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로 뒤덮인 세상-34화 (34/36)

21화 - 하얀 사람들 (4부. 각개격파 [상])

한이는 달렸다.

그가 방금 본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정희가 올라간 10층으로 따라 올라간 곳에서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한이는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이의 호기심과 의구심은 그를 계속 10층 계단에 잡아두었다.

그 결과, 자정이 넘어서 한이는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그 기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여의도에 도착한 후로 한이는 단 한 번도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처음엔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성인들 보단 아이들이 좀비에게 당하기가 더 쉽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물어보면 다들 힘들어 할까봐 일부러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곳엔 아이들이 없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갇혀있었다.

범식과 정희를 비롯한 하얀 옷의 사람들은 아이들의 눈과 귀를 막고, 공중에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아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삐쩍 말라있었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울었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자신들이 믿는 신께 기도를 올렸다.

그 신은 예수도, 부처도 아니었다.

그 신은 사탄이나 악마도 아니었다.

그곳에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은 자정이 가까워지자, 63빌딩에 모든 조명을 켜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거기까지였다.

한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그는 10층을 단숨에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거꾸로 매달린 불쌍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달렸다.

집에 가서 사람들을 깨워 이 역겨운 하얀 옷의 인간들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다.

드디어 한이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우선 소희에게 별일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202호의 문을 열었다.

“소희 씨!”

집 안은 비어있었다.

한이는 곧바로 문을 닫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올라갔다.

문 밖으로 성배가 떠들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한이는 망설일 필요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며 외쳤다.

“성배 형! 여기 사람들….”

한이는 입을 다물었다.

집 안에서 성배와 하얀 옷의 건장한 남자 둘이, 사이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이의 말에 두 남자 중 하나가 한이를 힐끔 쳐다봤지만, 한이는 일부러 그자를 외면했다.

“어이! 강한! 어디 갔다 왔어, 이 자식아.”

성배는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그들의 앞에 놓인 술상 위엔 와인 한 병과 소주가 여러 병 놓여있었다.

한이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조그마한 소리로 성배에게 말한다.

“아, 저는 잠이 안 와서 잠시 바깥에서 좀 달리다 왔어요. 근데 저 분들은….”

“아, 재들. 크하하하! 저 자식들 생각보다 좋은 놈들이더라고. 재수 없게 꼬나보길래 손 좀 봐주려고 했는데, 아 글쎄 내 앞에서 납작 엎드리지 뭐야. 그냥 자기들도 와인이 마시고 싶어서 놀러왔데.”

한이는 성배의 어깨너머로 남자 하나를 쳐다봤다. 그 남자는 한이가 들어 올 때부터 한이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요. 친해지면 좋죠. 근데 소희 씨는 어디 갔어요? 집에 없던데.”

성배는 방 하나를 가리켰다.

“나라가 아파서, 저 방에서 자거든. 소희가 혼자 자기 무섭다고 나라랑 같이 자고 있어. 아저씨랑 정배도 이미 자러 들어갔고.”

“네, 그럼 저도 피곤해서 이만.”

방으로 들어가려는 한이의 어깨를 성배가 잡았다.

“어딜 가 인마! 형이랑 한 잔 하자! 이리와, 내 새로운 동생들 소개 해줄게.”

반강제로 끌려간 한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술상에 앉았다.

“자, 자 얘는 현준이고, 얘는 영호, 그리고 이 친구는 강한.”

성배는 세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며, 서로를 소개시켰다.

한이는 억지로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아까부터 한이를 의식하던 남자는 영호였다. 한동안 별말 없던 영호는 성배가 잠시 화장실에 간 틈에 한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까 들어오면서 여기 사람들 어쩌고 하시던 거 같던데….”

한이는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여의도에 들어와서 본 사람들 중에 이 둘이 가장 강해보였다. 이 둘만 여기서 제압하면 하얀 옷의 나머지 사람들은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이는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천하무적에 가까운 성배도 사람이었다. 지금 그의 상태는 밤을 꼬박 새우고, 몇 시간 잠도 못자고 술까지 마신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이 둘을 제압하려면 한이 혼자 해야 했다.

‘나 혼자는 무리야, 칼을 들면 난 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그냥 싸우기엔 이 집안에 사람들이 위험해져….’

한이는 결정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로.

설마 오늘 당장 무슨 일이 터지진 않을 것이라고 한이는 생각했다.

“아니 뭐, 다른 게 아니라. 여기 사람들이 다들 모여서 63빌딩으로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신기해서요. 근데 두 분은 안 가셔도 돼요?”

“네, 뭐 가끔은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근데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원래부터 알고 계셨던 사이인가요?”

“그게 그러니까 원래는 초자연현상 동호회 회원들이었는데, 미지의 존재가 나타난 이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다들 모여서 이겨내자고 제안을 하셨죠. 마침 두 분은 여의도에 아파트를 여러 채 갖고 계셨고, 우리들이 생각하기에도 여의도가 가장 안전할 것 같기도 해서 전부 모인 거죠.”

영호는 앞에 있던 와인을 한 잔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큰아버지랑 큰어머니께서 우리들을 잘 이끌어 주셨어요. 서로 싸움 안 나게, 서로 욕심내지 않고 공평하게, 서로 의견 충돌 없이 이곳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요. 하얀 옷을 입고, 신께 기도하면 우리 모두는 영원히 살 수 있다고도 했어요.”

영호의 말을 듣던 한이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죄송한데 그걸 믿으시는 건가요? 하얀 옷을 맞춰 입고, 기도하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이요.”

“지금 이렇게 잘 살아 있잖아요. 믿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증명된 사실이죠.”

한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이건 군대가 이곳에 튼튼한 방어벽을 세웠고, 또 여의도 안에 생긴 좀비들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안전한 거지. 단순히 신께 기도를 올려서 안전해진 건 아니잖아요.”

영호는 한이의 말을 잠자코 듣더니, 낮은 목소리로 한이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의 신을 부정하는 겁니까?”

“신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들이 원하는 신을 믿을 자유가 있어요. 다만 지금 당신들이 살아 있는 건, 신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뇨, 신 때문에 살아 있는 겁니다. 그깟 군대가 총 몇 번 쏜다고 저 많은 미지의 존재들이 사라집니까? 지금이야 아예 소식을 알 수도 없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지옥입니다. 이곳 여의도만 빼고요! 모르긴 몰라도 사회지도층이란 작자들과 군인들이 헬기로 도망친 벙커도 지금쯤은 지옥이 됐을 겁니다.”

한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광신도들에겐 어떠한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직접 느꼈기 때문이었다.

“뭐가 이렇게들 시끄러워.”

화장실에 갔던 성배가 귀를 후비며 나왔다.

이상하게 싸한 술상의 분위기에, 성배는 한이와 영호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니들 왜 그래? 싸웠어?”

“아뇨, 형. 전 피곤해서 들어가서 잘게요. 내일 봐요.”

한이는 성배에게 인사를 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영호를 쳐다봤다.

“다 좋은데,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게 있는 겁니다.”

한이의 묘한 말에 영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이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아시는 군요.”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이 뭔가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한이는 뒤늦게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다.

오히려 한이는 더 대담하게 나갔다.

“뭔가 있는 겁니까?”

그렇게 영호와 한이는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중간에 성배가 끼어들어 한이를 자라고 들여보냈고, 영호는 한잔 더 하자며 자리에 앉혔다.

방으로 들어온 한이는 방에 놓여있는 자신의 칼을 쳐다봤다.

‘저것들 다 죽여 버리고 싶지만, 난 아직 인간이다. 하루만 참자, 내일 아이들 전부 구하고, 저 또라이 새끼들 이곳에서 다 쫓아내야지.’

한이는 칼을 자신의 바로 옆에 놓고 자리에 누웠다.

혹시나 오늘밤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 한동안은 잠 들지 못했다.

잠시 후, 영호와 현준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집안이 조용해진 걸로 보아 성배는 곧바로 골아 떨어졌다고 생각한 한이는, 마음을 놓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요란한 벨소리가 단잠을 자던 한이를 깨웠다.

누군가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한이는 대충 눈을 비비며 일어나 문을 열었다.

“계셨군요. 벨을 한참 눌렀는데 아무도 안 나와서 다들 나가신 줄 알았네요.”

처음 보는 남자가 문 앞에서 한이에게 말을 건넸다.

한이는 그 남자에게 아침부터 무슨 용무인지 물었다.

남자는 같이 식량을 구하러 가게, 두 분만 나와 달라고 했다.

“아, 죄송한데 지금 집엔 저 혼자 인 것 같은데요.”

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쪽 분이라도 같이 가시죠.”

“네, 잠시 만요. 근데 처음 보는 분 같은데 이름이….”

“전 박승호입니다. 그쪽 분이 혹시 강한 씨?”

“맞아요. 제가 강한입니다. 세수만 하고 나올게요.”

한이가 대충 세수를 하고 나가려는데, 어제 나라와 소희가 잤던 방의 문이 열리며, 나라가 기관단총을 어깨에 메고 나왔다.

“한이 씨, 저도 같이 가요.”

“어? 계셨네요. 아무도 없는 줄 알았어요.”

“막 일어났는데, 푹 잤더니 몸이 괜찮아졌어요. 소희는 아까 새벽에 어디 가는 거 같던데 잘 모르겠네요.”

한이도 자신의 칼을 챙겨 나라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파트 밖에는 처음 보는 남자들이 네 명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도끼와 무식하게 생긴 오함마를 들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한이의 머릿속에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예감이 안 좋은데….’

아직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나라는 별 의심 없이 모두와 인사를 나눴다.

한이는 일부로 큰 칼을 땅바닥에 질질 끌며 여유 있는척했지만, 그 남자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근데 다들 처음 보는 분들이네요. 생각보다 이곳에 사람들이 더 많이 계신가 봐요?”

한이의 질문에 남자들은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민망해하며 헛웃음을 짓는 한이에게 승호가 다가오며 말했다.

“다들 낯가림이 심해서요. 정확히는 몰라도 백 명까진 안 될 겁니다.”

“아이들은 없나요? 여기 와서 한 명도 못 본거 같은데.”

한이가 이런 질문을 던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식량을 구하러 갔던 사람들의 구성은 범식과 정희를 비롯해, 나이 든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인원수는 줄었지만, 힘 꽤나 쓰는 남자들만 승호까지 다섯 명이었다.

한이로서는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상대를 속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승호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라…. 우리 귀여운 예지랑 정배가 있지 않습니까.”

한이는 대답 대신 승호의 눈을 쳐다봤다.

승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 새끼들 다 알고 있네.’

한이는 자신의 칼을 꽉 움켜잡고 슬쩍 나라를 곁눈질 했다.

나라는 별 다른 의심 없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평범하게 걷던 한이는 갑자기 할 말이 떠올랐다는 듯, 나라를 부르며 뒤로 쳐졌다.

“아 참, 나라 씨.”

한이에게 바짝 붙어있던 승호가 움찔했지만, 아직 아파트에서 얼마 가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도 섣불리 행동할 순 없었다.

“네? 왜요?”

“아니 어제 성배 형이랑….”

한이는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나라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남자들은 슬쩍 한이를 돌아본 후, 별다른 의심 없이 계속 걸어갔다.

나라의 귀에 대고 한이는 작은 소리로 빠르게 상황을 전달했다.

“밖에 나가면 저놈들이 우릴 공격할 겁니다.”

한이의 말에 나라는 놀랐지만, 그녀는 역시 권나라였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라는 일부러 큰소리를 내며,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말했다.

“하여간 성배 씨도 참. 내가 그렇게 걱정이 됐을까.”

“그러니까요. 난 나라 씨가 무슨 죽을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어요.”

한이와 나라의 능청스런 연기로 남자들의 경계심을 일단은 허물어트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방어벽을 나가면 언제 저들이 공격을 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라와 한이의 머릿속은 복잡해져가고만 있었다.

술에 취했던 성배가 극심한 갈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이게 뭐야. 내가 지금 꿈을 꾸나.’

눈을 뜬 성배의 몸은 의자에 묶여있었다.

성배는 가위에 눌린 거라 단정 짓고 다시 눈을 감았다.

‘가위에 눌렸을 때는 곧바로 다시 자는 게 최고지.’

잠깐 동안 다시 눈을 감고 있던 성배가 쌍욕을 하며 다시 눈을 뜬다.

“그럼 그렇지 씨발! 이게 가위일 리가 없지.”

지금 상황이 현실이란 걸 깨달은 성배는, 이 어처구니 상황에서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오 씨발. 이게 뭐야아아! 내가 무슨 공포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왜 또 의자에 묶여있냐고.”

성배가 분노를 토해내는 사이 방문이 살며시 열렸다.

“잘 잤어요. 성배 형.”

“야, 영호야. 이거 뭐냐?”

“뭐긴 뭐야. 의자에 형이 묶여있는 거지.”

“후, 그래 영호야. 같이 술 잘 마셔놓고 이게 뭔 수작이야? 어제 내가 니들 큰아버지랑 큰어머니한테 좀 건방지게 굴었다고 이러는 거냐?”

“아니. 한이란 놈이 우리가 말한 세 가지 규칙을 어겼어.”

“하! 나 이 씨발 진짜. 야이 새끼야, 그깟 규칙 좀 어겼다고 사람을 이렇게 묶어놔!”

“성배 형. 사실은 그 규칙은 어겨도 돼. 우리도 사실 자주 안 지키거든. 어제도 봤잖아 형이랑 새벽까지 술 마신 거…. 근데 그 한이란 새끼는 규칙만 어긴 게 아니라 호기심이 너무 지나쳤어.”

“뭔 호기시이임. 아니, 씨발 뭔 호기심 때문에, 뭘 알게 됐는데 이러는 거야. 제발 이것 좀 풀고, 우리 대화로 풀자. 응.”

“우리가 믿는 신은 좀 특별해. 그래서 특이한 방법으로 기도를 하거든.”

성배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반면 영호의 표정은 미소가 줄어든 만큼 오히려 편안해보였다.

“알았어. 니들이 어떤 식으로 기도하는지 난 알고 싶지도 않고, 상관도 안 해. 그러니깐 여기까지만 하자.”

“미안한데. 형만 풀어줘도 돼? 형 일행은 상관없어?”

성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는 영호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뭔 개소리야? 다른 사람도 건드린 거야?”

“아까 보니깐 키 큰 아가씨랑 형 동생은 밖으로 나가는 거 보니깐 승호가 처리할 거 같던데. 우리 중엔 승호가 최고거든.”

“나라랑 한이를 처리한다고…?”

“그리고 그 아저씨랑 그 귀여운 아가씨는 현준이가 맡기로 했고. 뭐,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랑 작고 귀여운 아가씨 한명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하겠지.”

“니들 왜 이래. 이럴 거까진 없잖아. 그냥 우리가 맘에 안 들면 쫓아내면 되잖아!”

성배가 소릴 지르자 영호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애들은 안 궁금한가 보네?”

“설마 니들 예지랑 정배도 건드렸냐?”

“예지랑 정배도가 아니라 그 애들이 주연배운데.”

성배는 영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지만, 몸이 묶인 상태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애들은 어쩌려고? 야이, 씨발새끼들아 애들은 어쩌려고!”

“아, 정말 이형이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나. 애들은 우리가 믿는 신께 제물로 바치는 거야.”

영호의 말에 성배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천하의 차성배도 아이들의 고통엔 참을 수가 없었다.

“저기 영호야. 애들은 뭔 죄냐. 내가 건방지고, 우리 한이가 호기심 많아서 알면 안 되는 거 알았다면, 다 내가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러니까 예지랑 정배는 제발 살려줘라.”

“형! 우리가 애들을 왜 죽여. 그냥 매달아 놓고 기도만 드리는 거야. 그게 우리 신이 원하는 거야.”

영호의 가혹한 말에 성배는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 성배가 할 수 있는 건, 의자에 묶인 채로 영호가 떠드는 걸 듣고 있는 것뿐이었다.

진모는 아이들을 데리고 범식의 집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아침에 범식이 찾아와 긴히 논의할게 있다고 진모를 불러냈고, 겸사겸사 같이 아침도 먹자며 아이들까지 불러냈다.

하얀 옷의 사람들에게 가장 호의적이었던 진모는 아무런 의심 없이

아이들과 함께 범식의 집으로 간 것이었다.

집 안에는 웬일인지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고, 특히 정배와 예지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아이들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범식 씨, 근데 무슨 일로 부르신 거죠?”

“아, 별거 아닙니다. 그냥 아침 식사나 대접해 드리려고요.”

“저희도 주신 재료로 잘 만들어 먹고 있는데, 아침까지 이렇게 대접해 주시니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많이 드세요.”

진모는 범식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미역국에 밥을 크게 한술 떠서 말아 먹었다.

아이들은 입맛이 없는지 대충 먹고 난 후, 방바닥을 뒹굴며 놀고 있었다.

“얘들아, 이 언니랑 바깥에 놀이터 가서 놀까?”

“정말여? 와아! 좋아여!”

예지와 정배가 진모에게 달려와 바깥에 가서 놀다 와도 되냐고 물었다.

진모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해서 놀다 오라고 허락했다.

집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고, 집 안엔 범식과 진모 둘만이 남았다.

“근데 여기 분들은 아이들을 참 좋아하시네요. 저렇게 다들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나가는 건 제가 처음 봅니다.”

범식이 커피를 들고 오며 대답했다.

“그럼요. 여기 사람들은 아이들을 참 좋아합니다.”

둘은 잠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대화가 마무리 되자 진모는 일어났다.

범식에게 아침밥 잘 얻어먹었다는 감사 인사를 하고, 진모는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범식의 아파트 뒤쪽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거라 생각한 진모는 먼저 그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놀이터엔 아무도 없었다.

진모는 담배를 한 대 천천히 피우며, 별다른 의심 없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로 걸어갔다.

비록 두 아파트 사이의 거리가 가깝기는 했지만,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고 진모는 생각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어제는 사람들이 활기차게 생활하던 거리가, 지금은 진모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담배꽁초를 꾸부려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자신의 아파트 놀이터로 간 진모는 문득 불안함을 느꼈다.

‘없네? 아이들이 없어….’

다시 한 번 진모는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은 고요했다. 이 고요한 장소에서 아이들이 어디선가 뛰어 놀고 있다면 분명이 소리가 들릴 것이다.

고요한 곳에서의 사람의 귀는 수십 미터 이상 떨어진 곳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고요함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에 잠시 휩싸여있던 진모를,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아저씨, 여기 계셨네요.”

현준이 어느새 진모의 등 뒤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엔 피 묻은 망치가 들려있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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