리다니⋯⋯.”

심한 충격을 받은 용여홍은 심도환이 사라진 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답이 들려오질 않자, 그제야 성건우가 사라졌단 걸 알아차렸다.

“야, 야! 너 어디 가?”

성건우는 대답도 없이 방향을 틀어 네 번째 엘리베이터 로비로 향했다. 다른 할 일이 생겼다는 듯한 그의 행보는 그리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 * *

성건우는 곧 647층으로 돌아가서, 구조팀에 배정된 14호로 들어갔다.

장목화는 아직 퇴근하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었다. 방에 있는 유일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이내 그녀도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뭐야? 뭘 놓고 갔어?”

성건우는 그대로 책상까지 다가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도환이 무심병에 걸렸습니다.”

흠칫한 장목화가 얼른 기억을 되짚었다.

“너를 생명 제례 교단에 가입시켰던 그 교도?”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목화의 미간이 구겨졌다.

“우정현의 급사로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있었나?”

“혼란스러워하기도 했고요.”

성건우가 말을 덧붙이며 그녀의 추측을 긍정했다.

장목화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심도환이 교단을 신고하려 해서 무심병에 걸린 거라고 의심하는 거야?”

“예.”

성건우는 부정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여기로 돌아온 건 무턱대고 조사를 진행하던 내가 무심자로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거고?”

성건우는 질문에 대한 답 대신, 갑자기 다른 소리를 했다.

“초대 무심자의 모습은 끔찍하더라고요.”

하지만 장목화도 그의 말뜻을 이해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아, 그런 무심자로 변하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지. 걱정하지 마, 난 교단에 들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지금은 공개된 정보 가운데에서 흔적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으니까.

안심해. 당분간은 감시카메라 영상을 확인하러 가지도 않을 생각이거든. 그들이 더 이상 이 사건에 신경 쓰지 않을 때까지 기다릴 거야.”

“알겠습니다.”

성건우는 짧게 대꾸한 뒤, 곧장 돌아서 495층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그를 불러세운 장목화가 살짝 머뭇거리다 말했다.

“너무 낙담하지 마. 비극적인 사건이긴 해도 덕분에 난 좀 자신감을 얻었어. 그들이 더 많은 짓을 하면 할수록 남은 흔적과 허점은 더 많아지고, 꼬리를 잡히기도 쉬워지는 법이지⋯⋯.”

조금 뜸을 들이던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사실 난 심도환이 생명 제례 교단을 신고하려 했기 때문에 무심병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너도 정각 뉴스를 챙겨 들으니 알 거 아냐. 최근 회사에 무심병 감염자가 여러 명 나타나고 있다는 거. 발병자가 한 명 더 늘어난 것 정도는 이상한 일도 아니지.”

지난 시간 동안 인류는 무심병의 발병 원리와 전파 방법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의 현상 같은 건 파악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무심병이 발발하면 한 건으로 끝나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정 범위 내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은 몇 건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감염자가 나타났다. 다만 그 발병 사례 사이의 교집합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렇게 무심병이 한 번 발생하고 나면 다시 발생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진즉 쇠퇴했을 것이다.

그 빌어먹을 병은 밤에는 알 수 없는 곳에 숨어버리고, 날이 밝고 나서야 슬그머니 자연스레 나타나는 그림자 같았다.

“차으뜸과의 만남보다 더 공교로운 일인 것 같은데요.”

성건우가 대꾸했다.

그 말에 장목화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면 이 사건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시사하는 거야. 생명 제례 교단은 설마 이미 무심병에 관한 모든 비밀을 파악하고 그걸 이용해 적에 대적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대체 어떻게 심도환이 교단을 신고하려 했다는 것을 알아냈을까? 또 어떻게 심도환이 신고하기 전에 때맞춰 무심병을 발발하게 했을까?

너도 내게 교단이 의심스럽다는 사실을 알렸는데, 왜 너한테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 너와 심도환의 차이점은 뭘까?”

그녀는 성건우의 답을 기다리는 대신 한숨을 토해냈다.

“하……. 전부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야. 이 안에 가장 중요한 단서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커. 당분간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자.

그래, 이제 돌아가 봐. 나서서 관련된 질문을 하거나 조사를 하지는 말고, 적당한 수준의 호기심만 보이는 거 잊지 말고.”

성건우는 여전히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장목화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들을 너무 두려워하지도 마. 그들이 정말로 아무나 원하는 사람을 무심자로 만들 수 있었다면. 벌써 이사회의 이사들을 처리하고 교단 사람들로 바꿔버렸겠지. 우리도 이런 골치 아픈 문제로 고민하는 대신 사명의 관용을 진심으로 찬미했을 테고.”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하세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그건 내가 너한테 해야 하는 말 아니냐? 이만 가봐. 가서 좀 쉬어. 교단에서 곧 집회를 소집할 거야.”

장목화가 손을 휘휘 흔들어 보였다.

그에 성건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다시 한숨 섞인 웃음을 보였다.

“심도환이 무심병에 감염됐으니, 교단 고위층은 그들의 뇌를 사명에게 통째로 바치지 않은 이상 최대한 빨리 신도들을 불러 모으려 할 거야. 겁을 주든, 위로하든, 상황이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가도록 둘 순 없을 테니까.

단번에 무심병 감염자가 20명도 넘는다면 우리가 따로 신고하지 않아도 회사에서 알아서 정예 인력을 뽑아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할 거 아냐.”

팀장의 이야기를 얌전히 듣고 있던 성건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팀장님, 제가 노래를 불러드려도 되겠습니까?”

“됐어,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면 그때 불러. 알아, 날 찬양하고 싶겠지.”

장목화는 아주 유려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성건우도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14호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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