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41화

콜로서스의 카메라와 잠입조가 착용한 렌즈를 통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도 바리타스의 특작부대로 추정되는 사내들의 숫자는 셋밖에 되지 않았다.

세 명. 훈련받은 베테랑이 하나도 아니라 여럿인 상황.

평범한 엔지니어 넷과 나이 든 군인 하나, 공무원 하나.

도합 여섯 명과 조우한다면 승리하는 건 저쪽이었을 테지만.

다행히도 잠입팀의 정체는 전투라면 도가 튼 자들이었다.

<안심하세요, 형제님. 죽이진 않았습니다.>

잠입 중인 이로울은 기절한 리베르토티 측 관계자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후우….”

모니터 너머에서 전해져오는 피비린내.

사람이 죽는 광경까지 볼 각오가 되어있진 않던 나로선 특작부대원들의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찌나 다행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은행원이 사람 죽이고 다니면 안 되잖아요.>

이로울이 말을 마치자마자 화면에 마키나를 상징하는 로고가 떠올랐다.

무사히 우주전함에 인공지능의 클라이언트가 설치되었다는 뜻.

범차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보안업체가 관리하던 차원신용금고의 전산망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는 일 없이 완벽하게 탈취한 마키나가 전함의 모든 기능을 장악하는 데엔 1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됐군요.”

새삼스럽지만 아군에 이쪽 분야의 프로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최악의 경우, 이로울이 전함을 일도양단하거나, 요하네가 기지에 있는 사람들의 팔다리를 전부 분질러버리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거기까지 일이 커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삐빅

<격납고 근무자들의 심박수를 원격으로 측정한 결과를 표시합니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은 이들이 둘.>

<바리타스군 특작부대의 잠입요원으로 추정됩니다.>

<위치 추적 중.>

<전함에 부착되어있던 전파 재머가 해제됩니다.>

아니.

보아하니 아직 상황이 끝난 건 아닌 모양이다.

지금 이 타이밍에 굳이 전함에 붙어있던 방해전파 발생기가 기동을 멈췄다는 건 내부에서 공작 중이던 특작부대원이 외부에 교신하려 한다는 뜻.

“요하네 씨. 놈들의 동료가 아직 밖에 있어요.”

<어쩐지. 백업이 없을 리 없지.>

한참 증거를 인멸하고 모든 죄를 바리타스 측에 뒤집어 씌우기 위해 뒷공작을 하던 넷이 움직임을 멈췄다.

딱히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공작을 마친 찰나 승강기를 타고 리베르토티군 병사들이 나타났다.

다행히 제때 비슈티가 기절시켜둔 두 사람을 깨운 덕에 병사들이 잠입조 넷에게 발포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 어디에 총구를 겨누는 건가, 대위. 이 넷은 우리 군의 은인이시다.”

리베르토티 우주군의 대령은 병사들에게 예우를 갖추도록 지시하고는 비슈티 과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목숨과 목숨보다 큰 것을 빚지게 되었군.”

그 눈동자에는 의심과 불신, 그 외에도 다양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감사라든지.

“…….”

비슈티 과장은 말없이 그 손을 마주잡았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진 키키와이에 있는 나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의심스러울 것이다.

전함을 수리하러 온 평범한 엔지니어 넷이 순식간에 훈련받은 군인 셋을 제압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 전쟁에 관해선 아는 게 없는 공무원이면 모를까 우주군 대령씩이나 되는 자가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의혹에 관해선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비슈티와 다른 세 명의 강함을 두려워해 자신의 목이 날아갈까 걱정해서가 아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

그 원칙은 어느 세상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대령은 잠입조 네 명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엔지니어를 사칭한 자들의 정체와 목적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경계에 실패한 군인이 되지 않도록 솔선사태를 해결해준 그들의 행동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존중을 보이고 있었다.

적어도, 모니터에 비춘 대령과 공무원은 비슈티에게 위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만을 품고 있었다.

세계수의 뿌리에서 신언을 발동한 이후, 나의 눈에 새로이 깃든 능력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별말씀을요.”

그 눈빛이 뜻하는 바를 읽어낸 비슈티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럼 마저 이야기를 나눌 겸, 잠시 조용한 곳으로 함께 가주실 수 있을까요.”

네 사람이 대령의 제안에 응한 건, 그 눈에 적의의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까닭이었다.

* * *

리베르토티 우주군 대령과 잠입조가 이야기를 나누러 간 사이, 콜로서스는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리베르토티군 관계자로 위장하고 있던 특작부대원 셋의 동선을 파악한 나는 곧바로 콜로서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취시켜.”

<명령을 수행합니다.>

콜로서스는 스텔스 모드를 해제한 다음 벼락같은 속도로 셋의 목덜미에 마취탄을 박아넣었다.

“억.”

적중당한 침입자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재빨리 접근한 콜로서스가 놈들이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의 정체를 파악했다.

기폭 스위치.

아까 재머가 꺼지며 전함 내에 잠입한 이들이 작전 실패를 알리자 탈출을 위해 기지에 심어둔 폭탄을 터뜨려 혼란을 야기하려 한 것이리라.

콜로서스는 쓰러진 놈들의 이마에 레이저로 바리타스군의 상징을 새긴 다음 재빨리 몸을 숨겼다

나머지는 알아서 리베르토티의 군인들이 해결해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대령과 잠입조가 무사히 대화를 마치고 격납고에서 빠져나오는 것뿐인데, 별일 없이 넘어가 주려나 모르겠다.

* * *

응접실로 돌아온 대령은 부하들을 물리고 혼자서 잠입조와 남았다.

그는 테이블 밑과 전등갓 안쪽, 그리고 소파 쿠션 아래에 숨겨져 있던 도청기를 전부 꺼내 으스러뜨렸다.

그것이 상대에게 보이는 존중과 신뢰의 표시라는 건 명백했다.

“결국은 이렇게 되었군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 죽였으면 되는 거였는데, 쓸데없이 제약을 거니까 들키는 거라고.”

이로울과 요하네가 중얼댔지만 다른 사람들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당신들은 엔지니어입니까, 아니면 엔지니어로 위장한 군인입니까.”

맑지만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눈으로 대령이 물었다.

비슈티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천천히 물음에 답했다.

“이미 알고 있는 걸 물을 필요는 없지 않소?”

“그것도 그렇군요.”

“우리가 A/S를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놓아주는 건 명백한 이적행위이오.”

“…그러게 말입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그럴 테죠. 하지만 저는 이 시설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권을 위임받은 제가 무엇을 하든 윗분들은 전함만 무사하면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소.”

“어떤 것이 이적행위고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

대령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단 말입니다. 리베르토티 우주군이 충분히 운용할 수 있는 강력한 전함을 고작 푼돈 좀 받고 팔아치우게 될 상대가, 우방의 영토를 침공해 국토와 국민을 유린하려 드는 바리타스 제국이라니.”

허탈해하는 대령의 얼굴에서 네 사람은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제국에게 갖다 바칠 진상품을 관리하는 일이나 맡고 있는 제 신세가 한탄스럽습니다. 기껏 독재자의 손에서 벗어난 나라인데, 이 나라를 부유케 할 수 있는 수단이,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단이 독재자가 남긴 유산을 팔아치우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비참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디 소속인지도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무슨 목적을 지닌지도 알 지 못하는 자들에게.

대령은 그들이 자신에게 큰 유익을 끼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속내를 털어놓고 있었다.

“아비아노 공화국을 비롯한 범차원 세계의 민주국가와의 외교 관계는 리베르토티의 미래를 책임져줄 동앗줄입니다. 당장 눈앞의 이득을 위해 탐욕스러운 바리타스에게 아비아노의 등을 찌를 비수를 제공하는 것을 고려하는 양복쟁이 놈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입니다.”

가라앉은 울분이 그의 목소리에 묻어 나오고 있었다.

잠입조는 가만히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놈들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거란 사실 정도는. 하지만, 설마 이딴 식으로 더러운 짓거리를 벌여 국가 간의 신의를 욕보이고 군을 모독하다니요. 전쟁의 신은 희생과 제물을 요구합니다. 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이기려 하는 비겁한 자식들에게 승리자의 면류관을 얻을 자격은 없습니다.”

리베르토티에도 있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정한 군인이.

독재자의 손에서 되찾은 자유와 자존심을, 전쟁을 일삼는 강대국 앞에서 굽히려 하지 않는 지조를 지닌 사내가.

“…….”

그 모습이 어딘가 과거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던 에라스무스요정은행의 동료들과 겹쳐 보인 걸까.

비슈티와 출장소 경비원이 가만히 시선을 떨궜다.

구E의 사내들에게도 저런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

자신들이 싸우는 이유가, 수호하려 하는 가치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대전쟁이 끝나고 차원신용금고의 한 축을 맡게 된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구E의 간부 중 몇몇은 과거 자신들이 혐오해 마지않던 자들과 똑같은 짓을 저지르는 바리타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들이 빌린 돈으로 세상에 무슨 폐악을 끼칠지 알고 있었지만, 뒷거래를 통해 제시된 보수를 받아먹고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대출해주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바리타스의 패악은 날로 세를 불려갔고, 결국은 차원신용금고에게 돌아왔다.

70년 전 뿌린 죄악의 씨앗이 열매를 맺었다.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하는 건 아무런 죄도 없는 주변 국가들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차원신용금고의 임직원과 고객이다.

-꾸욱

하얀 털에 뒤덮인 비슈티의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번 일은 단순히 업무로 끝나선 안 된다.

이것은 무장은행, 더욱 나아가 차원신용금고가 책임지고 반드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일이다.

바리타스에게 주었던 것을 거둬들이고, 그들의 악업이 세계를 삼키지 못하도록 저지해야만 한다.

“안심하시오.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원한에 사무친 눈으로 자신을 보는 늙은 장교에게, 비슈티가 한 가지 약속을 입에 담았다.

“바리타스는 절대 그들의 야욕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오. 그대의 말대로 전쟁을 얕본 자는 어떤 전리품도 취할 수 없는 법이니까.”

신의 화신을 방불케하는 정결한 털을 가진 하얀 소가 예언했다.

욕망으로 점철된 제국은 기어코 쇠퇴의 길을 걷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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