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39화
크로노급 우주 전함 머큐리 유니콘 내부로 진입한 잠입팀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나노이의 통신 규격을 따라 개발된 암호화 모듈을 통해 실시간으로 콜로서스에게 전송되고 있었다.
콜로서스는 순식간에 탁월한 연산능력으로 이를 규격화된 데이터로 분류 및 처리한 다음 수시로 내게 보고하고 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전함 내부의 구조나 기타 중요 정보를 빠짐없이 캐낼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이번 잠입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에도 전함에 관한 데이터가 아비아노 공화국과 바리타스 제국의 교전에 발생할 경우 유용하게 사용될 거라는 생각으로 내린 판단이었다.
“내부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군요.”
“외부인이 함교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일부러 늦추기 위해 저런 거겠지. 함교로 직행하는 승강기든 뭐든 숨겨진 통로가 있을 거야.”
“그런 건 어떻게 알고 계세요?”
“브리핑 때 비슈티가 하는 얘길 반도 안 들었군, 네놈은.”
“…아. 듣고 보니 그런 얘기가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런 통로를 지금 당장 찾아내려면 저기 영상에 보이는 리베르토티군 수뇌부의 영감님과 역시나 지위가 높아 보이는 양복 차림의 고위 공직자의 뚝배기를 깨야만 하겠지.
지금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건 상당히 무모한 판단이다. 잘못 걸렸다간 리베르토티가 바리타스 측에 붙어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만일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진짜 경매고 나발이고 중지된 다음 리베르토티가 바리타스 제국에게 헐값에 전함을 넘겨 버릴지도 모른다.
전후 아비아노에게서 수탈한 자원이든 자산이든 그런 걸 나눠 먹는다는 조건으로.
아마도 이미 아비아노 측에서도 이러한 조건을 리베르토티에게 들이밀며 협상을 시도하려 하고 있을 거다.
리베르토티가 이에 응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침공당하고 있는 아비아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국가가 많고 리베르토티도 과거 아비아노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독재자의 손에서 해방된 다음에도 적잖은 도움을 받아 온 까닭이겠지.
만에 하나 대놓고 아비아노의 뒤통수를 친다면 그 후 리베르토티가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만일 아비아노의 사 주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리베르토티 정부의 귀중한 자산을 파괴하고 군인과 공무원을 공격한다면?
그땐 정말로 문제가 커진다.
리베르토티는 입 싹 닫고 아비아노를 적대하기 시작할 것이고 아비아노가 이번 전쟁을 버텨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원동력 중 하나인 양호한 외교 관계와 국가 이미지가 작살나기 시작할 것이다.
“뭐, 이번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방심은 금물이야, 김지안.”
보수적인 성격의 아이작답게 녀석은 단 한 순간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일 터져도 아이작이 알아서 대응해 줄 거라고 믿을게.”
“…….”
농담을 던졌지만 무시당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여기까지 잘 진행되었으니 어지간한 변수가 터지지 않는 한 함교에서 시스템을 검사하는 척 마키나의 조각을 심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을 텐데.
과연 여기서 일이 틀어질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만 했다.
<실은 여기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전함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전함은 AS 중이라고 여러분께서 증언해 주실 필요가 있어서 말이죠.>
<괜찮으시다면 이 선물을 받으시고 본사에 저희가 부탁드린 대로 보고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귀사의 평판에 누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용 테스트에서 발견된 사소한 문제지만 몇 달 동안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화면에 비춘 리베르토티 관계자가 갑자기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함교에 엔지니어로 위장한 잠입팀을 들이지 않고 뇌물만 먹여 돌려보낼 생각이었나보다.
“여러분. 들리시죠? 알고 계시겠지만 절대 응하시면 안 됩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곤 진즉에 예상을 마쳐 둔지라 빠르게 모범 답안을 생각해 냈다.
“일단은 무조건 FM 고집하는 척 밀어붙이죠. 진입 전에 말씀드린대로요.”
내가 말하자 연기가 서툰 이로울과 경비원을 제외한 나머지 둘이 빠르게 응수하기 시작했다.
<이런 부탁은 곤란합니다….>
<그렇게 내치지 마시고 제발 한 번만….>
<거두어 주시죠. 그리고 기왕 온 김에 검사는 마치고 가겠습니까.>
<아니 될 말씀을!>
어떻게 해서든 검사를 막겠다며 뻗대는 리베르토티 관계자 둘.
“그럼 이쯤에서 타협안을 제시합시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척 검사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고 말한 다음 원인 규명을 위해 좀 더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고 본사에 연락해 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리베르토티 관계자의 시야 밖에서 요하네의 눈에 달린 콘택트렌즈가 그의 손을 포착했다. 그대로 이행하겠다는 핸드 사인.
이제 남은 건 저 둘을 구워삶아 차원 결계를 돌파하는 데에 사용되는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것뿐.
그렇게 생각했는데.
-위이잉!!
-위이잉!!
느닷없이 함 내부에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붉게 바뀐 조명. 리베르토티 관료는 이를 침입 경보라고 했다.
“제길. 어떻게 된 거지.”
엘라마가 화면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인정하기 싫지만 이건 끔찍한 변수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침입자… 라면 우리 측 잠입팀은 아닐 텐데, 대체 누가….”
내 대뇌피질은 답을 도출해 내기 위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전함에 숨어들려 할 만한 이들이 대체 누가 있을까.
생각해라 김지안. 적의 목적이 곧 그 정체를 말해 줄 터.
“…설마.”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내가 세운 계획의 세 가지 골자는 아래와 같다.
첫째. 리베르토티에게 금전적 지원을 미끼로 내밀어 경매를 연기하게 만드는 것.
둘째. 리베르토티가 비밀 격납고에 숨겨 둔 우주 전함에 물리적으로 접근해 아비아노의 차원 결계를 돌파하는 데에 사용되는 장비 혹은 전함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
셋째. 바리타스 제국에게 접근해 경매에 참가하는 것보다 훨씬 돈이 싸게 먹히면서도 똑같이 아비아노의 차원 결계를 통과해 침공을 이어나갈 방법이 있는 것처럼 꼬드겨 자금을 낭비하게 해 경매에서 전함을 낙찰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이 세 가지는 모두 성공하면 아비아노 공화국은 바리타스에게 절대로 차원 결계를 돌파당하지 않을 테지만, 꼭 셋 다 성공시킬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상황을 봐서 셋 중 둘만 성공시키면 되는, 그런 루즈한 계획.
물론 신은 디테일에 깃들고, 우리 측에는 그 디테일을 억지로라도 채워 줄 수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 있다.
그걸 믿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을 뿐이다, 나와 엘라마는.
당연한 얘기지만 이 정도 발상은 나 말고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다거나 그런 높은 수준의 것이 아니다.
바리타스 제국은 범차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국.
풍부한 자원과 자금은 물론 정복한 여러 토지에서 긁어모은 인재까지 다양한 가용 자산을 지닌 국가다.
그런 곳에 머리 굴리는 게 특기인 놈 하나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나보다 똑똑한 놈들도 수두룩할 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측 인원이 꿀리는 건 아니니까 승률을 쉽게 점칠 수는 없지만.
문제는, 바리타스의 머리 쓰는 참모 자식들이 경매에서 전함을 낙찰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어떤 플랜 B와 플랜 C를 준비했느냐다.
내가 보기에, 놈들이 택한 방식은 이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놈들은 굳이 큰돈을 들이기보단 적은 자금을 투자해 큰 이득을 얻길 원했다.
그 방법에 리스크가 따르더라도, 최소한 시도는 해 볼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그게 바로 눈앞의 상황.
놈들은 경매에서 정정당당하게 큰돈을 지불해 전함을 낙찰하는 대신, 비밀 격납고에 잠입한 다음 전함 내부에 침입해 차원 결계를 뚫는 데에 필요한 장치만 갖고 튈 생각이었다.
“과장님, 요한 씨, 이로울, 영감님.”
나는 잠입조의 팀원을 차례대로 부른 다음 내가 내린 결론을 읊었다.
“바리타스 제국 놈들입니다.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전함 내부에 숨어들었어요. 차원 결과 통과에 필요한 파츠만 훔쳐서 도망치려 하고 있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지해 주세요.”
* * *
바리타스 제국의 특작 부대가 전함의 파츠를 훔치기 위해 침입했다.
김지안의 입에서 나온 정보를 토대로 도출된 결론이었다.
방금 전달된 이야기를 들은 잠입조는 곧바로 당황한 리베르토티측 인솔자들을 다그쳤다.
“지금 상황에서 전함에 침투한 자가 있다면 분명 함교로 향하고 있을 것이오. 시간이 없소, 서둘러 함교로 향해야만 하오.”
평소의 말투로 돌아간 비슈티가 재촉하자 군인과 관료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요. 침입자의 목적이 전함 자체일지 아니면 다른 걸 노리고 있을진 몰라도 일단은 함교로 진입하는 수밖에.”
두 사람은 품에서 꺼낸 카드키를 통로 벽에 가져다 댔다.
-위이잉!
다음 순간 벽이 열리며 숨겨져 있던 승강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브리지로 이어진 직행 승강기입니다. 서두릅시다.”
승강기는 여섯 명을 태우고 위로, 위로 올라갔다.
그 와중에도 리베르토티 우주군 관계자는 끊임없이 무전기에 대고 무어라 외쳐 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격납고 내에서 경비를 서는 이들에게 전함 내부로 진입해 침입자를 제압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제길. 전파 장애가 발생한 모양이군. 준비를 많이 해 온 모양이야.”
그 연락이 외부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진입하면서 출입구도 막아 두었으니 병사들이 진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침입자와 저희만 남게 되었군요.”
“쯧. 경호원만 데려왔다면 어떻게든 되었을 텐데.”
군인은 품에서 권총을 꺼내 약실을 확인했다. 보아하니 꽤나 지위가 있는 자 같은데 직접 침입자들과 싸우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듯한 행동이었다.
“엔지니어 여러분께선 사격 경험 등이 있으신지?”
“저희 몸은 저희가 잘 간수할 수 있으니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총기가 있다면 감사히 받아 가겠습니다.”
안대를 찬 키키와이 다차원 출장소의 경비원에게 리베르토티 우주군 대령이 커다란 승강기 안에 보관 중이던 총기를 건넸다.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신세 좀 집시다. 괜한 일에 말려들게 한 점 미안하게 되었구려.”
리베르토티의 군인이 보기엔 민간인 다섯을 데리고 싸워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엔지니어의 신분으로 전함에 침입한 네 명은 아예 이 사태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침입한 바리타스 놈들을 사살한 다음 문제의 장치를 쏴 버리면 되겠소.’
‘혼란을 틈타 바이러스가 든 기억 매체를 꽂아 넣으면 되겠군요. 김지안 형제님이 말한 것보다 쉬울 것 같습니다.’
‘다 죽인 다음 은폐 공작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네.’
그들은 오히려 이 상황을 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