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당신, 일부러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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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당신, 일부러 그랬죠?
2022.08.26.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연 리타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메이아의 방을 방문한 뜻밖의 손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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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리타는 황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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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시터님의 방에는 어쩐 일이지?’
하필 메이아가 시롬과 라크하를 만나러 간 탓에 리타의 심장이 무서운 속도로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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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양을 만나러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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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님께서는 산책하러 나가셨습니다.”
메이아의 행방을 묻는 키네스의 말에 리타는 황급히 둘러댔다. 속으로는 제발 이대로 돌아가길 빌면서.
하지만 키네스는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는지 방안을 쓱 훑어보더니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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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산책을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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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가신 지 꽤 됐으니 곧 돌아오실 겁니다.”
저 모습으로 봐서는 메이아가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갈 것 같았다. 이러다가 거짓말이 들통날 수도 있기에 리타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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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기다리시면 제가 차라도 준비해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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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듯한 키네스의 모습에 리타는 초조하게 제 옷자락을 쥐었다. 식은땀에 손바닥이 축축했다.
이미 황제를 마주한 압박감 숨통이 조이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거짓말이 들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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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러도록 하지.”
다행이다. 리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문을 활짝 열어 키네스를 방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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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쉬고 계십시오. 금방 차를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리타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황급히 방에서 빠져나왔다.
어찌나 긴장하고 있었던 건지 나오자마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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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시터님을 모셔 와야 해.’
곧 돌아올 거라는 말로 붙잡아뒀으니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의심을 살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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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라크하를 밀쳐낸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조금 뒤 들어온 사람은 시롬이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시롬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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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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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폐하께서 시터님을 뵈러 가신다는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방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딱 자리를 비웠을 때 키네스가 방문할 줄이야. 순간 차가운 바람이 스친 듯 심장이 설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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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가야겠네요.”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리타가 대충 내 행방을 둘러대고 있겠지만, 시간을 오래 끌면 위험했다.
혹여나 시간이 지체되면 키네스가 사람을 시켜 나를 찾아오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자칫 라크하와 시롬이 신전에 있는 것까지 들통날지도 몰랐다.
황급히 라크하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려던 찰나였다.
라크하가 내 손목을 움켜쥐며 미간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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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이 이 시간에 왜 그대의 방에 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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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같이 마시자는 약속 때문에 오신 걸 거예요.”
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대답했다.
물론, 속으로는 나 역시 키네스가 왜 하필 지금 나를 찾아온 건지 의아하고 불안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라크하가 더 불안해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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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일도 없을 거예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리타 씨를 통해 연락할게요.”
나는 라크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웃어 보였다.
그러자 내 손목을 잡고 있던 라크하의 손에 천천히 힘이 빠졌다.
이대로 가기엔 굳어 있는 라크하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전에 있는 동안 최대한 트집 잡힐 일을 줄이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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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서도, 라크하를 위해서도.’
키네스는 언제든지 나를 라크하에게서 떨어트릴 궁리만 하고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까스로 발걸음을 떼어냈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시롬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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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하를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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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리타 양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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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터님!”
시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리타가 들어왔다.
***
리타를 두고 먼저 밖으로 나온 나는 안전한 장소에서 장옷을 벗은 뒤 더 늦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걷지 않아 익숙한 등나무가 보였다. 그나마 내가 지내는 건물과 거리가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급히 등나무를 끼고 돈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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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누군가와 부딪힌 나는 비틀거리며 등나무를 짚었다.
하지만 나와 부딪힌 사람은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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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화들짝 놀라며 사과를 하던 나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바닥에 넘어진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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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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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괜찮습니다. 앞으로 조심하도록…….”
상냥한 키레타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키레타의 얼굴이 걷잡을 수 없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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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일부러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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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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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뒤집듯이 순식간에 바뀐 태도와 말투에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이 정도면 키레타는 내가 그냥 싫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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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해서 정말.”
키레타가 벌떡 일어나더니 옷을 마저 털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유치하게 구는 쪽은 오히려 그쪽이겠지!’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나는 가까스로 화를 삭였다.
대신관과 친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서 싸워서 좋을 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키네스를 만나러 가는 게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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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신 곳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네요. 저는 그럼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나는 애써 키레타의 도발을 무시하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키레타가 내 앞을 막아서더니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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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실 말씀이 그걸로 끝이신가요? 다시 제대로 사과하시죠?”
괜찮다고 할 때는 언제고, 다시 사과하라는 태도에 헛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랫입술을 꾹 물어 인내한 뒤 키레타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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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제가 미처 옆을 보지 못했네요.”
내가 빠르게 사과할 줄은 몰랐는지, 키레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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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레타 님.”
다행히 때마침 키레타의 곁으로 다른 사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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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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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님께서 지금 찾아오셔도…….”
나는 키레타의 시선이 다른 쪽을 향한 틈을 타 곧바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대신관과 관련된 얘기라서 그런 걸까.
키네스를 만나러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나도 모르게 시선이 은근슬쩍 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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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
지금 같은 상황에 키레타가 대신관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유독 더 거슬렸다.
***
방 앞에 도착한 나는 방문을 열자마자, 놀란 척 눈을 커다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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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산책하다가 돌아왔다는 설정을 생각하면, 키네스의 방문에 당황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키네스는 나를 흘긋대더니 은근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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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군. 산책을 다녀왔다던데, 어디로 다녀왔지?”
키네스의 질문에 표정이 흐트러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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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돌아다녔죠. 저녁 공기가 좋아서요.”
나는 굳이 장소를 콕 집어 말하지 않고 둘러댔다. 괜히 특정 지어서 장소를 얘기했다가 키네스가 알아볼 수도 있었다.
다행히 키네스는 더 추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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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늦기에 찾으러 나가볼까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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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언질이라도 해주셨다면, 준비라도 하고 있었을 텐데요.”
매번 키네스는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오곤 했다.
그 탓에 대처할 틈도 없이 키네스에게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황제의 방문을 거절하기란 어려우니까.
하지만 키네스는 이 점을 잘 알고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대꾸 없이 말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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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기 불편할 텐데, 일단 앉도록 하지.”
키네스의 건너편에 앉아서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라크하와 보내야 할 시간에 키네스를 마주하게 될 줄이야.
그 탓에 평소보다 더욱 키네스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키네스는 불편한 존재였다.
키네스가 자신의 능력을 원한다는 것도, 그가 라크하를 경계한다는 것까지. 모두 불편한 점투성이였다.
그런 키네스와 대화하고 있자면, 피로해져서 어떻게든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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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때문에 방문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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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리더군. 보아하니, 사제들이 그대를 반기지 않는 것 같던데, 힘든 일은 없나?”
키네스는 질문을 던지면서 메이아의 표정을 살폈다.
대신관을 통해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대충 상황을 듣긴 했다.
하지만 대신관에게 온전히 맡기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대신관은 황제의 명령을 따르기보다는 제 신념과 신전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에 가까웠다. 결국, 완전히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메이아가 신전에 방문한 건 다신 오지 않을 기회였다.
계획했던 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지 제 눈으로 확인하며 짚고 넘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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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괜찮아요. 사제들은 충분히 그럴 만도 한걸요.”
메이아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키네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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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의식에 관해선 대신관과 잘 얘기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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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님을 통해서 못 들으셨나요?”
메이아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도로 질문을 해서 키네스의 질문을 피했다.
하지만 키네스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관과 대화를 한 메이아의 반응을 살펴보려고 찾아온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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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듣긴 했지. 그런데 대신관은 여전히 축복의 의식을 진행할 생각인 것 같더군.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해도 강경하게 나오니 조금 걱정되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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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네. 그래서 한 번 더 대신관님과 대화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무표정한 얼굴에서 생각을 읽기 어려웠다. 문득 위화감이 든 키네스는 눈가를 좁혔다.
지금까지 키네스가 봐온 메이아는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늘 메이아가 대신관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안위에 위협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약간의 불안은 생겼어야 했다.
고위 사제들뿐만 아니라, 대신관까지 그녀에게 축복의 의식을 부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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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면 내 직접 다시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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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뇨. 괜찮아요.”
그 순간, 메이아의 얼굴 위로 동요가 일어났다.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은 키네스의 눈빛이 언뜻 날카로워졌다.
심지어 대신관과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데 메이아가 이를 거절할 리가 없었다.
아직 신전에서 홀대받는 메이아가 대신관과 독대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미리 약속한 게 아닌 이상.
하지만 키네스는 대신관에게 메이아와 또다시 약속을 잡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대신관이 그 사실을 숨긴 것일까. 혹은, 묻지 않아서 대답하지 않았던 것일까.
어쨌든, 메이아의 행동을 보니 두 사람이 만날 약속을 잡은 건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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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고에게 대신관과 메이아가 따로 조우하는 일은 없는지 살피도록 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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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차를 내오기로 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메이아가 먼저 급하게 뛰쳐나간 뒤 리타도 따라 나가려고 했다. 차를 내온다고 변명을 한 뒤 빠져나온 거니까.
하지만 시롬이 리타를 불러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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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양, 아주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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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시롬은 리타에게 다가가 자신이 받은 업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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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저를 봤을 때 많이 놀라셨던 것 같아서 그럽니다. 오늘 외출하셨다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리타는 낮 내내 리타의 머릿속을 괴롭히던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제 추측에 불과하기에 리타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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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긴 했는데…… 제가 착각한 일일 수도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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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시롬이 부드럽게 달래자, 리타는 용기를 내어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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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실종 사건으로 수도가 흉흉하잖아요. 마침 오늘 비스퇴르가에 나갔다가 어둑한 골목 쪽에서 남자아이의 비명 소리를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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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소리를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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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런데 그 골목에 아이는 없고 어떤 남자가 거기서 소름 끼치게 웃으면서 서 있더라고요. 그 사람이 저를 쫓아온 줄 알았어요.”
비스퇴르가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녹스와 관련된 일일 확률이 높았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시롬은 더 자세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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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 남자의 인상착의를 더 자세하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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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머리에…….”
리타는 시롬에게 남자의 인상착의를 차근차근 설명한 뒤 망설이다가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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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드리엔 남작가 레이나 님의 소꿉친구분과 무척 닮으셨어요.”
아드리엔 남작 영애의 소꿉친구? 뜬금없이 튀어나온 인적 사항에 시롬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잠자코 있던 라크하 역시 의아해하면서 리타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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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 남작 영애의 소꿉친구는 어찌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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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게 말이죠…….”
리타는 그 남자를 신고하러 가는 길에 레이나와 테오를 만났던 일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메이아가 라크하에게 말하지 않았던 편지 작전까지 무심코 말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