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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68화 (268/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괴수대전! 268 >

쿠구구구! 후두둑-!

왕성으로 위장된 돌 거인이 땅속에서 일어나 다리를 뽑아냈다. 그의 등장에 드래곤마저도 고개를 돌리고 쳐다본다.

후두둑! 쿠쿵!

긴 세월 흙 속에 파묻혀 지내느라 곳곳에 금이 가고 파편이 떨어졌으나 그 위용만은 죽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추억이 되살아난 것을 보고 반가워진 드래곤 메르카바가 웃는다.

-클클클크흐하하하! 이 끔찍한 괴물 놈! 원수도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구나! 몇 년 만이냐! 900년? 1000년?

연이은 증축과 개축으로 전보다 더 커진 돌 거인의 어깨와 머리 위에는 각종 첨탑과 깃발이 잔뜩 매달려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거대한 방주 도시를 링으로 삼아 서로를 마주 보고 선 드래곤과 성 거인의 초현실적인 모습은, 수도 어디에서건 보일 정도의 경치를 자랑했다.

이때 성에서 여왕의 목소리가 울린다.

-기록에 따르면 879년 전의 일입니다. 요격 개시에 앞서 반경 100미터 내의 인원은 대피하십시오. 일라이자는 왕자 보호를 최우선, 그는 공주와 함께 마지막 남은 용사의 직계 혈통입니다.

건물에 처박혀 버둥거리는 거대 자동 갑옷을 보고 사람들이 뜨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왕자님이 용사의 직계!?

다시 성내 내부 조작실, 여왕의 오토마톤 이지스가 캐롯을 부른다.

-기립 성공, 당신에게 조작을 맡깁니다. 중앙의 단상 위로.

“엇? 정말? 내가 움직이게 해주는 거야? 신난다!”

폴짝 뛰어 높다란 단상 위에 올라서자 사방에서 붉은빛이 쏘아져 나오더니 캐롯의 몸 곳곳을 비춘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실에 매달린 마리오네트.

팔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붉은빛의 선을 보며 캐롯이 말했다.

“이게 뭐야? 실이야?”

-동작 확대해석을 위해 필요한 장치입니다. 원래라면 용사의 자손만이 가능합니다만, 그것은 이쪽에서 우회 링크하였습니다. 자, 결전을 준비합시다.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캐롯이 시선을 올려 뜨더니 케케케 웃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움직이면 이 성 거인도 움직인다는 거지? 자동 갑옷이랑 개념은 같네.”

트드득!

트드드드!

뚜드드드!

묵직한 성의 구조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던 전설의 바위 거인이 두 팔을 위로 올리고 웅장한 프론트 더블 바이 셉스를 선보였다.

그와 함께 우렁찬 캐롯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신 품종 개량! 킹-! 캐롯!

끼이익!

끼익!

쿠콰쾅!

관절이 갈려 나가는 우렁차고 끔찍한 소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고, 그걸 쳐다보던 많은 사람은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넋 나간 표정을 지어 버렸다.

멀리 떨어진 르메르트 공작가, 대파된 지붕 파편을 잔뜩 뒤집어쓴 크랭크의 아래에서 아리에테의 역정이 쏟아진다.

“너는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냐! 어서 비켜라! 무겁다고!”

“푸후흐흐!”

와르륵!

크랭크가 파편을 들어 올리며 자리를 비키자 그 아래에는 아리에테 말고도 저택의 시녀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시녀들을 대피시킨 크랭크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저 멀리 보이는 바위 거인을 바라보았다.

“저걸 봐라, 멋지지 않나?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프론트 더블 바이 셉스다. 그나저나 킹 캐롯이라니, 저기에 타고 있었나? 푸후후흐흐-!”

“너는 어디까지가 제정신인 거냐? 적당히 좀 해라!”

퍽퍽!

제대로 된 상황에서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던 아리에테가 울화통이 치밀었는지 그의 어깨를 철썩 때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뭣들 하나! 부상자부터 살펴라! 사용인은 죄가 없다!”

머리에 파편을 맞고 기절한 근위기사단장을 두고 우왕좌왕하던 기사들이 아리에테의 박력에 매료되어 버렸다.

“옙!”

다시 슈퍼괴수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왕성,

파지지직! 짜자작!

왕궁 주위를 감싸는 마법 방어벽을 두 손으로 찢어 버린 드래곤 메르카바가 울타리를 부수고 그 화려한 꽃밭으로 들어섰다.

쿠쿵! 쾅!

짜릿한 감각, 이 안쪽은 강력한 결계가 아직 작동 중이라 마법은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때려 부숴 주마.

마주하고 있던 성 거인도 걷기 시작한다.

한 번 걸을 때마다 몸에 달라붙은 건물이 후두둑 쏟아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쿠쾅-!

여왕이 정성들여 가꾼 우아한 정원의 꽃밭, 그 위에서 거대 드래곤과 돌 거인의 싸움이 800년 만에 재개되었다.

쾅!

용의 주먹질 한 번에 머리 위 첨탑이 부서져 날아간다.

-반갑구나! 하하하! 오랜만이구나! 나의 추억이여! 네 녀석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후우웅! 퍼석!

묵직한 돌주먹이 날아들어 드래곤의 정수리를 찍어 버렸다.

쏟아지는 파편 사이로 부릅뜬 그의 눈이 시뻘겋다.

-버릇없는 놈! 말하는 도중이잖느냐!

콰아아아!

어마어마한 불기둥이 쏟아진다. 크게 벌어진 메르카바의 입에서 발사된 브레스는 성 거인의 머리 장식을 절반쯤 녹여 버렸다.

“으앗! 뜨뜨뜨! 머리에 불붙었어!”

조종실에서 캐롯이 호들갑을 떠는데 그 몸짓이 그대로 돌 거인에게서도 나타난다.

메르카바가 얼빠진 표정으로 웃더니 재차 덤벼들었고, 둘은 양손을 붙잡고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쾅! 쿠쾅!

트드드! 끼기긱!

이 박진감 넘치는 괴수대전을 보기 위해 도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건물 옥상이나 대로 밖으로 나와서 고개를 들었다.

“세상에, 전설이 싸우고 있어.”

“어, 믿을 수 없구만.”

건물이 박살 나고 사람도 꽤 다친 상황이건만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나 버렸다.

“우리 편 이겨라!”

“사악한 용을 쓰러뜨려!”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흘러나온 말이었건만 메르카바는 그걸 또 들어버렸다.

사악한? 내가?

-이 끔찍한 것들! 내 땅에 쳐들어온 것은 너희 선조들이 먼저였다!

쩍!

메르카바가 다시 입을 벌리고 브레스를 토해냈다.

콰아아아아!

-으갸아아! 불이야! 불!

양손을 잡힌 채 그걸 마주한 돌 거인은 몸을 조금 기울이는 것으로 회피를 시도, 얼굴의 절반 정도가 녹아 버리는 것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으아뜨뜨! 아뜨뜨!”

뜨거울 리가 없는데도 조종실에서 또 호들갑을 떨던 캐롯이 고개를 들었다.

“너무 둔해! 이래선 못 잡겠어. 여왕님! 아니, 이지스! 잠깐 버텨 줄 수 있어?”

-가능합니다.

이윽고 돌 거인에게서 구원 요청이 나왔다.

-근접지원사격! 목표 드래곤! 쏴라!

대기 중이던 근위기사단 소속의 마법사들이 마법을 난사하고, 오토마톤들은 활이나 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간지러운 수준이었지만 가끔 묵직한 공격도 있었다.

뚜벅뚜벅.

“여, 친구들. 나만 빼놓고 재미난 일을 하는군.”

정장에 지팡이를 짚고 무너진 가옥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보이드 자작, 얼굴에 쓴 붉은색 선글라스는 주변의 유행과 패션을 압살해 버렸다.

칭-!

쩌저저적!

주문도 없이 지팡이를 바닥에 대고 두드리는 것만으로 그의 주변에 거대한 얼음 기둥이 나타났고, 곧이어 드래곤을 향해 발사되었다.

퍼퍼퍽!

“크르륵!”

고통을 느끼고 이빨을 드러낸 드래곤 메르카바가 시선을 돌리자 보이드 자작이 허허 웃으며 손을 든다.

“안녕하시오?”

쩍!

분노한 메르카바가 긴 목을 휙 꺾더니 그를 향해 입을 벌렸다.

성 거인의 머리 위 첨탑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캐롯이 외쳤다.

“지금이야!”

콰쾅!

마주 잡고 있던 두 팔을 뿌리치자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팔뚝이 하나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성 거인은 남은 팔만으로 드래곤의 목을 붙잡아 위를 향하게 했다.

조금 버둥거리던 메르카바는 벌린 입을 그대로 성 거인에게 향한 채 브레스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 입안으로, 몸을 동그랗게 만 캐롯이 뛰어들었다.

“아하하하! 이걸 노린 거야!”

휘이이잉!

쏜살같이 떨어져 드래곤의 입안으로 들어간 캐롯은 이빨 사이에 다리를 걸고 흡사 동굴 같은 목구멍 안에 배낭을 던져 넣었다.

보물전에서 슬쩍해 온 마력수정폭탄이었다.

화아아악!

찌이익!

메르카바의 입안에서 눈부신 브레스의 빛무리가 쏟아지기 직전, 스크롤을 찢어 버린 캐롯이 먼저 손가락을 튕겼다.

딱!

번쩍!

쿠오오오! 콰아아아!

거인에게 목을 붙잡힌 드래곤의 입에서 브레스와 섞인 강력한 빛 에너지가 발사되었다.

위력에 놀란 성 거인은 그 머리의 방향을 꺾어 하늘로 향하게 했다.

콰아아아아!

그날, 이젤리아 왕국 수도의 하늘로 새하얀 빛기둥이 솟아오르며 드래곤 슬레이어의 탄생을 알렸다.

“으갸아아아! 물! 물!”

하늘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진 캐롯은 머리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놀란 사람들이 양동이를 가져다 부어주자 겨우 불이 꺼졌다.

그 머리에서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지만 그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발딱 일어난 캐롯이 외쳤다.

“용은? 드래곤은 어떻게 됐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양동이를 든 사람조차 고개를 들고 뭔가를 쳐다보기 바쁘다.

그의 시선을 쫓아가자 목이 터져 버린 드래곤 메르카바가 성 거인에게 붙들린 채 축 늘어져 있다.

“오옥! 쓰러뜨린 거야? 드래곤을? 만세! 이겼다!”

얼떨떨한 얼굴의 사람들이 머리가 반쯤 탄 조그만 꼬마를 보고 참고 있던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

“드래곤을 쓰러뜨렸다!”

“세상에 말도 안돼! 저 메르카바를!”

도시가 떠나가라 솟구치던 환호도 잠시, 거인에게 붙들린 드래곤이 움찔거리더니 그 온몸이 빛으로 물들었다.

화아아악!

빛이 사그라들고 용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만, 기묘한 사람이 그 아래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의 가정부인지 하녀복 차림의 여자가 등에 빨간 머리 소녀를 업고 있었다.

그리고 캐롯이 그 여자를 알아보았다.

“어엇? 그때 그 여왕개미의 머리에 박혀 있던 언니 아냐?”

여자가 고개를 돌리니 틀림없는 그 얼굴, 다만 머리 장식이 독특하다.

더듬이?

캐롯이 눈을 비비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비명성이 터져 나온다.

“으아악! 개미다! 개미가 나타났다!”

놀란 캐롯이 고개를 돌리자 정말 도시 중심부에 수많은 개미 떼가 출몰했다.

캐롯이 급하게 팔을 휘두르며 외쳤다.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기사단은 저걸 요격해! 오토마톤이 선두! 마법사랑 활잡이는 제압 사격! 서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로 드래곤을 요격하기 위해 출동했던 기사단원이 곧바로 소탕 작전을 개시했다.

문득 다시 고개를 돌린 캐롯이 아까 그 메이드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지?

알 수 없는 찜찜함을 느끼며 캐롯은 서둘러 신호탄을 꺼내 쏘아 올렸다.

퉁! 퉁퉁!

노랑, 파랑, 빨강 순서로 불꽃이 솟구치자 멀리 숲속에서 상황을 살피던 오크, 아니, 오만족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일라이자의 손바닥에 올라탄 캐롯의 현장 지휘는 계속되었다.

“동서 성문 개방! 밖으로 쫓아내야 해! 동쪽에서부터 몰아서 서쪽 성문으로 내보낸다! 별동대가 연막탄을 터트릴 거야! 길들인 개미를 타고 다니니 같은 편끼리 싸우지들 말고!”

일라이자에 오른 캐롯은 전투보다 상황 정리에 집중했다.

출동한 기사단이 개미에 올라탄 병력과 자동 갑옷을 껴입고 고속으로 대로를 누비는 자들에게 놀라 기겁했기 때문이다.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 갑옷?

“오오오! 흑백합기사단!”

기이잉! 쉬이이익!

“하하하! 이것들아! 우리가 죽은 줄 알았지?”

여기사 페이지의 호쾌한 외침, 망토를 휘날리며 미끄러지듯 달리는 그녀의 뒤로 다리에 호버 모드 옵션을 갖춘 자동 갑옷 두 대가 더 따랐다.

후배 여기사들과 합을 맞춘 페이지가 스프링 코킹 건을 들어 장전하더니 시민을 덮치려는 개미를 조준한다.

퉁! 퉁! 퍼퍽!

키이이익!

병정개미가 발광하자 뒤를 이어 체인 소드와 열선 도끼의 2연격이 뒤따른다.

그리고 마지막은 크게 선회하여 다시 돌아온 페이지의 자동 갑옷, 돌격창으로 무장을 바꿔 쥔 그녀는 그대로 개미에게 돌진했다.

퍽!

“으아아압!”

박아넣은 창째로 개미를 들어 올리자 사방에서 환호와 비명이 터져 나온다.

“저걸 들었어?!”

“저, 저! 말도 안돼!”

“서 페이지! 부서져요!”

무려 병정개미를 들어 올린 페이지가 외쳤다.

“안 부서진다! 내 전용기는 특별해!”

철컥!

푸슉!

손잡이의 레버를 당기자 무지막지한 관통력을 자랑하는 창대가 발사되고 개미는 그 상태로 절명했다.

쿵-!

병정개미를 내동댕이친 페이지의 자동 갑옷을 지켜보던 후배 여기사들이 고개를 절절 흔들었다.

“어우, 아무렴요. 특별하죠. 남친께서 손봐 주신 건데요.”

“제 것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선배님!”

몸을 숙인 페이지의 자동 갑옷이 속도를 높이며 외쳤다.

“다음 가자! 이 기회에 우리의 운용법을 정립해서 전투 교범에 선보이는 거다!”

“옙!”

3연격의 기사들이 다음 목표를 향해 전설적인 포메이션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들의 운용법은 정식으로 편찬된 자동 기사 전투 교범에 실리는 영광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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