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 저놈과 함께 도망치려고 했나? (61/136)


61. 저놈과 함께 도망치려고 했나?
2022.05.30.


나도 모르게 다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틀 만에 보는 얼굴이었으나 반갑기보다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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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십니까, 메이아 님? 못 볼 거라도 본 얼굴이십니다.”

테오가 아주 정확히 짚었다. 여기서 라크하의 얼굴을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지금은 라크하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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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여기엔 왜 온 거야?’

갑작스러운 라크하의 등장에 당황한 나는 허둥지둥거리며 짐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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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먼저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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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급한 일이 있으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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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거기까지 말한 나는 뚝,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내가 도망이라도 치다가 딱 걸린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분명 방에 메모까지 남겨놨고, 업무 시간이 아닐 때 당당하게 외출을 했다.

즉, 내가 여기에 있다고 문제가 될 만한 건 없으니 지레 놀라서 뛰쳐나갈 이유가 없다는 말씀!

나는 안심하고 다시 짐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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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레이나도 안 왔는데…… 정말 지금 가보시려고요?”

테오가 레이나의 얘기만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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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와 라크하가 만나면 안 되잖아!’

원작 속에서 라크하는 레이나에 대한 세기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레이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앞뒤 없이 달려들고 끝내 마물 떼를 끌고 와 황실을 덮치는 대참사까지 벌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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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의 라크하는 나한테 더 관심을 보이고 집착하는 상태이긴 한데…….’

레이나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언제 라크하가 다시 레이나에게 흔들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마음 한구석이 울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싫어, 역시 그런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짐을 챙겨들었다.

그러고는 멋쩍게 웃으며 테오에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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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레이나 님이 오시면 말없이 가서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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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아쉽네요, 다음에 꼭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테오가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엷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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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죠. 오늘 만나서 즐거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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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즐거웠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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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돌렸다.

로브 아래로 짐승의 것처럼 흉포하게 번뜩이는 보라색 눈동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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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언제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아니, 그전에 레이나는? 나는 순간적으로 라크하의 등 뒤로 레이나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레이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둘이 마주치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다행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던 그때, 손목이 붙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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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딜 도망치려고?”

그가 잔뜩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도망친다니. 라크하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나는 눈을 멀뚱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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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분명 내가 말했을 텐데.”

그가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처럼 말을 씹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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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을 떠날 생각은 하지 말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파악이 빠르게 되지 않았다.

험악하고 살벌하게 라크하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분명 이틀 전까지만 해도 다정한 눈으로 나를 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180도 바뀐 건지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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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신데 메이아 님께 함부로 손을 대는 겁니까.”

테오가 잔뜩 굳은 얼굴로 나와 라크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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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야?”

라크하가 왜 이러는 거지? 왜 테오를 경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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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시만요.”

금방이라도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서둘러 라크하를 말렸다.

그러자 라크하의 기세가 더욱 사납게 일렁였다.

라크하보단 테오를 말리는 게 더 빠를지도. 나는 테오를 잡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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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님, 제가 아는 분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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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라크하가 서늘하고 음습한 목소리로 내 말을 따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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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테리…… 아, 그런 거였군.”

입꼬리를 사납게 비튼 라크하가 내 귀에 속삭였다.

그가 거머쥐고 있는 손목이 더욱 옥죄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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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과 함께 도망치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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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내가 미쳤다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랑 도망가겠어? 단호하게 부정했으나 라크하의 의심스러운 눈빛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그 질문을 들은 후에야 나는 라크하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봤는지, 왜 나를 몰아붙였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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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내가 도망치려고 했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쪽지를 남기고 나갔는데도, 내가 도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이내 다른 가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라크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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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제가 남긴 쪽지를 못 보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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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쪽지? 태워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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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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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겠다는 말을 잘도 돌려서 적어놨더군.”

어떤 부분에서 도망치겠다는 말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일순간 내가 쪽지 내용을 잘못 적기라도 했던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순간, 테오가 내 손목을 거머쥐고 있는 라크하의 팔을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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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놓고 얘기하시지요. 메이아 님께서 곤란해 하시지 않습니까.”

테오는 당황한 내 모습이 곤란해 하고 있는 거라고 착각한 듯했다.

말린 지 얼마나 됐다고! 위험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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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괜찮아요, 테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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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죽여버릴까.”

그와 동시에 결국 라크하의 전매특허가 나와 버렸다. 요즘 좀 잠잠하다 했더니…….

아무리 황실 기사단에다가 레이나의 소꿉친구라지만, 테오는 나와 같은 엑스트라 신세였다.

그 말인즉슨, 라크하의 손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지.

무고한 한 생명이 위험해지는 건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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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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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메이아 님. 저 남자에게 무슨 협박을 당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황실 기사단으로서 못 본 척 넘어갈 수 없습니다.”

작정하고 끼어든 모양인지 테오가 나를 잡아 제 뒤로 숨겼다.

아무리 로브를 쓰고 있어 라크하인지 못 알아본다고 해도 사람을 가려서 덤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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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놓고 진정을…….”

나를 잡고 있는 테오의 손을 떼어내려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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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에드먼 씨랑 대화하다 보니 조금 오래 걸렸…… 응?”

계단에서 다급히 올라오던 레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테오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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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너 지금 메이아 님을 잡고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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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자식이 메이아 님을 위협하면서 데려가려고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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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저 사람이 누군데?”

레이나가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라크하를 바라보았다.

레이나까지 합세하면서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오해를 단번에 해결할 방법이 뭐가 있지?

레이나와 라크하가 만난 상황에서 피하기만 하는 건 답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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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하의 정체를 밝히자.’

그럼 두 사람 모두 꼬리를 내리고 물러날 것이다.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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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 약혼자예요!”

이 정도만 말해도 누군지 알겠지. 다행히 내 예상대로 레이나는 금세 로브를 쓴 남자의 정체를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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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티아 공작님?”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테오였다.

테오가 레이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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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 미친개가 왜 이런 곳에 있겠어.”

평소에 라크하를 미친개라고 불렀던 건지 그 단어는 테오의 입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누가 찬물이라도 뒤엎은 것처럼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아아…… 기어코 제 발로 무덤을 향해 걸어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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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르겠다. 난 충분히 할 만큼 했어.’

저는 이만 여기서 손을 뗍니다. 부디 목숨만은 건질 수 있기를.

그 와중에도 테오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인지 그저 나와 레이나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저렇게 눈치가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안 좋은 의미로 존경스러웠다.

지독하리만큼 살 떨리는 긴장감 속에 먼저 입을 연 건 라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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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개라…… 짜증 나게도 칭찬으로 들리는군.”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라크하가 제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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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걸 왜 칭찬으로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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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개를 좋아하지 않나.”

라크하가 눈썹을 치켜들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그걸 칭찬으로 듣는 사람이 어디 있어!

농담이길 바랐으나 안타깝게도 라크하의 눈빛은 매우 진지했다.

진심으로 내가 개를 좋아해서 그게 칭찬으로 들린다고? 실소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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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테리투스 신전의 신의 딸 이름이 메이아…… 헉.”

테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숨을 짧게 들이켰다.

테오의 얼굴이 핏기가 싹 가시며 창백하게 물들었다.

뭐야,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던 거야?

그때 레이나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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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메이아 님이 신의 딸이신지도 몰랐어?”

그걸 마지막으로 테오는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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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레이나까지 변호해 준 덕분에 라크하의 오해는 풀렸다.

그렇게 레이나는 라크하의 오해를 풀어준 뒤 먼저 가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부모님께 점심만 먹고 들어온다고 말했다며 걱정하실 테니 가 봐야겠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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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느낌에 더 가깝긴 했는데.’

아마도 레이나도 테오의 엄청난 만행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거겠지.

결국, 식당에는 테오와 나, 그리고 라크하 이렇게 셋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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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공작님! 죄송합니다!”

테오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파고 들어갈 듯이 여러 번 머리를 숙였다.

사죄를 한 지도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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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용서를 해줄 만도 하지 않나…….’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더 불편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라크하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이 그저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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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군.”

BGM으로 깔리는 테오의 죄송하다는 소리가 듣기 좋다는 걸까. 음식 맛이 좋다는 걸까.

이런 와중에도 깔끔히 식사를 끝낸 라크하가 신기했다.

식기를 내려둔 라크하가 냅킨으로 우아하게 입을 닦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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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쪽지에 돌아온다는 말을 적지 않았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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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하러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온다고 적어뒀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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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용은 없었어.”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적은 내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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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뒷부분에 적었어요.”

그러자 라크하가 멈칫하더니 아, 하고 작게 탄성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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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쪽지가 찢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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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져 있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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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다 핵심 내용이 담긴 뒷부분만 절묘하게 잘린 건지.

내 방에 들어올 사람이라곤 라크하와 리타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크하는 쪽지의 내용에 대해 잔뜩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럼 리타가 찢었다는 얘기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리타가 내 쪽지를 찢을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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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젖어서 찢어진 건가.”

라크하가 제 턱을 매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쪽지가 젖기까지 했다니. 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쪽지에 무슨 봉변이 일어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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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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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가 말하기론 청소를 하다가 실수로 물에 적셨다고 하더군.”

그러고 보니 오늘 리타가 내 방을 청소하는 날이구나. 깜빡 잊고 있었다.

만약 리타가 청소를 하다가 실수로 내 쪽지를 적신 거라면 납득이 됐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보아도 리타가 내 쪽지를 찢을 이유는 없으니까.

애초에 레이나를 만나러 간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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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젖어서 찢어진 건가 봐요.”

나는 고민을 떨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살금살금. 포크를 문 아이샤가 시롬의 곁으로 기척을 죽이고 다가갔다.

그리고 시롬의 앞에 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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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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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졸고 있던 시롬이 뒤로 넘어갈 듯이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시롬이 허둥지둥하자 아이샤가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샤의 얼굴을 보며 시롬이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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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너무하십니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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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누가 서서 졸고 있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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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밤을 새우듯이 일해서 그런가 봅니다.”

시롬이 퀭한 눈가를 문지르더니 하품을 쩍 했다.

그런 시롬을 흘겨보던 빌렌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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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10분 만이라도 쉬고 오셔요. 제가 아가씨와 도련님을 지키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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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달콤하기 그지없는 말에 시롬은 갈등에 빠졌다.

10분 정도만 쉬고 오는 건 괜찮지 않을까?

마침 디저트를 먹느라 쌍둥이들은 메이아와 라크하에 대해서 잠깐 잊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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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과 시터님께서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데 계속 졸고 있을 수도 없고…….’

차라리 10분 정도 푹 쉬고 와서 또렷한 정신으로 쌍둥이들을 감시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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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잠시 부탁합니다.”

시롬은 빌렌에게 쌍둥이들을 맡긴 뒤 다이닝룸을 벗어났다.

시롬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빌렌은 기다렸다는 듯이 쌍둥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둘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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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도련님.”

쌍둥이들이 매섭게 돌아보자 빌렌이 쉿, 하고 검지를 입술 위에 갖다 댔다.

무언가 비밀 얘기라도 하려는 듯한 모습에 쌍둥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런 쌍둥이들의 앞으로 빌렌이 쪽지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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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가씨 방에서 나온 쪽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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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서? 나는 뭐 기록 같은 거 안 하는데? 그냥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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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내용이 조금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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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버리라니까.”

아이샤가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팩 돌렸다.

반면, 델카인은 그 쪽지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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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내용인데?”

델카인이 쪽지를 받아 펼치자, 아이샤가 슬쩍 흘겨보았다.

곁눈질로 쪽지 내용을 읽은 아이샤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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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오빠 때문에 나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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