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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44화 (144/329)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라이벌! 144 >

아침이 밝았다.

다들 피곤함에 지쳐 늦잠을 자는 사이 캐롯만 데리고 공방을 나선 크랭크는 길드 마스터와 함께 영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웨일즈 본 산맥 조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마저 보고했다.

커다란 책상을 앞에 놓고 앉아있던 영주는 그 사람 좋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주님이 차리시는 밥상에 우리도 숟가락을 좀 얻을까요? 크랭크는 가기 전에 여기서 소개장을 두 장 적어주세요. 기회가 된다면 물밑 접촉을 시도하겠습니다.”

투구를 끄덕인 크랭크는 다시 갸웃했다.

“두 장 입니까?”

아르곤 데오 영주가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베누스 마을의 그란 군과, 아드미르 부족장에게 보내는 것, 두 장.”

잠시 영주를 바라보던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편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건 공주님께서······.”

짝짝,

영주가 박수를 치자 문이 열리고 백작 부인이 들어섰다. 길드 마스터와 크랭크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는 반면, 캐롯은 오히려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와, 오랜만이에요. 티슈 백작 부인.”

둘이 꽤 친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무도 캐롯에게 예의범절에 대해서 따지지 않았다.

빙그레 웃으며 캐롯의 볼을 만져주던 그녀는 크랭크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개봉하여 살피더니 어지럽다는 얼굴을 했다가 고급 카펫이 깔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어, 백작 부인 왜 그래요?”

캐롯이 걱정스레 다가가자 백작 부인은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울상을 지으며 편지를 내밀었다.

“아아, 어쩌면 좋죠? 그 말괄량이 공주님께서 여름휴가로 아르곤을 방문하시겠데요.”

“으억······!”

털썩,

듣고 있던 마빈 길드 마스터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꼭 백작 부인과 같은 여성스러운 자태로, 그게 우스웠는지 보고 있던 캐롯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반달로 만들었다.

수도 왕가의 구성원이 주변 방주도시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막상 맞이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미리 준비를 좀 해야겠군요. 오후에 경비대장들을 호출해 주세요. 그리고 크랭크, 캐롯.”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영주가 헛기침을 조금 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마빈 길드 마스터와 티슈 백작부인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도 좋은 정보를 가져다주어 참 고맙습니다. 우리 도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크랭크는 허리를 숙였고, 캐롯은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영주의 감사에 답했다.

보고를 마친 크랭크는 소개장까지 쓰고 나서야 영주의 성을 나설 수 있었다.

* * *

캐롯은 길드 마스터가 이번 모험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데려갔고, 그래서 크랭크는 혼자서 공방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만들어보고 싶은 물건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유난히 빨랐다.

공방 안으로 들어간 그는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던지고 걸어둔 가죽 앞치마를 걸친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일단은 망가진 장비의 수선부터······.

아리에테의 부탁에 따라 무장한 상태로 공방을 지키고 있던 샤를과 로테가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두 사람은 한밤중이었다. 커튼이 쳐진 침대를 돌아본 크랭크는 로테에게 말했다.

“한동안 일은 안 나갈 생각이니 로테는 길드로 나가서 일을 받도록 해라. 캐롯도 내보낼 거다. 샤를은 평소와 다름없이 집안일을 부탁한다. 시온, 이리 와라. 팔을 붙이자.”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오토마톤들이 움직인다. 로테는 무장을 걸친 채로 길드로 출근했고, 샤를은 시온의 부러진 팔을 수리하는 그를 돕기 시작했다.

투나와 아리에테가 일어난 것은 11시가 넘어서였다.

“음냐.”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뜬 아리에테는 침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르클레르의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아으아아악!?”

잘 때는 의수 하나만 붙이고 자는 아리에테가 잘린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한 팔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침대 구석으로 몸을 밀어붙이며 경계심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커튼 사이로 몸을 내밀고 있는 르클레르를 노려보았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하지만 아리에테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하고 있던 르클레르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 너는 그런 몸으로···! 크흐흡······!”

급기야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그녀가 눈물을 질끈 짜내자 아리에테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남은 팔로 침대 곁의 선반에 들어있는 의수를 꺼내 팔에 끼웠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울지 마라!”

“일어나셨습니까?”

커튼 바깥에서 샤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리에테가 눈썹을 세우며 외쳤다.

“샤를! 이 녀석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나는 분명히 공방의 경비를 부탁했는데!”

“주인님이 허가 하셨습니다.”

이제 두 팔로 침대 위에서 몸을 돌린 그녀는 신발 대신에 놓여있는 의족을 다리에 끼우며 버럭 외쳤다.

“크랭크으으읏! 내가 어제 그렇게 말했는데도! 너는!”

나머지 다리마저 붙이고 속옷 바람으로 우다다다 달려간 그녀는 작업장에 앉아서 시온의 팔을 조립하고 있던 그의 등짝을 철썩 때렸다.

그러다가 거기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속옷 바람을 보여주게 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으허억?!”

처음 보는 여성 모험가들과 오토마톤들이 그녀를 보고 떨떠름한 웃음을 지었다. 같은 여자라도 속옷 바람을 들킨 아리에테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확 붉히면서 뒤로 돌아 달려갔다.

“와, 정말로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오시네요?”

“알리!”

르클레르의 동료인 여 모험가 알리가 말했고, 곁에 앉은 다른 여성 모험가는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 모든 것을 예상했던 덩치 큰 남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새로 숙소를 만들어야 할 까봅니다. 사실 여기는 제 개인 용도였습니다. 더부살이들에게 좀처럼 수치심이 생기지 않는 것이 안타깝군요.”

파자마를 입고 다시 나타난 아리에테가 쏘아주었다.

“흥! 가장이 팬티 한 장만 입고 뛰어다니는데 식솔들이 뭘 배우겠느냐? 반쯤은 네 탓이다.”

“세수나 하고 오지 그래?”

“됐어, 속옷까지 보여준 마당에 더 이상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르클레르! 거기서 울고 있지 말고 빨리 나와라!”

공방 안쪽으로 들어간 아리에테는 르클레르의 손을 끌고 나왔다. 훌쩍이던 그녀는 아리에테를 끌어안더니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으아앙! 아리에테! 흐으윽. 아리에테, 어떻게 그런 몸으로······!”

“에잇! 그만둬라! 네 눈물은 내 비참함을 더 크게 만들 뿐이야!”

밀쳐진 르클레르는 어제의 모습과는 다르게 오들오들 떨면서 훌쩍이다가 다시 아리에테에게 다가가 그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눈물을 흘렸다.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뚱한 표정을 옆으로 돌린 아리에테는 애써서 그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다.

이 와중에 작업장을 차지한 크랭크는 그저 하던 일에 집중했다.

겨우 울음을 그친 르클레르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샤를이 내어준 찻잔을 앞에 놓고 팔짱에 다리까지 꼰 채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아리에테를 바라보았다.

르클레르는 코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파티에 들어와, 나와 함께 돌아가자.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냐.”

“싫다. 나도 내 파티가 있다. 그리고 내 집은 여기다.”

르클레르가 버럭 외쳤다.

“이런 곳에서 평생 살 생각이야? 나는 네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준비해 줄 수 있어!”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아리에테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크랭크, 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항상 여기를 이런 곳이라고 폄하하는 것이냐? 나는 이렇게 마음이 놓이는 곳인데.”

“역시 숙소는 따로 만들까.”

아리에테와 등을 맞댄 채 작업장을 바라보고 앉아있던 크랭크가 짧게 중얼거렸다. 그때 부엌에서 차를 준비한 샤를이 사람이 많아져서 오갈 곳이 마땅치 않아 망설이는 모습을 발견한 아리에테가 오른팔을 뽑았다.

찰칵.

“크랭크 것이지? 이리다오.”

오른팔로 왼팔을 잡아 내밀자 리치가 엄청나게 길어졌다. 샤를이 머그컵을 그 손에 들려주자 아리에테는 그걸 뒤로 돌려 크랭크에게 내밀었다.

“자.”

“음.”

크랭크가 컵을 받아들자 다시 팔을 끼워 넣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짧은 한숨을 내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는 여행 중 마도사에게 붙잡혀 동료들을 전부 잃고 팔다리마저 빼앗겼다. 하지만 봐라. 나에겐 새 팔과 다리가 생겼다. 가족도 생겼다. 바로 이곳에서, 너는 자기 팔다리가 하나둘 만들어지는 과정을 희망에 차서 지켜본 적이 있나?”

안타까운 얼굴로 아리에테를 바라보던 르클레르는 이제 그녀의 등 뒤에 앉아있는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당신은 아리에테의 뭐지? 뭘 바라지? 궁지에 몰린 사람의 안타까운 상황을 이용해서 욕구를 채우고 싶은 건가?”

언젠가 캐롯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다시 다른 사람의 입으로 전해들은 크랭크는, 머그컵을 들고 피식 웃음 지으며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대답했다.

그때와는 주제가 좀 달랐기 때문에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습니다. 나는 팔다리가 없는 여자의 몸에 그걸 다시 달아보고 싶다는 지적 욕구를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투자금을 뽑아보고자 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내가 팔다리를 붙여준 값을 내지! 그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도록!”

르클레르의 말에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곰이 일어서는 것 같아 동행한 오토마톤들이 움찔거렸다. 앞치마를 하고 한 손에 머그컵을 든 양철 거인은 여자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르클레르, 아리에테를 보십시오.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습니까?”

팔짱을 낀 아리에테는 그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허리를 천천히 숙이자 르클레르의 앞으로 양철 투구가 내밀어졌다. 호위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지려는 찰나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아리에테는 당신을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당신의 밑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올바른 경쟁을 통해서 우열을 가리십시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입니다.”

멍하니 크랭크의 투구를 올려다보던 르클레르는 고개를 내려 아리에테를 바라보았다. 조금 부끄러워진 얼굴이 된 아리에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어. 살아있는 걸 봤으니 됐잖느냐? 그만 돌아가라.”

르클레르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아리에테를 끌어안고는 다시 입을 맞추었다.

“읍?! 으읍!”

정비 길드에서 만들어준 오토마톤 의수는 그다지 힘이 없어서 르클레르의 완력을 이길 수 없었다.

퍽!

발길질로 겨우 그녀를 떼어낸 아리에테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눈물을 머금은 채 외쳤다.

“너! 너는! 왜!”

“그런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항상 당하는 거야, 아리에테.”

호위들의 도움을 받아 넘어지지 않고 버텨낸 르클레르가 히히흐흐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혀를 날름거리는 걸 보고 이성의 끈이 끊어진 아리에테가 주변 잡동사니 속에서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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