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기동력! 261 >
아르곤에 남은 사람들끼리 그들 나름대로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동안, 이젤리아에서도 목가적인 해충 퇴치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연이은 개미 사태에 국가적 방침도 변경되었다.
결국 토착 몬스터로 지정, 주변국이나 엘프 장로회, 드워프 연합에도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 것.
쿠르르르르릉-!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자 푸르른 초원에 솟아오른 거대한 개미탑이 무너진다.
동시에 울리는 뿔 나팔 소리는 전사들의 돌진을 독려했다.
뿌우우우우움-!
“와아아아아!”
“우오오오오!”
언덕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크 군단과 자동 갑옷의 기사단이 쏟아져 내려간다.
뒤를 이어 시작된 대난전.
쿵-! 쿵!
가아아아아앙!
체인 소드와 열선 도끼를 휘두르는 거인들은 평소보다 더 힘찬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이유는 그들의 앞에서 탱커를 맡은 작은 거인들 덕분이었다.
철컥! 퉁! 철커덕! 퉁!
스프링 코킹 건으로 근접 사격술을 펼치던 자동 기사가 외쳤다.
“하하! 전투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쉽다 쉬워!”
“정신 차려! 놀러 온 거 아니야! 그리고 너무 앞으로 나가지 마! 화상 입는다!”
치이이익!
후끈한 열기, 같은 망토를 두르고 있지만 앞에 선 저 녀석들의 것은 그저 장식이 아니었다.
뒤따르던 자동 기사가 코킹 건에 말뚝을 재장전하며 연신 감탄했다.
“리즈넷 물건이라고 했지? 우리 것보다 작은데도 잘 싸우네, 움직임도 부드럽고.”
“가격을 들으면 놀라 자빠질 거다.”
“응? 그게 무슨 상관? 나랏님 돈이지 내 돈이 아니잖아? 하하하!”
동료 기사가 투구를 돌리며 역정을 낸다.
“자넨 그게 기사로서 할 소린가!”
등 뒤에서 떠들어대는 소리에는 별 관심 없는 듯, 불타는 검을 손에 쥔 하드 스킨 오토마톤은 씩씩하게 활로를 개척했다.
키이이이! 캬아아아!
고열의 히트 소드를 휘두를 때마다 열상을 입은 개미는 몸을 까뒤집거나 증기 폭발을 일으켰고 뒤따르는 기사단이 그걸 처리하는 식이었다.
우왕좌왕하는 일개미 사이로 거대한 몸집을 가진 병정개미가 등장하자 무인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마스크를 열고 커다란 전투 함성을 내지른다.
“우우우우어어어어엉!”
뒤를 이어 울려 퍼지는 기사단의 함성,
“으아아아아!”
“와아아아!”
저편에서 싸우던 오크들도 지지 않고 웅장한 소리를 꽥꽥 질러댄다.
용기와 광기가 무서운 점은 바로 전염된다는 것, 압도적인 병기의 활약은 기사단 모두를 잔뜩 고무시켜 놓았다.
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던 말리부 부기사단장이 제이드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중갑 인형과 자동 갑옷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망토는 떼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안됩니다. 망토는 달아야 합니다. 아군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됩니다.”
부기사단장에게 존칭, 그도 그럴 것이 서 말리부는 개미에게 패배하기 전 어엿한 방주 도시와 기사단원을 이끌던 기사단장이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를 제이드 단장이 끌고 와 훈련과 운영을 떠맡긴 것이고.
제이드 기사단장이 씩 웃는다, 투구를 써서 보일 리는 없겠지만.
“그리고 일단 멋지지 않습니까?”
은인인 기사단장을 잠깐 바라보던 말리부의 자동 갑옷이 투구를 돌렸다.
“단장님이 그러시다면야. 그런데 저 오크 놈들 대단하군요. 대체 어디서 저런 것을.”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한참 난전이 펼쳐지고 있는 전장 한가운데, 그곳에 오크 여전사를 태운 개미가 달리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캬아아아악!”
오크는 전사 대부분이 여자들, 그것도 우락부락한 근육질 여자들이었는데, 가만있으면 나쁘지 않은 외모지만 전투 중인 그녀들은 선조의 포악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무지막지한 어금니가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쿠오오오오!”
스사사사사사삭!
기사의 마상 챠징처럼 돌격창을 든 오크녀가 개미를 타고 달려가더니 맞은편에서 덤벼드는 병정개미의 정수리에 창을 들이대고 레버를 당겼다.
푸슈확-! 퍽!
치리리리리!
발사된 돌격창이 머리에 박혀 버리자 크림슨 앤트가 고개를 쳐들고 비명을 지른다.
뒤를 이어 주변 오크 전사들의 도끼와 망치가 쏟아져 녀석을 단숨에 고꾸라뜨렸다.
쓰러진 병정개미를 쳐다보며 씩씩 콧구멍을 벌렁거리던 오크 전사가 새로운 창살을 손잡이에 박아 넣는 사이,
그 등에 매달린 가방에는 캐롯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망원경으로 전황을 살피며 신호탄으로 오크 무리의 위치를 제어한다.
“하나둘셋!”
퉁퉁퉁!
빨강, 빨강, 파랑의 불꽃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얼굴에 붉은색 염료를 잔뜩 바른 오크 전사 무리가 공격을 위해 오른쪽으로 대거 방향을 튼다.
“쿠에케에에에!”
그러자 전황상 비어 버린 구역으로 오크 군단이 쏟아져 들어가는 형국이 벌어지더니, 몰아세운 개미 무리를 기사단과 오크 군단이 에워싸는 모양이 되었다.
“핫하! 이것이 기초 전술, 샌드위치 협공이야! 우리도 빨리 가야 해! 저기에 대장이 필요해!”
고개를 끄덕인 오크 부족장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다리를 흔들어 승용물의 방향을 틀게 했다.
그녀가 오른 개미가 머리를 돌리고 더듬이를 움직이더니 다른 냄새가 나는 쪽으로 또 달려 나간다.
매달린 가방에 머리만 빼꼼 내민 캐롯은 마냥 신나게 웃어댔다.
“아하하! 이거 완전 재미있다! 장기판 같아! 내가 가라는 데로 움직이네!”
두두두두!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로는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수십 기의 오크 라이더가 검은색 일개미에 올라타 뒤따르고 있다.
크림슨 앤트의 아종, 검은색 개미.
어찌 된 것인지 한배에서 태어난 개미들인데 2~3세대가 지나자 종의 분기점이 나타났다.
체구가 작은 검은색 개미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크림슨 앤트와는 달리 성격이 온순하고 먹이만 꾸준히 공급해 주면 사람도 잘 따랐다.
오크들은 그 개미를 길들여 경작에 사용하거나 말처럼 기승하여 달리기 시작한 것이고,
멀리서 그 활약을 지켜보던 제이드 기사단장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기동력의 보완은 필요하다. 이 상태로는 말에도 오를 수 없으니 정비반과 상의해 봐야겠어.”
말을 마친 제이드 기사단장은 문득 격세지감을 느껴 버렸다.
전원 자동 갑옷에 기상천외한 병기들은 물론 마력수정폭탄과 더불어 최근에는 최신형 오토마톤까지 대거 편입된 흑백합기사단은 명실상부 이젤리아 동부 해안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위치에 올라 있었다.
영혼까지 끌어당겨 판을 키우긴 했는데, 이제 이걸 어떻게 메꾸지?
제이드 기사단장은 조금 쓰게 웃어 버렸다.
* * *
“기동력! 기동력이 부족해! 오크에게 뒤처지고 있어!”
개미탑 토벌을 마치고 복귀한 기사단이 속속 정비창으로 돌아와 자동 갑옷을 반납하는 도중, 거기 따라갔었던 아리에테가 크랭크를 붙잡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크랭크는 아리에테의 항의를 듣고 있다가 투구를 돌렸다.
“왕자님은 언제쯤 출발하십니까?”
철컥! 칙!
제이드 기사단장이 갑옷에서 몸을 빼내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음, 그건 말이 없군. 내 다시 한 번 여쭤보겠다. 그보다 나도 서 아리에테와 같은 생각이다. 기동력의 보완을 요청하는 바다. 방어력은 좋은데 느리구나.”
땀에 젖어 늘씬한 몸매를 드러낸 여기사단장이 다가오자 크랭크가 쑥스러워졌는지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러자 제이드 기사단장이 고개를 기울인다.
“음? 그대는 어디를 보는 건가?”
그러다 옆에서 볼을 부풀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리에테를 보고는 자기 꼴을 살피더니 그만 멋쩍게 웃어 버렸다.
“하하하! 이런, 내 잘못이었군. 놀려서 미안하다.”
대기하고 있던 부관이 코트를 올려주자 그걸 걸친 제이드 기사단장은 그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정비창에서 자동 갑옷을 해제하는 중이라 땀에 젖은 멋진 몸매가 사방에 즐비하다.
알 수 없는 위기의식을 느낀 아리에테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경고했다.
“한눈팔지 마라. 보고 싶으면 이쪽을 보도록 해라.”
아리에테도 쫄딱 젖어서 몸매가 드러난 상태였으나 빤히 쳐다보던 크랭크는 이제 팔짱을 끼었다.
“전제 조건이 잘못됐다. 우리는 딱히 사귀는 사이가 아니야.”
“밑까지 닦아준 사이에 그러기냐!”
“푸흡! 콜록콜록!”
“오후우, 푸부부!”
가까운 곳에서 물을 마시던 여기사 하나가 그걸 뿜어내자 맞은편에서 갑옷을 살피던 청년이 물벼락을 맞았다.
페이지와 모브 커플이었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이 묘한 시선을 하고 바라본다.
“뭐, 뭘 닦아준 사이라고요?”
“사실은 그것이······ 아으아아아-!”
투구 안에 시뻘건 눈을 뜨고 아리에테의 머리에 아이언클로를 덮어 버린 크랭크가 자신에게 씌워진 변태 프레임을 벗기기 위해 특단의 조처를 했다.
그녀의 팔을 쑥 뽑아 버린 것이다.
“으헉?”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랐던 비밀 하나가 드러났다.
“아리에테의 팔다리는 전신 의수입니다. 한동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 팔을 돌려다오!”
아리에테가 버둥거리자 크랭크는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고 팔도 다시 붙여주었다.
때마침 캐롯이 등장했다.
기사단과 오크 용병의 미묘한 공동 전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 그 연락책으로 요 며칠 바쁘게 다니는 중이었다.
“야호! 기사단 언니, 오빠들! 오늘도 고생하셨떠요!”
일부러 혀 짧은 소리를 내주자 다들 반가운 표정을 짓거나 환호를 질렀다.
“기사단의 마스코트!”
“너도 고생했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히히 웃어준 캐롯은 아리에테에게 얻어맞고 있는 크랭크에게 다가갔다.
“오다가 왕실 시종 언니에게 들었는데, 왕자님네 고양이를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무슨 절차가 많다더라고?”
“그그그런가, 저저정확한, 나나날짜를, 아아알 수 있으면, 조조좋을······.”
팔짱을 한 크랭크가 갑자기 몸을 반대로 돌리더니 말했다.
“좋은 타격이다. 다음은 이쪽을 부탁하지.”
“안마 의자라도 되는 줄 아느냣!”
퍽-!
바보 취급에 분노한 아리에테가 진심을 담아 옆구리를 후려치자 후눅! 하는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낸 크랭크가 그대로 쓰러져 졸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람이 커서 넘어지는 것도 거창했기에 깜짝 놀란 정비단 소속의 젊은이 모브가 달려왔다.
“크, 크랭크 씨 괜찮습니까? 투, 투구를!”
당황한 아리에테와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바닥을 굴러다니던 캐롯이 눈을 번쩍 뜨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건 안돼!”
정신을 차린 크랭크조차 필사의 의지로 투구를 붙잡았다.
“이, 이걸 벗기면 재난이 일어날 겁니다. 후욱후욱!”
“미안하다. 괜찮은 거냐? 시온일 때는 항상 막아줘서 내가 착각했다.”
지금 아리에테는 자동 갑옷을 사용하기 위해 정비 길드에서 만들어 준 팔다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것도 오토마톤의 일종이지만 그들과 같은 의지는 없어서 사용자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아리에테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안절부절못했으나 회복은 빨랐다.
크랭크가 바닥에 누운 채 엄지손가락을 슥 세웠다.
“멋진 라이트 훅이었다. 숨이 멎는 줄 알았어.”
“크랭크, 너 혹시 맞는 걸 좋아하는 거냐?”
힘이 쭉 빠진 아리에테의 물음에 가학적인 취미가 있는 여기사 페이지의 귀가 쑥 커진다.
“마, 맞는 걸 좋아한다고? 공교롭게도 이 몸이 채찍을 좀 다루는 편이오만.”
“페이지!”
“참으세요!”
여기저기서 그녀를 말리는 등의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나서 다시 몸을 일으킨 크랭크는 이제 미리 봐둔 잡동사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한다면 만들어 주지. 캐롯, 부품을 발주하자.”
“그랭, 또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