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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62화 (262/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드라이브! 262 >

작업대에 올라앉은 캐롯이 노트와 펜을 들고 그가 불러주는 것을 죽죽 메모했다.

3일 정도의 여유 시간을 염두에 둔 크랭크는 철야로 자동 2륜 차량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그는 현지 정비단의 인원도 작업에 끌어들였고, 또 뭔가 신기한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하기 위해 틈틈이 기사단원들이 정비창을 기웃거렸다.

“모브모브.”

“예, 서 페이지.”

도착한 부품 상자를 옮기던 청년이 뒤를 돌아보자 오후 일과를 마친 여기사 페이지가 다가왔다.

“내 자동 갑옷의 수리는 끝났나?”

“예.”

“그럼 오늘 밤은 한가하겠군? 오랜만에 한잔하지 않겠나?”

술자리를 권하는 이 여기사의 눈빛이 몹시 위험하다.

귀족 여기사가 평민 남자를 장난감 취급하는 이 안타까운 사태에도 코가 꿰어 버린 모브는 드물게도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오늘은 안됩니다. 지금 거의 완성 단계라서.”

매번 부르면 싫은 척 좋아하던 그의 신선한 거절에 페이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왜지? 아, 그거 말이지? 리즈넷의 양철 거인과 같이 만들고 있다는.”

드물게 모브의 얼굴이 환해진다.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곧 시험 운행을 해볼 겁니다.”

“그러지.”

함께 걷던 페이지는 모브의 즐거운 얼굴을 눈동자에 담아두고 있었다.

“너는 그런 식으로 웃는구나.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렇습니까?”

뒷짐을 진 페이지가 웃는다.

“음, 보기 좋구나.”

이번엔 모브의 얼굴이 달아올라 버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정비창에 도착하자 크고 하얀 무언가가 앞바퀴를 들고 튀어 나가는 사고가 있었다.

기이이이이잉!

촤아아악!

구경꾼 모두가 입을 딱 벌리고 그걸 쳐다본다.

“엄청 빠르잖아?”

“그렇군요. 너무 빠릅니다. 속도를 줄여야겠습니다. 조작하기 힘들어 보이는군요.”

정비창 대문 앞에서 이마에 손을 올리고 먼지구름을 쫓고 있던 캐롯이 말했다.

“아리에테는 잘 모는데?”

“원래는 갑옷을 착용한 상태로 운용하도록 크게 만든 건데 재주도 좋군.”

잠시 후 그 재주 좋은 여기사가 복귀했다.

“최고다! 더 크고 빨라!”

“아니, 조정한다. 나와 봐라. 돌아오면 갑옷을 착용한 채로 주행 테스트할 거다. 준비해.”

이번에 2륜 차에 오른 것은 작업 공구를 챙겨 든 크랭크, 자동 갑옷 전용이지만 그는 원래 몸이 커서 그냥 앉아도 괜찮은 비율을 자랑했다.

개인 이동 교통 수단이라면 역시 말이다.

그것이 멋진 이유는 기승, 올라타는 것, 본능적인 정복욕 때문이라고 봐도 좋은지라 바퀴 두 개를 달아놓은 이 기괴한 승용물도 올라탄다는 관점에서 말과 비슷한 개념이 적용되었다.

구경꾼들이 감탄했다.

“오, 멋지잖소!”

자리에 앉아 투구를 돌린 크랭크가 그걸 끄덕이더니 핸들을 잡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리에테처럼 막 몰지 않고 조금 가서 멈춰 서 뭔가 꿈지럭거리더니 또 조금 가서 꿈지럭거리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돌아온 크랭크가 자리에서 내리자 갑옷을 착용한 아리에테가 다시 올랐다.

2.3미터짜리 갑옷이 오르니 1대1의 비율을 자랑했다.

다만 멋은 좀 줄었다.

한 바퀴 돌아본 아리에테가 말했다.

“아까보다 느리군. 대신 조작감은 훨씬 좋다. 다만 필요할 때 아까 전의 힘을 다시 내볼 수 있으면 도움이 되겠어.”

“부스터 기능을 넣도록 하지. 단추를 누르면 풀파워를 내는 거다.”

“오오! 좋은 생각이다.”

그들의 조정 작업은 밤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음 날 아침, 본인의 강력한 희망으로 페이지가 갑옷을 착용하고 그것에 올랐다.

이잉, 잉, 이잉.

“어, 어엇?”

철퍼덕!

느릿느릿 달리던 자동 2륜 차가 옆으로 픽 쓰러지자 다들 낄낄 웃는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도에도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자 다른 사람이 갑옷을 착용하고 올랐으나 마찬가지.

더 이상 이걸 웃어넘기지 못하게 된 기사단은 오기가 생겨 버렸다.

“저자들이 하는데 내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더니 돌아가면서 그걸 타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크랭크가 심각하게 중얼거린다.

“익숙해질 때까지 일부러 속도를 줄여놓긴 했다. 그래도 저건 안타깝군.”

“아예 중심을 못 잡는 것 같은데?”

“우리랑 무슨 차이지?”

팔짱을 푼 크랭크가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기술은 사람의 불편과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그걸 감수할 필요는 없어.”

그럴듯하게 둘러댄 크랭크는 다시 정비창으로 들어가 하룻밤을 새우더니 아주 색다른 물건을 내놓았다.

이이잉! 촤아악! 촤아악! 이이잉!

고요한 새벽녘, 성문에서 경계 중이던 병사들이 도심의 한적한 대로를 질주하는 자동 갑옷을 보고 눈을 크게 뜨거나 비볐다.

몇몇은 당황하여 상황실에 연락을 취하는 자들도 있었다.

도무지 중심을 잡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크랭크는 자동 갑옷 자체를 승용물로 만들어 버렸다.

다리에 바퀴를 달아 버린 것이다.

이이잉! 촤아악! 촤악! 펄럭펄럭!

커다란 망토를 늘어뜨린 자동 기사가 새벽의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후, 소식을 접한 기사단원들이 아침 구보도 생략하고 정비창으로 달려왔다.

제이드 기사단장과 말리부 부기사단장도 끼어 있었다.

“또 새로운 것을!”

“이게 무엇인가?”

크랭크는 조정 작업 중이라 함께 철야를 한 정비단 청년이 대신 설명했다.

서 페이지의 남친이라고 소문난 모브였다.

“하역 작업이나 일부 자동수송차량에 쓰는 마력에어쿠션이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강한 공기압으로 지면에 살짝 띄우는 겁니다. 잘 미끄러지지요.”

“오! 그다음 저 바퀴로 미는 건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모브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부품이 부족해서 수송차량 한 대를······.”

“훌륭하다! 그대들의 노고를 찬양한다! 서 아리에테, 네게도 기회를 줄 수 있겠나?”

제이드 기사단장이 소리를 지르며 나서자 피해 상황을 보고하려던 모브는 얼른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바퀴 달린 자동 갑옷에 들어간 제이드 기사단장은 금세 익숙해져서는 몸을 이리저리 꺾으며 지면을 달리기 시작한다.

팔짱을 낀 말리부 부기사단장이 감평을 내놓았다.

“달린다기보다는 미끄러지다가 적당할 것 같군. 자네들이 만든 건가?”

바닥에 드러누운 정비 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젠 철야는 힘들군요.”

고지식한 부기사단장이지만 그런 것까지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 주었다.

시승을 해본 제이드 기사단장도 극찬하더니 설계도와 실물을 거래 중인 아르곤 상회에 넘기고 대량 발주를 지시했다.

지켜보던 캐롯이 말했다.

“그래도 이게 다 만들어져서 납품까지 되려면 한참 걸릴 텐데 말이야.”

“알아서 잘하겠지. 내 할 일은 끝났다.”

터텁!

어깨를 잡으려 했으나 너무 높아서 크랭크의 팔을 잡은 제이드 기사단장이 반짝이는 눈을 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회에서 납품이 시작될 동안 훈련용이 필요해.”

그를 포함해 주변에 쓰러진 정비단이 죽는 소리를 냈으나 기동력을 확보한 제이드 기사단은 어쩐지 즐거워져 버렸다.

“하지만 그전에 그대들은 좀 쉬어야겠군. 스틱스 정비단장과 크랭크는 잠시 후 나를 찾아오도록.”

그때 자동 갑옷을 구경하던 기사단원이 물었다.

“이거 이름은 뭐라고 합니까?”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누군가를 쳐다본다.

팔짱을 낀 캐롯이 말했다.

“뭐라고 했었지? 호, 뭐라고 했는데.”

“자동 갑옷 호버 모드.”

크랭크가 엄지손가락을 척 세우며 대답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리에테만은 한동안 함께 싸운 자동 갑옷을 올려다보며 울상이었다.

“제작에 필요한 실물이라니 하는 수 없지.”

“받아라.”

다가온 크랭크가 뭔가를 내미는데 보니 무슨 열쇠다.

“미리 말하지만 딱히 네게 줄려고 만든 건 아니다.”

“이것은!”

고개를 돌리니 정비창 한구석에 힘차게 제작했다가 방치된 자동 2륜 차량이 서 있다.

몸을 돌린 크랭크가 말했다.

“휴가지에서 드라이브를 즐겨보고 싶다고 했었지?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감동한 아리에테의 곁으로 이제 캐롯이 다가왔다.

윙크를 찡긋한 캐롯이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주변 정찰 겸 콧구멍에 바람 좀 넣으러 가쉴?”

호다닥 달려간 아리에테는 정비창에 대기 중인 시온으로 재무장하고 자동 2륜 차도 끄집어내 올라탔다.

캐롯은 뒤에 앉고.

“지금부터 주변 정찰을 다녀오겠다!”

기이잉! 기잉!

“그래, 운전 조심해라.”

크랭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아리에테와 캐롯은 그 금발을 멋지게 나부끼며 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도시 시민들은 색다른 개인 이동 교통수단이 지나다녀서 신기하였는지 다들 쳐다보기 바쁘다.

성문을 나서자마자 아리에테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민 캐롯이 바락 외쳤다.

“언니, 달리셈!”

“흐하하!”

기이이이이이잉!

흥겨운 모터 소리와 함께 신나는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저녁 무렵 도착한 리즈넷 상회 사람들은 이번에도 실험적인 물건의 양산을 의뢰받고는 몹시 즐거워하며 설계도와 실물을 옮겨갔다.

여기서 캐롯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돈도 제대로 주지 않는데 왜 저렇게 좋아해요?”

뜨끔한 제이드 기사단장이 고개를 돌리며 웃는다.

“사태가 일단락되고 나중에 한꺼번에 계산하기로 했다.”

“호오! 그건 그렇고, 왕자님은 언제 출발해요? 벌써 며칠째 대기 중인데.”

“왕국 위문단은 해당 도시의 기사단이 다음 도시까지 호위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왕성에서 복귀 절차에 대한 회신이 오지 않는군.”

제이드 기사단장은 그렇게 말하며 방금 상회 사람에게 받은 편지를 펼쳐 보았다가 얼굴이 굳어 버렸다.

“부관! 기사단의 각 부대장을 모아라. 긴급 회의다.”

“오호호?”

머리의 더듬이 안테나로 뭔가 촉을 감지한 캐롯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상황을 엿듣더니 와다다 달려서 크랭크가 또 뭔가를 뚝딱이는 정비창으로 달려갔다.

“주인님아!”

“음.”

“여왕님의 친서가 직통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상회를 통해 도착한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크랭크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남의 나라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저번의 네 클리셰가 현실화한 거지, 안타깝군. 어느 야심가가 쿠데타라도 일으킬 생각인가.”

퍼즐이 억지스럽게도 맞춰지는 기분, 흥미진진해진 캐롯은 크랭크의 넓은 등에 달라붙어 그 투구의 첨단에 턱을 척 걸쳐 올렸다.

무심한 투구 위에 돋아난 금발 꼬마의 얼굴이 보기 좋았는지 정비창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빙그레 웃는다.

사이 좋은 오토마톤과 주인님의 귀엽고 보기 좋은 모양이었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발칙한 왕실 모독이었다.

“그럼 우리 왕자님은 방해겠네?”

“모르지, 아직 어리니 섭정의 도구로 쓸지도. 바로 왕위를 갈아치우면 다른 도시 연합에서 반발이 있을 수 있거든? 음, 그편이 설득력 있다.”

갑자기 망치질을 멈춘 크랭크가 뒤를 돌아본다.

“잠깐, 뭐라고?”

현실로 돌아온 주인님을 보고 캐롯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때쯤 사람이 와서 그들을 찾는 바람에 크랭크는 알 수 없는 불안을 느껴버렸다.

“크랭크 씨, 기사단장님이 찾으십니다. 캐롯도.”

부름을 받은 크랭크가 망치를 든 채로 일어섰다.

“이런! 정말인가?”

“와하하! 이것이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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