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생존경쟁! (3)
드워프 대장간의 커다란 쇠망치를 가져온 캐롯이 시뻘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다. 만신창이가 됐지만 투구 안 눈동자만은 생생한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이제 캐롯을 보면서 안내방송을 틀었다.
그리고 캐롯에게 손을 내밀었다.
분노한 캐롯은 그 손을 밟고 뛰어올라 하드 스킨의 정수리를 망치로 있는 힘껏 후려 갈겨주었다.
떵-!
사람도 뇌가 흔들리면 뇌진탕이 생긴다. 오토마톤 역시 두꺼운 장갑판으로 이루어진 투구로 보호받고 있긴 했지만, 연속적으로 묵직한 타격을 받으면 민감한 연산장치에 무리가 갈 수 있었다.
“망할! 썩을! 멈춰! 멈추라고 이 새끼야!”
깡! 떵! 뚱-!
대장장이처럼 커다란 쇠망치를 들고 머리를 두들기는 조그만 인형을 붙잡기 위해 몸과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그의 앞으로 드워프 메이슨이 달려와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받아라!”
캐롯이 날아오는 그것을 척 받았다. 일전에 남부 바다에서 구스타프가 해적들에게 쏴대던 화약병기, 리볼버 권총이었다.
“갑옷의 벌어진 틈을 노리고 방아쇠를 당겨!”
신기해서 유심히 봐뒀기 때문에 다루는 방법은 얼추 기억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손이 작아서 양손으로 붙잡고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그만 좀 멈춰! 이 못된 인형!”
쾅-!
하늘로 총성이 울려 퍼진다.
쿵……!
헐거워진 가슴 장갑판을 노리고 쏜 탄환에 마력 엔진이라도 맞았는지 커다란 인형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캐롯은 그걸로 멈추지 않았다. 머리를 노리고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겼다.
쾅쾅쾅쾅-! 철컥철컥-!
권총을 양손에 쥐고 팔에 단단히 힘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반동으로 팔이 들리거나 하지도 않고, 같은 자리에 연속으로 탄환이 박혀 들어 기어코 그 투구를 뚫어버렸다.
퍼어억?!
충격으로 뒤로 꺾여버린 머리의 총알구멍에서 반짝이는 보석의 파편이 흩뿌려진다.
머릿속 제어부가 박살나는 바람에 하드 스킨 오토마톤의 눈동자가 빛을 잃고 작동을 멈췄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권총을 들고 주변을 서성이던 캐롯이 뒤로 물러서서 빠르게 외쳤다.
“이거 안 나가요!”
“줘봐라.”
재빨리 권총을 받아든 메이슨이 탄환의 재장전을 서둘렀다.
상황이 정리된 것을 보고 크랭크가 다가왔다.
“괜찮아?”
“안 괜찮아. 마을이 박살났어. 이 망할 새끼 때문에!”
탕-!
탱-! 퍽?!
돌려받은 권총으로 홧김에 한 발 더 쏴버리자 탄환이 튕겨버렸다. 근처에 있던 모험가 하나가 근처로 날아오는 도탄을 보고 깜짝 놀라서 외쳤다.
“야! 인마! 땅콩! 튕기잖아!”
마지막 한 발의 충격 때문인지 완전히 작동이 정지된 하드 스킨이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쿵-!
양손에 화약 병기를 꼬나 쥔 채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서슬퍼런 눈의 캐롯이 갑자기 표정을 바꿔 헤벌쭉해지더니 말했다.
“어엇! 미안요! 이제 저거 완전 죽었나봐? 아휴, 식겁했네. 근데 아저씨! 이런 게 있으면 좀 빨리 내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총을 되돌려 받은 드워프 메이슨이 말했다.
“어르신이 정말 비상시에 쓰라고 맡겨두고 가신 거라, 꺼내기 좀 껄끄러웠다. 그나저나 굉장하군. 마력수정폭탄에 직격 되고도 움직이다니.”
“나는 너무 비싸서 솔직히 반대했는데 확실한 수단이 있으니 좋네.”
폭발에 휘말려 옷이 찢어지고 곳곳에 가벼운 부상을 입은 크랭크였지만 그는 캐롯을 보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많을수록 좋지.”
* * *
부러진 팔에 응급 처치를 받은 아리에테가 여분의 돌격창을 들고 주변을 가리키며 외쳤다.
“주변을 경계하고 다친 사람들의 치료와 무너진 가옥에서 구조 작업을 서두르자! 거기! 오토마톤을 가진 당신! 저쪽 무너진 자재를 치우는 걸 도와주시오! 부상자는 모두 마을 공동 조리장으로 데려오도록!”
현장에서 지위와 지시는 중요하다. 물론 다들 한 성격 하는 모험가들이라서 다루기 만만찮을 수도 있지만, 당당히 하드 스킨 오토마톤과 맞섰던 여 기사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거나 하지 않고 얌전히 따랐다.
어쨌든 이 엉망인 상황을 총괄하고 정리할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
“아파!”
“부상자를 옮겨!”
“괜찮아! 다들 크게 다치지 않았어!”
“포션! 포션이 부족해요!”
“우리는 대문을 고칠 거다! 한가한 놈들은 자재 옮기는 거 좀 거들어라!”
그녀의 지휘에 모험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상처를 치료받은 마을 사람들도 합세하여 무너진 파편을 치우고 부상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임시 보호소 겸 치료소인 조리장 앞의 마당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폭발에 휘말려 무너진 집과 담장을 바라보다가 급기야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엎드려 기도를 올리는 늙은이들도 더러 있었다.
고개를 돌린 아리에테가 외쳤다.
“기적을 원한다면 스스로 그것을 행하라! 신은 그대의 의지 안에 있다!”
돌격창을 바닥에 꽂아놓은 아리에테는 무너진 가옥의 파편 더미를 치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향하더니 그것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아래에 깔려있던 가족들이 고개를 들자 금발의 여 기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당신들에겐 팔과 다리가 남아있지 않은가!? 할 수 있다! 일어나라!”
전투 중 한쪽 팔이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음에도 좌절하지 않는 그녀의 행동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좀 더 아는 사람들은 약간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다 무너졌어. 아깝네, 정말.”
작아서 저런 일에는 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주변 경계를 서던 캐롯이 쑥대밭이 된 마을을 바라보며 여전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 곁에서 쓰러진 하드 스킨 오토마톤을 살펴보던 크랭크가 말했다.
“괜찮아. 어찌 됐든 살아만 있으면 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음, 그래서 좀 어때?”
정신없이 하드 스킨 오토마톤을 살피던 크랭크가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형이 굉장히 유려하고 아름답군, 언뜻 봄바랑 비슷한 양식이 엿보이지 않아? 아무래도 이 녀석, 이젤리아의 물건 같은데.”
겨우 쓰러뜨린 하드 스킨 인형의 이곳저곳을 살피는 그를 보고 정신적으로 한숨을 쉰 캐롯이 팔짱을 끼고 다시 말했다.
“아니. 너 말이야 너, 몸 괜찮냐고.”
투구를 돌린 크랭크가 캐롯을 바라보았다. 마치 잊고 있었다는 듯, 약간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가 투구에서 흘러나왔다.
“아직도 귀가 멍해. 배도 좀 아프고, 그 외엔 괜찮으니 걱정 마라. 그보다 관통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와. 적병을 발견해도 싸우지 말고 바로 와서 알려.”
“알았어.”
주인님의 무사함을 확인한 캐롯이 곧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캐롯을 보내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크랭크는 고개를 돌려 구조 작업이 한창인 마을을 바라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다 망가지진 않았다. 반파 정도일까?
그의 시선에 여러 가지 생각이 감돈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정해졌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선 크랭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하고 있을 수는 없다.
즉각 보복이다.
* * *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불의의 습격을 격퇴하고 부상자를 추스르는 것으로 밤을 꼴딱 새워버린 사람들이었지만 의외로 생생한 얼굴로 활기차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제저녁 유사 강화 인간이 되어 하드스킨 오토마톤과 정면 대결을 벌인 미친 짓의 주인공 에이플이 붕대를 감은 얼굴로 푸른색 찻물을 마시며 놀라워했다.
“오오오오! 힘이! 힘이 샘솟는다! 이러고 앉아있을쏘냐! 나도 마을의 재건을 돕겠어!”
“그만 좀 닥쳐요! 당신은 환자라고!”
“진정하세요!”
철썩철썩!
파티의 여 마법사와 신관이 카타잎을 우린 찻물을 마시고 각성효과를 선전하는 에이플의 상처투성이 등짝과 어깨를 마구 두들겼다.
난리 통에 도망칠 때 주인집 금고에서 카타잎 덩어리를 슬쩍해온 늙은이는 그것을 조금 떼어낸 것을 차로 우려 지친 사람들에게 돌렸다.
효과는 발군. 희망을 잃고 좌절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섰다.
“와! 약쟁이들이 왜 생기는 줄 알겠어. 그래서 기분이 어때, 다들?”
그냥 찻물인 줄 알고 넙죽 받아마셨다가 강력한 고양감과 자신감에 취한 크랭크는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속옷 한 장만 입은 채 스쿼트를 해대고 있었다.
“후욱! 훅! 이건 용기의 포션보다 강력하군! 오늘 중으로 스쿼트 천 개도 할 수 있겠다!”
퍼억!
갑작스레 달려온 아리에테의 발길질에 크랭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너는 부끄럽지도 않으냐?! 징그러우니 옷을 입어라! 그리고 팔을 붙여다오! 이래서는 전투를 할 수 없다!”
앞으로 고꾸라진 김에 팔굽혀 펴기를 한 세트 마친 크랭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리에테를 돌아보았다.
“아프다. 자꾸 사람을 발로 차지 마라.”
“이 음흉한 양철 거인! 너는 대체……!”
역시 차를 마시고 흥분하여 달려온 아리에테가 크랭크를 쏘아붙이다가 시선이 그의 속옷에 잠깐 머물러버렸다.
아랫도리의 봉긋 솟아오른 부분을 보고 아리에테의 얼굴이 대책 없이 달아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가 뒤로 후다닥 물러서며 외쳤다.
“으아아악! 바, 바른대로 말해라! 너는 사실 나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냐!?”
“음란 마귀가 끼었구나. 내 몸에서 볼 것이 그것뿐인가? 흡! 이 멋진 가슴 근육을 봐라, 훨씬 더 우람하지 않으냐?”
“아아앙! 너는! 너는-! 내게 모욕감을 줬다!”
치욕을 참지 못해 눈물까지 머금으며 덤벼든 아리에테가 남아있는 팔로 크랭크의 가슴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퍽퍽!
몇 대 맞아주다가 몸을 휙 돌린 크랭크는 이제 그녀를 내버려 두고 런닝을 시작했다.
“이 양철 거인아! 거기 서라!”
주먹을 흔들며 아리에테가 추적에 나섰다.
그런 두 사람의 장난질이 재미있었는지 주변에서 지켜보던 모험가들은 쓰러져서 웃기 바빴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속옷 바람으로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크랭크의 기행과 그 우람한 알몸에는 놀라움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마을은 엉망이었지만 사람들은 어쩐지 유쾌해져 있었다.
킥킥 웃고 있는 캐롯의 곁으로 우울한 사람들의 기분을 억지로 즐겁게 만든 늙은이가 뒷짐을 지고 다가왔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갈색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영감이 두 손을 마주 대며 인자한 얼굴로 인사를 했고, 팔짱을 푼 캐롯도 어색하게 그를 따라 두 손을 합장하며 고개를 꾸벅였다.
약효 때문에 잠시나마 신나게 웃고 떠드는 그들을 보면서 슬쩍 미소 지은 노인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캐롯을 보면서 못 알아들을 말을 좀 더 하더니 다시 손바닥을 마주 대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 버렸다.
뭐라고 하는지 해석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한 캐롯이었지만, 애써 해답을 찾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웃어넘겼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난장판이 심해지는 것 같았지만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울분을 토해내며 단체로 세상을 저주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음, 저건 약이야. 마음의 감기약, 그렇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