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마왕성! (4)
그들의 추리대로, 에탕다르는 시찰이라는 명목 아래 수비대장 푸시케의 거처를 찾아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쨌든 책임자는 책임을 지라고 있는 거니 말이야.”
그러면서 가여운 오두막이 잔뜩 들어선, 마치 어딘가의 난민 수용소 같은 주둔지를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있어서인지 집마다 빨랫감이 널려 있고, 소꿉장난에 쓰던 잡동사니들이 길바닥에 굴러다녔다.
에탕다르는 코를 벌렁거리며 히죽 이빨을 드러냈다.
“신경 좀 쓰지 않으면 항상 이렇다니까.”
주둔지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의 동굴, 모르핀이 확보한 토끼굴 중의 하나에 마족 엄마들과 아이들이 숨을 죽이고 모여 앉아 있다.
품에 안겨 있던 미노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해?”
고개를 숙인 그녀가 씩 웃더니 손을 들었다. 거대한 마왕성은 여기서도 잘 보였다.
“저게 떠날 때까지. 그리고 아빠랑 엄마랑 여기서 다 같이 사는 거야.”
“와, 정말? 이제 아빠랑도 잘 수 있어?”
“그럼, 하지만 아빠는 내 거야. 미노한테는 잠깐 빌려주는 거야.”
“우잉! 엄마는 욕심쟁이!”
히히 웃는 그녀의 곁으로 다른 마족 엄마들과 아이들도 웃고 있었다.
덕분에 주둔지의 마을은 완전히 텅 비어 버렸다. 정말로 찾아온 마왕성을 보자마자 마족 엄마들은 기겁하여 도망쳤고, 사건과 무관한 자들도 괜히 불똥이 튈까 몸을 숨겼으며, 수비대를 총괄하는 책임자도 달아나 버렸다.
메모 한 장 달랑 남겨둔 채.
마을 한복판 우물가에 세워진 푯말에는 그녀들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우리 모두 수비대 그만둘 거다. 찾지 마.
팔짱을 하고 그걸 내려다보던 에탕다르는 하얀 이를 드러내더니 프하하 웃기 시작했다.
“이 괘씸한 녀석들! 과연 제멋대로인 마왕의 일족답다. 나와 숨바꼭질이라도 해볼 참이냐?”
“누구랑요?”
에탕다르가 고개를 돌리자 새빨간 눈동자를 가진 인간 소녀가 그 눈을 동그랗게 뜨고 늑대인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시선은 곧 감탄으로 바뀌었다.
“우와! 늑대 아저씨 팔뚝 엄청 굵네요? 우리 주인님보다도 더 큰 듯?”
잠깐 캐롯을 내려다보던 에탕다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넌 뭐냐? 사람이냐?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질 않는데.”
“우와! 그게 들려요? 귀도 좋으신 듯?”
배시시 웃어준 캐롯이 자기를 소개했다. 오랜만에 전투복 치맛자락도 살짝 들어 올리면서.
“모험가 크랭크의 자동 인형, 캐롯이라 하여요.”
“자동 인형이라고? 놀랍군. 인간들 기술은 벌써 이 정도로 발전한 건가.”
놀란 에탕다르가 캐롯을 번쩍 들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갑자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너 이 녀석, 누가 시켜서 따라붙은 거냐?”
그에게 겨드랑이를 붙들려 있던 캐롯도 눈을 게슴츠레 뜨고 히히거렸다.
“에에? 나는 그냥 이 상황에 아저씨까지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좀 지켜봐 드리려고 그랬죵.”
자동 인형의 넉살이 마음에 든 에탕다르는 좀 낄낄거린 다음 캐롯을 다시 바닥에 내려주었다.
“어쨌든 잘됐군. 마왕에게 데려갈 책임자를 찾고 있다. 어디 숨어 있는지 아느냐?”
“푸시케 대장님을요?”
주변을 살피다 힐끔 캐롯을 보던 에탕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시 현장 증언 정도는 책임자에게 들어야 하니까 말이지. 소지품만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찾기가 수월하겠구나.”
그러면서 오두막에 널린 아이들 옷가지 빨래를 잡아당겨 킁킁거리며 중얼거렸다.
“안 보이면 아쉬운 대로 다른 녀석이라도 붙잡아 갈까 싶군.”
그러면서 힐끗 쳐다보니 이 꼬마 인형의 눈알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음흉한 늑대인간의 계략에 휘말린 캐롯이 호다닥 몸을 돌렸다.
“잠깐만요! 좀 물어보고 올게요.”
어디론가 와다다 달려간 캐롯은 잠시 후 골목길에서 나타나 그에게 손짓했다.
둘이서 찾아간 곳은 그럴듯한 통나무집이었다.
탕탕!
인기척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웬 사내가 벽에 못질을 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흡사 크랭크가 나이 들면 저렇지 않을까 상상이 될 정도로 큰 중년 사내였다.
특징은 잘 다듬어진 금색 털보에 불룩 튀어나온 배.
게다가 그는 늑대인간 에탕다르를 마주하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뭐냐?”
“너야말로 누구냐?”
에탕다르의 물음에 금색 털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캐롯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 푸시케 수비대장의 남친인가 보다! 맞죠? 앗! 도망간다!”
덩치에 비해 재빠른 동작으로 몸을 휙 돌린 금색 털보가 창틀에 올라섰는데 캐롯이 어느 틈에 그의 다리에 매달렸다.
“으럅! 어딜 가요! 아저씨는 모두를 위한 제물이에요!”
“이것 놔라!”
턱!
남자의 목에 두꺼운 팔을 휘감은 에탕다르가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로 물었다.
“푸시케 어디 갔어?”
“으극, 모, 모른다.”
여전히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 있던 캐롯이 외쳤다.
“이 아저씨를 미끼로 푸시케 대장을 낚아봅시다!”
“그거 좋군. 똑똑하구나.”
잠시 후, 그를 미끼로 인근 숲속에 굴을 파고 숨어 있던 푸시케의 포획에 성공했다.
별 저항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울분을 토하며 외쳤다.
“멍청아! 부르기 전까지 찾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나는 그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를 보고 에탕다르가 코를 좀 벌렁거리더니 말했다.
“사랑싸움은 그쯤 해라. 수비대장 푸시케. 잠깐 마왕님 좀 보러 가자.”
입을 꾹 다물고 식은땀을 흘리던 그녀가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핵석을 좀 나눠 줄 테니까. 눈감아 주면 안될까?”
“푸시케, 저 친구는 네 오두막을 수리하고 있더군. 넌 여기에 숨어 있고 왜 그랬을까?”
팔짱을 끼고 다가온 에탕다르가 그녀의 얼굴 앞에 콧구멍을 들이댔다.
“어떻게든 여기 눌러앉을 생각이었던 거지. 잔말 말고 따라와라. 마왕은 널 계속 써먹을 참이다. 그리고 가진 핵석은 전부 내놔. 부유섬의 동력으로 써주마.”
“나를 계속 써먹는다고?”
내심 불만인 듯, 에탕다르는 코를 벌렁거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렇다. 싸움이 아니라 교섭 자리에 내놓으려면 호전적인 놈들보다 붙임성 좋은 것들을 골라야지. 너나 나처럼.”
그 이야기를 듣고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푸시케는 터벅터벅 동굴로 들어가더니 가죽 자루를 가지고 나왔다.
총총 뒤따라 들어갔던 캐롯이 감탄을 터트렸다.
“우와! 완전 보물 창고네? 별 게 다 있어요!”
“야! 너 이 꼬마 자식!”
핵석 자루를 들여다보던 에탕다르가 또 콧구멍을 벌렁거리더니 말했다.
“원래 보내야 할 공물을 빼돌리고 있었던 건가? 모두 회수하겠다.”
“너희들이 보급선을 제대로 보내왔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무슨 말이지? 각 부대에 보급선은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었…….”
아니, 잠깐!
얼굴을 찌푸린 에탕다르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푸시케와 금색 털보를 보더니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일부러 고립시킨 건가? 왜지? 이런 사고를 노려서 뭘 얻을 수 있지?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던 에탕다르가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히죽 이빨을 드러냈다.
밑에서 그의 바짓자락을 붙잡은 캐롯이 삐야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끼약~! 멋져! 늑대 아저씨 지금 얼굴 최고로 흉악한 흑막 같아요! 최고야! 하드 보일드!”
“그러냐? 하여튼 어서 가자. 확인해 볼 게 있다.”
우물쭈물하던 푸시케가 고개를 좀 숙이더니 기어가는 투로 입을 열었다.
“어, 잠깐만 기다려 줘라. 저 녀석에게 할 말이 있어.”
에탕다르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푸시케와 금색 털보를 보더니 이맛살을 찡그렸다.
캐롯은 저 얼굴이 참 멋지다고 생각해 버렸다.
“뿔 마족은 못 말리겠군. 하지만 이해는 한다. 5분 주지.”
“30분은 필요해!”
“5분, 협상은 없다. 필요한 것만 챙겨, 딴짓은 하지 마.”
도끼눈을 뜬 푸시케는 얼른 남자의 손목을 잡아채더니 서둘러 동굴 안으로 달려들어 가 버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캐롯이 입가를 가리고 호오옵! 하는 소리를 질러대자 늑대인간이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
“이봐, 너희 자동 인형도 애를 만들 수 있나? 어떻게 자손을 남기지?”
“에엥?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아직 기술은 거기까지 발전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좀 생각하던 캐롯이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꼭 자손을 남겨야만 생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냐! 대신 작품을 남기면 되잖아! 대대손손 이어진 인류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우리 이야기에 심취하면! 나의 경험과 기억도 그네들과 함께 미래로 이어지는 거야! 고대의 병법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하하! 어때요? 괜찮은 이론이지 않음?”
누구에게 외치는 것인지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호탕하게 소리를 지르는 꼬마 인형을 보며 늑대인간 에탕다르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5분을 갓 넘긴 직후, 안에서 뭔 짓을 하고 나왔는지 잔뜩 상기된 푸시케가 우물쭈물 모습을 드러냈다.
밖에서 에탕다르와 캐롯은 뭔가 한참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캐롯이 두 손을 번쩍 들고 반가워했다.
“우와! 아는 게 참 많은 하드 보일드 늑대 아저씨구나! 생각이 깊어!”
“나도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녀석을 만나 반갑다. 마왕성의 그 피아노 녀석보다 네가 더 똑똑한 것 같다.”
피아노, 용사 에스파다의 파트너 오토마톤이었다.
캐롯이 그에 관해 물어보려는데 에탕다르는 이제 푸시케를 보고 있었다.
“가끔 인간들의 가능성이 두렵다. 저런 것을 평생의 반려로 본단 말이지?”
저런 것이 분통을 터트렸다.
“저런 거라니!”
몸을 돌린 에탕다르는 손가락을 꼽으며 걷기 시작했다.
“뿔 마족은 4대 마족 중에서 가장 생활력이 없기로 유명하다. 싸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 게다가 성깔은 또 어떠냐? 포악하고 무모하며 잔인하지. 일족에서 마왕이 나온 것이 증거다.”
같은 마족이 포악과 무모와 잔인을 거론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던 캐롯이 그걸 지적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가만 보니 다른 종족도 다르진 않더라고? 이건 그냥 케바케야.
“그러고 보니 퍼리 고양이 언니랑 사귀는 남자를 본 적 있어요.”
히죽 이빨을 드러낸 에탕다르가 낄낄거렸다.
“그것도 별난 녀석이로군.”
잠자코 뒤따르던 푸시케는 자연스레 옆을 따라 걷는 캐롯을 보고 그만 울화통이 터져 버렸다.
“넌 왜 여기 알짱거리고 난리냐! 네가 알렸지!”
“누우오오오옥?! 어, 엄한데 화풀이?”
분통을 터트린 그녀는 캐롯을 들어 탈탈 흔들어댔다.
그대로 푸시케 수비대장을 연행한 에탕다르는 곧바로 마왕성으로 올랐다.
이동식 부유섬에서 폴짝 뛰어내린 캐롯은 공중 정원에 펼쳐진 꽃밭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아! 여기가 마왕성이야? 세상에 너무 예뻐! 최고야!”
깜짝 놀란 에탕다르가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여기까지 따라온 거냐?”
“에? 아무 말도 없길래요. 데헷?”
혀를 빼물고 귀여운 짓을 하는 발칙한 꼬마 인형을 보고 곤란한 표정이 된 에탕다르는 캐롯의 목덜미를 잡아 들고는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자동 인형이니 대충 던지면 되겠지?”
“어이! 늑대 아저씨! 말로 해요! 이 높이면 아무리 그래도 부서진다고요!”
“적당히 저쪽 저수지나 숲이 우거진 곳에 던지면 괜찮지 않겠냐?”
“그래도 부서진다고!”
버둥거리는 캐롯을 들고 이마에 손바닥을 편 에탕다르가 진지하게 착탄지를 고르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들으니 하늘의 부유섬에도 올랐다고 하던데. 그때는 어떻게 착지했었지?”
“그때는 착지 마법을 사용해서…… 으잉?”
붙들린 캐롯이 고개를 돌리니 계절에 맞지 않는 화사한 꽃밭에 검정 드레스 차림의 여자가 두 팔로 가슴을 받치고 있었다.
에탕다르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마왕님. 나와 계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