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38화
황야에 감춰진 리베르토티의 비밀 격납고는 거대한 규모를 갖춘 시설이었다.
과거 리베르토티를 지배하던 독재자의 ‘취미’를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은 외부에서 절대 탐지가 불가능한 위장 효과를 제공하는 합금으로 사방의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을 코팅해두었는데, 이는 독재자가 자신의 지하 은신처에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재질이었다.
그로 인해 과거 독재자를 적대하던 이들이 군사 위성과 정찰 드론을 사용한 추적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데타를 성공시킬 수 있던 건 독재자의 측근 중 배신한 이가 있던 까닭이다.
다만, 당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와 시민들은 독재자가 리베르토티에서 쓸어 담은 돈으로 만들어낸 ‘취미생활 전용 공간’은 끝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이 격납고가 발견된 건 지극히 최근 우연한 계기로 인한 것이었다고, 격납고 내부를 안내하는 군인이 수리기사로 변장해 잠입한 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위치를 알 수 있는 힌트 따윈 전혀 포함되지 않은 발언.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전부 스텔스 모드로 기동 중인 콜로서스를 통해 듣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외부와 통신이 아예 차단되어있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독재자가 존재 자체를 꽁꽁 숨겨두었던 것처럼 테러나 도난을 막기 위해 리베르토티 정부는 계속해서 시설의 위치를 감추고 있었지만, 예전과 달리 아예 전파를 차단하고 있진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리베르토티의 감시망은 이 격납고 내부에서 발신되는 전파 중 자신들이 사용하는 채널 외의 것이 있으면 감지해낼 수 있다.
그들의 눈과 귀를 속이는 것이 바로 과타노차와 마키나의 역할이었다.
<리베르토티의 감시체계가 승인한 채널로 위장 완료.>
과타노차의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리베르토티 측에 콜로서스의 통신이 발각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시작해 볼까….”
군인이 꼼꼼한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네 명의 잠입팀을 응접실로 안내하는 동안 콜로서스는 분주히 집음 기능으로 대화를 엿들으며 격납고 내부를 날아다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역시나 도크 중심부에서 거대한 덩치를 뽐내는 우주 전함이었다.
유선형의 선체는 크롬색 외부 장갑으로 보호되고 있었는데, 그 끝에 달린 날카롭고 거대한 뿔은 어딘가 외뿔고래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예전에 보았던 범차원 세계의 우주 전쟁 다큐멘터리에선 직접 전함끼리 충각衝角으로 선체를 들이받는 등 근접전을 벌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지라 아마도 저 뿔은 장식이거나 다른 기능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콜로서스, 원거리에서 투시 가능하겠어?”
-삐빅
착용한 컨텍트렌즈에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콜로서스의 분석에 따르면 저 크롬색의 코팅은 비접속 방식 전자전 장비의 영향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가능하다면 콜로서스에 내장된 전자전 무장으로 장비를 망가뜨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역시 잠입팀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을 듯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콜로서스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단원자금 반응로의 에너지는 마지막까지 아껴두는 게 낫겠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엘라마의 말대로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면 잠입조의 탈출을 책임지는 건 콜로서스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내장된 무장을 미리 사용해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콜로서스, 격납고 구조 파악해서 탈출 경로 확보한 다음 잠입조에게 전송해.”
<분석 완료. 입체 지도를 전송합니다.>
콜로서스의 카메라가 포착한 응접실, 비슈티 과장의 고개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정보를 수신했다는 신호.
아마도 지금쯤 네 명이 착용한 전술용 렌즈의 확장 현실 인터페이스에 격납고 내부의 모든 루트가 표시된 지도가 전송되었을 것이다.
저 렌즈는 내가 착용한 것처럼 나노이에서 제작해준 특주품이다. 이번 작전에서 적잖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따 수리팀이 함 내부로 콜로서스가 같이 들어가게 두는 건 외부에서 지원이 불가능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일단은 제자리에 대기시키는 게 낫겠지.
나머지는, 잠입팀의 수완과 그들이 소지한 기억매체에 담긴 마키나의 조각이 얼마나 역할을 다해주는지에 달렸다.
“부디 별일 없이 끝나기를….”
나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기도하며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 * *
조용한 응접실로 안내받은 잠입팀은 15분 가량 방치되었다.
위장이긴 해도 리베르토티에 있어 그들은 유일무이한 커스텀 오더 우주전함의 점검과 수리가 가능한 고급 인력.
게다가 원로를 마다하지 않고 온 서비스 정신 왕성한 프로 엔지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베르토티가 굳이 이런 식으로 홀대로 여겨져도 이상하지 않은 대접을 하는 이유는 쉽게 짐작이 갔다.
‘의심이 깊은 자들인 모양이오.’
비슈티는 가만히 벽을 주시하며 생각했다.
리베르토티는 이 격납고를 목숨처럼 여겼다.
안에 있는 자산은 하나하나가 독재자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든 물건들이었기에, 만에 하나라도 파괴되거나 탈취당할 경우 리베르토티를 재건하기 위해 필요한 자산을 얻을 수 없게 되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저들은 군수업체의 엔지니어를 불러두고도 상대를 쉽게 믿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쯤 격납고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며 몰래 찍은 얼굴 사진을 군수업체에 보내 신원을 확인하려 하는 중이겠지.
물론, 그런 시도는 전부 사전에 차단해두었다.
이 격납고와 리베르토티 전역에서 군수업체 관계자와 연결되는 모든 공식, 비공식 채널은 이미 차원신용금고가 고용한 해커가 점거 중이다.
리베르토티 관계자가 자신들이 군수업체와 연락 중이라고 착각하는 상대는 전부 차원신용금고 관계자.
당연히 잠입팀의 사진을 보내고 신원을 확인하려 들어도 군수업체의 정규직 엔지니어라는 대답만 돌아올 터.
여기까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비슈티를 포함한 네 명의 잠입팀은 방심하는 일 없이 사전에 외워온 기계공학 관련 지식을 서로 피로하며 전문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부 전문가의 감수를 받은 대화문을 암기해 연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는 전부 응접실에서 대기하는 동안 도청당할 것을 예상한 행동이었다.
이러한 준비가 유효했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응접실 문이 열리며 군복을 입은 장성과 고위공직자로 보이는 양복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뜻하지 않게 회의가 길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티를 내고 있진 않아도 아직 미약하게 경계하고 있는 듯한 반응.
이미 정체를 감추고 잠입한 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다.
쿠데타 외엔 큰 전쟁을 겪은 적이 없어서인지 정보전과 첩보전의 숙련도가 타 국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그것이 비슈티가 리베르토티의 보안 수준을 확인하고 느낀 점이었다.
제아무리 비싼 특수 합금으로 격납고의 위치를 감춰도 이를 운용하는 이들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이번 사보타지 임무 역시 무사히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전함에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무료 A/S 기간이 아직 유지되고 있으니. 소유주가 바뀌었다 해도, 속히 고객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 저희 주식회사 월광접의 방침입니다. 고객님의 A/S 요청은 당연한 권리이시며 저희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 부디 안심해주시길 바랍니다.”
비슈티가 나서기도 전에 고블린 수리기사로 변신한 요하네가 기름칠한 혓바닥으로 립서비스를 시작했다.
장성급 군인과 고위 공직자는 이에 만족한 듯 잠입팀을 우주전함으로 안내했다.
“그럼, 남은 이야기는 안에서 마치도록 하죠.”
크로노 급 우주전함 머큐리 유니콘.
그것이 주식회사 월광접이 리베르토티의 전직 독재자를 위해 제작한 오더메이드 원 오프 우주전함의 이름이었다.
“이쪽으로 드시죠.”
우주 전함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함교까지 향하는 길은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햇갈릴 법했고 중간중간 신분을 검사하는 잠금장치가 있었다.
외부에서 적이 침입을 시도해도 쉽게 제어권을 내주지 않는 구조.
당연하지만 일을 저지르고 탈출하기도 몹시나 어려워 보였다.
하나 다행인 건, 넷의 기억력이 비범하다는 것과 그들이 착용한 전술용 렌즈가 기억장치를 겸하고 있어 함 내 구조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금장치에 관해선, 따로 해결 방법이 있었다.
일단은 격납고에 들어온 시점에서 작전의 절반은 성공한 셈. 어차피 전함 내에 사람이라곤 그들을 안내하는 둘 외엔 없다.
적당히 기회를 봐서 시한폭탄을 설치한다면 끝날 터.
“문제가 있다 하셨는데, 운용 테스트의 흔적도 없고 겉보기엔 멀쩡하군요.”
비슈티는 넌지시 군인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물었다.
듣자하니 리베르토티는 아무 문제 없는 전함을 수리하는 척 시간을 끌기 위해 군수업체에 A/S를 의뢰했다고 한다.
하지만 없는 문제를 굳이 만들어낸다면 고객 스스로의 책임이 된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리베르토티가 전함에 무언가 공작을 해두었다면 작전의 변수를 줄이기 위해 파악해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아아, 그게 말입니다, 실은….”
두 사내는 주위를 두리번대며 사람의 모습이 없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실은 여기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은 들고 있던 슈트 케이스를 열었다.
묵직한 돈다발이 든 가방이 둘.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전함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전함은 A/S 중이라고 여러분께서 증언해주실 필요가 있어서 말이죠.”
“괜찮으시다면 이 선물을 받으시고 본사에 저희가 부탁드린대로 보고해주실 수 있을까요?”
“귀사의 평판에 누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용 테스트에서 발견된 사소한 문제지만 몇 달 동안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과연, 비슈티 과장이 예상한 대로 리베르토티 정부 관계자들은 어리석었다.
저들은 전함의 일부를 훼손해서라도 정당한 구실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엔지니어를 매수하려 드는 건 오히려 리스크가 크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거짓말에 태연하게 협조해달라는 가증스러운 부탁.
만일 주식회사 월광접의 엔지니어가 듣는다면 흔들렸을지도 모르지만, 군인인 자신은 어림도 없다.
“이런 부탁은 곤란합니다….”
“그렇게 내치지 마시고 제발 한 번만….”
“거두어주시죠. 그리고 기왕 온 김에 검사는 마치고 가겠습니까.”
“아니 될 말씀을!”
군인과 관료는 필사적으로 넷을 설득하려 했다.
뜻밖의 상황이자, 당혹스러운 상황.
이대로 이들을 기절시켜서라도 함교에 진입해야 하나 비슈티가 고민하던 그때.
-위이잉!!
-위이잉!!
“이, 이건…!”
“침입 경보?!”
느닷없이 울린 사이렌과 함께 전함 내부의 조명이 일제히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