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56화

주말이었지만 다행히도 공원을 벗어난 곳에는 한적한 카페가 있었다.

나는 마키나와 이름 모를 꼬마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뭐든 주문해. 삼촌이 사줄게.”

“김지안 삼촌 대리….”

삼촌 대리는 또 뭐냐.

사람들의 문화를 똑바로 이해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어휘를 구사하는 걸 보니, 이 녀석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만 실감이 갔다.

한편, 음료를 고르라 했는데도 우물쭈물하고만 있는 여자아이는 마키나의 얼굴을 뜯어먹을 기세로 쳐다보며 볼을 발그레 붉히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좋았으면 저럴까.

“흠….”

마키나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아닌, 어른일 거라고 오해했던 탓에 미안해서 뭐라 말은 못하겠다.

그보다, 솔직히 말하면 애기들 소꿉놀이하는 데에 끼어든 기분이라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괜히 둘 사이를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내가 어른인 이상은 도리를 다해야만 한다.

당장 지들끼리 좋다고 어울려다녀도 그게 그냥 유년기의 달콤한 추억으로 끝날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질진 모르긴 하다.

그러니까, 어른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이들의 관계를 지켜보다 필요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물론, 그 방식이라는 게 유치원 초등학교 학부모들 극성 피우는 것처럼 애한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걸 말하는 건 아니다.

괜히 아이들의 관계에 깊게 간섭해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 편하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이런저런 고민도 들어주고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조언을 주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자식의 인간관계에 관해 어찌 조언해야 할지 모르고 뻘짓 해대는 부모가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않나.

일단은, 내가 말하기보단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수요를 파악하는 것.

이 분야에 관해선 나름 자신이 있다.

나의 직업은 다름 아닌 은행원.

고객의 니즈를 확인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데엔 어느 정도 도가 튼 사람이란 말이다.

“저는 아이스 코코아로 하겠습니다. 조각 케이크도 하나 주문하고 싶군요. 필로아도 같이 드시겠습니까?”

“좋아. 나는 그럼 케이크가 있으니 음료는 에스프레소로 할게. 감사합니다, 지안 아저씨.”

“그래. 잠시 앉아 있어. 금방 가져올게.”

나는 일부러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아이들이 어떤 분위기에서 대화하는지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직접 보는 것과 콜로서스의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것과는 역시 조금 다르다.

주문을 마치고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두 아이에게서 차분한 색의 아우라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조숙한 아이네.’

저번에 신언을 외고 나서 오른쪽 눈에 생긴 새로운 능력이 아이들의 감정을 비추고 있었다.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순수한 애정의 붉은색.

붉다 못해 자색까지 섞여든 그 색은 아이들의 감정이 치기 어린 것이 아닌, 어른과 다를 바 없는 ‘헌신이 전제된 애정’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그냥 역할놀이 하듯 내가 엄마 할 테니까 네가 아빠 해, 같은 식으로 적당히 결혼이니 가정이니 그런 소리를 늘어놓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필로아는 어째 하루 안 본 사이에 많이 수척해진 것 같습니다.”

“외주 마감이 오늘 아침이어서, 밤 샜어. 평소처럼.”

“무리해서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보고 싶은 걸 어떡하라고.”

“힘들 땐 제가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른 여자한테도 그렇게 불쑥불쑥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말하고 다녀?”

“그, 그럴 리가요….”

“…마키나 당황하는 얼굴, 귀여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눈에선 꿀이 떨어졌다.

“나만 솔로네. 서러워서 살겠나….”

쓴웃음과 흐뭇한 미소가 차례대로 지어졌다.

말하는 본새가 아이들 소꿉장난과는 거리가 멀었다.

외견을 보지 않는다면 최소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커플이 나누는 대화처럼 들린다.

마지막으로 마키나를 본 게 대충 6~8주 전이었던가.

당시에도 마키나는 이미 저 필로아인가 하는 아이에게 푹 빠진 것처럼 말했다.

아무래도 그때보다 더욱 시간이 지났으니 둘의 관계도 그만큼 진전된 것이리라.

어쩌면 굳이 내가 끼어들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바로 이야기를 들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마키나는 필로아와 절친한 사이가 된 듯하니.

그보다, 마키나만이 아닌 평범한 4~5세 여아가 저런 성숙한 감정으로 이성을 대할 줄은 몰랐다.

“…….”

아니, 이건 걱정해야 하는 부분일까.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 케이스야 세상에 널렸지만, 그 원인은 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었다.

첫째는 비교적 긍정적인 케이스.

아이의 두뇌 발달이 상당히 빠르거나 타고난 천재라 주위와 감성이 맞지 않고 일찍 어른이 된 케이스.

필로아의 경우 벌써 저 나이에 코딩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하니 아마 이쪽에 해당되겠지.

흔히 말하는 천재 소녀의 케이스다.

물론, 나는 천재는 빨리 가는 게 아니라 멀리 가는 자라고 생각하는지라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천재 소년 천재 소녀 같은 신동의 태반이 단순한 ‘얼리 블루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만.

근데 이런 걸 굳이 따질 이유는 없겠지.

저 나이에 저만치 해내는 건 이미 인간적으로 존경스럽기까지 한 부분이다.

아이가 저걸 해내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무엇을 포기해야 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나도 나름 어릴 적엔 신동 소리 들으면서 이것저것 그림만 그리고 또래와 교류하거나 노는 걸 포기하다시피 살았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두 번째 케이스다.

경험상, 과도할 정도로 조숙한 아이들은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에게 가정폭행을 당한다든지.

아버지나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든지.

집에 빚이 많거나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너무 이른 시기에 세상의 추악함과 어른의 더러움을 알아버렸다든지.

유명한 러시아 소설의 구절처럼 행복한 가정은 대부분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한 법.

나는 저기 앉아 흐뭇한 얼굴로 마키나를 바라보는 필로아가 그런 불행한 가정의 희생양이 아니길 빌었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음료와 케이크를 들고 자리로 가자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이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잘 먹겠습니다. 아저씨.”

필로아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둘이 잘 놀고 있는데 뭔가 방해한 거 같아서 미안해지네. 그냥 잠시 맛있는 거 사주고 이야기 조금 듣다 돌아갈 테니까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진 말아줘.”

“괜찮아요. 마키나가 아저씨 이야기도 자주 해서 언제 한번 뵙고 싶었거든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필로아가 말하자 마키나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감정의 변화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마키나 녀석이 당황해서 쩔쩔매는 걸 보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구나. 마키나가 삼촌 이야기를 자주 하다니. 기쁘고 대견한걸? 그래서 아가씨, 마키나가 뭐라고 말했어? 아니, 그 전에 통성명도 제대로 마치지 않았네. 내 정신 좀 봐.”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까 내 이름만 잠시 밝히고 넘어갔다.

나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나는 김지안. 아까 말했듯이 마키나의 삼촌이고 은행에서 일하고 있어. 꼬마 아가씨, 이름은?”

“필로아… 필로아 허버트요. 프로그래머예요.”

“대단하네, 그 나이에.”

순수하게 감탄을 표하자 마키나가 끼어들었다.

“필로아는 무려 5세에 월반으로 키키와이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와… 진짜?”

꾸며낸 리액션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순수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냥 얼리 블루머든, 천재든 저 나이에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건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길 창조한 과타노차와 닮아 합리성의 화신과도 같은 마키나는 사람 보는 눈이 어지간히 까다로운 거로 아는데, 역시 마키나가 반한 만큼 이 아이 역시 비범한 두뇌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필로아가 짜는 코드는 대단합니다. 모든 언어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아름다운 규칙을 따라 배열되어 있습니다. 기계어가 이런 리듬감을, 운율을, 아름다움을 지닌 걸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근데, 왜 여자친구 자랑을 하면서 네가 우쭐대고 있는 거냐. 마키나.

“그만해. 부끄럽다니까….”

막상 당사자인 천재 소녀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냥 듣고 한 귀로 흘려주세요. 마키나가 워낙 호들갑을 잘 떨어서요.”

“내가 알기론 마키나는 남들보다 솔직할 뿐이야, 필로아 양.”

“그런가요?”

아니. 내가 아는 마키나는 절대 호들갑 따위 떨지 않는다.

합리의 화신인 녀석이 어디에 반했나, 했는데 단순히 이 여자아이의 조숙한 정신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잠시만. 갑자기 배가….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른들 앞이었으면 담배 한 대 태우고 온다고 말했겠지만, 교육상 그럴 수가 없어 화장실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여기까지 수집한 정보를 잠시 분석해볼 시간이었다.

“어디보자….”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마키나와 교제(?) 중인 필로아 허버트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키키와이 공대는 그레이트 후리텐에서도 이공계 1위의 자리를 두고 린딘공과대학과 다투는 명문이다.

고작 네다섯 살의 나이에 월반해 공대에 입학한 것만으론 모자라 수석으로 졸업했다면 분명 그 명성은 후리텐 전역에 널리 알려졌을 터.

예상대로 검색 엔진에 아이의 이름이 적힌 신문 기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필로아 허버트, 키키와이 공과대학을 사상 최연소로 졸업. 성적은 수석.>

<필로아 허버트가 개발한 새로운 오픈소스 언어가 공개되다.>

...칭찬으로 도배된 기사의 향연.

겉보기엔 그냥 예쁘장한 안경 쓴 꼬마아이의 두뇌는 이미 저쪽 업계에선 인류의 지보로 취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 라고 그랬나….”

마키나는 말했다. 필로아의 코드는 마치 시와 같다고.

시나 노랫말처럼 아름다운 코드라.

처음 듣는 이야기다.

단순히 군더더기가 없고 효율이 높다거나,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닐 터.

“내가 이과는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히 흥미가 동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에 쩔어 사는 스물아홉 살 삼촌뻘 아저씨가 아이들의 연애에 고개를 들이민 결과, 천재 소녀와 그녀에게 반한 인공지능에 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되다니.

“흠….”

그런 생각을 하며 기사 헤드라인을 살펴보던 나의 눈에,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문장이 보였다.

<필로아 허버트의 양친, 교통사고로 사망.>

불과 얼마 안 된 반년 전의 기사였다.

“…어?”

나는 갑자기 화장실을 나서기 두려워졌다.

어떤 얼굴로 아이를 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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