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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43화 (143/329)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입가심! 143 >

이상해, 왜 저렇게 빠르지?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질 않자 백금발의 여자가 자켓의 가슴팍에 박음질 되어 있는 작은 종잇조각을 잡아당겨 찢었다. 그것은 모양은 달랐지만 역시 마법을 담은 종이, 스크롤이었다.

칭-!

전신에서 푸른빛이 잠깐 번쩍이더니 달리는 속도가 오르기 시작한다.

속도 상승 스크롤까지 써가며 추적에 열을 올리던 백금발녀가 허리춤을 뒤지며 외쳤다.

“거기서! 얼굴 좀 보자! 정말 아리에테가 맞는지 보자고!”

“네게 보여줄 얼굴 따위는 없-?!”

촤라락!

아리에테가 뒤돌아본 틈을 노려 백금발 여자가 채찍을 휘둘렀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그것은 아리에테의 다리에 휘감겼다.

우당탕-!

달리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어진 아리에테에게 숨이 턱까지 차오른 백금발의 르클레르가 씩씩거리며 다가갔다.

그리고 찡그린 얼굴을 하고 몸을 일으키는 아리에테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별안간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내밀더니 화사하게 웃음 지었다. 그러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네가 나의 귀염둥이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해! 음음!”

“으읍! 읍!?”

“정의의 사자는 언제나 한발 늦게 도착······! 으, 어머나, 세상에!”

빠르게 온다고 왔지만 뒤늦게 도착한 캐롯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장마철 달팽이들의 짝짓기 같은 상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난데없이 길바닥에서 뒤엉켜 뜨거운 딥키스 중인 두 사람을 보고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읍! 읍읍!”

붙들려서 버둥거리는 아리에테를 보고 마음을 다잡은 캐롯이 다가가며 버럭 외쳤다.

“잠깐만! 이거 완전 취향 저격인데! 그래도 잠깐 떨어져 봐봐! 당신, 누구야?!”

다만 아리에테를 구원한 것은 캐롯의 도움이 아니라 시온의 반격이었다. 엄청난 스킬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아리에테 대신 르클레르의 어깨를 강하게 밀어내고 몸을 일으켜 세운 시온은 주도권을 다시 아리에테에게 넘겼다.

“우엑-! 콜록콜록-!”

허리를 숙이고 기침을 하자 아리에테의 입안에서 대량의 타액이 쏟아졌다. 그걸 지켜보는 르클레르는 몹시 황홀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아, 아리에테! 우리는 잠깐이었지만 하나가 되었어.

“으윽-! 이, 이이······!”

번들거리는 입을 가린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닥에 넘어져 있는 르클레르를 노려보고는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가 버렸다.

참 아쉬운 듯 그걸 바라보던 르클레르는 몸을 고쳐 앉은 채 혀를 날름거리며 히죽 웃었다.

“우후후훗, 바닐라 맛이 조금 나는데, 그리고 저 표정, 확실해. 나의 아리에테야. 역시 살아있었구나. 흐흐히히흐하하!”

휙 달려가 버리는 아리에테를 돌아보고 고개를 돌린 캐롯은 양팔로 어깨를 감싸며 소리쳤다.

“으악?! 무셔! 이상해! 당신 이상해! 무서워!”

“우후후, 귀여운 꼬마구나, 뽀뽀 귀신 처음 보느냐? 어디, 너는 무슨 맛이 나는지 궁금하구나.”

몸을 일으킨 르클레르가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시뻘건 눈으로 흐흐흐 웃어댔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토끼처럼 코를 벌렁거린 캐롯은 갑자기 냅다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으갸아아악! 뽑뽀 귀신이 나타났다! 주인님아! 살려줘!”

마당 앞에서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던 오토마톤들은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크랭크와 더불어 저쪽 마스터들이 나와서 진정시킨 덕분이다.

그때 울상을 지은 아리에테가 달려오더니 크랭크의 팔에 매달렸다.

“크랭크! 입가심! 입가심이 필요하다! 빨리!”

“응?”

뭔가를 애타게 바라는 시선을 하고 있는 아리에테였지만 크랭크가 그 눈빛을 이해하지 못하자 안절부절못하던 그녀는 나름대로 대안책을 찾았다.

“아앙-!”

“으억?!”

굵은 크랭크의 팔뚝을 깨물어 버린 아리에테는 한참 그렇게 있다가 입을 떼어냈다. 그리고 입안을 우물거리더니 바닥에 침을 뱉어버렸다.

“퉤엣-! 음, 짜구나.”

그리고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는 표정이 조금 전의 안절부절못한 행동과는 다르게 사뭇 날카롭다.

이 와중에 팔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은 크랭크는 멍청한 얼굴을 해버렸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설명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상대측 사람들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아하하하하-! 살아있었구나! 나의 귀염둥이!”

스르르릉-!

진심으로 분노한 아리에테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함박웃음을 지은 르클레르가 두 팔을 벌리고 걸어오고 있었다. 캐롯은 이제 정말 토끼처럼 4발로 와다다 달려서 크랭크의 곁으로 돌아와 그의 다리에 매달렸다.

캐롯은 착란 상태를 일으키고 있었다.

“크랭크! 뽀뽀 귀신이야! 뽀뽀 귀신! 신종 몬스터야! 아리에테! 저건 뭐야?! 네 친구야?!”

“친구는 얼어 죽을! 당연히 적이다! 시온! 샤를! 로테! 캐롯! 크랭크! 투나! 나의 철천지원수를 소개하지! 일단 공격······!”

꿍!

땡그랑!

정수리를 얻어맞은 아리에테가 검을 놓친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허리를 숙였다. 눈물이 찔끔 솟아오른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근엄한 양철 거인이 주먹을 쥔 채로 서 있다.

“아, 아프지 않나!”

아리에테가 울상을 지으며 말하자 크랭크가 팔뚝을 다시 걷어 올렸다.

“그러냐, 나도 아프다.”

“크으으윽! 그, 그건 입가심이 필요해서······!”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가심?”

“아하하하하! 으하하하하!”

갑자기 멈춰 선 르클레르가 허리를 꺾고 웃음을 터트렸다. 중간쯤부터 나와서 보고 있던 투나도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제임스가 허허헛 하고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악우 같은데, 난 이만 가도 되겠지?”

제임스가 떠나고, 뒤를 이어 신고를 받은 경비대에서 도착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한동안 조사와 설교를 당해야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르클레르가 아리에테의 기사 학교 동창이라는 것, 수도에서 모험가 일을 시작한 그녀를 보고 사관학교 진학을 망설이던 르클레르가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파티를 꾸려 모험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모험가를 그만두고 시집이나 갈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우연히 듣게 되었지, 남부에서 활약하는 어떤 여기사 이야기를! 나는 그게 너인지 확인해야 했었어!”

짝짝짝!

“멋진 이야기입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행 끝에 마침내 도착한 거로군요.”

“그리고 친구를 만나서 회포를 푸신거구요.”

“예, 맞아요.”

현장에서 경비대에게 취조를 당하면서도 르클레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경비대원들은 크랭크를 한번 쳐다본 다음 짧은 경고만을 하고 돌아갔다.

“이번엔 그냥 넘어갑니다만, 한 번 더 성내에서 소란을 일으키거나 검을 뽑으면 바로 연행할 겁니다.”

“주의하십시오.”

경비대를 돌려보낸 아리에테는 검 대신 나무 몽둥이를 주워 들고 있다가 크랭크에게 걸렸다.

“내려놔.”

“하, 하지만! 내 몸을 지킬 물건이 필요하다!”

캐롯도 끼어들었다.

“맞아! 저 여자 위험해! 막 쭙쭙거리더라니까?!”

아리에테의 얼굴이 부들부들 달아올랐고, 르클레르는 그녀대로 빙글빙글 웃기 시작했다. 크랭크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시온, 마스크.”

끼릭! 철컥!

투구와 마스크가 올라와 아리에테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두 손으로 그걸 붙잡은 아리에테는 자신의 멍청함을 한탄했다.

“아! 아아! 왜, 왜 이걸 왜 몰랐지!? 시온! 왜 막아주지 않았나!”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리에테가 온몸을 비틀며 절규하는 사이 크랭크는 팔짱을 끼고 르클레르와 그의 동료들을 내려다보았다.

르클레르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와, 당신 대단히 큰 걸?”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보던 크랭크는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아리에테는 이제 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한심함을 저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고, 내일 정오쯤 다시 오시지요. 저곳에 묶고 계십니까?”

동료 남자들이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아니요, 여관을 빌려놓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실례했습니다. 대신 사과드립니다.”

남자들의 저자세에 투구를 끄덕이며 선선히 사과를 받아들인 크랭크는 그들을 그만 돌려보냈다. 르클레르는 동료들에게 등 떠밀려 가며 손을 흔들었다.

“아아! 아리에테, 네 남자친구가 무서워서 나는 내일 다시 올게-!”

“오지 마!”

주먹을 휘두르는 그녀를 보고 르클레르는 재미있는지 우후후 하고 웃어댈 뿐이었다.

한바탕 뜻하지 않은 소란이 있고 난 뒤, 공방 안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은 각자의 심경을 토로했다.

몸을 웅크리고 자리에 앉은 아리에테는 팔짱을 껴안으며 오한을 호소했다.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어흐흣! 소름 돋아. 헛! 그리고 이건 노 카운트다!”

“무슨 카운트?”

캐롯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아리에테는 핏발이 돋은 눈으로 크랭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크랭크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너만 좋다면 나는 네가 누구랑 입을 맞추던 그건 상관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아니! 그건 그렇고라니! 나는 내가 마음에 둔 사람하고만 입을 맞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소동으로 일어난 불가결한 상황은 노 카운트야! 노 카운트! 노 카운트으으! 으아아앙!”

혼자서 성을 내며 꽥꽥거리던 아리에테는 투나의 무릎 위에 픽 쓰러져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자리에 걸터앉아 공방 안을 두리번거리던 크랭크가 이제 모두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갑작스러운 일이 많아서 이제야 집 구경을 하는구나. 역시 집이 좋아.”

아리에테가 울고 있느라 좀 시끄러웠지만 캐롯과 투나는 고개를 들고 히히 웃었다.

샤를이 음식을 준비할 동안 투나와 아리에테는 목욕을 했다. 정비 길드에서 만들어준 오토마톤 의수 덕분에 보통 여자들처럼 파자마를 입을 수 있게 된 아리에테는 머리에 수건을 감은 채 작업장 맞은편에 나란히 놓인 의자에 앉았다.

지금쯤 극동 개척민 마을에서 오후 순찰을 돌고 있을 베누스의 자리였다.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작업대에서 또 뭔가를 손보고 있는 크랭크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르클레르를 꺼리는 건 그 녀석의 출신 때문이었다. 자기 입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듣기로는 공작 가문 영애라고 하더군. 공작 가문부터는 조심해야 해. 왕족의 친척들이 많아서 괜한 입방아에 오르면 골치 아파진다.”

식기를 옮기는 등의 준비를 하던 캐롯이 끼어들었다.

“왕족? 그럼 쥬세페 공주님이랑 친척인 거야?”

“가계도를 따지고 올라가면 그럴 가능성이 커. 그 머리색 봤지? 일반인에게서는 잘 안 나오는 색이다.”

전투복 수선 때문에 아동복으로 갈아입은 캐롯이 접시와 그릇을 나르고 있다가 그 말에 입술을 오므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맞아. 그러고 보니 백금발이었더랬지. 크랭크! 백금발 방열 가발은 어때? 샤를이랑 같이 세워두면 잘 어울릴 듯!”

이어서 고개를 돌린 캐롯은 부엌의 화로 앞에서 요리 중인 샤를을 쳐다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은빛 방열 가발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보기 좋았다.

작업대에 가져다 놓은 하드 스킨의 몸체를 살피던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창고에 쌓여있는 머리카락을 한번 찾아봐야겠군. 하지만 넌 금발 쪽은 별로야.”

“에에? 정말?”

캐롯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뒤로하고 크랭크는 아리에테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 르클레르는 그저 네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러 온 것뿐인가?”

아리에테의 얼굴로 다시금 분노와 치욕이 머물기 시작했다.

“그 망할 변태는 내 몸이 목적이다. 매번 수작 부리는 것을 떨쳐내느라 힘들었어.”

“몸이 목적! 몸이! 그걸로 뭘 하는 건데!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웰메인 모험가들도 맛만 좋으면 뭐든 상관없다고 했었어! 오우! 세상에! 하느님! 잉? 아아? 잠깐만!”

머릿속에 번개가 친 캐롯이 갑자기 고개를 꺾어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천벌을 받을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이봐요! 신님, 설마, 당신!”

반동은 뒤늦게 찾아왔다. 평소 캐롯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 아리에테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허리를 숙이고 웃음을 참느라 노력했다. 투나도 주저앉아 웃어버렸다. 크랭크도 투구를 손으로 가리고 킥킥거렸다.

인간들의 망측한 습성의 출처를 파악한 캐롯이 놀라워하는 와중에 투나도 끼어들었다. 역시 머리에 수건을 감은 그녀는 안경을 열심히 닦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좀, 자, 자세히. 자세히 듣고 싶어. 아리에테는 저기, 그, 그쪽인 거야?”

“으아악! 투나아아아!”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며 신탁을 받아보려고 노력하던 캐롯의 고개가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휘휙 돌아갔다.

“그쪽! 그쪽은 어느 쪽인 거지?! 크랭크!”

캐롯이 크랭크에게 달려갔다. 작업장에 앉아 있다가 커다란 손을 든 그는 캐롯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린애는 몰라도 돼.”

“그쪽! 그런 것! 어린애는 몰라도 되는 것! 캬흐하하하!”

“으악! 아니야! 너무들 하는군!”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를 지른 아리에테가 두 손을 마구 흔들며 강력하게 부정했다.

“아니야! 나는 아니야! 나는 남자가 좋다! 좀 예쁘장한 남자가!”

“예, 예쁘장한 남자라면?”

“보리스! 보리스 같은 애가 취향이래!”

“호오오옥! 귀, 귀여운 남동생?”

이제 투나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초롱초롱한 눈을 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예를 든 것일 뿐이다!”

캐롯과 투나가 놀려대는 통에 아리에테의 비명은 점점 커져갔다.

작업대에서 장비를 만지던 크랭크는 최근 들어 공방에서 심심하면 벌어지는 이런 소란과 장난에 정말 못 말리겠다는 듯이 투구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캐롯의 날카로운 평가에 따르면 그도 조금 즐기는 듯했다.

가끔 마지못해 웃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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