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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7화 (17/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원정! 17

토스트가 기겁해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옆에서 팔짱을 하고 있던 유일한 오토마톤 캐롯이 말했다.

“위업을 달성한 모험가를 영주님이 부르는 이유는 칭찬을 하려는 것도 있지만 사실 그 모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야.”

애덤이 손가락으로 캐롯을 가리키며 물었다.

“캐롯 너 와봤어?”

“응, 사실 몇 번 와봤어. 비공식이지만.”

“와! 크랭크 진짜예요!?”

크랭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농장일 때문에 몇 번 와봤습니다. 영주 저택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건 다들 아시지요? 벌이가 시원찮으면 자주 와서 일하곤 했습니다.”

“아.”

크랭크는 고개를 숙여 캐롯을 보았다.

“캐롯도 몇 번 데리고 왔었는데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캐롯?”

“오와! 티슈 백작 부인!”

그림이 잔뜩 걸린 복도 저편에서 캔버스를 들고 나타난 귀부인이 고개를 돌렸다가 반색을 했다. 그 미모에 보고 있던 모험가들이 얼굴을 붉히는 사태가 일어났지만 크랭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저 백작 부인과 친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버렸습니다.”

“그래, 저 수다쟁이와 땅콩이라면 꽤 잘 어울리는 모양새지. 둘 다 말하는 걸 좋아하니까.”

헤리슨이 휘적휘적 걸어가며 손을 들었다.

“어이, 백작부인.”

“어머나! 헤리슨!? 오랜만이에요! 자주 좀 놀러오고 그러세요!”

“나를 휴전선의 임시 사령관으로 추천 한 건 당신이거든?! 이건 뭐야? 또 그림 그리려고?”

“그렇죠.”

웃고 있는 백작부인의 하얀 얼굴을 들여다보던 헤리슨이 마침 옆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이거 나야?”

“맞아요. 병사들을 호령하는 여기사 이미지로다가!”

“나 여기사 아닌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헤리슨은 그림이 꽤 마음에 든 눈치였다.

“이 그림은 캐롯을 닮은 것 같은데?”

복도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에는 오토마톤들도 꽤 있었는데, 그 중에서 낯익은 모습도 보였다. 함박웃음을 지은 캐롯이 양산을 들고 파란 하늘이 드리워진 언덕에 서 있는 그림이었다.

“3년 전, 조그만 오토마톤과 처음 만났을 때에요.”

모두의 시선이 캐롯에게로 향했다.

“어, 바람에 양산이 굴러다니기에 주워보니 백작부인이랑 마주쳤지. 그런데 과장이 너무 들어갔다. 난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지 않았어.”

“요리에 향신료는 중요해요! 그림도 마찬가지죠!”

“당신은 요리 못하잖아?”

백작부인이 풍만한 가슴을 움켜쥐고 비틀 거렸다.

“아앗! 가슴에 비수가···!

백작부인의 소탈한 장난스러움에 모험가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험가들은 곧 넓은 홀에 안내되어졌다. 이미 그곳에는 백작가의 사용인들과 아르곤 영주, 백작영애들과 영식, 그 틈에 꼿꼿한 자세의 노인과 노부인도 있었다.

“저 어르신들은 누구야?”

누군가의 낮은 질문, 헤리슨이 낮게 대답했다.

“전 아르곤 영주와 백작부인이시다. 가능한 예의를 갖출 수 있도록.”

“허억!”

헤리슨이 먼저 노신사와 노부인의 앞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백작님.”

“음, 헤리슨, 마왕군 녀석들은 요즘 어떤가?”

근처에서 의자를 끌어와 가까이 앉은 헤리슨이 최근 상황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손을 잡아보던 노부인이 말했다.

“식사는 거르지 말도록 해요. 헤리슨.”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작부인. 그리고 이번 원정에서 노력한 친구들입니다. 각자 소개 좀 해봐.”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게토가 앞으로 나서서 소개를 시작했다. 마법사 몰리, 자동석궁을 다루는 리모와 유리, 토스트.

“어? 누나?”

토스트가 멍청한 소리를 하며 바로 본 곳에는 그와 비슷한 인상의 메이드가 서 있다가 눈썹을 좁혔다.

앞으로 한 걸음 나선 그녀가 영주 가족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 모험가 토스트는 제 남동생입니다.”

“오오, 별일이군.”

갑작스런 친분에 다들 신기해했다. 다음으로 강화인간 레나가 등장하자 노신사와 노부인이 과거 일을 되뇌는지 그윽한 시선을 했다.

함께 온 원정단의 간부 멤버 몇 명도 간단하게 인사를 했고, 마지막으로 크랭크와 캐롯으로 소개가 끝났다.

“크랭크, 모험가 입니다.”

“캐롯, 크랭크의 오토마톤이에요.”

“와, 캐롯의 주인이 당신이야? 엄청 크네?”

금발 영애 하나가 대뜸 말하자 크랭크가 그녀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유학 나가 계신다는 클레어 아가씨군요.”

“어? 날 알아?”

“물론입니다. 제일 말을 안 듣는다고 영주님의 걱정이 제 귀에까지 들릴 지경이죠.”

클레어가 입술을 비죽 내밀어버렸다.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옆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게토를 보았다.

“게토 씨 이번 원정의 종합보고를 시작하시지요.”

“어, 흡! 내가?”

“가능한 보조 하겠습니다.”

주변을 좀 살피던 게토가 일어서서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백작가 구성원의 앞이라서 좀 더듬긴 했지만 뒤로 갈수록 꽤 자세한 묘사와 몸짓으로 모두의 시선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야기 중간 중간 질문에 대답도 하고 때론 화자를 넘기기도 하면서 결국 원정 보고를 완료했다.

짝짝짝!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 모두가 박수를 쳤다. 쑥스러워진 게토가 머리를 붉게 물들이는 동안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들이 주전자와 다과를 가지고 와서 빈 잔을 주었다.

토스트는 자기 찻잔을 따라주는 누나를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다가 그녀에게 볼을 꼬집혔고, 그걸 보고 있던 영식과 영애들에게 웃음거리가 됐다.

분위기와 이야기가 무르익어가고 시계를 힐긋 본 헤리슨은 헛기침을 좀 했다.

“보고가 끝났으니 이제 물러나도록···.”

“아니! 잠시만!”

사사사삭!

치워두었던 스케치북을 꺼내든 현 백작부인이 모험가들을 앉혀 놓고 목탄 연필에 다시 불이 붙을 것 같은 모양새로 러프스케치를 해댔다. 현 백작과 전 백작은 흐뭇하게 그 모습을 보았다.

전 백작이 마법사 몰리를 보고는 말했다.

“어떠신가. 마법사. 내 며느리야. 캔버스 위에다 마법을 부리지.”

몰리는 슬쩍 웃어보였다. 왜냐하면 지금 바로 앞에서 자신을 스케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법사님 팔을 이렇게, 그리고 시선을 이쪽···, 오! 좋아요! 잠시만요···!”

“얼굴에 그건 무슨 뼈에요?”

백작영식으로 들은 금발 소년의 질문에 자세를 고정당한 몰리가 말했다.

“아, 멧돼지 두개골입니다. 스승님의 유품···.”

“팔을 약간 이렇게···! 아! 좋아요! 아주 좋아요!”

한참 스케치 하던 백작부인은 몸을 돌려 다음 먹잇감들에게로 덤벼들었다.

“캐롯, 여기 테이블 위에서 그거 한번 해보겠니? 그 발레 자세.”

“아 회전하는 오르골 인형?”

깡총 뛰어 테이블로 올라간 캐롯이 우아하게 자세를 잡았다.

고즈넉한 저녁의 홀에서 테이블 위에 올라간 오토마톤의 모습은 꽤 그럴 듯 했다.

백작부인의 미친 듯한 스케치 소리를 뒤로 하고 백작 둘 째 영애 베라미가 뿌듯하게 가슴을 폈다.

“저거 내가 가르쳐 준 거야.”

“어? 진짜?”

“응! 연습하는데 구경하러 왔기에 기초 좀 가르쳐 줬지. 그랬더니 팽이처럼 돌더라고?”

“와!”

백작부인의 스케치가 끝나자, 시간도 늦어져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백작 구성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의 길드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마차에서 킁킁 거리던 캐롯이 말했다.

“뭐 맛있는 냄새가 나한테까지 나네.”

같이 마차를 탄 집사와 메이드가 빙긋 웃었다.

“특식입니다. 요리사장들이 힘 좀 썼습니다.”

“오오오!”

모험가들, 특히 남자들이 좋아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길드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이 남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한 마차에서 사람들과 바구니가 내리자 모두가 환호했다. 영주의 특식은 아르곤 길드의 모험가들에겐 꽤 유명했기 때문이다.

“왜? 맛있어서?”

“당연하지! 음냠냠!”

“우와! 게다! 게토 대장! 레나 이거봐봐! 게다 게!”

한 모험가가 테이블에 올려진 커다란 붉은 게를 들어보이자 사람들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남쪽 해안가 특산물이에요. 쪄 놓은 거니까. 식기 전에 드셔보세요.”

어여쁜 메이드들이 음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모두가 맛을 볼 수 있도록 접시에 잘라서 돌렸다. 그 중에는 메이드에게 얻어맞는 모험가도 있었다.

“야 토스트 자식아! 내가 미친 짓 좀 적당히 하라고 그랬지! 엉?!”

“으악! 그만 때려!”

평소의 행실을 고자질 당한 토스트가 누나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을 와인잔을 손에 든 몰리와 게토가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떠들썩한 길드의 밤은 깊어갔다.

드래곤 레어 원정이 성공한 뒤 한 동안 마을은 그 날의 일로 떠들썩했다. 아니, 어쩌면 평생 그럴지도 몰랐다.

마을 간 포탈 게이트로서의 역할을 시작한 청동문 때문이다.

아르곤 마을 광장의 중앙 분수대 근처에는 대충 갖다 놓은 것 같은 거대한 청동문이 있고 그 주변에는 경비병이 서 있었다.

윙!

문이 열리고 건너온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 여긴 아르곤인가?!”

“세상에! 교통의! 그리고 물류의 혁명이 일어날 거야!”

하지만 물류의 혁명은 당장 일어나지 않았다.

“안됩니다! 영주님!”

놀랍게도 청동문을 설치한 각 도시의 상인 길드에서 동시에 들고 일어났다. 영주와 독대를 신청한 그들은 같은 시간 비슷한 장소에서 각기 다른 영주를 앞에 놓고 부들부들 떨어댔다.

“우린 어떻게 먹고 살라는 겁니까! 청동문으로 교역 물자의 이동은 상인 길드의 이름을 걸고 절대로 안 됩니다! 물류에 관련되고 이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다 길거리에 나앉아요!”

상인 길드 장들은 서로의 영주를 앞에 놓고 비슷한 말을 해댔고, 너무나 강경한 입장에 영주들은 결국 청동문 안쪽 공간에 모여서 회의를 한 다음 당분간 대규모 물류이동에 대한 것은 금지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말이지.”

테이블에 깍지를 낀 트레일 영주가 말끝을 잡았다. 메인쿤 영주 대리가 말했다.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겁니다. 갑자기 많이 먹으면 배탈 나거든요.”

“하지만 소규모 보따리상은 어떻게 하지?”

“일부 허용했으면 좋겠네요. 그런 건 막아도 다 하거든요. 그리고 그걸 빌미로 물꼬를 터놔야 합니다. 아 물론 상인 길드와의 설득과 협상은 필요하겠지만요.”

일행 중 가장 젊은 메인쿤 영주 대리의 매끄러운 말에 최연장자 트로겐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런 곳일 줄은 몰랐습니다. 완전 신세계로군요.”

바람이 부는 언덕에 설치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르곤 영주가 고개를 돌리고 풍경을 감상했다.

다른 영주들도 주변을 살피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 안쪽으로 더 못 들어간다고 하던가요?”

“2차 조사단의 말에 따르면 도보 4시간 거리에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하더군.”

“바다 쪽도 막혔다고 해요.”

“우리 측 마법사 길드의 말에 따르면 돔 형태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하던데. 완전한 신세계는 아니었어.”

메인쿤의 영주 대리, 베리타스 메인쿤 백작의 장녀 디오네 메인쿤이 빙그레 웃었다.

“뭐가 어쨌든 우리에게 좋은 경유지가 될 것입니다. 마르고 닳도록 써먹으시죠.”

“그렇군. 각 도시 영주가 이렇게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그때 노쇠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자리에서 일어선 트로겐의 영주가 고개를 숙였다.

“길드 장에게 우리 측 모험가들의 행실에 대해서 들었네. 영주로서 면목이 없군. 길드 모험가들의 행실이 발라지도록 내 노력하겠네.”

깜짝 놀란 세 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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