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77화 (77/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간접! 77

신전에서 아리에테가 고함을 질렀지만 팔짱을 하고 있던 크랭크는 말없이 팔을 들어 에리스의 신관모를 벗기고 그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신관모를 다시 씌워주었다.

“당신에겐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모험과는 인연이 없는 평화로운 인생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내 나름의 축복입니다.”

당연히 받아드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에리스는 웃을 수 있었다.

손가락을 튕긴 캐롯이 끼어들었다.

“에리스, 네 머리카락을 크랭크에게 팔아.”

“예에?”

캐롯이 날카롭게 웃는다.

“크랭크의 오토마톤에게 머리카락을 팔면 남자친구가 생긴다는 이야기 들어봤어? 이건 기정  사실이라고.”

그러고 보니 들은 것 같다.

머리카락을 붙잡은 에리스가 그때까지 천을 뒤집어쓴 채 목발을 짚고 있는 오토마톤 베누스를 쳐다본다.

“베, 베누스는 크랭크의···.”

“예. 제 오토마톤입니다. 조만간 수리 예정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좀 짧군요. 좀 더 길러서 오십시오. 그때까지 그대로 두겠습니다.”

에리스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정신적으로 한 숨을 내쉰 아리에테는 몸을 돌리고 중얼거렸다.

“시, 신전에 온 김에 기도라도 하고 갈까.”

의외로 크랭크와 캐롯은 선선히 아리에테의 뒤를 따랐다. 신께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은 모험가라면 당연하기 때문에 그들도 자주 이곳에 왔었다.

오랜만에 신전에 들어간 크랭크는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이건···. 아, 아니 저분은···?”

따라왔던 신관장이 에리스가 준 돈주머니를 신전의 헌금함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전에 어떤 모험가들이 동굴에서 찾아온 것이었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00년 전 복식이라네.”

대리석을 깎아 만든 드넓은 신전의 한 자리를 차지한 수정석에는 기도하는 여신관이 들어 있었다.

캐롯이 외쳤다.

“아! 이거 내가 찾은 거야. 지오네 파티 연수하러 갔다가 리모 만나서 고블린 털었을 때.”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도 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 크랭크가 가만히 수정석 안의 여신관을 올려다보더니 금화 한 닢을 꺼내 헌금함에 집어넣고 두 손을 모아 쥐고 기도를 올렸다.

“무슨 기도를 하는 거지?”

“파티 전원의 무사 귀환에 대한 감사, 신전에 왔으면 신께 우리의 아쉬운 바람을 들려드려야지. 헌금은 일종의 통신요금이다.”

듣고 있던 신관장이 웃는다.

이제 신전을 나서려는데 에리스가 말했다.

“다음에도 일 나가시면 저를 불러주세요. 고정 파티도 좋아요.”

“처음이라서 잘 쳐드린 겁니다. 고정으로 오시면 박봉으로 부려먹을 겁니다만,”

“그래도 괜찮아요.”

아리에테가 경계하는 와중에 크랭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갈 일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당분간 신전에 계실 거지요?”

에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을 나서는 크랭크를 따라 걸어가던 캐롯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심심하면 공방에 놀러와! 출퇴근 하는 거지!”

“알겠어요! 잘 가요! 고마워요!”

에리스가 손을 흔든다.

그들이 공방으로 도착했을 때는 아르곤에 도착하고 3시간이 흐른 뒤였다.

“피곤하군.”

“나도다.”

“으하하! 드디어 우리 집! 도착!”

캐롯이 공방의 문고리를 붙잡자 크랭크가 문에 손을 댔다.

“잠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거의 2달만의 복귀니까. 후우후우···! 됐어. 열어라.”

“으하하하! 어떤 난장판이 벌어져 있을까! 두구두구두구둥!”

캐롯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의외로 공방 안은 말끔했다. 소반을 들고 있던 샤를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인사를 한다.

“돌아오셨습니까.”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작업대에 앉아서 뭔가를 만들고 있던 투나가 고개를 돌린다.

“응? 어엇!”

반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투나가 으히히 웃으며 달려오다가 픽 쓰러져 넘어진다.

“우와코!”

“너는 운동이 부족하다. 운동이.”

알 수 없는 짜증을 느끼며 공방 안으로 들어선 크랭크는 투나를 일으켜 세워주고는 잔소리를 해댔다.

“매일 해야 할 루틴을 짜주마. 다리에 힘을 좀 길러라.”

“어, 어서들 와. 흐히히, 바, 반갑다.”

크랭크의 팔을 잡고 일어서던 투나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안경 안쪽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가족들이 돌아왔다.

그때 아리에테가 투나를 스르륵 안아주었다.

“네 냄새가 그리웠다.”

“오, 오오오. 아리에테. 으흐흣.”

투나는 아리에테의 등과 엉덩이를 더듬으며 좋아했다. 안경을 벗고 소매로 눈가를 좀 문지른 그녀가 다시 돌아온 가족들을 보고 호들갑을 떨면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 그래서 말이야. 내가 마족의 뿔로 감기약을···.”

샤를이 끓여주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큰 도움이 됐구나.”

“여, 영주님이 상금도 많이 주셨어. 보, 볼래?”

호다닥 들어간 투나는 묵직한 상자를 들고 와서 열었다.

“오오오오! 투나 재주 좋다! 이게 다 얼마야!?”

“대단하군. 칭찬해주마.”

“으히히.”

“이건 네 거다. 잘 간수해라,”

뚜껑을 닫은 크랭크가 투나를 보면서 말했다.

“오자마자 미안하다만 할 일이 있다.”

“뭐, 뭔데?”

크랭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리에테의 의수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들통 났다. 투나는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 사실 시간 문제였었지. 뭐, 뭘 하면 돼?”

“그 신경계 링크 기술에 대한 개념안과 설계도가 필요해. 넘겨 줄 수 있겠어?”

“응, 별거 아닌 걸?”

별게 아니라고?

자리에서 일어난 투나는 자기 연구실의 책장에서 서류 몇 장을 가져왔다.

“여기, 심심해서 미리 정리 해뒀어.”

“멋지군. 잘했다. 굉장하다. 칭찬해주마. 이제 그 금덩이의 출처도 듣고 싶은데.”

“으히히히! 그, 그건 아직 안 돼.”

슬쩍 분위기를 타서 노려보았지만 투나는 어설픈 여자가 아니었다. 신이 나서 내용을 읽으려던 크랭크는 그만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부 이야기도 해줘야겠지만 지금 너무 피곤하구나. 일단 씻고 먹고 좀 쉬자.”

“그건 내가 해줄게!”

“오! 오오오!”

투나는 캐롯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 동안 크랭크와 아리에테는 짐을 정리하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야 자리로 돌아왔다.

크랭크는 의자 하나를 들고 왔다.

“베누스.”

“예.”

“네 자리다. 앉아라. 그리고 여기는 너를 알아볼 사람이 없으니 그걸 안 써도 된다.”

목발을 집고 그때까지 내내 서있던 베누스가 천을 벗었다. 그러자 노란색 방열 가발을 산발한 오토마톤이 고개를 든다. 베누스는 절뚝이면서도 목발을 능숙하게 다뤄 자리에 와서 앉았다.

투나가 베누스를 본다.

“오옹! 그, 해, 해적선의 오토마톤?”

“지금은 우리 얘야.”

“근데 왜 절뚝여? 크랭크가 왜 저걸 내버려두지?”

캐롯이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내가 목을 잘랐거든. 신경선은 한번 끊어지면 신호 전달이 잘 안 돼. 다리 하나면 잘 붙인 수준이지.”

“오오. 그, 그럼 베, 베누스도 수리 해야겠네? 가,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어. 기쁘다.”

“공방은 아직 충분히 넓다··· 고 생각했는데 뭘 이리 쌓아놨어?”

떠났을 때는 아직 빈 공간에 많았던 공방 안에는 벽을 따라 선반과 가구들이 죽 들어차 있었다.

“여, 여자에겐 많은 물건이 필요해. 아, 아리에테의 무기 수납장도 있어.”

“무기 수납장?! 무기고!”

샤를이 구워주는 팬케익을 먹고 있던 아리에테가 접시를 든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둘이서 죽이 맞아 공방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크랭크가 캐롯을 보았다.

“후우···.”

“왜 한숨이야?”

“너 소프트 스킨은 좀 쉬었다가 가자. 다음 주 쯤, 지금 가면 난 죽을 지도 몰라.”

“그건 안 돼, 죽으면 안 돼, 이대로도 상관없어. 푹 쉬었다가 봄이 오면 가자.”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베누스를 굵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는 이번 주 내로 수리 할 거다. 기대해라.”

“알겠습니다. 수리 후 저는 뭘 할까요?”

“뭘 하긴? 모험을 해야지.”

베누스가 캐롯을 보았다. 캐롯은 찡긋 윙크를 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함께 모험을 떠나자! 그곳에 우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남부 출장에서 돌아와 주머니가 두둑해진 모험가들은 아르곤에서도 마구 돈을 뿌리고 다녔기 때문에 그들이 돌아오자마자 도시에도 활기가 돈다.

“그것도 좋은데, 좀 아껴서 저축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는 걸까?”

“다들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 저건 그냥 뒤풀이 회식 같은 거지.”

“와, 회식 두 번 더 했다가는 거덜 나겠는데?”

밤새 진탕 마시고 길가에 드러누워 숙취에 괴로워하는 모험가들을 보던 캐롯이 고개를 돌려 애덤을 보았다.

크랭크의 심부름으로 대장간에 다녀오는 길에 파티 몰리 마법사단의 멤버들을 만난 캐롯이 물었다.

“그런데 다들 남부에 온 것 아니었어? 안보이던데?”

길가의 노점에서 솜사탕을 사가지고 돌아온 토스트가 레나와 애덤에게 솜사탕을 내밀었다.

“말도 마라. 출발 직전에 로마니 씨에게 붙잡혀서 흑마도사 잔당 소탕하러 돌아다녔어. 동부로, 서부로, 한 바퀴 돈 것 같아.”

“잔당이 남아있었어? 그 사람들 끈질기네.”

“마법사라는 게 그렇다더군. 연구 하다가 한두 발자국만 더 내밀면 인간의 길에서 벗어난다던데. 정신 차리니 흑마도사! 이런 느낌이래.”

“오홍.”

토스트는 말하면서 캐롯에게도 솜사탕이 매달린 막대를 내민다.

캐롯은 이상한 얼굴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장난스럽게 바라보았다.

캐롯이 그걸 받아들자 레나가 한마디 했다.

“맛있어요.”

“다 큰 어른들이 이게 뭐야?”

애덤의 말에 토스트가 히히 웃는다.

“가끔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

“와! 엄마! 저기 봐봐! 솜사탕! 솜사탕!”

지나가던 아이들이 솜사탕을 손에 들고 서성이는 험상 굳은 모험가들을 보더니 꺄르르 웃는다. 엄마들도 웃더니 솜사탕 노점으로 걸어가 아이의 손에 들려준다.

능숙한 솜씨로 솜사탕을 감아주던 솜사탕 장수가 엄지를 치켜들었고, 시선을 마주한 토스트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솜사탕을 먹을 엄두를 못 내던 애덤이 그걸 든 채로 묻는다.

“···아는 사람?”

“사나이들의 대화는 서로가 몰라도 이어지는 법이지.”

머리가 좀 아프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애덤의 옆에서는 레나가 얌얌 거리며 솜사탕을 핥고 있다.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한 손에 솜사탕을 든 채 공방으로 돌아온 캐롯을 보고 작업대에서 베누스의 신경선을 새로 깔고 있던 크랭크가 말했다.

“잘 어울리는데. 동네 애들 같다.”

“길에서 토스트 그 바보를 만났는데 사줬어. 한 입 먹을래?”

캐롯이 솜사탕을 들어 올리자 그걸 가만히 보다가 투구의 커버를 떼어낸 크랭크가 몸을 조금 기울여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문다. 이제 캐롯은 그걸 들고 무기 수납장 앞에서 롱소드를 손질하고 있는 아리에테에게 다가갔다.

“솜사탕인가?”

“한 입 어때?”

머리카락을 귓가로 쓸어 넘기며 허리를 숙인 아리에테도 한 입 베어 문다. 그리고 화사하게 웃는다.

“음, 맛있구나. 달다.”

마치 성화 봉송처럼 그것을 들어 올린 캐롯은 이제 공방 가장 안쪽에 차려진 연구실의 탁자에서 뭔가를 적고 있는 투나에게 향했다.

“오, 소, 솜사탕.”

“투나도 한 입 어때?”

펜을 멈춘 투나도 눈을 감고 얼굴을 가까이 내밀어 그걸 한입 베어 물자 갑자기 캐롯이 쁘하하하 웃더니 외쳤다.

“너희들 간접키스! 솜사탕 키스! 하하하하!”

“가, 간접?!”

“호곡!?”

“음.”

각자 할 일에 열중이던 참이라 캐롯의 음흉한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거나 했지만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별 말은 하지 않았다.

“하하하!”

잡동사니 가득한 공방 중간에 서서 큼직한 솜사탕을 손에 든 캐롯이 너무도 기쁘게 웃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오토마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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