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74화 (74/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목욕! 74

니베라에 도착한 크랭크는 때 아닌 오토마톤 수리를 시작했다. 다만 아리에테와 로테, 에리스는 적당한 파티에 붙여서 겨울 사냥에 내보냈다.

“이미 많은 돈을 벌었다. 돈을 버는 것은 쓰기 위함이니까. 소명의 목적은 달성한 거지.”

“호오호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내가 논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놀게 만들 수는 없지. 그들에게 명성은 중요하다.”

“너는?”

마력화로로 데워지고 있는 큼직한 양철 목욕통 안에 들어가 있던 캐롯이 묻는다.

“유명해지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 하지만 귀찮은 일만 생길 뿐이었다.”

“가령?”

알몸의 캐롯이 목욕통에 팔을 올리고 고개를 올린다.

미지근한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내고 말린 몸체에 머리를 이어붙이고 있던 크랭크가 핀셋으로 신중하게 신경선을 잡아당기며 중얼거린다.

“좋은 물건과 높은 자리를 추구 하는 건 모든 지적생명체의 습성이거든.”

“그리고?”

“큰 책임은 물론이고 의뢰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숨 돌릴 틈이 없어. 생각해보면 아마 내가 올바른 모험가가 가지면 곤란한 취향을 가졌기 때문 일거다.”

그는 이제 꼼꼼하게 바느질을 하고 있다.

숲속이나 들판을 뛰어다니며 유적을 파헤치고 몬스터를 때려잡는 직업을 가진 사람치고는 일에 시간과 신경을 너무 많이 들이는 성향이었다.

이제 캐롯은 목욕통 안에서 바가지로 물을 뒤집어쓰며 고개를 흔든다.

“우푸푸! 이거 얼마나 들어가 있어야해?”

“1시간 정도 더 있어라. 소금기를 조금이라도 더 빼야해. 그냥 쓰면 내부가 빨리 상한다.”

그때 쯤 사냥을 마친 모험가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고, 캐롯은 목욕통 안에서 그들을 반겼다.

“어서와들! 고생했어!”

파티 체리보이즈가 목욕 중인 캐롯을 보고 하나 같이 인상을 구겼다.

“넌 오토마톤이 왜 거기 들어가 있냐?”

“바닷물에 빠져서 소금기 빼고 있었어. 아, 그렇지!”

캐롯은 바가지를 들어 목욕통의 물을 떠 올리며 야릇하게 웃는다.

“대지의 여신이 보내 주신 인형 삶은 물, 이건 거의 성수지. 한 잔 할 텨?”

“푸흡-!”

허쉬의 동료 하나가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린다. 캐롯은 이제 바가지의 물을 입에 대고 한 모금 들이키더니 이맛살을 찡그리며 호쾌한 소리를 낸다.

“크흐으읏···! 아주 그냥 온 몸으로 적셔드는걸?”

속속 도착하던 모험가들이 그걸 보고 폭소를 터트렸다.

“트하하하! 이젠 못 참겠어! 야! 땅콩! 좀 웃기지 말라고!”

“아니 이거 팔릴 것 같지 않아?! 남부 모험가들은 진짜 살지 몰라!”

“그 친구들한테는 거의 아이돌이니까. 좀 담아다가 갖다 줘볼까? 하하하!”

때 마침 여성 모험가들도 캐롯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는 충열된 눈으로 코를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함께 지내고 있는 피난민들의 엄마들과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목욕이 하고 싶다!”

온몸에 몬스터의 점액 같은 뭔가를 뒤집어쓴 아리에테가 울상을 지으며 두 팔을 흔들기 시작한다.

“아! 팔 흔들지 마요! 좀! 튄다고!”

“으악! 비린내!”

우연히 옆에 서 있던 허쉬와 친구들이 기겁하며 떨어졌고 급기야 아리에테는 훌쩍이기 시작한다.

주변 여자들의 넘치는 욕망의 시선을 눈치 챈 크랭크는 로테를 시장으로 보내 대형 양철 목욕통을 몇 개 사오도록 했다. 그리고는 그곳에 물을 가득 채우고 캐롯을 집어넣었다.

“크랭크 괜찮아요? 그냥 뜨거운 물만 조금 쓰면 되는데.”

“요즘 꽤 벌이가 좋아서요. 제가 한 턱 쓰는 겁니다.”

다른 파티의 여성 모험가와 이야기하다가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캐롯을 보았다.

“캐롯, 마력엔진 최대 출력 3분.”

목욕통에 들어가 목만 내민 캐롯이 도끼눈을 하고 외쳤다.

“엔진 최대 출력!”

치이이이···! 부글부글부글-!

3분도 되지 않아 물이 끓는다. 화력화로와는 급이 달랐다. 사람들의 얼굴이 급속도로 밝아진다. 목욕통을 설치한 창고 구석에 간단하게 천막을 친 모험가들은 먼저 피난민 아이들과 엄마들을 불러들였다.

“코딱지들은 어서 이리 들어오도록 해.”

목욕통 안에 들어간 캐롯이 음흉하게 웃으며 손짓한다. 싫어할 법만도 하지만 워낙 씻질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얌전히 목욕통에서 비누칠을 하고 뜨거운 물을 뒤집어썼다. 젊은 엄마들도 그 틈에 함께 씻었다.

그 다음으로는 여자 모험가들,

“아리에테? 그거 의수였어?”

“음.”

크리미와 콘센 파티의 엘프 모험가 바닐라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로 알몸에 외골격을 장비한 아리에테를 보았다. 함께 있던 다른 여성 모험가들이나 여 신관들도 놀라워했다.

“너, 너무 그렇게 보지 마라. 부끄럽다!”

“오우야. 여기 경치 좋네.”

물통 안에 목만 내놓은 캐롯이 히히덕거린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식하는 오토마톤의 성별은 여성에 굳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도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인형이고,

다음으로 목욕탕에 들어선 것은 냄새나고 거친 남자들, 캐롯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와, 여기도 경치 좋은데?”

그때 몹시 진지한 얼굴의 사내들이 캐롯의 곁으로 다가왔다.

“혹시 누구 가슴이 제일 크더냐?”

“아냐, 누구 엉덩이가 제일 컸어?”

“골반 라인을 봐야지! 골반!”

“쇄골!”

“목덜미!”

조금만 더 지나면 코에서 피라도 흘릴 것 같은 열기를 뿜어내는 사내들의 궁금증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캐롯이 곧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추고 속닥였다.

“누구? 누가 궁금해? 케케케!”

머리에 비누칠을 하던 사내들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빨리 씻기나 해! 다음 기다린다고!”

“얌마! 넌 사내도 아니냐!”

“결혼한 아저씨들이 더 안 되는 거 아냐?! 부인들한테 일러줄까 보다!”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목욕통 안에서 빠하하 웃던 캐롯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외쳤다.

“헉! 나는 지금 여기 사람들 모두의 알몸을 본 거잖아?!”

씻고 있던 사내들이 뭔 소릴 하는 거냐며 뒤를 돌아본다. 캐롯은 눈을 반짝였다.

“그림을 배워야겠어! 그러면!”

온몸에 비누를 바른 사내들이 그 순간 일심동체가 되어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캐롯을 본다.

“내가 전부 사지!”

“나도! 나도 사겠어! 뭘 그리던 전부!”

언젠가 강가에서 슬링 연습을 하던 울파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의 가치를 올리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

캐롯이 주먹을 불끈 쥔다.

“나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어! 내 기억 속에는 너희들 모두의 알몸이!”

“우오오! 캐롯을 찬양해라! 술과 유희의 신 바커스의 인형을 찬양하라!”

“으아악! 미친! 적당히 하라고!”

때 마침 참다못한 성난 여성 모험가들의 괴성이 솟아올랐고, 창고 지대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등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 크랭크는 꿋꿋하게 오토마톤의 조립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새벽 무렵,

“완성···!”

“축하드려요.”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깨어있던 에리스가 역사적인 순간을 발견하고 작게 박수를 쳤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열어보더니 말했다.

“와, 벌써 새벽 4시에요.”

“그걸 사셨군요.”

크랭크가 갑자기 생긴 그녀의 회중시계를 보고 말했다. 에리스는 에헤헤 웃으며 다시 시계를 들어보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런 회중시계를 갖고 계셨는데 언젠가 저도 꼭 하나 갖고 싶었어요.”

“잘됐군요. 꽤 좋은 것 같은데 나침반도 되는 겁니까?”

“예?”

에리스가 허둥대자 그녀에게 회중시계를 건네받은 크랭크가 뒷부분의 커버를 열어서 보여주었다.

“나침반입니다. 동서남북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길 찾기에 필수지요.”

“와, 몰랐어요.”

“이제 알았지 않습니까.”

회중시계를 돌려받고 함박웃음을 지은 에리스가 고마워했다.

“저를 파티로 넣어주셔서 고마워요.”

“당신의 능력은 어딜 가도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겁니다. 너무 자신을 낮추지 마십시오.”

“저는 이번 여행에서 여러분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무서운 모험가들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그건 다행일지도 몰랐다. 정말 이상한 괴인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가만히 에리스를 보던 크랭크가 몸을 돌리고 도구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그 시계 안에는 많은 톱니바퀴가 들어 있습니다. 톱니는 다른 톱니와 맞아야 비로소 돌게 됩니다. 에리스, 당신과 나는 우연히 그 톱니의 일부분이 맞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톱니가 맞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관계의 톱니바퀴는 언제든 멈출 수 있습니다.”

“크랭크는 좀 염세적이네요.”

크랭크가 입을 다물었다. 메크로의 오토마톤 게이지에게도 한 번 들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아니야. 우리 주인님은 로맨티스트야.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오른쪽 볼에 큼직한 반창고를 붙인 캐롯이 서있었다.

오토마톤이라서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불침번을 서면서 창고 안 사람들의 잠자리를 돌봐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새벽인데 뭐해? 에리스도 눈 좀 더 붙여. 2시간 더 잘 수 있어.”

“예.”

에리스는 접이식 간이침대의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회중시계를 목에 걸고 눈을 감았다.

“이거 다됐어?”

“일단 조립은 됐어. 다만 신경선은 한 번 잘리면 신호 전달이 느려지는데 어찌될지 모르겠다. 기동 실험을 못해보는 것이 아쉽네.”

팔짱을 한 캐롯은 크랭크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있는 오토마톤 메라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참 굉장한 녀석이었어. 엄청 잘 싸우더라.”

“내부를 열어봤는데 대단히 솜씨 좋은 기사의 손길이 엿보이더군. 인공근육과 인대의 추가증설은 물론이고 위치설정까지 하나하나 놀라웠다. 배울 점이 많았어.”

“거기에 베테랑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네. 전투센스도 돋보였거든.”

턱을 매만지던 크랭크가 메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좀 아깝군. 그렇지 않아도 해적들이랑 한패였던 적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백안시할 가능성이 있거든.”

“차라리 우리가 가질까? 오토마톤 군단을 꾸리는 거지.”

크랭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지만 슬쩍 들어 보일 뿐,

3시간 후면 해가 뜰 것 같았기에 크랭크는 파티 멤버들의 장비를 손봐주며 밤을 새웠다. 그리고 아침, 모두가 사냥을 나간 사이 짐마차를 빌려와서는 캐롯과 메라를 태우고 오토마톤 매장으로 향했다.

“우오우오오! 여, 여신의 인형이시다!”

“엣헴!”

팔짱을 한 캐롯을 코를 세우고 헛기침을 했다.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던 매장 점주가 물었다.

“당신이 저 인형의 마스터 인가요?”

“그렇습니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갑자기 아르곤 오토마톤 매장의 코코 점장이 생각나는 크랭크였다.

“마을 경비용으로 쓸 오토마톤 한 대 부탁합시다. 새 것,”

강철 같은 표정으로 답변을 무시하자 점주는 시무룩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신형 오토마톤을 소개했다.

“읽기쓰기와 기본 상식 탑재는 물론 전투기술까지 겸비한 최신형입니다. 방열가발과 마력석은 옵션으로···.”

“얼마입니까?”

“방열가발과 마력석은?”

“레드, 방열가발은 흰색.”

빠른 계산을 돌린 점주가 말했다.

“3천200만 리즈입니다만. 할부는 몇 개월로···?”

밤을 지새운 크랭크는 띵한 머리와 함께 근본 없는 자신감에 취해있었다.

촤라락···!

묵직한 돈주머니를 탁자에 올리자 점주가 놀라워했다.

“현금 일시불! 기본 무장을 서비스 해드리겠습니다!”

결제를 하고 잠시 기다리자 정비실에서 가발과 전투복, 롱소드도 하나 허리에 찬 오토마톤이 걸어왔다.

“반갑습니다. 마스터.”

“미안하지만 나는 네 마스터가 아니다. 너는 마을 경비용으로 쓸 거야.”

“경비, 알겠습니다.”

그대로 마차를 타고 다시 어촌 마을로 찾아간 크랭크는 구스타프가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한 오토마톤입니다.”

“오오-!”

마을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깨끗한 검정색 전투복에 하얀색 얼굴과 하얀 방열가발을 쓴 오토마톤이 롱소드를 차고 마을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가져갔던 녀석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신품 3200만 리즈짜리입니다.”

“신형?! 아, 아니 괜찮겠소?”

“우리야 좋지만! 세상에 오토마톤 경비병이야! 하하!”

크랭크가 투구를 숙여 남자들 가까이 들이댔다.

“그 상자안의 물건과 거의 일치합니다.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남자들을 비롯해서 마을 여자들도 기뻐했다. 마을에 경비용 오토마톤이 있다는 건 힘이 있다 것이고, 동시에 안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것은 사람들의 도덕이나 윤리, 공권력도 있겠지만,

결국 힘이다.

“아직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는데 적당한 이름이 있겠습니까?”

“구스타프.”

고민할 것도 없이 바게트가 손을 들고 말했다. 보통 오토마톤에게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기 마련이지만 모두가 그 이름에 동의했다. 크랭크도 인정했다.

“네 이름은 지금부터 구스타프, 얼마 전 해적들로부터 마을사람들을 지켜낸 어떤 용맹한 드워프의 이름이다.”

오토마톤 구스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식 완료, 제 이름은 구스타프 입니다.”

“이 어촌마을과 그 주민들을 지켜내라. 너는 오늘부터 피지오의 경비대장이다.”

“인식 완료, 저는 어촌 마을 피지오의 경비대장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을 사람들이 오토마톤 구스타프를 환영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