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23화
한동안 플루토의 뒤를 따라 면세점을 돌아다니던 나는 공항 프리미엄이 붙어서 쓸데없이 비싼 초밥집에서 플루토와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잘 먹었어 대리님. 꺼억.”
“말끝에 트림 붙이지 마.”
플루토는 여전히 속내를 알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키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감정이 옅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나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야?”
“당연하지. 대리님은 게임 할 때 혼자 캐리했는데 팀원들이 아무 말도 안 하면 짜증 안 나?”
“음….”
반박할 수 없었다.
인정욕구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플루토가 칭찬받고 싶어 하는 것도 무리는 없었다.
“…고마워.”
“뭐가?”
“플루토 씨가 위조지폐를 알아본 덕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어. 본점에서 표창도 받게 되었고.”
“헷.”
빙글빙글 웃는다.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미소… 는 아니었지만 평소부터 플루토의 표정에 다이내믹 레인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꽤나 거창한 웃음이 틀림없었다.
“기왕이면 머리도 쓰다듬어 주지?”
“…….”
“왜. 안 돼?”
“함부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칭찬할 거면 제대로 해. 내 덕에 살았잖아.”
“남자한테 머리 쓰다듬으라고 하면 오해받기 딱 좋다고.”
“무슨 오해.”
까다로운 상대다. 진짜 이쪽 경험이 부족해서 별생각 없이 저딴 소리를 하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내게 흥미라도 있는 걸까.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진 않다.
딱히 여태껏 이렇다 할 교류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좋다고 들이댈 리가.
아니. 뭐, 그런 경우도 살다 보면 있겠지만, 내게 일어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도 플루토를 이성으로 본 적이 없고 말이다.
“오해하지 마. 대리님 이성으로 본 적 없어.”
지가 쓰다듬으라고 해 놓고 그딴 식으로 말하기냐.
알고 있는 사실이어도 굳이 남의 입으로 확인사살당하면 기분 나쁜 법이라고.
나는 그냥 상식선에서 플루토의 발언이 위험하다고 말했는데 저런 대답이 돌아오니까 뭔가 부정당한 것 같아서 짜증 난다, 정말로.
“하여튼 이쁜 건 알아가지고.”
“…뭐?”
그렇게 안 봤는데 도끼병 환자인가.
“농담이야.”
“…….”
아 진짜 제발.
“아무한테나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이건 진짜니까 믿어도 돼.”
“하여튼….”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걸까.
어쩌면 플루토가 살던 곳에선 신세 진 사람이 도움 준 사람 머리를 꼭 쓰다듬어 주어야 하는 풍습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소장님이나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면 안 됐어?”
“응. 그건 그림이 이상하잖아.”
“무슨 그림.”
“구D의 에이스인 기혼자 출장소장이 스물다섯 꽃다운 미녀 텔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고 소문나 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
“과장님들은?”
“각 파벌을 대표하는 실력자한테 그런 걸 부탁해? 나 중립인데.”
“아이작도 있잖아.”
“미친 거 아니야? 래리어트 그룹 후계자 꼬시려 들었다고 소문낼 일 있어?”
“나는?”
“전혀 부담스러운 구석이 없지, 대리님이라면. 오해받아도 괜찮을 듯?”
“…….”
뭐지. 나 나름 구D에서 촉망받는 인재 아니었나.
근데 양심상 다른 넷이랑 비교하니 많이 스펙이 꿀리긴 하네.
“농담이야. 대리님 반응 귀여워서 고른 거야. 보는 맛이 있잖아.”
“참 나, 나이 먹고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귀엽다 소리 들을 줄은 몰랐는데.”
“대리님 나 나이 많아. 대리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그냥 한 번 웃고 입을 닫았다. 지깟 게 나이 많아 봤자 얼마나 많으려고.
딱 봐도 나나 엘라마랑 같은 인간인데, 제아무리 동안이라 해도 2년 뒤엔 서른 되는 나보다 많진 않을 거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20대 초반, 동안인 걸 감안해도 스물다섯일 텐데.
“알겠으니까 가자. 출발 시간 다 되어 가.”
“빨리 쓰다듬어.”
“…….”
플루토는 내 소매를 붙잡더니 한사코 떠나길 거부하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목소리에 위압감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나는 혹시 모를 직장 내 성희롱 누명 등의 리스크를 감안해 조용히 여행용으로 가져온 스마트 워치의 녹음 기능을 켰다.
“플루토 씨가 쓰다듬어 달라고 한 거다?”
“맞다니까?”
“오케이.”
“대리님 숫기 없어. 짜증 나.”
“에이씨.”
-턱
녹음 완료. 나는 플루토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오.”
플루토의 표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번뜩이는 눈. 조금 놀란 걸까.
그나저나 이 사람, 머리통이 진짜 작다.
프로레슬러가 아이언 클로 하면 그대로 들어 올릴 수 있을지도?
나는 손이 그만큼 큰 건 아니라 무리지만.
‘그립감이 좋은데?’
머리랑 두 발이 손바닥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다. 신기하군.
“이거 좋아. 더 해.”
“네에.”
“참. 잘했다고 칭찬도 해야지. 왜 입은 다물고 있는 거야.”
“…….”
이 사람이 진짜.
칭찬받는 것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하네.
어쩔 수 없다.
“다 플루토 님 덕분이야. 완전 대박. 출장소 잘 굴러가는 것도 우리 플루토 님이 힘써 줘서 그래. 플루토 완전 대박. 현세의 여신. 존나 개쩔어.”
“쿡쿡.”
아주 잠깐이었지만 플루토는 그야말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파앗
착각일까? 잠시 몸이 희미하게 빛난 것 같은데.
“여신…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이네.”
그렇구나. 학창 시절에 인기 많았나 보네.
나는 남중 남고 다니느라 여자애들이랑 말 나눈 거 예대 진학했을 때가 처음이었는데.
여신 소리까지 들을 정도면 대체 얼마나 따라다니는 사람이 많았을까.
뭐, 왕년에 어떤 식으로든 잘나갔던 사람은 많은 법이지.
누구나 살면서 크든 작든 영광의 순간이라는 게 하나쯤은 있었을 테니까.
나는….
없던 것 같다.
집에 가진 것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았다.
학창 시절 몇 번 고백받았던 적은 있는데 딱히 인상적인 기억은 아니었다.
굳이 살면서 좋았던 순간을 따진다면… 지금이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광장에서 그림 팔던 시절도 처음엔 나름 자아실현 한답시고 즐겁게 살긴 했다.
하지만, 가난이 오랫동안 이어지게 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미술의 재능은 생계를 이어 갈 정도로 탁월하지 않았다.
최대한 소비를 줄여 봤지만 캐리커처 몇 장 파는 정도로는 이틀에 한 번 라면 하나를 먹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꿈을 잃어갔다.
그저 살기 위해 사는 생활.
그림 외의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굶지 않기 위해 공사장과 다른 일용직을 찾아다니던 생활.
물론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야 대한민국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으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주절주절 떠들거나 되새길 생각도 없다. 자랑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인생 최고의 나날이라고 생각하는 건 은행에서 일하며 지내는 지금의 생활이었다.
내가 지닌 재능인지 아니면 다른 선천적, 후천적 무언가가 아직 얼굴도 모르는 행장의 눈에 띄었고.
그 행운 덕에 나는 밥벌이를 하며 풍족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지구와는 다른 환경에서 든든한 직장 동료들과 친구 역시 얻게 되었고.
무엇보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여태껏 경험했던 그 어떤 직업보다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할 수 있겠지.
뭐, 결혼해서 애 낳고 행복하게 살면 그때가 지금보다 더 빛나는 순간으로 느껴지게 될지도 모른다만.
아무튼, 여태까지 살아온 삶 중 지금이 가장 내 마음에 든다는 건 사실이다.
“가자. 대리님. 에너지 충전 끝났어.”
“특이한 사람이네.”
“대리님이야말로.”
“난 진짜 평범한 사람인데.”
“내 첫 번째 신도인데, 특별하지.”
“내가? 왜?”
“나 보고 여신이라며.”
“그건 농담이고.”
“설명해야 하는 드립은 뭐다?”
“실패한 드립….”
“실패한 드립이랑 진담 중 골라야 하면 보통 후자 아니야?”
“플루토 씨도 이상한 농담 많이 하잖아. 방금 전에도―”
“그건 진담.”
“……?”
하도 헛소리가 많아서 어느 게 진담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가자. 시간 다 됐어.”
“지금 누구 때문에 늦게 생겼는데.”
“빨리 와 대리님. 나 먼저 간다?”
플루토는 어느샌가 앞서가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비스야. 대리님한테는 가호 듬뿍 줄게.”
“…….”
진짜,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여자다.
앞으론 괜히 엮이지 말든가 해야지. 정신병자 상대해 봤자 골치만 아파진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멀쩡히 은행 취업해서 일하고 있는 걸까.
“가호 같은 소리 하네.”
진짜 신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저런 소릴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저러다가 천벌 받는 거 아닌가.
* * *
무사히 제시간에 5번 탑승구에 도착한 우린 곧바로 후리텐 국적기의 비즈니스석에 탑승해 수도 린딘으로 출발했다.
예정된 비행시간은 대략 4시간 반.
플루토는 이번에도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비행기가 이륙하자 좌석을 젖히고 느긋하게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플루토 씨 뭐 봐?”
“안 알려 줘.”
“그러든가.”
아까 이 여자 머리 쓰다듬은 다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내 의지랑 상관없이 아까부터 뭘 하는지 계속 신경이 쓰여 힐끔힐끔 자꾸만 눈이 간다.
단언컨대 이성에 대한 호감이나 호기심이 아니다. 진짜 알 수 없는 힘이 자꾸만 내 주의력을 저쪽으로 끌고 가는 느낌이 들어 계속해서 위화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듯한 감각.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불쾌하다.
혹시 나 이상한 마법이나 초능력에 당한 건 아니겠지?
또 하나 불안한 건 아까부터 자꾸 이놈의 오른쪽 눈이 발열 중이라는 거다.
자주 밤새워본 사람으로서 경험에 의거해 말하는 건데, 눈에서 열이 나면 보통 통증도 동반된다.
안압이 오르고 눈가가 저릿저릿하고, 그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저번에 세계수 담보 대출 때 신언神言을 사용하면서 고열과 통증에 시달렸던 적이 있는데 그때랑 비슷하지만 전혀 아프지 않다는 게 조금 신기했다.
뭔가 내 눈에 변화라도 일어나고 있는 걸까.
저번에 신언을 사용했을 때 세운 가설이지만, 이 눈은 신과 무언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구에 살던 시절 반복해서 꾸던 기묘한 악몽은 평범한 개꿈이 아니었던 걸까.
‘안구를 적출당하고, 다른 사람의 눈이 이식되었지….’
수백 번은 같은 악몽을 본 탓에 그 내용은 내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 있다.
어쩌면 이 눈에는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잠들어 있는 게 아닐까.
“…….”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다만, 내가 저번에 은행장이 적어 준 신의 언어를 읽고 발음해 거기 깃든 힘을 사용한 건 사실이다.
문제는, 왜 하필이면 지금 눈이 뜨거워지고 있냐는 건데.
“…설마.”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가능성.
슬며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플루토가 뚱한 표정으로 채널을 돌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겠지. 그냥 우연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