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75화 (75/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로맨스그레이! 75

크랭크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거점으로 삼을 전용 대기 장소, 호감도를 위해서 가급적 살갑게 대해줄 것, 찢어진 전투복과 무장은 즉시 수선 해줄 것, 롱소드나 도끼 같은 여분의 무기를 준비 해줄 것,

“그리고 구스타프는 한 달에 한 번 내게 편지를 쓸 것. 사소한 일상이든 뭐든 상관없다.”

“당신에게 말입니까?”

“그래,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다는 것은 인지능력의 폭을 넓히지. 이제 막 임무를 시작하는 네게 좋다.”

구스타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랭크는 주소를 남겨주고 돌아갔다. 그리고 오토마톤이 도착하자 마을 남자들은 서둘러 일하러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피지오와 니베라의 중간지점 쯤에 도착한 크랭크는 마차에 실어놓았던 오토마톤 메라를 깨웠다.

칭-!

눈을 뜬 메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크랭크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제 마스터를 보셨습니까? 해적선 블랙머드의 카레라 선장입니다.”

“그 해적선은 침몰했다. 네 주인은 지은 죄 값을 치루기 위해 경비대에 잡혀갔고,”

잠시 입을 다물고 크랭크를 보던 메라가 다시 물었다.

“마스터 카레라 선장의 거취에 대한 정확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눈뜨자마자 봤다간 덤빌지도 몰라 옆자리에서 천을 뒤집어쓰고 있던 캐롯이 얼굴을 살짝 내민다.

“안녕 메라. 나는 캐롯.”

“반갑습니다. 캐롯, 나는 메라. 지금은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나도 그래.”

크랭크가 물었다.

“몸은 어떻지? 떨어진 목을 다시 붙였는데.”

팔과 다리를 움직여보던 메라가 고개를 든다.

“왼쪽 다리에 신호가 오지 않습니다. 신호 절단, 작동 불가.”

“역시 신경선 재 접합은 어렵구나, 일단 돌아가자.”

크랭크는 마차를 몰아 니베라로 돌아갔다. 알아볼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메라에겐 천을 덮어쓰고 다니도록 했다.

경비대에 들려서 정말로 해적선장 카레라의 투옥 사실을 접하게 된 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유권 상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마스터에게 추가 지시 사항이 없었음으로 저는 관리원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그거 말인데. 너 우리랑 같이 다니지 않을래?”

메라가 캐롯을 내려다본다. 허리에 손을 올린 캐롯이 날카롭게 웃는다.

“지금 분해되기엔 너무 아쉽지 않니? 너도 여신의 인형이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사람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받아보고 싶지 않아? 인간을 지켜주고 싶지 않아?”

3원칙을 비틀어서 해석 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오토마톤이었다면 이런 회유가 통하지 않는다.

오토마톤 베테랑스는 수많은 경험과 지식이 쌓여 자아를 각성했을 때 발현된다.

마치 인간의 그것처럼,

가만히 캐롯을 보던 메라가 이번엔 크랭크를 올려다보았다.

“그렇습니다. 나도 인간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의 존재 의의,

“그렇다면 내가 너의 임시 마스터가 되어주마. 받아라.”

크랭크는 금화 한 닢을 메라의 손에 올려주었다.

“그 돈은 너의 몸값이다. 언젠가 네게 영혼이 생겼을 때 필요할 거야. 이것은 명백한 거래다. 나는 관리원으로 복귀해야하는 오토마톤 메라를 금화 한 닢으로 그 자신에게서 매수했다. 너는 네가 원할 때 언제든 금화를 돌려주고 떠날 수 있다.”

“수락합니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비틀어진 가계약이 성립되었다.

메라가 손을 내민다. 역시 경험이 많은 쪽이라고 생각하며 크랭크는 그 손을 잡았다.

“새 이름을 주십시오. 마스터.”

잠깐 고민하던 크랭크가 입을 연다.

“베누스. 어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이라더군.”

“반가워! 베누스! 우리 일가가 된 걸 환영해!”

자신의 몸값이며 동시에 영혼이 생겼을 때 필요할 것이라는 금화를 내려다보던 베누스가 고개를 든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제 무엇을 할까요?”

남부 겨울 사냥도 중반부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여 니베라에서는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주변 친인척들과 선물을 주고받으며 덕담을 나눴다.

그 와중에 재미난 기획도 준비되었다. 니베라 상회조합에서 새해 축제 분위기를 이끌어가고자 한 해를 빛낸 유명인의 거리 행진을 제안했다.

“니베라 사람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오하하!”

그 첫 시작은 개척민 마을에서 피란민들을 이끌고 돌아온 스팀 레이디들의 행진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낮도 밤도 아닌 시간, 거리 곳곳에 등불이 켜지고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드디어 한 자리에 모인 전설의 모습을 구경했다.

“근데 역시 좀 부끄러워!”

당시 함께 했던 모험가들이 환호하는 마을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 얼굴을 붉혔다.

맨 앞에서는 캐롯이 손을 흔들며 걷고 있고, 그 뒤로 아리에터, 로테, 크리미, 버디, 로리가 나란히 서서 따랐다. 개척민 마을에서 급조해서 사용했던 오토마톤 3대도 어느새 전투용으로 개조되어 함께 걷고 있다.

“우와! 여신의 인형이다!”

“스팀 레이디다!”

“증기 망토의 여기사도 있어!”

그 와중에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큰 크랭크를 보고 사람들은 눈이 커졌다.

“우와, 거인이다. 거인, 엄청 큰데?”

“세상에 사람이 저렇게 클 수도 있나? 2미터는 되겠는데?”

무심히 걷고 있던 크랭크는 애써서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려고 애쓰며 중얼거렸다.

“역시 나도 좀 쑥스럽군요.”

행진이 끝나고, 광장 앞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인 그들에게 영주가 나와서 치하의 연설을 좀 한 다음 모험가들을 단상으로 불러들여 작은 훈장을 걸어주었다.

오토마톤에게는 위명 스팀 레이디와 이름이 적힌 금속판을 훈장 대신 전투복에 매달았다.

캐롯도 같은 것을 받았다. 다만 캐롯의 것은 그 아래에 이름 대신 다른 글이 있었다.

-스팀 레이디, 대지의 여신이 보내주신 안개 속 작은 인형.

아리에테도 비슷한 것을 받았다.

-스팀 레이디, 증기 망토를 두른 여기사.

단상에 오른 모험가들과 오토마톤들이 인사를 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험악하고 힘겨운 삶의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이 한겨울, 남부 사람들의 가슴은 그들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잠시나마 뜨거워졌었다. 이 행사는 그 작은 보답이었다.

일부 남부 모험가들이 그걸 시기하거나 부러워했지만 북부 모험가들의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얼굴을 보고는 그저 웃어넘겼다.

어쨌든 그들이 사람들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니까,

행사가 끝나고, 간단하게 저녁도 얻어먹은 다음, 창고의 숙소로 돌아온 크랭크는 간이침대에 냅다 누워버렸다.

“···피곤하다.”

“하지만 재미있었어! 하하! 나 훈장 처음 받아봐!”

아리에테도 자신의 가슴에 매달린 플레이트를 보면서 말했다.

“영웅은 필요하다. 사람들의 사기진작에 도움이 되니까.”

“그게 북부 모험가라서 좀 속이 쓰리겠지만요.”

어느새 동석하고 있던 허쉬의 말이었다.

“넌 왜 여기 왔어?”

“어, 이거 주려고. 크랭크 아재 일어나 봐요. 니베라 모험가 길드에서 협조공문을 보냈습디다.”

“뭐요?”

크랭크가 몸을 일으키자 야전 침대에 걸터 앉아있던 허쉬가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아재들은 필수 참석이라던데?”

개척민 마을의 수복을 위해서 나가 있는 판터의 파티에서 온 요청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전초기지를 세우고 몬스터들을 견제하며 마을의 재건을 시작한 그들은, 파티 멤버들의 휴식을 위해서 빈자리를 채워줄 모험가들을 요청하고 있었다.

“가야지요. 그 사람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어, 그렇지. 우리도 감.”

“오오! 체리보이즈도 가는 거야?”

“그렇지. 이 기회에 대형 모험가들 눈에 바싹 들어놔야 출세 길이 좀 편하기 않겠냐?”

말을 마친 허쉬는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요청공문을 한참 들여다보던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내일 정오에 출발이다. 정말 쉴 틈이 없군.”

“쇼핑-! 무기점에 돌격창을 보러 가보고 싶다!”

아리에테가 벌떡 일어났다. 크랭크가 묵직한 돈 주머니를 든다.

“4개 사와라. 필요한 장비가 있으면 그것도 사와라.”

“오, 정말인가!?”

크랭크는 계속 공문을 들여다 본 채로 중얼거렸다.

“로테, 캐롯, 같이 가라. 베누스는 다리가 불편하니 대기, 필요한 무장을 준비해라. 그 돈을 다 써도 상관없다.”

오토마톤들이 일어섰다. 그러다가 투구를 든 그가 고개를 돌리고 얌전히 앉아있는 에리스를 보았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예, 물론이죠.”

“아니, 쇼핑 말입니다.”

“물론이죠! 쇼핑!”

콧김을 뿜뿜 뿜으며 에리스가 벌떡 일어났다. 크랭크는 그녀에게도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약간의 식량과 비상용 포션도 필요합니다. 부탁합니다.”

“그 정도 돈은 저도 있어요. 넣어두세요.”

“에리스, 돈은 모아두면 그걸 보는 눈을 즐겁지만 마음은 썩어 들어갑니다. 더구나 우리들은 모험가, 준비는 항상 만전이어야 합니다.”

준비 만전,

에리스를 포함한 모두가 크랭크의 발언을 들으며 역시 그답다 생각했다. 그리고 모두를 보내고 크랭크 혼자서 또 뭔가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들이 쇼핑에서 돌아왔을 때, 크랭크는 야전 침대의 침낭에 기어들어가 얌전히 코를 골고 있었다.

“킁어어···!”

“아, 피곤했나보다. 주인님은 며칠 밤샘 하는 것보다 사람들 상대하는 걸 더 힘들어하더라고?”

좀 한심한 기분이 되긴 했지만 저것도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 편히 먹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정오, 개척민 마을 파수꾼에 지원한 모험가들은 경비대에서 지원하는 자동장갑차량을 올라타고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그때 그 개척민 마을에 도착했다.

“우와-! 우리가 다시 돌아옴!”

자동장갑차량 지붕에 올라가 있던 캐롯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지른다. 대파된 개척민 마을의 자취는 그대로였지만 그 중앙에 굵직한 통나무로 만든 울타리와 함께 전초 기지가 세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마을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이 나와서 반겼다.

“오서오시오! 그날의 영웅들!”

“에이~! 그만 좀 놀리쇼. 어제 무슨 축제에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

북부 모험가들의 말에 남부 모험가들이 낄낄 거린다.

“지원 고맙소. 다들 가족들이 있어서.”

“저희들이야 겨울 남부에서 밥벌이 하는 상황이니까요. 뭘 하면 되겠습니까?”

크랭크와 모험가들이 모여서 인수인계를 하는 사이 캐롯은 통나무 목책을 구경하러 위에 올라갔다가 맞은편 평야를 보고 놀라워했다.

“와! 저게 다 몬스터야?!”

넓은 평야에는 다 수거하지 못한 몬스터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파도는 여기서 한 번 거르고 넘어간다. 이 전초기지는 방파제 같은 거지.”

“판터 대장님!”

투구를 쓴 롱코트의 갑옷덩어리가 어느새 캐롯의 옆에 나타났다.

“오랜만이군. 음? 뺨의 그건 뭔가?”

에헤헤 웃으며 볼의 반창고를 만져보던 캐롯이 말했다.

“해적 때려잡다가 찢어졌어요. 괜찮아요. 주인님이 다시 수리 해줄 거니까.”

“좋은 주인을 만났구나.”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배와 가슴을 쑥 내민 캐롯이 말했다.

“저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오토마톤이거든요. 엣헴!”

인생의 대부분을 비참한 것만 보아오면서 살아온 판터는 이 귀여운 오토마톤의 발언에 그만 웃어버렸다.

그의 웃음이 잦아 들 때 쯤 캐롯이 물었다.

“여기가 방파제 역할이면 개척민 마을이 아니라 전투용성을 지었어야 했겠네요?”

“최초 안은 그랬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영주님들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웬 사기꾼이 가로채 버렸지만.”

“아하.”

대략적인 상황을 알게 된 캐롯이 고개를 끄덕이자 판터가 팔을 들어 주변을 가리켰다.

“봄이 되고 몬스터가 줄어들면 공사를 시작한다. 저기서부터 저기까지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세울 거다. 몬스터 요격용 겨울 요새가 만들어지는 거지.”

“그런 판터 대장님이 여기 촌장이 되는 거예요?”

“음, 남은 생을 여기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 피란민들도 다시 수용해야 하니까. 괜찮은 마을이 있으면 언제나 사람들은 모이기 마련이지.”

캐롯이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외쳤다.

“그럼 매년 겨울에 찾아뵐게요!”

“여신이 인형이 나를 찾아 준다니 고맙구나.”

끼릭···!

목의 걸쇠를 푼 그가 투구를 벗었다. 반백의 머리와 같은 색 콧수염을 기른 늙은 사내가 인자하게 웃고 있다.

“바람이 따스하군. 올해 봄은 빠를 것 같구나.”

“우효오! 로맨스그레이! 멋져!”

눈을 크게 뜨고 뺨에 두 손을 들이댄 캐롯이 입을 세로로 벌린 채 뺙 소리 지른다. 흐뭇하게 미소 지은 판터는 마치 손녀를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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