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65화

필로아에겐 친구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키키와이의 산과 바다를 마음껏 뛰놀거나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기는 동안 필로아는 외로이 모니터와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아이의 유일한 동료는 컴퓨터였다.

이 부분에 관해선 다른 내성적인 아이들 역시 같았지만 필로아는 특별했다.

남의 집 아이들이 고작 스팀에서 유아용 게임을 설치해 즐기거나 어린이 코딩 교실에 다니는 동안 필로아는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며 실력을 쌓았다.

굳이 밝은 1층 거실을 두고 지하실에 들어가 하루 20시간을 키보드를 두들기며 몰두했다.

15시간은 스스로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나머지 다섯 시간은 돈 주고도 만날 수 없는 업계의 네임드나 귀재들과 교류하며 견식을 쌓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낸 필로아는 갖고 있던 재능을 꽃피우게 되었다.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플랫폼에서 다른 이들의 코드를 보완하거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기여도를 인정받은 필로아는 업계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선 아직 그녀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퍼지지 않고 있었다.

단지, 어느샌가 얼굴조차 본 적 없는 필로아의 스승이 되어 버린 몇몇 천재들만이 대체 얼마나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어야 고작 2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프로들과 같은 시점에서 코드를 바라보고 작성할 수 있을지 가늠하고 있을 뿐.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게 된 건, 후리텐 모 지방 도시의 천재 소녀가 키키와이 공과 대학에 조기 입학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게 된 결과였다.

부모는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정보를 은폐하길 원했지만 대학 학우들의 질투 섞인 부러움과 어린아이의 월반을 신기해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인터넷에는 고작 서너 살의 나이에 대학 캠퍼스를 누비는 필로아의 사진이 모자이크도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게시물에는 갖은 악플이 달렸다.

<어른이 뒤에서 대신 코드 짜 주고 있을 거 같아.>

<부모가 돈이 많나? 명문이라더만 키키와이 공대에 아직도 기부 입학 같은 미개한 제도가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자신들이 해내지 못한 일들을 너무나도 쉽게 달성하고 인생을 앞서가는 천재 소녀를 향한 세간의 추악한 질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녀의 부모는 아이가 상처받길 원하지 않았기에 필로아의 눈에 그러한 여론이 들어오지 않도록 애를 썼지만 또래보다 훨씬 조숙했던 필로아는 이러한 사람들의 악의 섞인 반응에 관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잘난 유형의 사람에게 쏟아지는 이유 없는 혐오.

캠퍼스에서 직접 마주쳤을 땐 모두가 필로아를 웃는 낯으로 대하는데 어째서인지 대학교의 익명 게시판에선 기이할 정도로 아이의 불행을 바라는 자가 많았다.

직함에 교수가 달린 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교수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어린 제자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거나 질투했다.

그게 아닐 경우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 이용해 먹으려 하거나.

다행히도 필로아와 그녀의 부모는 지혜로웠기에 교수들의 저열한 시도를 막아낼 수 있었다.

물론 아이를 이용하려던 옹졸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불이익을 주려고 안간힘을 썼고 그러한 비겁한 보복을 전부 피해 가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필로아는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도, 입학한 다음에도 필로아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식사, 수면, 프로그래밍의 반복.

딱히 누가 강요한 건 아니었다.

이건 필로아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그녀가 원하는 삶의 형태였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필로아는 매일같이 코드와 씨름했고 실력을 인정받고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애써 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었고 사명을 다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의미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기계의 언어로 기계와 대화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인생이었고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사람은 배신한다. 사람은 실망시킨다.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사람은 실수하고 실패하고 반성하지 않으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데에다 언제나 그녀를 상처입힌다.

그러니까, 필로아는 사람의 불완전함에서 눈을 돌리고 기계의 정교함과 올곧음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이 필로아에게 증오의 창끝을 내밀수록 필로아가 기계에 대해 품은 신뢰는 더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 믿음이 배신당한 건, 대학을 수석으로 조기 졸업한 지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은 날의 일이었다.

<자동 운행을 시작합니다.>

모처럼 단란하게 가족이 나들이를 떠난 날의 일이었다.

3단계 자동 주행 기능이 장비된 필로아의 가족이 타고 있던 전기차는 절벽에서 그대로 추락했다.

필로아가 홀로 살아남은 건 그야말로 기적.

최후의 순간, 위기를 직감한 부모는 차량이 가드레일을 들이박기 직전 필로아를 차 밖으로 끄집어냈고 그대로 사망했다.

‘엄마…. 아빠….’

한순간에 천애 고아가 된 필로아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은둔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한 달 동안, 아이는 고민했다.

기계를 향한 믿음이 흔들리는 가운데,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 주던 두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기계는 배신하지 않아야 하는데. 마음이 없는 존재이니까, 공평하게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는 가장 듬직한 동료야말로 기계여야만 하는데.

‘그래. 이젠 알 것 같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기계는 실수하지 않는다.

실수하는 건 언제나 인간이다.

실제로 필로아의 부모는 사고의 순간 자동 주행 AI에게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그들은 수도 린딘에서 먼 곳에 있는 시골 마을에서 상경한 사람들이었고 독특한 사투리를 구사했다.

상경해서 필로아를 키우는 동안에도 특유의 억양은 사라지지 않았고 흥분했을 땐 입에서 언제나 사투리가 쏟아져 나왔다.

사고가 일어난 날에도 똑같았다.

필로아의 부모는 인공 지능이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를 잔뜩 쏟아 냈고 인공 지능은 엉뚱한 피드백을 돌려주었다.

‘용서할 수 없어.’

필로아는 기계를 미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증오는 전자제품을 보이는 족족 부수는 등의 야만스러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증오를 불태울 장작이, 그녀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용서할 수 없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지?’

필로아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통찰력과 차가운 이성을 겸비한 아이였다.

그녀의 머리는 회전을 거듭한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 냈다.

그것은 바로 기계를 설계하고 이를 움직이게 하는 게 결국 사람이며, 사람은 실수를 범하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자동 주행 인공 지능은 불완전했어. 그리고 기계가 불완전한 건 사람의 잘못이지.’

사람은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그건 필로아의 부모도, 인공 지능을 설계한 프로그래머도 마찬가지였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불행한 당사자가 자신과 가족이었을 뿐.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정한 필로아는 자신의 새로운 목표는 공고했다.

‘기계가 사람의 실수를 덮어 줄 수 있도록, 사람의 실수를 기계가 바로잡을 수 있도록….’

그로부터 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영혼을 지니지 않은 기계가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새로운 언어.

여태껏 남이 만든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와 달리 필로아는 처음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야만 했다.

시작은 거대한 개발 환경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필로아는 자신을 나이나 성별 같은 외적인 요소로 판단하지 않는 다른 천재들의 도움을 받아 서서히 새로운 발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증오의 알맹이는 사라졌지만 그 조각난 껍데기는 그녀의 내면에 언제나 남아 있었다.

필로아는 더는 기계를 믿지 않았다. 기계를 만드는 건 사람이고 사람은 실수를 범한다. 고로 기계 역시 완전하지 않다.

기계는 더는 그녀에게 있어 친근한 존재가 아니었다. 명령을 내리면 따르는 노예이자 도구.

그것이 필로아에게 있어 새로운 기계의 정의가 되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아이 손끝에선 예전과 달리 부드러움과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기계를 불신했기에 자신과 동료들이 개발 중인 획기적인 언어와 그것을 적용할 수 있는 개발 환경에 관한 정보가 보안상의 문제로 유출되지 않도록 유념했다.

그 어떤 결함조차 생겨날 수 없도록 검증에 검증을 더해 완벽을 추구했다.

고작 4년밖에 세상을 살아 본 적 없던 아이는 비극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삭막하기 그지없는 삶에 몸을 던졌다.

언어는 완성에 가까워지고 이를 사용 가능한 개발 환경의 설계 역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 새로운 언어가 세상에 공표된다면, 최소한 자신의 부모에게 일어난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상황을 검토한 기계가 사용자가 실수를 범할 가능성까지 고려해 그 의도만을 충실히 반영하도록 하는, 인공 지능에게 융통성을 주고 사람을 모방한 의지가 판단에 개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궁극의 언어.

기계어는 컴퓨터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최초로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다.

다만, 이는 아이에게 있어 하나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기도 있다.

‘이젠 뭘 하면 될까.’

세상을 바꿀 준비가 끝난 이상 필로아는 자신의 삶에서 그 어떠한 목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의 궁극적 목적을 고작 2년의 시간 동안 달성해 버린 탓에, 다섯 살의 여자아이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방황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필로아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어머니는 늘상 그렇게 말했지만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려 주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대기업이 개발한 상용 인공 지능도, 그 어떤 전문 서적도 필로아의 물음에는 답을 주지 못했다.

목적을 달성한 이상 자신이 계속 살아갈 이유는 없지 않을까.

진지하게 그런 생각마저 들던 어느 날.

그 아이가 나타났다.

<당신의 언어는 아름답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확인한 메일함에 남겨져 있던 단 한 줄의 메시지.

마키나를 자칭하는 난민 출신 프로그래머는 필로아가 개발에 몰두하는 동안 온라인으로 사귄 친구였고, 처음으로 자신의 신상을 밝혔다.

마키나는 필로아의 개발 철학을 찬양했고 언어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담은 의도 하나하나를 파헤쳤다.

그동안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았던 자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속마음을 풀어내는 상대에게 필로아는 점차 마음을 열게 되었다.

<저는 키키와이에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신다면 한 번 직접 뵐 수 있을까요?>

다섯 살인 자신보다 두 살이나 어린 동생의 초대.

기이하게도, 필로아는 마음이 끌렸고 이에 응했다.

<좋아요. 단, 보는 눈이 많고 제가 안전한 곳에서.>

<여부가 있을까요.>

아이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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