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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71화 (71/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해적소탕! 71

쏴아아-! 한적한 해안가에 앉아 우수에 젖은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이 있었다.

“구스타프 아저씨!”

반백을 뒤로 넘기고 잘 정리된 더부룩한 수염을 가진 드워프가 시큰둥한 고개를 돌린다. 머물고 있는 마을에서 며칠 전부터 아는 척을 시작한 마을 처녀였다.

좀 웃긴 이름이었는데.

“무슨 일이냐? 그런데 너 이름말이다. 그 바게트의 바게트냐?”

두꺼운 방한복에 방한모를 눌러쓴 처녀가 바구니를 옆에 끼고 와서는 파하하 웃는다.

“맞아요. 기억하기 쉽죠?”

구스타프는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너희 부모들을 만나보고 싶군. 애들 이름에 무슨 짓이냐.”

“배고플 일 생기지 말라고 붙인 이름이래요.”

“음, 다들 그럴싸한 계획이 있구나. 몰라봤군.”

낚싯대를 거둬들인 구스타프는 빈 바늘을 보고 코를 좀 씰룩거리더니 미끼를 손봤다. 바게트가 옆으로 와서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얼마나 잡으셨어요? 오! 꽤 있네요? 역시 드워프는 낚시도 일가견이 있나 봐요?”

“심심해서 담가봤을 뿐이야.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은 드워프가 그렇게 신기한가? 아까는 촌장도 다녀갔었는데.”

바게트가 하하 웃더니 말했다.

“맞아요. 솔직히 신기하잖아요? 공방에 틀어박히거나 도끼를 들고 휘두르는 드워프가 아니라 한가롭게 방파제에 앉아서 낚싯대를 든 드워프라니! 어쩐지 낭만적이에요.”

낭만이 들으면 슬퍼하겠군.

“우리라고 다들 그렇게 살지는 않아. 물론 나도 내 공방이 있긴 하다만.”

“와-! 아저씨는 뭘 주로 만드시는 데요? 보석? 쇠?”

구스타프는 마을 처녀를 슬쩍 올려다보고는 낚싯대를 바다로 던졌다.

퐁당-!

“보석도 좋지만 굳이 잘하는 걸 따지자면 역시 쇠지. 강철,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지 않느냐?”

“오오!”

한참 떠들어대던 마을 처녀 바게트는 많이 잡으라는 축복을 남기고 총총 마을로 돌아갔다. 그윽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구스타프가 중얼거렸다.

“이놈의 배야. 빨리 좀 오거라, 좀 더 있다간 마을 사람들이 다 찾아오겠다.”

니베아는 남부의 시작을 알리는 관문 도시 중 하나이며,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해안가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어촌 마을은 물론이고 대형 항구도시가 몇 개 더 나온다.

드워프 구스타프가 머물고 있는 곳은 보잘 것 없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적한 이 곳을 점찍은 그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도 좋으니 좌초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군.

해가 저물고, 구스타프는 그만 자리를 정리하고 마을로 올라갔다. 여관이 없어서 민박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드워프 아저씨!”

큼직한 창고가 딸린 집으로 들어가니 똘망똘망한 소년 하나가 달려 나왔다. 구스타프는 들고 온 바구니를 내밀었다.

“많이 잡았어요? 우와! 농어다! 농어가 있어!”

“그게 농어였냐? 힘은 좋더군.”

아직 입을 뻐끔거리는 큼직한 커다란 농어를 바라보며 앞니가 하나 빠진 소년이 환하게 웃는다. 무심하게 고개를 돌린 곳에는 만삭이 된 산모가 웃으며 다가왔다.

“오셨어요. 구스타프 씨.”

자신의 것보다 더 불러 있는 여자의 배를 무심히 보던 구스타프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달이 다된 부인을 이리 두고 일하러나간 그 친구도 참···.”

“겨울에는 일거리가 별로 없거든요.”

분명 그가 묶을 때만해도 이 집에는 번듯한 사내놈이 있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드워프에게 집과 가족을 맡기고 몬스터 겨울 사냥이 한창인 니베아에 일하러 나가버렸지만,

다쳐도 좋으니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군.

“오늘은 농어 구이에요?!”

“산모에게 구이는 별로 먹이고 싶지 않군, 찜이다. 스프도 좋지. 이리 가져와라. 오늘은 드워프식 생선 스튜를 만들어주마. 짜고 달고 맛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구스타프를 보며 집 주인의 아내가 반색을 했다.

“아니, 제가···!”

“부인, 앉아 계시오. 드워프의 요리부심을 무시하지 마시구려.”

만삭의 산모 세나는 방긋 웃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인간들과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구스타프는 멀리 드워프 마을에 있을 가족들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괘씸한 집 주인 놈에 대한 분노와 함께 알 수 없는 씁쓸함도 동시에 든다.

부인과 자식을 두고 일하러 나간 그 친구는 지금 무슨 기분일까?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로군.

그렇게 슬슬 동네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의 오후, 마침내 기다리던 배가 나타났다.

“꺄아악!”

“해적이다! 도망쳐!”

“가능한 빨리 마을을 돌면서 식량과 여자와 애들을 잡아와! 그 미친놈들이 따라 붙기 전에 먼 바다로 튄다!”

탕! 탕! 탕-!

“아아아악!”

비가 새는 창고에 판자를 대고 망치질을 하다가 비명을 들은 구스타프가 서둘러 안채로 뛰어들었다.

“아악!”

“으헤헤! 여기 애와 여자가 있어! 배가 좀 불렀지만!”

약이라도 했는지 눈이 돌아간 사내가 겨드랑이에 발버둥 치는 꼬마를 든 채 세나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집안에서 끄집어내고 있다.

“구스타프 아저씨!”

아이가 울면서 그를 부르자 눈에 불꽃이 튄 드워프가 손에 든 망치를 집어던졌다.

퍽! 빡!

날아온 망치에 맞은 남자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사방으로 피와 뇌수가 튄다. 구스타프가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세나, 샤브, 집안으로 들어가라. 나오지 마라.”

덜덜 떠는 아들 샤브를 껴안고 세나가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자 믿을 수 없는 힘으로 통나무를 끌고 와 입구를 막아버린 구스타프가 도끼를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

몬스터가 별로 없는 남부의 작은 어촌 마을은 상시 평화로웠기 때문에 마을에는 목책은 물론 경비용 오토마톤도 없었다. 그나마 장정 대부분도 겨울 사냥에 일거리를 얻으러 도시로 나간 상태였다.

골목길을 달려간 드워프는 가죽 자루를 안고 나오는 처음 보는 사내를 맞닥뜨리고는 가차 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퍽!

목이 떨어져 비탈을 굴러 내려간다.

“이거 아느냐? 여기 시골 사람들은 낚시하는 드워프가 신기한 모양이야.”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동안 그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얼굴을 기억하게 되었다.

사방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모두를 다 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비명성을 무시하고 골목을 뛰어 내려간 구스타프는 선착장으로 행하는 길을 지키고 서서 내려오는 해적들을 처지하기 시작했다.

“선장! 저 밑에 웬 미친 드워프가 날뛰고 있습니다!”

마을 안쪽에서 지위를 하고 있던 해적 선장이 혀를 차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메라.”

노란색 방열가발을 산발한 오토마톤이 고개를 돌린다.

“애들이랑 같이 가서 좀 도와줘라. 적이 있다.”

해적들이 오토마톤 메라를 데리고 골목을 달려 내려간 곳에는 피를 뒤집어써서 붉게 변한 드워프 하나가 온 몸에 도끼자국이 즐비한 시체들에 걸터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몇 놈이냐? 많기도 하구나.”

“이 썩을 드워프! 우리 몫을 더 이상 늘리지 마!”

“몫이 늘어? 이 미친놈이···!”

동료가 죽으면 나눌 몫이 늘어난다.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도끼를 고쳐 쥐고 있는데 무언가가 빠르게 덤벼든다.

깡-!

맑은 쇳소리, 그 소리만 듣고 검의 철성분비를 알아낸 구스타프가 뒤로 물러섰지만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오토마톤?!”

“으하하! 요즘 해적질은 하이테크야!”

챙!

날아드는 검을 막았지만 그 다리까지는 막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드워프의 배를 걷어 차버리자 구스타프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해적들이 환호를 지르며 달려와 그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야! 이 자식 도끼날 좀 봐라. 면도를 해도 되겠는데?”

“이리 줘! 네 도끼에 맞아 죽어봐라!”

웅크린 채 숨을 고르던 그가 허리춤으로 손을 돌리려는데 갑작스러운 비명성이 들려온다.

“아아악! 이거 놔요!”

“추적자가 왔다! 어서 타라! 메라! 철수다! 짐을 챙겨!”

추적자라는 말에 깜짝 놀란 해적들이 드워프를 내버려두고 타고 온 보트로 뛰어간다. 그들에게 붙들려가던 마을 처녀들이 울면서 비명을 지르고 몇몇은 쓰러진 드워프의 이름을 불렀다.

“구스타프 아저씨! 살려줘요!”

“닥쳐! 저 드워프는 죽었어!”

짝!

뺨을 때렸는데 폭발음에 비명이 묻혀버렸다.

쾅-!

갑자기 마을 쪽에서 먼지폭풍과 함께 사람이 떠올랐다가 떨어진다. 끔찍한 무언가가 오고 있다. 놀란 해적들이 노를 잡은 메라에게 외쳤다.

“메라! 노를 저어! 배로 돌아간다!”

오토마톤 메라가 노를 잡고 힘을 쓰기 시작하자 그들의 머리가 뒤로 쑥 밀리면서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돈값을 하는 구나! 잘 있어라! 아디오스!”

쾅-! 후두둑-!

흙벽을 박살내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오토마톤 로테였다. 로테는 선착장에서 멀어져 가는 보트와 해안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는 검정색 해적선을 눈에 담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드워프에게 고개를 돌렸다.

“놓쳤습니다. 그리고 부상자입니다.”

몸을 숙인 로테가 허리를 구부려 그를 내려다보았다.

“괜찮습니까?”

“후욱···! 훅···! 끄으음!”

숨을 몰아쉬던 구스타프가 허리를 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로테가 부축하려 했지만 그가 손을 쳐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마을 사람들을 구해라. 썩을 오토마톤.”

“저는 썩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몸을 돌린 로테는 즉시 골목길을 뛰어 올라갔다. 사방에서 칼날 부딪히는 소리와 노호성이 들린다. 절뚝거리며 골목을 올라간 구스타프는 민박하고 있던 집으로 들어갔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지금의 구스타프는 그것이 가능할 지경이었다.

“야 이 해적들아! 어딜 그렇게 도망 다니냐! 순순히 잡혀!”

“이 지긋지긋한 꼬마년이!”

롱소드를 휘둘렀지만 작아서 잘 맞지 않는다. 고개를 조금 숙이는 것으로 날아드는 롱소드를 피한 캐롯이 작지만 강력한 주먹을 배에 꽂아 넣었다.

퍽-!

“후누욱?!”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해적이 숨을 헐떡이며 쓰러지자 발길질을 날려 기절시킨 캐롯이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크랭크! 이 주변은 이제 없어!”

전신에 피를 뒤집어 쓴 크랭크가 도끼를 들고 골목길에서 팔을 휘두르다가 뒤를 돌아본다.

“숨어 있는 놈들이 있을지 몰라. 한 바퀴 돌아봐.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신관과 모험가가 왔다고 알려.”

“알았엉!”

캐롯이 후다닥 뛰어 다니면서 빽 소리를 질렀다.

“동네 사람들! 모험가가 왔어요! 모험가! 신관도 있어요! 신관 있어요! 다친 사람! 빨리 나와요! 예쁜 오토마톤도 있어요!”

그러자 정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울면서 손짓했다. 상처가 깊지 않은 사람들은 에리스가 있는 곳으로 보내고 급한 사람들은 힐링포션을 마구 사용했다.

치이이이익···!

“사, 상처가 아물고 있어···!”

“힐링포션 중에서도 제일 비싼 거예요. 듣고 놀라세요. 한 병에 300만 리즈.”

“이렇게 비싼 걸···.”

캐롯이 찡긋 윙크를 했다.

“아저씨가 죽으면 이 아줌마 과부가 되잖아요?”

옆에 주저 앉아있던 젊은 여자가 울먹이다가 그를 와락 껴안았다. 아내를 지키려다 배에 칼을 맞고 생사를 오가던 사내는 훌쩍이는 아내의 등을 쓸어주며 울먹였다.

“고맙구나. 오토마톤이라고 했지? 이름은 뭐냐?”

“나는 오토마톤 캐···.”

쾅-!

온 세상천지를 울리는 폭음이 작은 어촌 마을에서 솟아오른다.

마을에서 해적을 소탕하고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던 파티 멤버들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쳐든다.

“이게 뭐야? 무슨 소리야?”

꽈아앙-!

같은 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심상찮음을 느낀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관 에리스는 다친 사람의 치료를, 아리에테와 로테는 사람들을 옮겨라. 나는 저 소리의 정체를 파악해보겠다.”

크랭크가 길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선착장에서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드워프가 어깨에 대포를 올리고 쏴대고 있었다.

뻐어엉!!

묵직한 폭음과 함께 붉은 빛구슬이 날아간다. 탄도를 따라 크랭크의 고개도 함께 꺾인다.

쾅···!

해안에서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던 해적선에 명중한 포탄은 폭발을 일으켰다. 불꽃과 함께 사방으로 파편이 날리고 타고 있는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는 것이 보일 지경이다.

“누구냐?”

피워 오르는 포연 사이로 두 눈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드워프가 은색으로 번쩍이는 것을 들어 겨눴다.

화약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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