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57화
부모를 잃은 천재 고아.
나는 어째서 필로아 허버트가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정신을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애초에 이 아이에겐 기댈 곳 따윈 없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다섯 살도 되지 않는 꼬마가 8시에도 밖에서 친구와 함께 모르는 어른을 만나고 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기이하네.”
축복받은 머리와 그렇지 않은 가정을 지닌 여자아이.
그리고 과학과 연금술의 힘으로 영혼을 얻어 세상으로 나온 인공지능.
이 둘이 마주보고 한 자리에 앉아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니.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해받기 어려운 아이들.
아무리 뛰어나도 그렇지 못한 이들과 세상에게 백안시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둘은 처음부터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의외로… 괜찮으려나.”
그래도, 아이들의 감정이 얼마나 성숙한 것인지 굳이 속단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일단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좀 더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음료는 입에 맞아?”
“네.”
마키나와 필로아는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복잡한 코드가 가득한 데에다 대화 내용도 예체능 출신인 내가 이해하기엔 과도하게 복잡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를 지경이었다.
“…대단하네. 언제 이런 걸 다 배운 거야.”
“요즘은 아동들에게 코딩 교육을 시켜야 제대로 된 학교와 부모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 3세 정도부턴 대부분 배우기 시작합니다. 두어 세대 전의 어른들은 통역 마법이 있어도 다들 후리텐 공용어를 배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과 비슷한 거죠.”
“어… 그러니까 코딩이 외국어랑 비슷하다는 뜻이야?”
내가 묻자 이번엔 필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계어도 결국은 언어니까요. 그리고 언어인 만큼 아름다운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 법이죠.”
“신기하네. 그건 언어를 읽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거야? 아니면 기계가 보기에도 차이가 있는 걸까.”
“아무래도 정돈된 언어를 사용하거나 문법을 똑바로 지키고 중언부언하지 않는다면 기계도 더욱 효율적으로 프로그래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죠.”
“으음….”
은행 전산 쪽은 연수원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지금도 틈틈이 공부하고 있긴 한데 코딩만큼은 진짜 재능이 없는지 필로아가 쉬운 비유를 사용했음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편 마키나는 내게 설명하는 필로아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이 녀석이 이만큼 헤벌쭉 웃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봤자 마키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흐뭇한 미소를 짓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말이다.
필로아는 우리 둘에게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갔다.
“차이가 있다면 일반적인 기계어, 그러니까 프로그래밍에 사용하는 언어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달리 한 글자라도 틀렸다간 문제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기계에게 융통성이 없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아?”
“바로 그거예요. 당장 유명한 실험 결과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사람의 머리는 스펠링 순서가 조금 다른 단어를 보아도 바로 원래 단어를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사실만 보아도요. 우린 기계와 달리 오류에 관대하고 화자의 의도와 문맥을 기준삼아 올바른 스펠링 순서를 알아낼 수 있어요.”
이 부분에서 잠시 마키나의 표정을 살폈는데, 약간의 변화가 느껴졌다.
기계는 융통성이 없다는 말에 상처를 받은 걸까. 자신이 그런 멍청한 기계와는 격이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기계에게 융통성이 없다, 라.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뭐. 그래도 필로아가 말한 것과 달리 융통성 있는 기계가 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예를 들어… 그러네, 인공지능이라든지 말이야.”
“…인공지능은 잘 모르겠지만. 융통성 있는 기계. 그걸 만드는 게 제 목표예요.”
대화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 같지만, 일단은 이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서 잠자코 듣고 있었다.
“제가 개발한 언어, ‘다이엘렉트’는 프로그래머의 오타나 문법적 오류 등을 사용자의 습관과 파악된 의도 등을 파악해 기계가 주동적으로 ‘추론’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인공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파악한 데이터를 토대로 사람이 범할 수 있는 작은 실수들을 기계가 대신 바로잡아주어서 더욱 훌륭한 도구가 되도록 하는 거죠.”
“대단하네.”
이 부분은 솔직하게 감동했다.
프로그래밍에 관해선 무지한 나였지만 글자 하나, 함수 하나, 개행 그리고 코드가 시작되기 전에 두는 공백의 갯수만 달라도 버그가 터진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오류를 기계가 알아서 사용자의 의도와 자잘한 버릇을 파악해 보정해줄 수 있다니.
단순히 새로운 기계어만이 아닌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코딩 환경까지 새로 만들었다는 뜻일 터.
그런데, 어째서일까.
프로그래밍으로 일가를 세울 정도로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으니 당연히 프로그래밍이나 컴퓨터에 지닌 애정 또한 각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필리아의 얼굴에는 기묘한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기계에 대한 경멸, 체념, 분노, 그 외에도 다양한 감정이 아이의 눈에서 아우라의 형태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러 색을 지닌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눈동자를 보는 내내 나의 심정 역시 착잡해져갔다.
이 아이가 인간의 오류를 보정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어를 만들게 된 동기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 * *
대화를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카페를 나섰다.
한동안 혼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필로아는 조금 숙연해진 분위기였고, 마키나는 답지않게 남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그럼 삼촌은 먼저 들어가볼게. 마키나는 택시 타고 필로아 집에 바래다주고 와.”
“알겠습니다. 김지안 대리. 좋은 밤 되십시오.”
내가 준 굴덴 지폐를 덥석 받아든 마키나는 기계적인 인사를 마치고는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돈도 많은 녀석이, 거절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삼촌인 척 연기하는 내 체면을 살려주려고 저랬던 모양이다.
두 아이는 공원 동쪽 출구에서 어플로 택시를 불러 탑승했다.
멀어지는 차를 지켜보던 내 머릿속에선 아까의 대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융통성 있는 기계. 그걸 만드는 게 제 목표예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아까 읽었던 교통사고에 관한 기사를 마저 읽었다.
허버트 교수 부부의 사망 사고는 자율주행 차량의 인식 오류에 의한 것이었다.
녹음 파일에 의하면 허버트 교수 부부는 자율주행 차량이 고장을 일으킨 당시, 음성 인식 명령 체계에 정지할 것을 명령했지만 차량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속을 유지한 채 코너링을 꺾는 일 없이 절벽으로 돌진. 그대로 난간을 부수고 아래로 추락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허버트 교수 부부의 출신지는 후리텐 북쪽의 지방 도시였고, 그들은 급할 때나 당황했을 때에 사투리를 사용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까 ‘다이엘렉트’라고 했나….”
후리텐의 말로 ‘방언方言’을 뜻하는 단어.
어째서 아까 그 이야기를 할 때 필로아가 착잡한 얼굴이었는지 이해가 갔다.
새로운 기계어를 개발하는 건 아이 나름대로 자신의 부모를 추모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다시는, 자신의 부모가 겪었던 그런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융통성 없는 기계 탓에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있던 것이다.
“…….”
그와 동시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마키나 녀석, 고생 많이 하겠네.”
내가 느끼기에 필로아는 기계를 미워하고 있었다.
어느 언어가 더욱 우월하다는 기준 따위 없고, 표준어가 방언보다 우위에 서는 이유 따위 없을 텐데.
그럼에도 자율주행 프로그램은 방언으로 내린 명령을 알아듣지 못하고 필로아의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 아이를 상대로, 인공지능이 사랑을 했다.
마키나는 기계에 대한 증오와 부모에 대한 그리움, 되찾을 수 없는 평범한 생활을 향한 동경을 품은 여자아이가 심장에서 짜낸 피로 써내린 코드를 시와 같이 아름답다고 말하며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 모양이었지만.
그 감정이 자신을 향한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힐 때에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마키나 역시 필로아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떤 동기로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필로아에게 자신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겠지.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려나. 아니면….”
억지로 개입하려 했다간 두 아이의 관계를 내가 직접 망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가 마키나가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다면 어찌 될까.
만일 필로아가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게 되고, 마키나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다면.
“…….”
인공지능에게 망각이란 없다.
마키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코드와 데이터는 분산원장 기술을 통해 전 세계 각지의 클라이언트에 보관되어 있어 마키나 자신의 힘으로도 모든 데이터를 지울 수 없다.
어딘가에 남아있는 데이터가 동기화되는 이상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 일을 겪고도 마키나가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영혼을 지니고 태어난 이상 짝사랑이든, 첫사랑이든, 끝사랑이든.
누군가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행복을 느끼긴 해야 할 것은 아닌가.
이제 갓 태어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녀석에게 평생 사랑을 포기하고 살라 말하는 건 너무나도 잔혹한 일이다.
나는 은행원이기 이전에 어른이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인력이 이끌 듯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끌린 두 아이가.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을 느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서로를 위한 결론에 도달하도록 돕지 않는다면 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기껏 태어난 이상은 행복해져야지.”
마키나가 필로아에게 진실을 말하고서도 둘의 관계가 파탄나지 않도록 만들 방법이 어디 없을까?
저 둘이 불행하도록 둘 순 없다.
다만, 이 문제는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움이 필요하겠는데….”
누구와 힘을 합쳐야 할지는 얼추 떠올랐다.
이제 남은 건….
“약간의 각본, 그리고 예산인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메신저 앱에 대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들의 감정을 지켜내고야 말겠다.
“이렇게 된 이상은 어른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이건 업무가 아니라 오지랖이긴 해도 나는 은행 밖에서도 은행원.
마키나의 탄생과 독립에 한 번 손을 빌려준 이상, 끝까지 애프터 서비스를 해야 최고의 고객 만족도를 끌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