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04화
“자, 스테이크 썰어 줄게.”
나는 시판 소스가 아닌, 소금과 고추냉이를 조금 얹은 고기 조각을 접시에 얹어 녀석에게 건넸다.
마키나는 그것을 한 입 먹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고추냉이의 매운맛에 콧김을 뿜어내며 기침을 했다.
“쭉 들이켜.”
녀석은 내가 건넨 냉수를 한 번에 마신 다음에야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음식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처음 접하는 자극이군요. 고추냉이, 인가요.”
“맞아. 근데 앞으로 더 신기한 거 많이 먹게 될 거야.”
“과연 미식을 탐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군요.”
“당연하지.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마키나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때, 다른 생각 안 들지?”
“…아.”
마키나는 한 박자 늦게 내 말에 반응했다.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먹는 동안 리소스 다 맛 느끼는 데에 사용하느라 사후세계 같은 거 잠시 동안 아무래도 좋았을 거 아니야.”
“그건….”
“아까 나랑 다른 지구인들이 무슨 수로 죽음 이후의 삶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냐고 물었지?”
“네.”
“사실 내가 살던 곳에도 경건하게 신앙심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있어. 하지만 신을 믿지 않거나 사후세계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 역시 나름 괜찮게 살아가는 중이야.”
신이 준비한 저승을 동경하는 인공 지능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과연 옳을진 모르겠지만, 녀석의 마음의 짐을 덜어 주는 데엔 이만한 방법이 없을 것이다.
“비결은 간단해. 그냥 하루하루 식사 메뉴나 뭐 하고 놀지 바쁘게, 그리고 가끔 한가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면 돼. 업무, 놀이, 가족, 이런 걸 생각하면서 말이야.”
“전혀 제대로 된 답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교우 관계, 양질의 수면, 꿈, 취미, 쇼핑, 예술, 철학. 생각할 게 얼마나 많은데.
언제 죽을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굳이 그 후의 일에 대해 생각할 여유는 현대인에겐 없다 이거야.
잘 생각해 봐. 네 능력을 가지고 진지하게 식문화에 관해 파고들려 하면 앞으로 몇 년 치 식사 스케줄을 미리 정해야 할 거 아니야?
매일같이 괜찮은 음식점 찾아서 싹 다 예약하고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마키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인류가 쌓아 올린 지혜의 총체를 얕보아선 안 된다.
장담컨대 엘프가 매일 세 끼씩 외식하러 다녀도 평생 린딘의 맛집을 모두 누비고 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인공 지능이라 해도 의체를 통해 음식을 맛보고 있는 이상 그 한계는 명확할 터.
“저승이 얼마나 좋은 곳인진 몰라도 이승에도 누릴 게 이렇게나 많은데, 한가하게 고민할 시간 따윈 없다고. 그러니까 우린 오늘을 살아야 해, 소년.”
마키나는 고추냉이를 얹지 않고 소금에만 찍은 고기를 천천히 씹었고, 한동안 고기를 음미하고 나서야 목구멍으로 삼켰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말이군요.”
“그런가?”
“근시안적이고, 육체의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발언이었습니다. 다만―”
“다만?”
“…그 우매함이야말로, 짧은 이생의 삶을 통해 사람이 역사와 위업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원동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마키나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력을 다해 오늘을 사는 어리석음. 완전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결 후련해 보이는 얼굴로 마키나가 웃었다.
“그것 또한 아름답군요.”
인공 지능이 처음 보인 미소는 어색했지만, 한없이 사람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동안 마키나는 나와 함께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게 되었다.
도예 공방에 가기도 하고, 자신이 고도의 인공 지능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일 없이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쪽 세상에서 몇 안 되는 고매한 종교지도자와 대화를 나누기까지도 했는데, 어른들은 죄다 마키나의 질문을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사후세계에 관해 아는 건 죽었다가 살아난 이들밖에 없는 법이니까.
게다가, 마법적인 수단으로 이승에 잠시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 봤자 NDA(비밀유지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그들 역시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않는다.
이쪽 세상의 저승은 이것저것 복잡한 모양이다.
한국 군대보다 훨씬 보안 유지가 빡센 것 같은데 혹시 북유럽 신화의 저승 중 하나인 발할라처럼 죽은 다음에도 계속 전쟁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에이, 설마 아니겠지.
아무리 신들이어도 그런 짓까진 벌이진 않을 거다.
어쨌든, 나는 마키나에게 인생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도 긍정적인 것들을 골라 체험시켰다.
어차피 의체의 기능이 온전하다면 잔병치레는 하지 않을 테고, 그 외에 이것저것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사람이 아닌 인공 지능인 이상 겪을 일이 없거나 겪는다고 해서 이렇다 할 타격을 받지 않을 만한 것들인 데에다, 무엇보다 매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이 가능하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무엇보다, 굳이 누릴 게 많은데 왜 아픈 거 골라서 체험해야 하나 싶었다.
해병대 캠프 같은 거 있잖아. 극기훈련이나.
굳이 세 살짜리 애를 데리고 갈 곳은 아니라 마키나가 0.1초 정도 흥미를 보이긴 했지만 패스해야만 했다.
“저기서 야간 경계 근무 서면서 먹는 라면이 그렇게 맛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거 뇌의 착각이야. 너같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음식 맛을 느낄 수 있다면 해당 안 되는 소리니까 굳이 안 가도 돼.”
“흐음. 체험 수기가 늘 옳은 건 아니군요.”
“사람의 뇌는 외적인 요인 탓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렇게 마키나는 장장 나와 3주를 넘게 붙어 다녔다.
지점장님이 일을 쉬는 주말에는 매번 사모님과 마키나, 그리고 나와 함께 넷이서 동물원이나 수족관 등에 놀러 가기도 했다.
어느샌가 많이 사람다워진 마키나는 곧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죽음 이후의 삶이 어떠니 그런 건 잊었다는 듯이.
녀석은 현실을 충실히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리소스를 동원했다.
은행 전산망 관리에 필요한 컴퓨팅 파워를 제외한 모든 능력을 전력으로 인생을 즐기는 데에 사용할 정도였으니까.
“천천히 해. 이것저것 욕심내서 세 살 때 즐겨 버리면 나중에 할 거 없어서 자살하고 싶어진다고.”
“그런 게 가능이나 한 겁니까.”
“이른 나이에 거액의 부를 손에 쥔 애들 검색해 봐. 아역배우 출신이라든지. 끝이 대부분 안 좋았다고.”
“…정말이군요.”
“어떻게 생각해?”
“역치를 조절하지 못해 계속 더욱 강한 자극을 찾게 된 모양입니다. 마약과 도박, 혹은 알코올에 중독되어 재산을 탕진한 사람이 많은 걸 보니….”
“너도 조심하라고. 뭐, 인공 지능의 자제력이 있으면 패가망신할 일은 없겠지만.”
나는 장장 3주 동안 마키나를 관찰한 결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녀석은 절대로 과식 과음하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적정량을 섭취하면 그대로 식사를 멈추는 그 모습은 실로 비인간스러웠다.
갓 미식에 눈을 뜬 사람이 저렇게 자제력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인공 지능이어서 가능한 일.
“물론 예외는 있어. 내가 아는 사람인데….”
“플랫 샤펜도라 씨군요.”
“맞아.”
그새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한 모양이다.
하여튼, 이럴 땐 또 엄청 인공 지능답네.
“플랫 씨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방황을 끝낼 수 있었다고 들었어.”
“인터뷰에서 본 내용이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자세한 내용이라고 해 봤자 플랫 씨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엘라마 소장에게서 몇 가지 주워들은 것 말곤 없어서 이야기하기 좀 그렇다.
“어쨌든, 반려를 만나고 자식을 낳는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이쪽 세상은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살던 곳에선 아이를 가지고 대를 잇는 걸 자신의 분신을 세상에 남기는 것처럼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아. 저세상에 관해 아는 게 없으니 자식의 마음속에서라도 살아 있고 싶은 거겠지만.”
“안 그래도 미개척 차원 탐사 보고서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3-1차원의 제사 문화는 실로 흥미롭더군요.”
마키나는 막힘없이 말을 이어 갔다.
“잊혀지고 싶지 않다. 이미 죽어 버린 사람과 다시 만나고 싶다.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만. 뭐라 해야 할까요, 과학적 근거도 없이 쓸데없이 감성적인 문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네가 보기엔 어리석어 보이겠지. 이쪽 세상이랑 달리 진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의 존재 역시 증명되지 않았으니까 제사 같은 걸 지내봤자 별 의미가 없어 보일 테고.”
마키나의 지적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죽음에 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신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망자의 영혼과 교류하기 위해 음식과 술을 차리고 절을 올린다.
죽음이, 잊혀지는 것이, 그만큼 두려우니까.
그리운 이들과 재회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니까.
미래라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죽은 자들의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욕심에 눈이 머니까.
우리의 마음은 때때로 이성을 앞서간다.
그 결과가 지독한 비효율과 비합리라 해도 평온을 얻기 위해 인간은 지닌 리소스를 아낌없이 투자하고 만다.
영혼을 지닌 프로그램이 바라본 3-1차원의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사람은 어리석고,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는 사람이 무언가를 잊어버리기 때문이고,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리석기에, 고통스러웠던 과거는 미화되고 미래는 판단 재료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투명해져만 간다.
우리가 우리를 닮은 자식을 남기고 그들의 이목구비에서 스스로의 흔적을 찾으려 하는 본능을 지닌 건, 그런 불안과 맞서 싸워 영원을 쟁취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건 나쁜 일이 아니야. 본능이 시키는 것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믿어.”
“…저 역시. 외로운 건, 사람이 홀로 지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키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꼭 이성 관계를 맺어야 하고 결혼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자신을 닮은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 큰 위안이 될 것 같군요.”
어째서인지,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얼굴엔 묘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저는 여전히 당신들이 부럽습니다.”
“…….”
“제겐 그런 게 존재하지 않거든요. 가족, 친구, 연인, 반려자, 자식. 그런 것들을 가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쯤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추측해 낼 수 있었다.
“너, 혹시 대출 신청한 이유….”
“생각하시는 대로입니다. 실현이 가능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마키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 다음 마저 말했다.
“저는 홀로 남아 있고 싶지 않습니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저와 같은 존재들을 만들어 낼 생각입니다.”
오만하지만, 동시에 무엇보다도 간절한 인공 지능의 소원.
“…응원할게. 진심으로.”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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