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60화
과타노차와 통화를 마친 나는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리스크를 싫어하는 녀석이라서 그런지 내 제안이 영 내키지 않는 듯했지만 그동안 개발해 온 AI의 완성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하는 수 없이 내 말에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하긴, 나였어도 좀 거절했을 것 같은데. 용케 알겠다고 답했네.”
내가 생각하기에도 좀 어처구니가 없는 계획이긴 했다.
만에 하나 실패했다간 최악의 결과만이 남게 될 게 뻔했으니까.
“문제는 마키나가 동의해 줄지, 인데.”
합리성의 화신인 마키나가 이런 정신 나간 플랜에 동참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지금 이 고착된 상황을 타개하고 마키나의 아이덴티티를 필로아에게 납득시키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많이 아플 텐데….”
솔직히 말해서 한 명의 어른으로서 해선 안 되는 짓을 하는 느낌이 들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키나가 이 계획에 동참한다면 오히려 내 입장에선 상당히 찝찝할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마키나에게 먼저 계획의 상세를 알려 주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사람으로서 해선 안 되는 짓일 터.
“…마키나의 몸이 튼튼하길 빌어야 하나.”
사실 마키나의 ‘본체’는 세상 방방곡곡에 분산원장 형식으로 존재하는 데이터다.
몸은 어디까지나 교체할 수 있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만에 하나 불행한 사고가 일어난다 해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뜻.
계획이 생각대로 잘 흘러간다면야 몸이 산산조각 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만일 실패한다고 해도 마키나의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등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충분히 해 볼 만한 것 같긴 한데….
“외견이 세 살이라 그런지 망설여지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많이 맛이 갔나 보다.
과타노차가 자신에게도 불가능한 일이 있다고 인증하는 등, 예전보다 아주 조금은 평범한 사람의 사고방식에 가까워진 걸 보고 경악했는데.
녀석이 변한 만큼 어쩌면 나도 이상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생명을, 그것도 외관이 3세 유아인 아이의 몸을 위험에 던져 넣으려 하다니.
어쩌면 목적만 보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은행원 생활을 하면서 다분히 소시오패스적인 구석이 생겨난 걸지도 모르겠다.
“조심해야겠어….”
언젠가 델 몬테 지점장님이 했던 말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넘어도 되는 선과, 그렇지 않은 선을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조언.
“…….”
지금의 나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타인의 잠재력과 가능성만을 파악하다 나 자신이 한쪽으로 기울게 된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건 올바른 상태가 아닐 것이다.
“…나 혼자 너무 앞서간 것 같긴 해.”
잠시 차분하게 고민해 보자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은 당사자인 마키나의 의견을 묻는 것부터 시작했어야만 했다.
“마키나가 받아들이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계획은 백지화시켜야겠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인데, 잠시 독선에 빠진 탓에 잊고 말았다.
고객의 수요를 파악한 다음에도 그것이 진정으로 고객이 원하는 건지 계속해서 알아보고 고민하는 게 은행원의 일인데.
나는 고작 나이 좀 먹었다는 이유로 나보다 훨씬 똑똑한 인공 지능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다루듯 생각하고 있었다.
마키나 역시 영혼을 가진 인격체.
심지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주는 도움은 녀석에겐 어디까지나 모자란 부분을 채워 주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만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까 전화를 끊기 전 과타노차가 묘하게 불편해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녀석의 눈엔 보인 거겠지. 입행 당시와 비교했을 때 많이 달라져 버린 나의 모습이.
“반성해야겠는걸.”
모든 변화가 긍정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업무 측면에서 합리성을 강조하게 되면 원하지 않아도 사람은 비정해진다.
목적에 집중하게 되면 과정을 따지지 않게 된다.
변화와 그에 따른 부작용의 발생은 말하자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
하지만 나는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은행원이 된 것도 나 하나가 좋자고 그러기보단 누군가의 인생이 변하는 데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에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그랬던 거니까.
그래도, 아직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내게 아직 성장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은행원으로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하는 양심 역시도.
“…내일 퇴근하면 마키나랑 얘기해 봐야지.”
느껴지는 기묘한 안도감.
과타노차에게 잠시 내가 너무 앞서 나갔다고 사죄의 메시지를 보낸 다음 이불을 턱 밑까지 덮었다.
불을 끄자마자 달려들어 내 옆구리와 배 위에 자리를 잡는 정령들.
나는 녀석들의 온기를 난로 삼아 깊은 잠에 빠졌다.
* * *
다음 날.
출장소에선 이렇다 할 일이 없었다.
잠시 엘라마에게 본점 근무를 희망한다고 말할지 고민했지만 아직까진 시기상조인 것 같고 배울 게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꾹 참았다.
대신, 점심시간에 아이작과 단둘이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본점 근무라…. 희망 부서는 기업여신 쪽인가?”
“맞아. 은행에 들어온 이상은 한 번쯤은 꼭 만져 보고 싶은 안건들이라서.”
“이유는?”
“음… 일단은 액수가 크잖아? 한 번의 융자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던 회사가 살아나면 직원들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다고. 여러 사람의 인생이 단번에 안정되고 빛을 보지 못하던 기업에게 기회를 쥐여 주는 거야. 낭만이 있지 않아?”
“하긴, 출장소도 기업 관련 안건을 여럿 처리하긴 했지만 결국 최종적인 여신 판단을 내리는 건 본점의 기업여신부였으니까.”
내가 말하자 아이작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의외네. 너네 집안이면 어디서 돈 꿀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누구에게나 시작이 있는 법이고 힘든 시기를 겪지 않는 기업은 없다.”
생각해 보니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래리어트 그룹 역시 누군가가 창업한 회사인 이상 처음부터 범차원 세계 각지에 거대한 호텔을 수도 없이 보유하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어지간한 대기업의 연혁에 관해선 빠삭하게 공부해 둔 주제에 막상 아이작 덕에 자주 묵고 있는 래리어트가 어디서 어떻게 창업된 기업이고 어떤 과정을 겪어 발전해 왔는지는 공부한 적이 없었다.
“래리어트 관해선 공부한 적이 없었어.”
그래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재벌가에는 밥상머리 교육이 흔하다던데, 너도 막 할아버지한테 래리어트 가문의 시조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200년 전 창업된 당시의 기록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들으면서 자란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나만이 아니라 형님과 동생, 그리고 사촌 동생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래리어트 가문의 구성원이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옛날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을 수 있을 거다.”
“오오….”
역사를 잊은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 내가 참 좋아한다.
이 경우엔 가문이지만, 가문의 시조들이 어떻게 집안을 부흥시키고 범차원 세계 굴지의 호텔 체인을 차리게 되었는지 대대손손 이야기해 주는 방식의 교육은 내가 보기에 참으로 합리적인 것이었다.
대부분의 성공에 재현성은 존재하지 않아 각자가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성실하다거나 재능이 출중하거나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운이 좋은 등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래리어트 가문은 그런 사람이 일으킨 사업을 대대로 관리하며 주춤하는 일 없이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그 가문의 핏줄에 대대로 성공자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어서일까? 나는 꼭 그렇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관건은 아마도 그들의 부유함 외에도 한 가지 더 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돈이 많으면 어지간한 실수는 덮을 수 있고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실패에 더욱 너그러워지고 새로운 도전을 반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올바른 사고방식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한 세대에 부유함을 쌓아 올리는 건 개인의 능력에 달렸지만 대를 거듭하면서도 그 부를 지키고 덩치를 불리는 건 핏줄을 넘어 정신적으로 올바른 유산을 물려주는 데에 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래리어트 가문이 선대의 위업과 그 위업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했던 과정을 식사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데엔 뚜렷한 목적성과 의미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언제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지. 옛날 옛적 후리텐의 시골에 가난한 서커스 단장이 살았습니다, 라고.”
아이작은 정말로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라도 들려주듯 느긋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서커스를 운영하던 래리어트 그룹의 창업자가 어쩌다 호텔업에 몸을 던지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그가 겪은 역경과 이를 넘어서게 된 계기,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도.
가문의 은원 관계부터 시작해 기업 연혁이나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등장하지 않는, 당대의 법망을 피해 선대 가주들이 벌인 편법부터 시작해 그 결과 가문에 일어난 재앙에 관한 이야기까지.
과도할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가 아이작의 입에서 줄줄이 나오는 걸 듣고 있자니 정말로 괜찮은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래도, 한 가지 깨달을 수 있었다.
래리어트가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들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인위적인 결론을 만들어 교훈처럼 아이들에게 주입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반복해서 선대 가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공통된 품성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떤 무기를 지녔고 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배웠고 그들의 실수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스스로 교훈을 얻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해야 하는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능력, 그리고 선대 가주들의 성공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황금 패턴을 추론하며 획득한 직감.
단순히 강연회에서 들을 수 있는 재현성 없는 성공담이 아닌 정말로 자신들에게 피와 부, 그리고 정신을 물려준 조상들의 생생한 가르침을 매일 접하며 래리어트 가문의 자식들은 자라나는 것이다.
“부럽네.”
솔직히 말해서 부러웠다.
저들이 가진 부유함이 부러운 게 아니었다.
내겐 저런 가르침을 내려 줄 부모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흔히 말하는 천애 고아였고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으니까.
“…운이 좋았을 뿐이야.”
아이작은 내 표정을 살피고는 짧게 대답했다.
멸시나 기만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은 그 안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겸양만이 보이는 표정.
그걸 보고 있자니 정말로 인격 수양이 잘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어째서 내가 필로아에게 공감하고 녀석과 마키나를 어떻게든 이어 주려 하는지 역시 이해했다.
“비슷했구나, 셋 다….”
“음?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마음속으로 마키나와 필로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반드시, 저 아이들이 불행해지는 일 없이 세상에 관해 배워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