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생존경쟁! (2)
화려한 스탭으로 2미터가 훨씬 넘는 대형 인형 병기를 농락하던 에이플이었지만 얼굴은 어느새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저 주먹을 제대로 맞으면 머리가 터질 거야.
머리를 숙여 붕 날아오는 주먹을 피한 에이플이 하드 스킨에게 와락 안겨들며 외쳤다.
“하드 스킨이 뭐 대단한 건 줄 아냐?! 그냥 좀 무겁고 힘센 인형일 뿐이다! 으이야아압!”
안쪽으로 파고든 에이플이 버프가 끝나기 직전 발휘된 엄청난 용력으로 하드 스킨 오토마톤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옆으로 던져버렸다.
쿠쿵-!
에이플과 함께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나자빠졌다. 보고 있던 모험가들은 입을 딱 벌렸고, 신관과 마법사는 기겁하며 외쳤다.
“세상에! 거짓말이야!”
“큰일이야. 버프가!”
드워프가 외쳤다.
“장전이 끝났다! 어서 저놈을 치워!”
방패를 든 크랭크와 돌격창을 뽑아 든 아리에테가 달려 나갔다. 뛸 때 갑옷의 장갑판이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가 시끄럽다.
챡챡챡!
남부 무기점에서 구입한 돌격창을 들고 달려 나간 아리에테는 막 일어서려고 몸을 가누는 하드 스킨의 가슴에 그것을 적중시켰다.
캉!
하지만 그것으로도 뚫리지 않는다.
마주한 하드 스킨의 마스크로 얼굴을 쑥 들이민 아리에테가 외쳤다.
“이 돌격창에는 몬스터의 단단한 외피를 뚫기 위해 펀칭이라는 재미있는 기능이 있다!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구나!”
끼릭-! 찰칵!
돌격창의 손잡이 레버를 잡아당기자 강력한 힘으로 압축되어있던 창살이 발사되었다.
푸쉭! 떵-!
퍼억?!
창살이 가슴 장갑판을 뚫어버렸다. 하지만 관통은 하지 못했다. 돌격창의 몸체를 버린 아리에테가 물러서며 말했다.
“끔찍하군, 대체 뭐로 만들어진 거……?!”
촤악! 텁!
연기를 뚫고 튀어나온 굵은 팔이 아리에테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 직전, 시온이 투구와 마스크를 전개해서 맨얼굴이 잡히는 것을 막았다.
가슴에 창살이 박힌 채로 일어선 하드 스킨은 남은 팔로 아리에테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아리에테!”
버프가 끝나고 체력이 고갈된 에이플을 끌고 안전지역으로 물러선 크랭크가 고함을 쳤다.
“우우읍! 놔라!”
퍽퍽!
아리에테가 발로 걷어찼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당황했다. 슥 투구를 돌린 하드스킨은 대포를 겨누고 있는 드워프들에게 아리에테의 몸을 방패삼아 들어 올렸다.
“저저저!”
“아리에테!”
“이 하얀 악마 놈아!”
팔을 붙잡고 매달린 아리에테가 다리를 휘둘러 하드 스킨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놔라! 이 괴물아! 이익!”
퍽퍽!
떨어져 있던 캐롯과 베누스도 다시 덤벼들었다.
“야! 인간 방패라니! 그게 오토마톤이 할 짓이야?!”
손도끼를 든 캐롯이 일갈했지만, 하드 스킨은 이제 몸을 돌리고 캐롯과 베누스에게 아리에테의 몸을 들이댔다.
인간 방패.
캐롯이 진심으로 분노했다.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가고 붉은 눈에서 빛이 터져 나온다.
“나쁜 녀석! 누가 그런 못된 걸 가르쳐 줬어! 3원칙은 까먹었냐?!”
그때 아리에테가 무릎을 들어 하드스킨의 마스크를 찍어버렸다. 투구 안 유리 눈동자가 그녀를 올려다보더니 붙잡고 있던 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으아아악!!!”
뜨드드득?!
팔을 뽑아놓으려는 심정인지 그걸 힘껏 잡아당기자 아리에테가 비명을 질렀다.
분을 참지 못한 캐롯이 날아오르고 베누스는 다시 한번 찌르기 자세를 잡았다.
그때.
탕-!
탱?!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투구에 묵직한 타격을 맞은 하드 스킨의 고개가 꺾였다.
하드 스킨은 반사적으로 아리에테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풀어 머리에 맞은 부위를 가렸다. 그리고 투구를 돌리고 추적에 나섰다.
활짝 열린 마을 입구의 안쪽에서 드워프 메이슨이 은빛으로 빛나는 권총을 양손으로 잡고 서 있었다.
구스타프가 만일을 사태를 대비해서 맡겨두고 간 것이었다.
“네놈들은 사람을,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썩 내려놓지 못하겠느냐!”
묵직한 목소리, 공중에 뜬 캐롯이 외쳤다.
“우린 걱정 하지 마! 근거리 포격전! 발사!”
조마조마하고 있던 드워프들은 망설이지 않고 불씨가 담긴 나무 막대를 떡갈나무 대포의 발화구에 쑤셔 박았다.
푸쉭-!
뻥-! 뻐버버벙!
돌 포탄이 마구 날아든다.
퍽퍽!
크랭크가 집어던진 방패를 받아든 베누스가 날아오는 포탄을 막았고, 파편이 튀기는 난리 통에 캐롯이 아리에테를 잡은 하드 스킨의 팔 관절의 한 부분을 내리쳤다.
정확하게 신경선을 얻어맞은 하드 스킨은 팔을 놓치고 말았다.
크랭크와 함께하면서 오토마톤의 구조를 많이 봐왔기에 신경선이 지나는 곳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떨어진 아리에테는 두 다리로 서자마자 부러진 팔부터 안아 들었다. 그 파란 눈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내, 내 팔이……!”
“끊어지지 않았어! 바보야! 다시 붙이면 되니까 어서 뒤로 물러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착란을 일으킨 아리에테는 캐롯의 호통을 듣고 서둘러 크랭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베누스! 뒤로 빠져!”
“우측! 저 바위 근처로 유인해야 한다!”
크랭크의 외침을 전해들은 캐롯이 몸을 피하며 빽 외쳤다.
“근접 지원 사격! 전 원거리 투사체 발사!”
캐롯의 외침은 사람들의 귀와 입으로 전달되었다. 지붕 위에 올라서 있던 남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활 질을 시작했다. 일전 노예상 호위들에게서 노획한 자동석궁 2대도 엄청난 화살을 뿜어냈다.
투투투퉁! 투투투퉁!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될 정도의 양이었지만 화살은 그 두꺼운 장갑판을 뚫지 못했다. 몇 발이 박혀 드는 정도였다.
장전이 끝난 떡갈나무 대포도 발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마지막 발사열을 버티지 못하고 포신에서 불길을 피워 올리며 전소되어버렸다.
뻐버벙-!
“이럴 줄 알았으면 예비를 남겨두는 건데!”
“이럴 줄 몰랐으니 그런 말 하지 마! 이것도 혹시나 싶어 남겨둔 거잖냐!”
드워프 사이가가 고개를 돌리고 크게 외쳤다.
“포신 수명이 끝났다! 이젠 못 쏴!”
“대문이라도 빨리 다시 닫아!”
수십 발의 화살과 포격으로 발생한 연기가 걷히고, 늠름한 하드 스킨 오토마톤의 몸체가 드러났다. 가슴에 박힌 돌격창을 뽑아 던져버린 그는 마을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보며 포연을 헤치고 걷기 시작했다.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별안간 안내방송도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딱-!
딱-!
걸음을 멈춘 하드 스킨이 고개를 돌렸다. 투구로 작은 돌멩이가 날아와 맞고 떨어졌다.
딱!
좀 떨어진 곳에서 장난스럽게 돌멩이를 던지고 있던 캐롯이 히죽 웃었다.
“역시, 아까 검을 들고서도 에이플 아저씨랑 주먹질하는 것을 보고 혹시 싶었어. 너 생각보다 연산 능력이 높구나? 꼴같잖은 기사도를 가지고 있네.”
휙-! 딱!
치이익-!
잘려 나간 망토 때문에 열기를 배출할 방법이 없어진 하드 스킨 오토마톤의 몸으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작은 인형이 던지는 돌멩이 따위 별로 상관없다는 듯이 다시 투구를 돌렸지만 캐롯의 짜증나는 도발은 계속되었다.
“어때? 뭔가 부하가 막 치미지 않니? 너처럼 강한 기사에게 덤비려면 최소 공격 하한이 있는데 말이야. 최대 출력으로 덤벼도 가당찮은데 갑자기 이런 대우라니, 짜증이 나지? 화가 나지? 케헤헤헤히히히!”
그때 베누스가 그의 방열 망토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걸 받아든 캐롯은 크랭크가 지목한 돌덩이에 올라가서 그것을 옆으로 펼쳤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붉은색 망토였다.
“야! 덩치! 여기 좀 봐볼래?”
펄럭-! 펄럭!
이상한 소리에 뒤를 슬쩍 돌아본 하드 스킨이 멈췄다. 전투로 열기가 한계치까지 솟아오른 상황에서 당장 과열을 식힐 수단이 필요했고, 그 수단을 저 작은 오토마톤이 가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몸을 돌렸다.
쿵, 쿵, 쿵쿵!
별안간 황소처럼 달려오는 하드 스킨을 보면서 베누스는 서둘러 자리를 이탈했다. 캐롯은 우아한 자세로 망토를 펼치며 외쳤다.
“오레-!”
전장의 포연에 몸을 숨기고 함정을 설치한 크랭크가 외쳤다.
“지금! 당겨!”
달려가는 하드 스킨의 다리 앞에 굵은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크랭크와 아리에테, 에이플이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었지만 300kg이 넘어가는 중장갑 오토마톤이었던지라 그들도 앞으로 고꾸라졌다.
쿠당탕-!
옆으로 넘어지는 하드 스킨의 머리에 방열 망토를 씌워버린 캐롯은 점잖은 표정으로 가슴에 손을 대고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변변찮은 솜씨였습니다.”
“됐다! 어서 피해!”
일어나 냅다 뛰기 시작한 크랭크는 바닥이 움푹 꺼진 곳에 엎드린 다음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망토를 뒤집어쓴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그걸 벗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평소 아군이었을 때는 그 위력을 실감하면서도 잘 몰랐지만, 적이 되니 정말 끔찍했다. 저 인형이 도무지 쓰러지지 않아!
마을의 대문도 닫혔고, 동료들이 모두 도착한 것까지 확인 한 그는 주머니에서 스크롤을 꺼내 찢고 곧바로 손가락을 들어서 튕겼다.
“엎드려!”
딱-!
번쩍-!
망토를 들고 일어서는 하드 스킨 오토마톤의 근처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일어나더니 엄청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쿠쿠쿠쿠궁-!
“으아아아! 나 좀 잡아줘!”
베누스는 롱소드를 바닥에 박은 채 폭풍을 버텨냈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캐롯은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마침 그의 손에 다리를 붙들려 흔들리고 있었다.
마력수정폭탄의 한여름 태풍 같은 위력은 실로 건재했다.
폭풍이 잦아들자 사람들이 하나둘 잔해 속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끝났어? 잡았어?”
“다들 괜찮아?!”
사람들이 생존자를 찾느라 부산을 떠는 사이, 몸을 일으킨 캐롯은 허망한 표정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개척민 마을을 바라보았다.
암울한 일을 겪고도 좌절하지 않고 새 출발의 희망과 행복한 미래의 기대에 차오른 사람들이 힘든 줄도 모르고 땀 흘리며 만들던 집과 창고가 한순간의 폭풍에 휩쓸려 지붕이 날아가고 부서져 있었다.
끼이기기긱……!
놀랍게도 폭심지 안에서 괴상한 마찰음이 들리더니 장갑판이 엉망이 된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몸을 일으켰다.
그걸 돌아본 캐롯이 분노에 찬 눈으로 오랜만에 욕설을 입에 담았다.
“야,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마을이! 사람들의 희망이 박살났어!”
위이이이이잉!!
가슴 속의 박혀 있는 트윈 엔진이 최대 출력을 뿜어냈다.
도끼눈을 한 캐롯이 뛴다.
타다닥! 탓-!
하늘을 날아오른 캐롯은 허리에 찬 손도끼를 뽑아 하드 스킨의 투구를 가격했다.
깡-!
날이 나가버렸지만 상관없었다. 내부의 구동부가 맛이 갔는지 파리라도 쫓는냥 느릿하게 휘두르는 팔을 피하고 다시 뛰어오른 캐롯이 도끼를 내려쳤지만, 불꽃만 튀길 뿐 유효타는 들어가지 않았다.
되레 도끼 손잡이가 망가져 버렸다. 그것을 냅다 던진 캐롯이 외쳤다.
“더 단단한 게 필요해! 대장간 망치!”
그 틈에 비틀비틀 일어선 하드 스킨 오토마톤은 등에 달라붙은 캐롯을 무시하고 느릿하게 걷다가 곧 추력을 붙여 뛰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직선으로 달려간 그는 폭발로 너덜거리는 대문의 정면에 돌진해서 그것마저 박살내고 나뒹굴었다.
콰자작-! 우당탕-!
끼기긱! 기기긱-!
대문까지 부숴버리느라 관절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충실히 다음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덜덜거리며 몸을 바로 세우려는데 묵직한 충격이 날아왔다.
쩡-!
조그만 오토마톤이 날아들어 휘두른 쇠망치에 하드 스킨 오토마톤의 목이 돌아갔다.
“이 분리수거도 안 될 개 쓰레기 같은 녀석아. 어딜 가려고 그러냐? 이 이상은 못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