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03화
어디로 갈 생각인가.
마키나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인간인 내가 사후세계에 관해 답할 방법이 없는데, 무슨 수로 자신의 공허함을 해결해 줄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종교시설이라도 데려갈 생각입니까.”
“딱히?”
종교시설이라니. 이쪽 세상에서 그것만큼 희소한 시설도 없었다.
범차원 세계는 분명 신이 사람들 사이를 노니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긴 하지만 내가 살던 세상처럼 여기저기에 신을 숭배하는 이들이 세운 종교건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쪽 세상 사람들이 신들이 초월적인 힘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인격과 사생활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던 까닭이다.
비유하자면, 내가 살던 3-1차원에 미합중국 대통령을 숭배하는 사당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애초에 몇 군데 없는데 굳이 어렵게 찾아갈 필요 없잖아. 그런 것보다 평범하게 맛있는 거나 먹으면서 얘기나 하자고.”
내가 마키나를 데리고 간 곳은 종교시설이 아닌 마트였다.
“아직 아침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소화되기 전에 푸드코트에 들르는 건 비효율적인 행동으로 생각됩니다.”
“무슨 소리야. 장 보러 온 건데.”
“…네?”
“나도 요리 할 줄 알거든. 너도 좀 도와줘.”
조금 전에 미리 공유 주방을 예약해 두었으니 여기서 재료를 사서 택시 타고 가면 점심 전까진 조리가 끝날 것이다.
“여기서 장을 보는 게 영원하지 못한 생명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딱히 상관없어. 그냥 밥 먹으면서 얘기나 좀 같이하자는 거지.”
“흠….”
마키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순순히 내 뒤를 따라왔다.
내가 제시하겠다고 약속한 해답이 궁금해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보안요원의 앞을 지난 우리는 카트를 끌고 진열된 식재료 앞을 통과했다.
이 녀석이 델 몬테 지점장님 집에서 뭘 먹고 지내는진 모르겠지만 사모님의 요리 솜씨가 기가 막힌 건 몇 번인가 지점장님이 술자리에서 자랑하던 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프레드 선배랑 같이 도저히 가정식으로 보이지 않는 음식 사진을 보고 기겁했었지.
과연 내가 이 녀석의 입맛(그런 게 있을지조차 알 수 없지만)을 맞출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덜그럭
미리 찾아둔 레시피를 따라 필요한 재료를 골라 카트에 싣고 있었는데, 말없이 마키나가 힐끗힐끗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재료만 보고 데이터베이스에서 메뉴를 추측해 낸 게 아닐까 싶었다.
“요리, 관심 있어?”
내가 묻자 마키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워터파크에서 먹은 간식보단 지점장님 집에서 먹은 집밥이 엄청나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효율적으로 사 먹으면 된다, 같은 소리가 아니라 요리에도 흥미가 있다는 말이 나온 걸 보니 어지간히 맛있던 거겠지.
“못 먹는 거 없지?”
“기호라고 할 만한 게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훨씬 낫네.”
“무슨 뜻이죠?”
“일반적인 3세 아동은 못 먹는 거투성이거든. 회도 못 먹고 피망이나 당근, 양파도 싫어하는 애들이 많더라고.”
“성장기의 아동이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는 건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죠.”
“왜 남의 일처럼 말해.”
“네?”
“너도 성장기 아동이잖아.”
마키나는 한동안 내 말을 곱씹다가 반론에 나섰다.
“저는 최소한의 열량만 섭취해도 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아 그래?”
“다만, 비타민과 수분 등의 영양소가 부족할 경우 의체의 피부나 머리카락이 상할 수는 있습니다.”
“…….”
새삼스럽지만 신기한 몸뚱이다.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지 않으면 사람처럼 머리카락과 피부가 푸석해지다니.
마키나 자신이 이것저것 기능을 추가해 달라고 이사회에 부탁했다더니 진짜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생각이었던 모양이군.
“그럼 잘 먹어 두는 게 낫다는 거잖아.”
“그런가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그렇잖아. 외견이 중시되는 건. 살아 있지 않은 가구나 기계조차 보기 좋은 쪽이 고객에게도 선호된다고. 이건 어쩔 수 없어. 누구든 직접 눈에 보이는 것에 약한 법이거든.”
“…그렇다면 저는 보편적인 미의식에 비추어보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회에 적응하는 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출 수 있다면 외관을 변경하는 것도 고려해 볼 생각입니다.”
“…….”
내가 말을 잘못했나.
어쩌다 태어나서 고작 52일 정도 지난 육체 연령 3세의 인공지능이 성형 수술받겠다는 소리까지 하게 된 걸까.
“너 나이 때 그런 거 생각하는 거 아니야.”
“방금 외견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아이 때는 다들 어느 정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생겼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확히 몇 살 정도부터 외모가 중시되기 시작하는지 통계를 확인해 봐야겠군요.”
“아니, 부탁이니까 그러지 마.”
얼굴이 언제부터 중요해지냐고? 당연히 처음 집 밖으로 걸어 나간 순간부터 중요해진다.
생긴 게 예쁘고 멋지면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물론 그게 없더라도 특정 직군에 종사하지 않는 한 아예 먹고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키나에게 잔혹한 현실을 알려 주고 싶진 않았다.
아니. 잘 생각해 보니 딱히 잔혹한 것도 아니었다.
아이의 외모를 평가하는 건 영 바람직하지 않은 짓이긴 하지만 이 녀석은 객관적으로 또래 아이들과 어른이 모두 귀엽다고 여길 만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너는 딱히 고칠 필요 없으니까 다른 걸 신경 쓰는 게 나을 거야.”
“그래서 사후세계에 관해 알고 싶은 거긴 합니다만.”
“음…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고 보는데, 나는.”
“사람이 어찌 그리 무책임할 수 있는 거죠? 육체를 떠난 이후의 삶이 더욱 긴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겁니까.”
“너랑 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 머리가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걸 어떡해.”
“…그게, 무슨 뜻이죠?”
얘는 인공지능이라는 애가 왜 이리 모르는 게 많을까.
나는 조리에 필요한 재료와 조미료를 모두 담고 계산대로 걸어갔다.
“나머진 밥하면서 알려 줄게.”
나는 마침내 마키나의 행복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 녀석이 ‘사람다워지면’ 모든 고민은 해결될 것이다.
* * *
공용 주방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사 온 식재료를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3세 유아의 몸을 지닌 마키나는 키가 작은 탓에 요리를 도울 수는 없었기에 나 혼자 재료를 다듬어야만 했다.
뭐, 애초에 어린아이에게 식칼 같은 위험한 물건 쥐여 줄 생각은 없었다.
“잘 보고 있어.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네.”
마키나는 어린이용 의자에 앉아 다소곳이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나를 지켜봤다.
오늘의 메뉴는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파스타.
6-2차원의 식재료, 특히 야채는 신선도와 식감이 모두 탁월했다.
소재의 맛을 살리는 요리에 사용하기 안성맞춤.
나는 마늘, 안초비, 바질을 다지고 치즈를 강판에 갈아 준비한 다음 소금, 올리브유와 함께 푸드 프로세서에 투입했다.
-위이잉!!
금방 완성된 바질 페스토.
면을 삶는 동안 베이컨과 야채를 다듬어 팬에 볶고 익은 파스타와 소량의 면수, 거기에 바질 페스토를 더해 섞었다.
불을 끄고 몇 번인가 팬을 들썩이자 혼합된 소스와 면이 절묘하게 엉켰다.
“실력 어디 안 가는구만.”
오랜 자취 생활로 단련된 요리 실력은 바쁜 업무로 인해 배달 음식과 외식 위주로 저녁을 때우게 된 입행 지금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
-킁킁
한편 마키나는 조심스럽게 공용 주방 안에 가득 찬 바질의 향기를 맡고 있는 중이었다.
여전히 표정에 이렇다 할 변화는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평소보다 미세하게 크게 뜨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조리 과정과 음식의 맛에 상당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여튼 짜식.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지점장님네 사모님과 비교하긴 부끄럽지만 먹는 거 좋아하는 밀라 녀석쯤이라면 음식 솜씨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아, 또 쓸데없는 생각을….”
나는 파스타를 접시에 담아 테이블로 나르고 나서 곧바로 에어프라이어에서 저온으로 리버스 시어링 중이던 소고기를 꺼내 스테인레스 팬으로 겉을 지졌다.
“먼저 먹고 있어.”
“잘 먹겠습니다.”
마키나는 한마디 사양하는 일 없이 포크로 나비넥타이 모양 파스타 면을 먹기 시작했다.
고기가 익는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진 않지만 무언가 계속 중얼대는 게 음식의 맛을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마키나 녀석, 미식평론가 쪽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먹어 본 음식의 종류가 늘어날수록 완벽하게 맛을 기억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텐데.
주관적인 기호만 없을 뿐이지 평범한 사람처럼 맛있는 거 먹고 감동할 줄은 안다는 사실이 내겐 꽤나 놀라웠지만, 영혼을 지니고 있는 인공지능 자체가 애초에 전례가 없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겠다.
“맛있어?”
“훌륭하군요. 레핀 씨의 요리와는 방향성이 다른 미식입니다.”
“잘됐네. 천천히 먹어. 고기도 있으니까.”
마저 고기를 구운 다음 호일로 감싸 레스팅을 개시. 철 꼬챙이를 중심에 꽂아 입술 아래에 대자 원하던 온도에 달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대로 5분 정도 지난 다음 자르면 스테이크가 완벽한 미디엄으로 익어 있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문화 중에서도 요리가 가장 인상적이군요.”
“그래?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자생하는 동식물 중 독이 없는 품종을 찾아내 개량한 건 물론 가장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을 수천 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물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정도는 달라도 매 끼니마다 반복하고 있다니.”
“그럴싸한데?”
“지금 저희가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석학과 전문가가 조리법과 위생에 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식문화의 발달과 변화가 빠른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요리는 진입장벽이 한없이 낮은 분야였다.
주방과 조리도구, 그리고 식재료만 있다면 누구든 도전할 수 있으니까.
물론, 이를 마스터하는 데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가정은 물론 음식점에서 일상적으로 재료를 조리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 데에다 각 지역과 집안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지정학적 특징이 짙게 반영되어 있으니 이만큼 역사와 밀접하게 붙어 있는 학문도 없을 것이다.
각 차원과 국가에서 사용하는 언어만큼이나 음식의 종류와 조리법이 다양하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무엇보다 식욕은 사람의 3대 욕구로 꼽히고 있다.
사람들이 매일같이 식사 메뉴를 고르느라 고민하는 것만 봐도 인류의 지혜와 욕망이 가장 짙게 반영되는 것이 식생활이라는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즐거워 보이네.”
마키나의 반응은 내가 기대해 마지않은 것이었기에, 나는 조용히 녀석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비록 웃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녀석이 이것저것 주워섬기는 속도가 아까보다 조금 빨라진 것만 봐도 그 기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슬슬 본론에 들어가도 될 것 같다.
어디 한번, 사람 좀 만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