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40화

바리타스 제국군은 범차원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제국은 항시 상당한 숫자의 병력을 운용하고 있었고, 침략을 위해 차출하는 병력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부리는 병사들 중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아비아노 공화국을 압박하고 있는 건 바리타스군의 편제 중에서도 가장 베테랑으로 꼽히는 제2우주군의 함대.

제2우주군의 강함은 수많은 전투를 겪은 그들의 경험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제2우주군은 바리타스군에게 보급되는 병기 중에서도 가장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모델을 지급받았다.

최소한의 안전성이 검증된 병기의 성능을 실전에서 시험한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이 가능한 건, 그들의 전투력이 높은 사기와 사선을 넘어들며 쌓아온 작전 수행 능력에 뒷받침되고 있던 까닭이었다.

이런 이유로 범차원 세계에서 바리타스 제국의 침공을 받게 된 국가들은 모두가 제2우주군을 두려워했다.

적들의 영역을 가차 없이 유린하는 무적의 함대.

그것이 세인들이 제2우주군에게 품고 있는 인상이었고, 우주군은 잔기술에 의존하는 일 없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바리타스 제2우주군은 이러한 오해가 만들어낸 빈틈을 파고들 수 있었다.

제2우주군 사령관이 최고의 정예만을 모아 비밀리에 육성한 비수, 우주군 소속 특수작전부대는 수 개월에 걸친 탐색 끝에 리베르토티 정부가 감추고 있던 비밀 격납고의 위치를 알아내 잠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광학 미채 기술로 모습을 감추는 스텔스 수트로 몸을 감싸고, 격납고에 침입한 그들은 휴대하고 있던 일회용 마도공학 결계와 어렵게 구한 허무 속성의 마법이 담긴 고대 유물을 동시에 사용했다.

허무 속성 마법이 담긴 칼날은 리베르토티가 경매에 내놓을 예정인 크로노 급 우주전함 머큐리 유니콘의 크롬색 외부 장갑을 두부처럼 잘라 사람 셋이 넉넉하게 지나갈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을 만들었다.

재래식 마도공학 화기 갖고는 흠집 하나 낼 수 없는 최신형 장갑의 일부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귀가 먹먹해질 것만 같은 소음이 발생했지만, 특작부대원이 전함 바닥에 설치한 마도공학 결계가 모든 소리를 흡수했기에 경계를 서는 리베르토티 군 병사들은 전함에 발생한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다.

전함 내에 설치된 1차 경보장치가 장갑 훼손을 감지하고 울리기 전에 특작부대원들은 알람을 해제하고 전함 안으로 깊숙히 파고들었다.

마치 미로를 방불케 하는 내부의 구조.

하지만 바리타스의 장교들이 준비해온 고글을 착용하자, 과거시의 마법이 발동해 리베르토티 군 관계자의 환영이 나타났다.

이전에 이곳을 지나간 군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게 된 침입자들은 그 뒤를 따라 거침없이 함내를 질주했다.

장장 15분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한 다음에야 도착한 함교.

안타깝게도 이 문을 여는 데엔 고위 관계자의 생체 인증이 필요했다.

“강제로 돌파한다면 리베르토티의 지원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물건을 갖고 탈출할 수 있습니다.”

“좋아. 재머를 기동시켜서 시간을 벌도록 하지.”

“옛설.”

-달칵

-위이잉!

부대장의 지시를 따라 부대원이 스위치를 기동시키자, 사전에 격납고 곳곳에 설치해 둔 방해전파 발생 장치가 기동해 리베르토티군의 실내 무전 채널을 마비시켰다.

사전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함 내에는 아무도 없다.

이대로 함교의 문을 부수고 내부로 진입한다 해도 밖에서 경계 중인 리베르토티군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C98 설치 완료.”

“기폭.”

-콰앙!

굉음과 함께 문의 잠금장치가 어그러졌다.

한 발 더 유탄을 쏘아내자 작은 폭발과 함께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틈새가 벌어졌다.

특작부대원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목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차원결계를 무효화시키는 왜곡장을 발생시키는 장치가 바로 우주전함 전방에 달린 기다란 뿔과도 같은 안테나.

하지만 안테나를 잘라서 본국으로 귀환할 필요는 없다. 전파 발생 장치의 구조는 어느 정도 닮기 마련이었고, 중요한 건 왜곡장의 파장을 조절해 차원 결계를 무효화하는 건 함교에 설치된 사람 머리통 크기의 장비였으니까.

“타겟을 확인. 회수하겠습니다.”

메인 조타수의 자리 앞에 설치된 장비에는 수십 개의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다.

부대원들은 섬세한 전자부품을 다루는 데에 능했기에 케이블을 난폭하게 잘라버리는 일 없이 장비가 셧다운 된 것을 확인한 다음, 하나씩 케이블을 뽑아 가방에 챙겼다.

함 내에는 침입자의 출현을 경고하는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으며 붉은 조명이 빛나고 있었지만, 전함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완전히 수동으로 전환되어있는 탓에 격벽 등은 하나도 내려오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쯤 재머가 울려 당황한 격납고의 리베르토티 군 관계자들이 몰려들고 있겠지만, 원격으로 출입구를 개폐할 수 없는 이상 저들은 쉽게 내부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재머 유효 시간 5분 남았습니다.”

아까 함 내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설치한 결계는 외부 장갑에 뚫린 구멍을 밖에서 확인할 수 없도록 환상을 보여주는 참이다.

이대로 경비 중인 군인들이 이리저리 헤매는 틈을 타 변장을 마치고 전함 바닥의 침입 경로를 통해 탈출한 다음, 다시 한번 폭발로 병사들의 시선을 끌면 격납고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터.

라고 생각했다.

-딩!

예고 없이 함교 후방에 위치한 승강기 문이 열리며 총을 든 사내 여섯 명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만 해도.

* * *

승강기가 움직이는 동안 총을 쥐고 있던 이로울이 품고 있던 생각은 꽤나 단순한 것이었다.

적을 베고, 혹은 쏘고 장치가 탈취당하는 것을 막는다.

그 다음은 장치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혼란을 틈 타 김지안이 건네준 기억 매체를 조작 패널이든 어디든 꽂는다.

나머진 김지안이 데려왔다고 하는 우수한 해커 2인조가 짜둔 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다할 것이다.

기억 매체의 내용물은 잠입조가 격납고를 벗어나고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 전함의 기능을 마비시키도록 제작된 바이러스라고 하는데,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작전 진행 상황에 따라 바이러스가 시스템이 독을 푸는 타이밍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면 아비아노와 차원신용금고는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바리타스가 경매에서 전함을 낙찰하기 전에 전함을 망가뜨려 시간을 벌 수도.

바리타스가 기어코 전함을 낙찰해 아비아노 공화국의 차원 왜곡 결계를 돌파하려 하는 순간을 노려 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 전함의 기능을 리베르토티와 바리타스가 모두 꼼꼼하게 검증하려 들 테고, 그 과정에서 우주전함을 제작한 군수업체가 리베르토티의 A/S 신청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들어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스템이 한 차례 리셋되는 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해커들이 준비한 안배가 전부 날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이번에 잠입조가 심은 바이러스가 경매 전에 효력을 발휘해 군수업체가 전함의 수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스템과 하드웨어가 망가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전개일 것이다.

군수업체도 바리타스도 바보가 아니다. 바리타스는 진즉 그들에게 전함에 탑재된 결계 왜곡 장치를 다시 한번 만들어줄 수 있을지 묻고는 동시에 산업스파이를 보내 기밀을 훔치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바리타스가 장치를 탈취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건, 그 두 가지 시도 모두가 중간에 고꾸러졌다는 뜻이겠지.

군수업체 역시 이 상황에서 바리타스의 커스텀 메이드 주문을 받는 건, 자신들의 잠재적 고객을 모두 놓치는 행위라고 판단해 바리타스에게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했을 게 뻔하다.

산업 스파이 역시 군수업체의 보안을 뚫는 데에 실패해 차원 결계를 돌파하는 데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훔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니까, 여기서 아비아노의 장비 탈취 시도를 막을 수 있다면, 작전의 다음 단계는 난이도가 매우 낮아질 것이다.

특작부대든, 스파이든 격납고 내에 잠입시킨다는 리스크가 높은 선택지를 골랐다는 건. 바리타스가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지름길을 가려 할 정도로 지금의 대치 상황에서 적잖은 압박을 받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띵!

“갑시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바이저를 쓴 세 명의 군인이 보였다.

부대를 식별할 수 있는 마크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누가 봐도 특작부대원.

어떻게 침입한 건진 알 수 없지만 사람이 오지 않을 거라고 방심하고 있었는지, 그들은 승강기에서 내린 여섯 명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잠시 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동요가 승패를 갈랐다.

제대 이후 총기를 잡아본 경험이라곤 정기 예비군 훈련 외엔 없던 공무원 나으리를 제외한 다섯은 민첩하게 움직여 은엄폐를 마친 다음 리베르토티 우주군 제식 총기로 특작부대원들을 노리고 발포했다.

우주군 지휘관의 사격 실력이야 일선을 떠난 지 오래 되었기에 변변치 않은 것이었지만, 나머지 넷은 이야기가 달랐다.

대전쟁 시대를 살아남았고, 지금도 여전히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불파사 비슈티 과장은 물론, 경비원이 되기 전엔 용병대장과 구E 간부를 역임했던 경비원은 각각 두 발의 사격을 가해 세 명의 특작부대원 중 하나를 침묵시켰다.

나머지 둘은 각각 이로울과 요하네의 몫이었다.

요하네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달려나갔는데, 바리타스 우주군의 특작부대원이 그에게 총구를 겨누고 발포했지만, 단 한 발의 총알도 그를 포착하지 못했다.

잠입 중이라 리베르토티 관계자의 눈앞에서 신체 변형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와 별개로 요하네는 자신의 기량을 완전히 발휘하고 있었다.

특작부대원에게 다가간 그는 총기조차 사용하는 일 없이 고블린의 조그마한 몸을 날려 정수리를 팔꿈치로 찍었다.

스피드와 괴력이 합쳐져 빚어낸 참사.

동료의 피가 튀고 뼈가 부서지는 와중 살아남은 부대원이 요하네에게 근접 사격을 가하려고 총구의 방향을 돌렸지만, 이로울이 방아쇠를 당기는 쪽이 더욱 빨랐다.

-타앙!

마지막 병사가 쓰러진 것을 확인한 리베르토티 우주군 대령이 탄성을 내질렀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숨어있던 공무원 역시 엔지니어들의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확인하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엔지니어 나부랭이가 특작부대원을 제압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위화감을 그들이 품기 전에.

“위험합니다!”

두 사람의 뒤통수를 붙잡은 비슈티가 마치 뒤에서 날아오는 총알에서 그들을 지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머리를 바닥에 쳐박았다.

“꿰엑.”

“끄억.”

두 사람이 기절한 걸 확인한 잠입조는 아이컨택을 마치고 곧바로 현장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김지안이 건넨 기억매체를 중앙 컨트롤 시스템 단말에 삽입하고 모든 증거를 인멸.

리베르토티의 군인들이 달려왔을 땐 모든 누명을 침입자에게 뒤집어 씌울 준비를 마친 다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