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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67화 (267/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성내 탐험! 267 >

크랭크가 호기심을 드러내자 메르카바가 씩 웃는다.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제안했다.

“내게 두 가지를 약속한다면 너를 이 나라의 국왕으로 만들어 주마. 첫째는 그 자동 인형을 네게 넘기는 것이고, 둘째는 왕궁을 이전 신축하는 것이다.”

“예?”

“뭐라고?”

크랭크와 아리에테의 어이없는 물음, 메르카바가 다시 말했다.

“못 들었느냐? 꼬마 인형의 소유권과 왕궁의 이전 신축이라고 했다.”

못 들은 것은 아닌데 두 번째 요구 사항이 너무 생뚱맞아서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렇다면 캐롯을 제외하고 이 용님의 최종 목적은 결국 왕궁의 이전 신축이라는 것.

갑자기 어지러워진 머리를 붙잡은 크랭크가 되물었다.

“왕궁의 이전이라면 현재의 여왕께 부탁하셔도.”

“흥! 가까이 갈 수 없어서 꿈속에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년은 꿈을 꾸지 않더군.”

“아니, 왜? 왜 굳이 왕궁을 새로 지어야 합니까?”

아리에테도 거들었다.

“설마 겨우 그것 때문에 이젤리아를 괴롭힌 건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

갑자기 메르카바의 곱상한 얼굴로 드래곤의 비늘과 이빨, 눈동자가 드러났다.

“굳이? 아무리 그래도? 고운 말로 상대해 주었더니 네깟 놈들이 뭘 알고서 그리 지껄이는 것이냐?”

신경에 무척 거슬리는 말이라도 들었는지 얼굴에 시커먼 그림자가 낀 메르카바가 으르렁거린다.

“굳이? 나는 이 표현을 싫어한다. 신념을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아서다. 아무리 그래도! 이 말도 나는 싫어한다. 이 역시 절박함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느냐. 이제 됐다. 에둘러 공을 들일 필요가 없어. 내 직접 부수겠다.”

“아, 아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

트드드득!

푸화악!

그 작은 몸에서 억눌러져 있던 드래곤이 터져 나오자 고개를 쳐들고 있던 크랭크는 자신의 실수를 통감했다.

“천재지변 드래곤을 상대로 사람의 정론을 들이대다니, 내 실수다.”

고개를 돌린 아리에테가 목청껏 냅다 소리를 질렀다.

“지붕이 무너진다! 피해-!”

쾅!

와르륵!

저택의 지붕을 뚫고 레드 드래곤의 거체가 솟아오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감지한 사람들의 얼굴로 공포가 물들었다.

“메, 메르카바가!”

“도망쳐!”

퀘에에에에에!

4장의 날개를 펴고 거창한 포효를 내지른 드래곤이 고개를 돌리더니 저 멀리 도시 끝에 보이는 왕궁을 노려보았다.

후우우웅!

날개를 펄럭이지 않았는데도 그 커다란 몸이 떠오른다.

방향성 없이 뛰어다니던 시민들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4장의 날개, 붉은 몸체.

이젤리아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사악한 붉은 용의 재림이었다.

* * *

쿵쾅쿵쾅!

양팔에 캐롯과 여왕을 안은 거대 기사가 별궁의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달리기 시작한다.

하늘 저편에 난데없이 나타난 메르카바의 등장에 캐롯이 흥분해서는 외쳤다.

“우오오! 드래곤! 드래곤이야! 메르카바! 나, 저 용님 알아!”

화장으로 왕자와 거의 같은 얼굴이 된 캐롯의 외침.

여왕은 잠깐이지만 품에 파고드는 소심한 왕자보다 저 발랄한 누군가가 퍽 마음에 들어 버렸다.

촤아아악!

굉장한 속도로 달려 본궁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궁내부원이 다가오는 재앙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정사보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던 조용한 여왕의 눈썹이 솟구쳐 오른다.

“무엇 합니까! 근위기사는 방어 태세를 갖추고 비전투원은 대피하세요!”

“여, 여왕 폐하······.”

압도적인 재앙의 등장에 코즈믹 호러를 맞이한 자들은 다들 넋 나간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때 캐롯이 폴짝 뛰어내리더니 천천히 날아오는 드래곤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왜 다들 넋 놓고 있어요? 전에도 한 번 본 것 아니었어? 그땐 어떻게 했는데?”

캐롯을 왕자님으로 착각한 근위기사 하나가 더듬거렸다.

“저, 전에는 서식지를 발견하고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도시 내부까지 침공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근데 지금 들어왔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아요?”

젊은 기사 하나가 당황한 얼굴로 쳐다본다.

“드래곤을 상대로 말입니까?”

“프흐흐하하하!”

멋진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의 꼴사나운 물음에 캐롯이 웃음을 터트렸다.

“타하하! 바보들이 겉멋만 잔뜩 들어서는!”

그 비웃음에 기사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쾅! 쿠쾅!

비명 소리 자욱하던 도심에서 빛 구슬이 솟아올라 대공망을 펼쳤다.

공포심을 조장할 목적으로 천천히 날아오던 드래곤이 갑자기 공중에 정지하더니 아래를 내려다본다.

캐롯이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오! 이젤리아에도 용기 있는 용자들이 있구나! 순 겁쟁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속이 시커먼 인형의 비아냥은 주변에 모여 있던 기사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캐롯이 냅다 외쳤다.

“의지를 따를 수 없다면 명령에라도 따라! 왕자가 명한다! 그대들 전부 왕국의 검과 방패가 되어라! 계급이 제일 높은 사람! 지휘 체계 재구축! 오토마톤과 마법사를 데려와! 대공망을 펼쳐! 활이든 창이든 던져! 다 함께 노려봅시다! 드래곤 슬레이어!”

드래곤 슬레이어!

어린아이의 입에 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외침, 기사들의 몸에 짜릿한 고양감이 흐른다.

뒤를 이어 여왕도 외쳤다.

“근위기사단장은 어디에 있는가!”

“르, 르메르트 공작 전하께 향하셨습니다.”

“부기사단장 엔리코 여기에!”

갑옷을 껴입은 커다란 중년 콧수염 대머리가 나타나자 캐롯은 순간 아르곤의 파본 경비대장을 떠올리고 킥킥거렸다.

여왕의 명령을 받은 엔리코 부기사단장이 근위대를 이끌고 요격을 준비하는 동안 팔짱을 낀 채로 흐뭇하게 웃고 있던 캐롯이 중얼거렸다.

“오오, 바쁘다 바빠, 좀 거들어 줄까? 일라이자.”

-예.

무릎을 꿇고 그들을 내려다보던 5미터짜리 자동 기사에게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크랭크가 부서진 오토마톤의 부품을 수거해 중추신경계를 구축, 이제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게 된 자동 갑옷은 새 이름을 얻었다.

일라이자.

캐롯의 지시를 받은 일라이자는 우아한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대리석 기둥을 뽑아 들더니 도움닫기를 시작했고, 엉망으로 으깨지는 꽃밭을 본 여왕은 그만 체념해 버렸다.

쿵쾅쿵쾅!

훙-!

하늘에서 폭격 마법을 뿌려대는 드래곤을 향해 지대공 대리석 기둥이 매섭게 날아간다.

쾅-!

날아온 기둥에 얼굴을 얻어맞은 드래곤이 왕궁을 노려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것만으로 수십 발의 불덩이가 만들어졌다.

하늘을 수놓는 화염구의 궤적에 공포에 빠진 시민들의 고개가 왕궁으로 향했다.

“이런!”

건물 지붕에 올라 드래곤에게 마법을 쏘아대던 늙은이가 당황한 얼굴을 돌렸다.

다름 아닌 보이드 자작, 때마침 인근 장기 클럽에 앉아 있다가 달려 나와 시간을 끌던 참이었다.

콰콰콰쾅-!

날아간 파이어볼은 다행스럽게도 성 내부로 진입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폭발, 대공 병기를 준비하던 엔리코 부기사단장이 주먹을 들고 외쳤다.

“성에는 대마법 결계가 있다! 이 불도마뱀아!”

여전히 공격 마법이 통하지 않자 메르카바가 분노했다.

다시 지면으로 내려온 그는 몸에 방어 마법을 몇 차례 걸고는 주변 가옥을 때려 부수며 나아갔다.

쾅! 콰쾅!

“저놈이!”

그의 만행에 모두가 경악, 이 와중에 자동 갑옷 일라이자가 망토 뒤에 숨겨진 검을 뽑았다.

커다란 갑옷에서 앳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지 마!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왕자를 조종석 내부에 그대로 있게 한 것이 화근이었다.

드래곤의 만행을 보다 못한 그 의지는 자동 갑옷의 연산 장치로 흘러들었고, 일라이자가 움직인다.

쿵쾅쿵쾅-!

5미터짜리 대형 오토마톤이 망토를 펄럭이며 꽃밭을 지나 성문을 뛰어넘더니 다가오는 드래곤에게 정면으로 덤벼들었다.

챙! 캉!

건물 지붕을 밟고 뛰어올라 드래곤의 얼굴 높이에서 검을 휘둘렀으나 불꽃만 튈 뿐.

하지만 거대 기사의 활약은 시민들의 눈에 충분히 경이로운 것이었다.

“우와! 굉장해! 저렇게 큰 몸집으로! 아니, 저걸 뭐라고 부르지?”

“하지만 드래곤에 비하면 한참 작아!”

“목을! 목을 노려!”

모두가 그를 응원하는 사이, 여왕만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몸을 돌렸다.

우연히 캐롯이 그걸 보고 쫄래쫄래 뒤따른다.

“어디 가세요? 아드님의 활약을 지켜봐야죠.”

성내를 걷다 말고 멈춰 선 작업복 차림의 여왕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마력 엔진의 특이 모터음을 감지, 그대도 오토마톤인가.”

“도? 도!”

너도?

머리를 고정하던 리본을 풀어내자 긴 백금발이 쏟아지는데 머리카락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오른다.

싹 표정이 바뀐 여왕은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여왕께서는 이미 승하하셨다. 나는 이젤리아 왕국 최종결전방어체계, 이지스. 왕국의 혈통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 엄수를 해제하고 그 위협의 배제를 개시한다.”

“오우야! 세상에나! 이건 생각 못했어!”

허리를 숙인 여왕의 오토마톤이 캐롯을 바라보았다.

“그대에게 부탁이 있다.”

이윽고 캐롯의 성내 탐험 퀘스트가 발동되었다.

“으랴차! 가보자!”

개방된 왕국 보물전에서 묵직한 배낭을 메고 뛰쳐나온 캐롯은 지도를 살피며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동시에 성내에서는 여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방어체계 발동, 긴급 요격을 개시합니다. 내부 구성원은 즉시 별궁으로 대피하십시오. 반복합니다.

성 전체에 울리는 여왕의 안내원 같은 말투에 놀란 사람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바쁘다.

그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을 캐롯이 독려했다.

굵은 남자 목소리가 호통을 친다.

“이봐! 대피하라는 소리 안 들려! 말도 지지리도 안 듣네! 대피대피! 안 나가면 반란이야! 숙청이야!”

“에구머니! 아닙니다! 어, 어서 나가요들!”

놀란 사람들이 그제야 몸을 피하기 시작한다.

복도를 장식하고 있는 커다란 기사 갑옷의 곁에서 모습을 드러낸 캐롯이 케케케 웃는다.

왕자의 흉내를 내려고 수도로 향하는 내내 해왔던 발성 연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여기도 한 개.”

성내 곳곳에 설치된 갑옷 장식장의 아래에는 마력 엔진이 숨겨져 있었다. 그곳에 마력석을 끼우고 레버를 돌리자 당장 번쩍이는 빛을 내며 동력 공급이 시작된다.

“설치 다 했어!”

이젤리아 왕궁의 왕좌가 있는 영광의 홀, 멋들어진 왕좌는 지금 옆으로 치워져 있고 비밀 입구가 드러나 있었다.

캐롯이 안으로 뛰어드니 사방에 유리 벽, 여기도 여왕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본 절차 무시, 긴급 기동합니다.

텅! 터터터터텅!

쿠구구구구-!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왕성이 흔들리더니 곳곳의 벽체가 뜯기며 땅속에 박혀 있던 성의 본체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캐롯이 바닥의 영상을 보고 기겁하더니 고개를 쳐들었다.

방 안의 모든 유리 벽이 전방위 화상을 캐롯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오옥! 이게 뭐야? 창문도 아닌데 밖이 막 보여! 으응? 굉장해! 성이 섰어!”

트드드드!

일라이자를 응원하던 모두가 진동을 감지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고개가 점점 위로 올라간다.

“이, 이럴 수가, 성이······!”

이젤리아에도 용사의 전설이 있었다.

무려 건국 신화, 돌 거인과 함께 사악한 용을 쓰러뜨리고 이 땅에 나라를 건국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

“그거 진짜였어요?!”

“전설 따지고 있을 때가 아냐! 피해라! 흙더미에 깔려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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