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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302화 (302/329)

302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마왕성! (3)

화들짝 놀란 그녀가 마주 인사했다.

“아르곤 임시 휴전선 접경지 총사령관직을 역임하고 있는 헤리슨입니다. 회담에 앞서 이번 사태에 심심한 유감을 표명하는 바이며, 우리는 귀군과 대립할 의도가 없음을 미리 밝혀두고 싶습니다.”

무려 파란색 털 갈기를 가진 늑대인간이 멋들어진 제복을 입고 싱긋 웃는다.

뇌쇄적인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시선을 피한 헤리슨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려 애썼다.

크윽! 쓰다듬고 싶어!

짧은 인사를 나눈 그들은 곧바로 회담장이 마련된 대형 천막으로 이동, 이번 사태에 대한 공식 사과와 더불어 그 수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간 측 대표는 헤리슨, 이온 전 영주, 그리고 쥬세페 공주.

마왕성 남하 소식을 접하자마자 모종의 돈 냄새를 맡고 수도에서 부리나케 달려온 쥬세페 공주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투였다.

“요구 사항이 그게 전부입니까?”

“그렇다.”

마왕성에서는 이번 사태를 그냥 넘어가는 조건으로 영토를 원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현재 경비대가 위치한 휴전선 마을 전체를 비워줄 것.

겨우?

헤리슨과 쥬세페 공주가 중앙에 앉은 이온 전 영주의 의중을 살폈다. 한때 마왕군과 교전도 불사하던 이 반골의 전사는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음? 뭔가?”

문득 그가 곁을 살피자 헤리슨이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네. 그 정도면 싸지.”

팔짱을 끼고 마주한 늑대인간 에탕다르는 손가락을 하나 더 폈다.

“그리고 책임자의 처벌, 이쪽과 그쪽의 총책이 되겠지. 그래서 우리 쪽 수비대장은 어디에 있나? 보이지 않는데.”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런 대답을 해야 하는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껴 울상을 지은 헤리슨이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귀 수비대의 푸시케 수비대장은 수일 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파란 털의 늑대인간은 갑자기 한 손으로 눈가를 덮더니 푸하하 웃기 시작했다.

“큭큭! 과연 마왕님의 일족답군. 도망갔다 이거지? 알겠다. 그건 이쪽에서 알아서 하겠다.”

생긴 대로의 호탕한 발언에 조금 안심한 헤리슨은 서류를 펼치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해당 사건에 최초 원인을 제공한 자들에 대해서는 어찌……?”

“책임자 처벌이면 충분하지. 뭘 또? 그 애들은 내버려 두면 된다. 어떻게 태어났던 결국 선 안쪽의 주민이다. 언젠가는 너희들의 목을 노릴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웃는 늑대인간의 뇌쇄적인 눈웃음은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헤리슨을 포함한 몇몇 보좌진들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섹시! 퇴폐미! 그런 음탕한 눈빛 하지 말아줘!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린 사람들의 심정도 모른 채 팔짱을 푼 에탕다르가 탁자에 두꺼운 팔뚝을 올리더니 굵은 손가락을 펴 들었다.

“잊을 뻔했군. 이게 제일 중요해. 난 잘 모르겠는데. 경제특구라고 아나?”

조마조마 기회를 살피던 쥬세페 공주의 눈동자에 번개가 쳤다.

“너희가 비워준 자리에 시장을 열고 싶다. 선은 우리가 엘프 놈들에게 이야기해서 밖으로 뺄 거야. 그 자리에 너희 쪽 상인들이 들어와 줬으면 좋겠어. 너희 물건과 우리 물건을 사고파는 거지.”

앞으로 몸을 쑥 내민 쥬세페 공주가 몹시 흥분하여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정말입니까?”

“정말이다. 마왕님이 뭔가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시더군. 그래서 찾아온 거다.”

쥬세페 공주는 만세 삼창이라도 외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꾹 참기로 했다.

다시 팔짱을 낀 늑대인간 에탕다르는 주변을 살피며 말을 맺었다.

“그리고 마왕성은 한동안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이곳에 체류할 거다. 이쪽 용건은 끝이다. 대충 된 것 같은데 뭔가 더 할 말 있나?”

이온 백작이 손을 들었다.

“너무 그쪽만 재미 보는 것 같지 않소? 이쪽도 뭔가 좀 얻는 게 있으면 좋겠소만.”

“건방지구나! 잘못은 너희 쪽에 있다는 걸 잊었느냐? 고개를 조아려라! 늙은 인간 따위가!”

마왕 측 간부 하나가 험악한 소리를 내자 에탕다르가 막았다.

“그래서 영감은 뭘 원하는데?”

꼿꼿한 자세로 날 선 눈빛을 한 이온 백작은 쥬세페 공주가 좋아할 만한 소리를 입에 담았다.

“그쪽이 나오는 거니, 우리도 저 너머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시오. 임산물의 채취나 동물의 사냥 같은 것 말이오.”

요구 사항을 듣자마자 의외로 삭삭거리던 마족 간부들이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조소를 흘리는 자도 보였다.

이맛살을 찌푸리고 이온 전 영주를 보던 에탕다르는 걱정마저 내비치며 물었다.

“진심이냐? 원시림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렇소.”

팔짱을 한 에탕다르가 슬쩍 몸을 기울이더니 옆자리 보좌관에게 쑥덕였다.

“들었냐? 이놈들 미쳤어. 우리 원시림에 들어오고 싶단다.”

“흥! 굳이 들어와서 숲의 거름이 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생존자는 모조리 사로잡아서 우리들의 노예로 부려주겠다. 에탕다르 님, 다른 사천왕도 기뻐할 거다. 마왕님께 정식으로 요청해 보는 거다.”

어쩐지 상관을 대하는 태도가 불량한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에탕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 건은 물어보고 대답해 주마. 그런데 정말 자신 있냐? 허약한 놈들은 들어오면 바로 죽어.”

테이블 건너편에서 그 소릴 들은 모두는 그들 나름대로 눈빛을 번쩍여댔다.

“100년과는 다릅니다, 100년 전과는.”

이온 백작과 쥬세페 공주의 얼굴에 음흉한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건너편의 마족들은 솔직히 그런 인간들의 자신감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에탕다르가 그들을 쭉 살피며 물었다.

“또? 다른 건 없나?”

옆에 앉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던 헤리슨이 얼른 대답했다.

“현재로선 없습니다.”

“알았다. 이걸로 회담을 끝내지.”

뭔가 바쁜 일이라도 있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에탕다르는 먼저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다 천막으로 다시 고개를 들이밀더니 말했다.

“페파, 나 잠깐 동네 시찰하고 올 테니 망나니 도련님들이랑 드라고니안 애들 챙겨라. 눈 와서 얼어 죽을라.”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는 부하들을 내버려 두고 에탕다르는 다시 나가 버렸다.

헤리슨이 남은 마왕군 간부에게 슬쩍 웃어 보였다.

“호탕한 분이시군요.”

“그래서 여기에 온 거다. 다른 사천왕이었다면 볼만 했을 거야. 이제 포로를 되돌려 받겠다.”

무표정하게 대답한 마족 간부들도 다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고 회담장 천막 안에는 인간 측 대표들만 남았다.

“후으아아!”

거창한 한숨을 내쉰 헤리슨을 가엽게 여긴 이온 전 영주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때 별안간 쥬세페 공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북부 개척의 시대가 도래했도다!”

이온 전 영주가 당황한 얼굴을 돌렸다.

“공주님, 그 건은 아직 협의로 알고 있습니다만.”

“무슨!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들은 우리를 얕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100년 전에는 마력수정폭탄이 없었으니까! 안쪽에서 마법을 쓸 수 없어도 그것만 있으면! 으흐흐하하하!”

“전하! 체통을 지키세요!”

너무 신나서 흥분해 버린 쥬세페 공주는 리리안느의 질책에 헛기침을 조금 하더니 이온의 손을 붙잡았다.

“이온 백작. 그대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협상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내 그 용기와 노고만큼은 찬양하리다.”

회담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공주의 노림수를 전해 들었고, 그 역시 젊은 시절부터 저 북부 원시림으로의 진출을 내내 가슴에 담아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난 쥬세페 공주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의 방침을 검토해야겠습니다. 리리안느! 친목회 회원들을 소집하라. 즉시!”

드디어 보물섬을 향한 물꼬를 열었다고 생각한 공주 역시 재빨리 보좌관들과 함께 천막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제 둘만 남은 천막 안, 고개를 숙인 헤리슨이 중얼거렸다.

“영주님, 처벌로 사령관직 파면은 어떻습니까?”

“아니, 나는 근신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좀 쉬었다가 와서 경제특구 구역장을 맡아주시게. 대신 일이 잘 성사되면 자네 모험단에게 제일 먼저 북부 진출권을 주겠네. 북부 개척의 시작을 알리는 거지.”

“크흑!”

그녀의 모험단은 커지고 커져 이제 딸린 식구만도 백여 명, 결국 모두를 위해 단장 헤리슨은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일어섰다.

티슈 백작 부인! 그리고 푸시케! 용서 못한다!

* * *

마족이라고 부르는 인 외 종족들의 능력치는 대체로 인간의 수 배에 달하는 근력과 체력, 회복력에 맞춰져 있다. 여기에 종족별, 개인별 특수 능력이 조금 추가되는데.

회담장에서 한참 떨어진 바위 뒤쪽에서 일어나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모르핀의 경우엔 동족보다 못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지만 감각기관만은 이상할 정도로 발달한 상태였다.

특히 청각이.

이것은 기회다.

재빠르게 숲으로 달려간 모르핀은 숨겨놓은 자동 2륜 차량을 끄집어냈다. 멋대로 꺼내온 아리에테의 로시난테였다.

이이이잉!

촤아악!

바퀴를 미끄러뜨리며 차체를 돌린 모르핀은 곧바로 초원을 질주해 아르곤으로 달려갔다.

달린다기보다는 거의 미끄러져 가며 들판을 주파한 모르핀은 아르곤에 도착하자마자 투나를 찾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지하 정원에 죽치고 있었다.

“여, 여기 따, 따뜻하거든 흐흐히히!”

“투나-!”

“우효옷!?”

거친 숨을 훅훅 몰아쉬며 들어온 모르핀은 정원의 평상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투나를 붙잡고 돈을 요구했다.

“도, 돈?”

“그래!”

경제특구 이야기를 전해 들은 투나의 눈빛이 빛난다. 더불어 옆에서 듣고 있던 포비의 눈빛도.

“투자라고 해야겠네요. 마족이랑 거래라니 이거 굉장히 솔깃한데, 여유 자금 좀 끌어모아 둘까요?”

하지만 투나는 뭔가 미묘한 얼굴이었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마족들의 습성과 반목에 대한 것도 대략 알게 된 그녀에겐 신기한 이야기였다.

“마, 마왕이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갑자기 교, 교역을 한다고? 우리랑?”

“뭔가 실험해 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조금 생각하던 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모르핀이 구해다 주는 재료로 모험가용 힐링 포션을 만들어 보았는데 이게 꽤 잘 팔려 나가는 참이었다.

“조, 좋아. 해보자. 돈은 넘치도록 있으니까. 포비가 좀 거들어주고.”

포비가 히죽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모르핀, 말해 봐요. 뭘 하고 싶어요?”

모르핀이 날카롭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빌어먹을 마족들의 계몽과 문명화를 원해.”

* * *

아르곤 지하 경제를 주무르는 갑부 투나의 지원에 힘입어 모르핀의 계몽 사업이 추진되는 동안 휴전선 마을에서는 포로 송환이 한창이었다.

“와! 이제 집에 가는구나! 잘 가요! 용의 후예! 드라고니안! 보고 싶을 거야! 심심한 콧구멍에 설탕을!”

귀도리와 목도리를 두른 조그만 꼬마가 두 팔을 흔들면서 환송하는데 도마뱀 인간들이 히죽히죽 웃는다.

매끼 밥에 간식까지 챙겨주고 심심하면 찾아와서 말을 걸고 떠들어대는 통에 다들 저 녀석의 인간관계와 정체에 대해서 줄줄 꿰게 될 지경이었다.

게다가 돌아가는 그들의 손에는 조그만 가죽 주머니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설탕을 좋아하더라는 보고에 가능한 그들의 분노를 식혀보려던 헤리슨이 선물 삼아 쥐여준 것이다.

배웅하던 캐롯은 이제 수다쟁이 마왕의 아들들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어어? 이 금태양 아드님들은 다 어디 갔댜?”

포로 호송을 감독하던 경비병이 대답했다.

“제일 먼저 올려 보냈다.”

“다음은 내 차례였는데에!”

갑자기 들려온 처절한 울부짖음에 이마에 핏대가 솟은 경비병이 손짓했다.

“오롤. 쫓아내.”

트드득.

투구가 돌아가고, 소복하게 쌓인 눈밭에서 3미터짜리 하드 스킨 오토마톤과 마족의 술래잡기가 또 시작되었다.

도망치던 마족 여자가 송곳니를 드러내고 버럭 외쳤다.

그녀는 이제 경비병의 이름까지 알아냈다.

“오리콘! 너 이름 오리콘 맞지! 너 이 자식! 각오해라! 내 권리를 빼앗다니! 너라도 빨아먹고 말겠어! 그래서 네놈 애새끼를 배어주마!”

경비병 오리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혐오감마저 뒤섞인 진심으로 싫은 표정이 드러났다.

“뿔 괴물이 역겨운 소리를 하는군. 목이 떨어지고 싶다면 와봐라.”

오롤에게 쫓겨 도망치는 마족을 구경하며 낄낄거리던 캐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이쪽 꼬마들 못 봤어요? 갑자기 안 보이네?”

“어디 숨어 있겠지. 마왕군도 군대인데 이런 걸 그냥 넘어가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냐? 최소한 책임자 문책은 있을 거다.”

“오, 그건 맞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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