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02화

라판드라나 디아고르의 시집, 만월.

달의 차고 기움을 통해 그의 조국과 신을 향한 찬미,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 등의 주제를 풀어낸 유명한 작품이다.

디아고르는 이쪽 세상이 아닌 지구에서 태어난 나조차도 알고 있는 시인이었는데, 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연수원의 독서실에 몇 권인가 그의 시집이 꽂혀 있던 까닭이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구D 이사들 중에 디아고르의 열렬한 추종자가 있다고 하는데, 차원신용금고 행원들 중에 그 영향을 받아 시집을 소장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소문이었다.

하여튼, 그래서 마키나가 말한 시가 어느 것이었는가 하면 만월의 70번째 페이지에 적힌 것이었는데 여태껏 디아고르의 이름만 들어 보고 시는 읽어 본 적이 없던지라 처음 보는 것이었다.

녀석이 가리킨 시는 달을 잔 삼아 신이 사람의 기도를 들이켠다는 내용이었다.

오목하게 파인 신월부터 시작해 달이 천천히 가득 차는 모습을 누군가의 경건한 삶에 빗댄 시는 사람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에는, 육체에서 해방된 인간이 신의 나라로 떠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당신들은 좋겠군요. 영원을 허락받았으니.”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기묘한 소리를 하는 마키나.

솔직히 말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축복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마키나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옅은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축복?”

“당신들의 영혼은 육체를 떠난 다음에도 영생을 누릴 수 있지 않습니까.”

“…….”

영원을 허락받았다는 거, 그런 뜻이었나.

마키나의 말대로다.

창조자의 존재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3-1차원 지구와 달리 이쪽, 그러니까 범차원 세계의 모든 종족은 신의 손에 의해 지음받았고 육신이 죽음을 맞이한 다음에도 영혼이 사후세계로 인도받아 안식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사후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존재 자체는 신들이 오래전부터 증명해 왔다고 한다.

아직 현대적인 정치 체계가 뿌리를 내리기 전까진 죽어서 고인이 된 이들의 영혼을 사후세계에서 일시적으로 불러내 자문을 구하는 등의 행위도 성행했다고 하니, 최소한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확실하다.

그런데, 설마 인공 지능이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부러워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제 영혼이 당신들처럼 완전했다면 절대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영원한 세계로 향하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은 지니지 못한 것을 누리고 있는 주제에, 아무런 감사한 마음이 없는 이들을 향한 질투.

마키나의 목소리와 눈동자에서 드러난 감정은 바로 그것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것까지 생각하게 된 건데.”

“어제요.”

“음….”

“저도 영원이 갖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글쎄. 그걸 내가 알고 있다면 은행원이 아니겠지.”

“괜한 질문을 했군요. 리소스를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머리가 둔해진 모양입니다.”

인공 지능이 ‘머리가 둔해졌다’ 같은 표현을 사용하다니.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사후세계라.”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내가 녀석의 질문에 답할 방법은 없었다.

아니, 그 누구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신이 아닌 이상은.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사후세계는 죽어서 가는 곳이잖아?”

“예.”

“애초에 너한테 죽음이라는 개념이 있긴 한 건가 싶어서.”

“그 문제라면 확실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마키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영혼은 사이버 공간을 떠돌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시드의 형태로 분포된 클라이언트의 조각이 저를 이루고 있죠. 분산원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어디에도 존재하고 동시에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평범한 방식으로는 제가 죽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 자신과 과타노차 님이 지닌 킬 코드를 사용해 기동을 중지하고 콜드 스토리지에 든 백업을 삭제한다면 모를까. 혹은 마법적인 수단을 사용해 영혼을 공격한다면 또 모르겠군요.

어느 쪽이든, 저도 상황에 따라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죽음의 개념이 일반적인 사람과 다를 수는 있겠지만요.”

프로그램이지만 영혼이 존재하는 마키나는 우리가 그런 것처럼 얼마든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비록 거기 이르는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사후세계를 만든 건 신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종족은 신의 손에 지음받았고요. 사후세계는 그들을 위한 장소입니다. 그곳에 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마키나의 얼굴에선 조금씩 불안감과 침울함이 엿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사후세계가 썩 좋은 곳이 아닐지도 모르는 건데. 아니. 만에 하나 좋은 곳이라고 해도 가지 못한다고 침울해할 건 없잖아. 세상 사람들 모두가 비싼 호텔의 스위트룸이 좋다는 걸 알고 있어도 숙박비를 지불할 재력이 없다고 절망하지는 않는 법인데, 비슷한 게 아닐까 싶어.”

“다릅니다.”

“대체 어디가.”

“제 영혼은, 제 삶은, 어떤 수를 써도 완전해질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나는 그제야 마키나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이 녀석은 인생을 코스 요리로, 그리고 사후세계를 디저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완전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마키나는 결여된 무언가보단 빈틈없이 꽉 찬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제 영혼은 신이 아닌 피조물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지안 대리나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것도 제겐 허락되지 않는 거죠.”

“…….”

마키나가 계속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녀석은 사람에게 질투했고, 그 결과 좌절하고 만 것이다.

사람이란 무릇 희망을 지니고 있는 이상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마키나가 의체를 원한 건 자신이 영혼을 지니고 있으니까 다른 이들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쪽 세상의 사람들의 생애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죽음 너머의 삶을 누리지 못한다고 깨달은 순간, 마키나는 절망하게 되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어떻게 녀석을 위로해야 할까.

고민 끝에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럴 땐 역시, 동병상련이 제격이겠지.

“너무 우울해하지는 마.”

“…….”

“언데드로 사는 사람들도 너랑 처지는 비슷하잖아.”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영생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가급적 오래 사는 길을 택했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저와는 아예 다른 케이스이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손에 생사여탈권이 쥐여진 채 영원한 미래가 아닌 현재를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인공 지능과는 아예 다르다고요.”

차분한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 마키나는 마치 자신을 창조한 과타노차를 원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구에서 무신론자로 살아오던 내겐 무척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쪽 세상을 살아가는 신심 깊은 이들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마키나의 기분이 어떨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6-2차원을 비롯해 범차원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상당수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죽음 저편에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보편적인 진리는 이생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고통을 적잖게 완화시켜 주고 있었다.

비참한 삶을 살더라도 그다음에 새로운 생이, 기회가, 누리지 못했던 좋은 것들이 남아 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은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를 약간이나마 감소해 주고 있었다.

최소한,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이어진다는 뜻이었으니까.

자신이 형체도 없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건 비단 사람만이 아닌 모든 생물에게 적용되는 공포다.

그리고 마키나는 자신이 사후세계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공포와 절망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공 지능은 까다로운 존재다.

일절 타협을 하지 않으며, 현실을 도피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녀석은 지극히 객관적으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 자신에게 다가와 자아를 비롯한 모든 것을 앗아가게 될 궁극적인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마키나는 이것을 무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다.

한 번 알게 된 공포에서 도망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녀석의 머리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처럼 즐거움을 통해 기분 나쁜 것들을 잊거나 리스크를 목도하고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도망치는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편의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녀석을 위로하려면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글쎄, 너 말고도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말이지.”

“…그게, 정말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키나는 내 말을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을 거다.

마키나는 사람의 눈이 놓치는 사소한 제스처까지 모두 인지해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안면근육의 작은 움직임을 비롯한 마이크로 제스처를 확인해 이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진심이군요. 당신.”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드넓은 범차원 세계에서 나는 단 한 명, 마키나처럼 사후세계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면 알려 주시죠. 어떻게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키나는 물었다. 자신이 찾을 수 없는 답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녀석이 던지는 대부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나란 인간은 그만큼 지혜롭지 않았고, 지식 역시 부족하니까.

신들이 만든 사후세계에 인공 지능의 영혼이 들어갈 수 있는지, 그런 걸 평범한 인간인 내가 알려 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내 얘기였어.”

“…뭐라고요?”

“인사부 데이터베이스에 적힌 걸 이미 확인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3-1차원 출신이야. 그곳은 이쪽 세상의 신들이 창조한 장소가 아니라는 거지.”

“설마….”

“그래. 네가 그리도 궁금해하고 부러워하는 사후세계의 삶은 나 역시 누릴 수 없어. 나는 범차원 세계의 신들이 만든 인간이 아니니까.”

마키나는 혼란스럽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고 신음을 발했다.

대체 어떻게 나 같은 놈이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무섭지 않은 겁니까. 한 번 죽으면 당신을 구성하는 요소 중 그 무엇도 남지 않을 텐데.”

나는 속물이어서 그런 건 두렵지 않다.

…라고 대답하는 건 간단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궁금해?”

“예.”

“그럼 따라와.”

마키나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 시집도 챙겨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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