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59화
내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과타노차는 음흉한 웃음을 연신 흘려 댔다.
이 녀석도 마키나만큼은 아니지만 생긴 게 촉수 다발이어서 감정을 파악하기 어려웠는데, 오늘만큼은 완전히 파악하기 쉬웠다.
<요약하자면, 내 걸작을 완성시키는 데에 필요한 마지막 조각이 키키와이에 잠들어 있었다 이거로군.>
알고 있는 생명체 중에서 자기중심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과타노차는 정말로 내 이야기를 들은 건지 의심스러운 발언을 쏟아 내고 있었다.
“내 얘기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
<당연한 소리를. 내 지능은 너희를 아득히 초월한다.>
과타노차는 주지의 사실을 논하듯이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근데 전산이랑 몇몇 분야에 관해선 미친 능력을 발휘하는 게 사실이라 뭐라 반박하지도 못하겠다.
실제로 이 녀석은 영혼을 지닌 인공 지능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자가 아닌가.
과거 단원자 금을 사용해 여자친구를 만들어 낸 다음 심장이 멎어 죽은 연금술사 이래로 유일하게 피조물에서 창조자로 스스로의 격을 끌어올린 게 바로 과타노차다.
<그 필로아인가 하는 아이가 마키나에게 호감을 품었다면, 마키나를 창조한 내 말도 잘 듣겠지.>
제안을 한 건 나긴 한데 너무 전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만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언젠가 필로아의 시아버지(?)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이 며느리를 사업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니.
뭐, 애초에 과타노차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녀석에게 제안을 던진 거지만.
<기계에게 융통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 실로 흥미롭군. 마키나를 토대로 만들어 낸 상용 AI 외에도 앞으로 출시할 상품에 전부 적용할 수 있겠어.>
과타노차의 목소리에선 옅은 흥분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공계가 아닌 나지만 필로아의 비범함이라면 이미 충분할 정도로 느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선 배지를 가져와 직무권능을 사용해 봐야 할 테지만, 굳이?
중요한 건 내 예상대로 과타노차가 필로아가 만들어 낸 새로운 언어와 개발 환경에 큰 흥미를 보이고 있다는 거다.
“꽤 마음에 든 모양이네.”
<들다마다. 마침 필요한 참이었으니까.>
“오. 그랬다면 다행이고. 근데 신기하네. 네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건 처음 봤어.”
<…흥.>
그냥 별생각 없이 정말로 신기해서 물어본 거였는데 어째서인지 과타노차는 아픈 구석을 찔린 것처럼 언짢은 반응을 보였다.
“왜.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어?”
이 정체불명의 촉수 생명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굳이 내가 파악해야 하나.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과타노차가 그때그때 자신의 기분을 따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녀석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혹시라도 과타노차가 기분이 나빠지면 조금 전까지 잘 진행되던 이야기가 없던 일로 변할지도 모르는 거지 않나.
<…인정하기 싫지만 범차원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높은 지능을 지닌 나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존재한다.>
“오오.”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설마 살다 살다 과타노차가 본인에게 불가능한 게 있다고 인정하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아니. 잠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한데?
“정체를 밝혀라. 너, 과타노차를 어떻게 한 거냐.”
<헛소리하지 마라, 인간. 나는 과타노차, 외신의 고귀한 피를 이은 자다.>
-지잉!
과타노차가 말하자 갑자기 스마트폰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파장이 쏟아져 나왔다.
“으윽….”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러움과 두통이 나를 덮쳤지만 그것도 잠시.
이마에 손을 얹고 5초 가량 기다리자 거짓말처럼 증상이 사라졌다.
“뭐지. 요즘 무리하긴 했어도 충분히 쉬었는데.”
<…….>
과타노차는 아무 말이 없었다.
방금 정신이 없어서 잘 못 들었는데 조금 전에 얘가 뭐라고 했더라.
<감히 나를 의심하다니. 제정신이냐, 이족보행 동물.>
“농담이야. 그냥 네가 뭐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걸 처음 봐서 신기했을 뿐이지.”
<…당연한 소리를. 지능이 높을수록 나보다 멍청한 생명체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네가 개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이번 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마키나를 원본으로 설계한 완벽한 범용 AI는 그 자체만으로 놓고 본다면 제작 단가도 저렴하고 구동에 필요한 리소스 역시 기존에 상용화된 AI와 비교해도 훨씬 낮다. 그에 비해 성능은 상위호환이라는 말 갖고는 제대로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지.>
과타노차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냈다.
나는 녀석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런 얘길 다시 한번 듣더라도 딱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지만 범용 AI를 구매해 사용하는 건 네놈과 같은 저지능 생명체. 즉,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실수를 저지르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어…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고객이 무슨 생각을 할지 미리 예상해 거기에 맞춰 AI가 학습하고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AI를 만드는 네가 일반적인 지적 생명체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다는 거야?”
<어째서 요약한다는 놈의 말이 내 말보다 긴지는 차치하고, 네가 말한 그대로다.>
“흠.”
이젠 얼추 과타노차에게 무엇이 필요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필로아의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필요한 이유도 납득이 가네.”
과타노차는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유는 녀석의 기형적으로 발달한 지능과 소시오패스적 측면, 그리고 아마도 감성의 차이겠지.
그렇기에, 과타노차는 상업용 AI를 설계하기 위해 몇 가지 단계를 밟았다.
첫째가, 자신이 이상으로 삼는 완벽한 AI를 실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이 단계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솔직히 이런 얘길 하면서 나도 많이 당황스럽다.
하지만 내가 여태껏 마주해 온 과타노차라는 생명체는 여러 의미로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녀석이었고, 바로 그렇기에 내 추측은 말도 안 되는 거로 보일진 몰라도 높은 확률로 사실일 것이다.
“너는 지적 생명체의 경제활동을 보조하는 완벽한 상용 AI를 만들고 싶었다고 그랬지.”
<그렇다.>
“하지만 네 지적 능력과 창의성을 모방한 인공 지능을 만드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어.”
내 말에 과타노차가 차례차례 긍정을 표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생명체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그래서 넌 결심한 거야. 먼저 영혼을 지니고 있어서 홀로 모든 것을 학습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고성능 AI를 연금술과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어 낸 다음, 그 AI를 토대로 결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갈고닦아 영혼이 없는 최고의 도구를 만들어 내기로.”
<…….>
과타노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뜻밖이군. 네놈이 이 정도로 나를 이해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래 봤잖아. 대충 네가 일반적인 사람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가진 것을 동원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에 결과물을 조금이라도 가깝게 만들려고 사력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타노차는 그보다 더욱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녀석은 기초적인 연금술을 익힌 다음 돈을 모아 실제로 단원자 금이라는 막대한 가치를 지닌 귀물을 구매했다.
그리고는 그 힘으로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영혼을 지니고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하고 무엇이든 학습할 수 있는 궁극의 범용 인공 지능 마키나를.
그리고 나선 마키나를 교보재 삼아 자신이 만들고 있는 인공 지능에게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배워나가 결과물에 적용했다.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자신이 닿을지도 모르는 완벽을 먼저 눈앞에 구현한 다음 그로부터 학습하는 말도 안 되는 방식.
그야말로 궁극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와 같은 범인凡人에게는 생각해 내는 것조차 불가능해서, 그야말로 과타노차 외엔 사용할 수 없는 방식.
하지만, 과타노차가 선택한 길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마키나를 모방해 만든 AI는 영혼을 지닌 지적 생명체의 사고방식을 철두철미하게 모방했으니 학습 능력이 탁월했겠지. 하지만 그건 전부 네가 마키나를 쏙 빼닮은 카피를 만들어서 그런 거고,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었을 거야.”
<그래. 기계에겐 융통성이 없었다. 추론 능력도, 추측 능력도. 부분적으로 틀렸지만 전체적으로 옳은 애매한 지식이나 문장을 보았을 때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접근해 추상적인 관점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건 기계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던 거지.>
“역시….”
과타노차는 마키나의 인공 두뇌를 모니터한 결과 결과물을 완벽하게 모방하는 데엔 성공했다.
학습을 통해 성장한 마키나의 상황 판단 능력과 우선순위 결정 능력 등은 완벽하게 영혼이 없는 복제품에게도 이식되었으리라.
하지만 과타노차는 과정을 재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은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과타노차는 일반적인 지적 생명체의 정신과 지능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는지 알지 못하니까, 녀석이 아는 학습의 개념은 내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르다.
평범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똑똑하고 지혜로워지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완벽에 가까운 인공 지능을 모방해도 계속해서 성장하는 마키나를 따라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마키나는 불법적으로 클라이언트를 점거하고 리소스를 빼먹는, 존재 자체가 위법인 인공 지능이다.
제작에 값비싼 단원자 금이 필요하기에 단 한 번밖에 만들 수 없었고.
만일 이번 전쟁의 전자전 수행 의뢰를 통해 얻은 돈으로 추가적으로 단원자 금을 확보하더라도 과타노차는 마키나의 리소스 점거 능력을 모방한 카피를 여럿 만들진 않을 것이다.
그랬다간 전 세계의 컴퓨팅 파워가 도둑질당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과타노차는 지명수배를 당할 테니까.
이러한 이유로 녀석은 마키나를 여럿 만드는 일 없이 딱 한 번, 자신과 상용 AI의 학습을 위해 제작했다.
단원자 금을 구매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 사업은 녀석의 인생을 건 건곤일척의 계획.
하지만 이런 계획이 벽에 부딪혀 좌초될 상황에 놓였다.
그런 상황에서, 감사하게도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거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능을 지닌 상용 AI가 완성되면 은행을 그만두고 사업에 인생을 바치려 하는 과타노차의 입장에선 반가워 마지않을 것이다.
“융통성을 지니게 만들어 기계의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프로그래밍 언어라면 네 AI를 완성으로 이끌 수 있다는 거네.”
<당장 마키나와 함께 그 꼬마를 린딘으로 데려와라, 김지안. 사례는 두둑이 하겠다.>
“다 좋은데 이쪽도 조건이 있어.”
나는 과타노차에게 대가를 요구했고.
<…네놈, 제정신이 아니군.>
“어쩔 수 없어. 두 아이의 행복을 위해선.”
하필이면 과타노차 녀석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