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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버리기로 했으면서 (62/136)


62. 버리기로 했으면서
2022.06.03.


저택 밖으로 이어진 개구멍 앞.

델카인은 곧장 개구멍으로 들어가려는 아이샤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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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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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빨리 가봐야지! 언니가 기다리고 있다잖아!”

아이샤가 작게 외치며 델카인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델카인은 다시 아이샤를 잡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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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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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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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이 우리를 리베르탄으로 부른다고?”

리베르탄, 비스퇴르 가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있는 빈민가로 귀족들이 가기 꺼리는 곳이다.

그런 곳에 메이아가 자신과 아이샤를 불렀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샤는 델카인과 생각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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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눈을 피하려면 거기가 딱 좋으니까 그렇겠지. 그리고 리베르탄이 아니라 거기로 가는 골목 초입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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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나 리베르탄이나 위험한 건 매한가지야. 그리고 형수님은 누구보다 우리가 다치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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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쪽지가 가짜라도 된다는 거야? 빌렌이 왜 쓸데없이 우리한테 가짜 쪽지를 주겠어?”

아이샤는 이미 메이아가 적은 쪽지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소리였다면 바로 반박했겠지만, 델카인은 그러지 못했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나이일 때부터 빌렌을 봐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상하게 보였던 적은 없었다.

빌렌은 그저 늘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오히려 다른 하녀들보다 아이샤와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챙겨주던 하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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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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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얼른 가기나 하자. 마지막에 오빠한테는 꼭 비밀로 해달라고 되어 있잖아. 빌렌이 언제 마음이 바뀌어서 다른 사람들한테 우리가 나갔다고 말하고 다닐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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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델카인은 가까스로 찝찝한 기분을 떨쳐내며 아이샤를 따라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빌렌이 창문가에 서서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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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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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갑자기 사람이 많아졌네요.”

메이아가 의아한 얼굴로 비스퇴르가를 두리번거렸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적하던 거리였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난 지금은 번잡하고 소란스러웠다.

메이아를 따라 비스퇴르가를 둘러보던 라크하가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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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 있는 불꽃놀이 행사 때문에 사람이 많나 보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됐을 줄이야. 라크하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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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겠어.’

쌍둥이들이 혈안이 되어 메이아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메이아를 돌아보던 라크하는 입을 다물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메이아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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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구나……!”

메이아는 평소와 달리 눈에 띄게 들뜬 얼굴이었다.

불꽃놀이를 기대하고 있었던 줄은 몰랐다.

라크하에겐 불꽃놀이란 아무런 감흥이 없는 행사였다.

그저 하늘 위로 불을 지르는 것 같은 연출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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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를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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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기보다는 궁금한 거죠. 여기선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으니까.”

메이아는 바람결에 휘날리는 백금발을 귀 뒤로 넘기며 여상하게 말했다.

하지만 라크하의 심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에게는 메이아가 살면서 축제를 한 번도 즐겨보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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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에서 축제가 있는 날에도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던 건가.’

메이아가 신전을 기피하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축제 한 번 즐겨보지 못할 정도로 억압을 받았을 줄이야.

그런 일을 아무런 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니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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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들어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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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래도 돼요?”

도리어 메이아가 확인하듯 되묻자 라크하는 멈칫했다. 다분히 충동적인 물음이었다.

일도 뒷전으로 미루고 나온 데다가 쌍둥이들도 저택에서 메이아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라크하의 대답이 늦어지자 메이아의 낯빛이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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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역시 하셔야 할 업무가 많으신 거겠죠?”

그 모습에 라크하의 마음은 파도처럼 출렁였다. 라크하는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

업무도 중요하다. 쌍둥이들이 사고를 치지 않도록 감독하는 것도 중요하고.

하지만 업무는 또 밤을 새우면 되는 거고. 쌍둥이들은 시롬에게 잘 감시하고 있으라고 명해두지 않았던가?

결국, 패배를 당한 건 라크하의 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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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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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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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미 다 끝냈으니 불꽃놀이를 보고 들어가지.”

라크하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업무를 미룬다면 시롬도 함께 또 밤을 새우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라크하에게 시롬은 안중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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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불꽃놀이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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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구경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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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비스퇴르가는 한번 둘러봤지 않나. 축제라고 해봤자 크게 다를 것도 없고.”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노점상과 사람이 조금 더 많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메이아는 굉장히 충격을 받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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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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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인데 다를 게 없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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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그저 사람만 많지 않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메이아가 끙, 하며 침음을 내뱉더니 발꿈치를 들어 라크하에게 손을 뻗었다.

라크하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자 메이아가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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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게…….”

손길을 피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라크하는 속으로 웃었다.

문득 매번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보단 한 번씩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큼 메이아의 앞에 선 라크하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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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려고 했는데?”

메이아가 헛기침을 하더니 라크하의 로브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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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 때문에 주변을 제대로 못 보시는 건가 싶어서요. 그런데 제가 착각했네요. 제 손도 피할 정도면 잘 보이시나 봐요.”

심통이 난 듯 불퉁하게 말하는 메이아를 보며 라크하는 한숨처럼 웃었다. 삐죽 나온 입술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게 고질병이나 다름없었다.

저 사랑스러운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

허리를 살짝 숙인 라크하는 메이아와 눈을 맞추며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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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잘 안 보이는 것 같으니 그대가 벗겨줘.”

메이아의 얼굴이 얼핏 붉어 보였다. 노을빛 때문일 텐데, 저 달아오른 얼굴이 자신 때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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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 됐어요! 어쨌든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은요…… 축제라서 평소와 다른 것들이 참 많다고요.”

라크하의 눈을 피한 메이아가 여전히 퉁명스럽게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툭 찌르면 나오는 반응이 흥미로웠다.

라크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 번 더 메이아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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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 나는 모르겠어. 로브 때문에 안 보여서 그런가?”

짓궂은 라크하의 목소리에 메이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기가 생겼는지 메이아가 결연한 표정을 짓더니 라크하의 로브를 벗겼다.

그러고는 거리 풍경을 하나하나씩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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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잘 봐요.”

어여쁜 단풍 색으로 따듯하게 물든 베이지색 건물과 노점상들.

길거리 공연과 연극을 하는 사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제르디아 제국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역시나 라크하에겐 평소와 같게 감흥 없는 풍경이었다.

그때 메이아가 라크하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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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평상시와 다를 게 없어 보여요?”

고개를 돌리자 그 풍경 속에 메이아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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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라크하는 짧게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 다른 게 하나 있구나. 간과하고 있었다.

라크하는 바람결에 흐트러진 메이아의 머리칼을 살짝 쓸어넘겨 주었다.

그러고는 느슨하게 입꼬리를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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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있으니 같은 것도 다르게 느껴지는군.”

 

***

한창 활기가 도는 축제 거리.

어둑한 골목길에 기대어 서 있는 데미안이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개중 데미안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부모와 손을 잡고 있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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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리나, 어떤 걸 먹고 싶어? 오늘은 엄마가 다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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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거!”

얼핏 봐도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데미안이 시선을 떨구었다.

그의 눈이 향한 곳은 자신의 손이었다. 손을 잠시 쥐었다가 편 데미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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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데미안…….”

그때, 데미안의 목에 걸려 있는 마도구에 박힌 보석에서 빛이 반짝였다.

흐릿하던 데미안의 호박색 눈동자에 순간 다시 빛이 돌아왔다.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내 가족은 나를 버렸으니 약한 감정은 버리기로 했으면서.

데미안은 상념을 떨쳐낸 뒤 마도구를 잡고 흑마력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마도구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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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명하신 대로 아가씨와 도련님을 리베르탄으로 끌어냈습니다.]

이렇게 빨리 기회가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계획했던 대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데미안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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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수고했어.”

짤막하게 대답한 데미안이 마도구에 흘려보낸 흑마력을 거두려던 순간이었다.

마도구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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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 약속했던 대로 해주시는 겁니까?]

데미안은 약속한 보수를 언급하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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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물론이지. 성공했으니 돈은 말했던 대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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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는…… 제 아이를 살려준다던 약속 말입니다.]

데미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돈보다 다른 약속을 강조할 줄은 몰랐다.

순간 이 하녀를 어떻게 매수했었는지 떠올렸다.

라크하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고 수도로 돌아왔을 때였다.

데미안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빌렌과 마주쳤다. 그는 단번에 빌렌을 알아봤다.

아인티아 저택에서 제 식사를 챙겨주던 하녀였으니까.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어 말을 걸었으나 빌렌은 슬쩍 눈치를 보며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 그의 뒤로 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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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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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응, 엄마가 일하고 있는 저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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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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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리!

 
투둑. 아이가 피를 토하며 빌렌의 말이 끊겼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빌렌이 여전히 아인티아 저택에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 5년 전 선대 공작 부부가 저택에서 쫓겨난 이후로 대부분의 사용인들이 교체됐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저택에 남아 있다는 건 업무 능력이 좋고 저택에서 신뢰를 얻은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데미안은 빌렌에게 제안했다.

돈은 물론이거니와 아이가 아프지 않도록 해줄 테니, 자신과 거래를 하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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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할 줄은 몰랐지.’

아직까지 아인티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라크하에게 충성적인 인물일 테니까.

그렇기에 사실 제안을 해 볼 필요도 없이 그녀에게는 곧장 금기의 흑마법을 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시험해보고 싶었다.

가족이란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건지, 얼마나 큰 의미인지 궁금했으니까.

그런데 돈보다 제 아이를 챙기는 걸 보아하니…… 아마도 가족이 최우선이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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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 가족은 어째서…….’

데미안이 입술을 잘근 짓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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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님?]

마도구 너머로 불안감을 담은 빌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안은 가까스로 들끓는 감정을 꾹 누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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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야. 걱정 마. 계획에 차질만 없다면 돈도, 그쪽 아들도 모두 해결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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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데미안은 천천히 마도구에 흘려보낸 흑마력을 거두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모든 계획이 성공한다면.

그때는…… 나도 저기 길거리에 다니는 아이들처럼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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