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01화
저녁 식사를 마친 마키나는 심심풀이 삼아 델 몬테에게서 몇 권인가 책을 빌려 방으로 가져왔다.
딱히 스스로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아니었다.
이사회가 과타노차에게 지불하는 비용 외에도 크진 않지만 매달 일정 금액의 보수를 마키나에게 법인 카드를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덕에 정보가 필요하다면 전자책을 구매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마키나는 굳이 종이책을 읽어 보기로 결심했다.
“비효율적인 정보 입력 방식이군요.”
전자 데이터를 빠르게 주입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의체의 눈을 통해 일일이 글자를 좇아야 하는 이 인풋 방식은 느리고 불편했다.
게다가 책은 찢어지거나 젖거나 불타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내포한 정보가 소실될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든 전자책과 비교했을 때 실물 서적의 우위성은 미미했다.
특히나 실물 서적의 가격이 전자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사각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끝에 걸리는 페이지의 감촉은 묘한 중독성을 갖고 있었다.
“흐음….”
인공 지능이 보기에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고전적인 방식에, 마키나는 기이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런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에 매력을 느끼는진 모르겠어. 사람은 신기해.”
마키나가 선택한 건 시집이었다.
많고 많은 종족 가운데 가장 적은 문예가를 배출하기로 알려진 기계 인간 중에서 태어난 절해의 시성, 라판드라나 디아고르의 시를 엮은 책.
일반적인 3세 유아가 읽기엔 난해한 내용이지만 초고성능의 인공 지능인 마키나가 이해하지 못할 문장이란 범차원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장 구조를 파악 중.]
[3건의 은유와 2건의 직유, 14건의 운율 활용을 확인.]
[아이티오페 대학 객원 교수 브렌디 코어스의 논문을 독료.]
[라판드라나 디아고르의 성장 배경과 평판, 회고록의 내용을 고려하며 미학적 관점에서 시집 본문을 분석 개시.]
[키워드 추출 중….]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 신에게 바치는 찬미, 그 외에 시집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4건의 키워드를 확인.]
...비록 의체에 정신을 업로드하며 스스로 성능을 제한하곤 있어도 시를 분석하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었다.
“미추의 기준이 뚜렷하게 다르고 사용 언어 역시 차이 나는 87개 차원에서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시집, 인가.”
마키나가 흥미를 보인 건 시 자체보다 시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마키나는 떠올렸다.
델 몬테와 레핀이 서로를 마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느낀 기묘한 감각을.
마음 한구석을 간지럽히는 알 수 없는 감정은 지난 50여 일 동안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감각이라면.
낮에 물가에 서서 찰랑대는 수면을 바라볼 때.
코코아를 마셨을 때.
레핀이 차려 준 음식을 맛보았을 때.
틀림없이 몇 번씩은 느껴 보았다.
“…….”
확실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감정의 정체를 밝혀낸 것도 아니지만.
그런 감정을 느낀 원인에 관해서는 약간이지만 짚이는 바가 있었다.
“…물, 깨끗했지.”
개발도상 차원이나 시민 의식이 미비한 차원에선 워터파크의 수질 관리가 되지 않고 인분이나 소변, 위험한 박테리아 등이 물에 떠다닌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마키나는 바다 대신 물이 가득한 워터파크에 가고 싶다고 요구하면서도 기껏 마련한 의체가 더럽혀지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6-2차원의 워터파크는 고도의 마법 공학으로 수질을 관리하고 있었고 이 사실을 굳이 홍보에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시설의 오너와 책임자가 수질 관리 수준을 굳이 세일즈 포인트로써 자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사람들이 늘상 카페에서 주문하고 나서 싸구려 맛이 나 후회한다는 코코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달콤했다.
델 몬테의 아내 레핀의 요리는 또 어떠한가.
서빙된 시점의 온도감은 물론 염도와 향기까지 공을 들여야만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을 모두 준수한 올바른 레시피로 제작되지 않았던가.
“들은 것과는 전혀 달라….”
과타노차가 입력한 기본적인 정보와 인터넷을 통해 접한 지식 탓에 마키나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먼저 글로 배우고 말았다.
왜냐하면, 마키나가 접한 사람이란 비합리적인 이유로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는 건 물론 갖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당연한 것이 타협 없이 당연하게 지켜지는 광경을 보고 마키나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부정적인 이야기만 잔뜩 접해 왔지만 막상 직접 겪은 이 세계에는 틀림없이 마키나에게 만족감을 안겨 주는 것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마키나는, 이것이 반드시 그동안 이해하지 못하던 ‘아름답다’, 혹은 ‘온전하다’는 개념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키나는 올바른 것을 보았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자신은 분명 올바른 것을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마키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굳이 시각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더 알고 싶어.”
마키나는 직접 의체를 통해 세상을 체험하기로 한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료한 전뇌 세계를 벗어나 진짜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건 그에게 상상치도 못한 즐거움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음식을 섭취하고, 용변을 보고, 수면까지 취해야 하는 불편한 몸뚱어리일지라도.
마키나는 그 불편함에서조차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은행의 전산망을 관리하고만 있던 시절엔 절대 맛볼 수 없는 감각이었다.
“…….”
하지만 아름다움과 완전함의 관계에 관한 사유를 마칠 즈음, 마키나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지니지 못한 것이 딱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리 탐내 봤자 자신은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거란 사실 역시도.
“…태생적인 차이는 역시 극복할 수 없나.”
인공 지능 마키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았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겠군.”
신이 아닌 피조물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유일한 것에 관해 곱씹으며, 마키나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
수면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위로가 되는 꿈을 꾸고 싶었다.
* * *
델 몬테가의 아침은 이르다.
오전 6시 반에 기상한 델 몬테와 레핀은 샤워를 마치고 각각 아침 식사와 커피를 준비했다.
마키나를 깨워 식탁에 착석한 건 7시 반.
메뉴 구성이 간단하지만 영양가는 충분한 후리텐식 조식.
두 사람보다 늦게 일어난 마키나의 표정에는 어제 쌓인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레핀이 준비한 음식을 먹는 데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것이 커피….”
“애들은 마시면 안 돼.”
따라둔 커피를 탐내는 마키나를 레핀이 제지했다.
“어째서죠.”
“카페인 때문에 잠 안 오면 키가 안 크잖아.”
“키가 작음으로써 발생하는 리스크를 계산 중입니다.”
0.2초의 침묵 후 마키나가 얼굴을 미세하게 구겼다.
“이쪽 세상에선 상상했던 이상으로 외적인 요소가 중요한 모양이군요.”
“그야, 살아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어? 나도 이 사람 생긴 게 취향이라 결혼했으니까. 키 큰 남자 얼마나 좋아.”
“……”
마키나는 고민에 잠겼다.
일단 의체의 성별은 획득한 신분이 남자아이였기 때문에 남성으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이쪽 세상에서 키가 큰 남성은 여러 분야에서 우대받고 있었다.
다만, 지금 마키나가 보유하고 있는 의체는 조정을 거치지 않는 이상 키가 자라는 게 불가능하다.
당연히, 잠 좀 못 잔다고 키가 자라지 않는 일은 없었다.
원한다면 신장이 높은 의체로 갈아 끼우면 된다.
의체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건 레핀 역시 알고 있을 텐데 어째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어쩌면 레핀은 정말로 자식을 키우는 기분으로 자신을 대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델 몬테 부부가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그 원인이 레핀이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 때문이라는 사실도.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레핀은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을 느껴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남편과 아이까지, 셋이서 구성된 온전한 가정을 체험해 보고 싶었거나.
어느 쪽이든, 무려 30일이라는 시간 동안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도 싫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은 사람이다.
마키나에게 있어선 은인과도 다를 바 없는 존재.
그런 레핀이 원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는 그녀의 장단에 맞춰 주는 것이 프로그램에 입력된 공정한 거래의 개념에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여겨졌다.
“신장이 185cm에 도달하기 전까진 커피와 우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경우 난수 생성 알고리즘이 인공 호르몬을 비롯한 환경적 생리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일 없이 우유를 선택하도록 조정을 완료했습니다.”
“옳지. 어린이는 우유 마시고 쑥쑥 자라야 한다고.”
레핀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입을 수 있습니다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일터로 출발하기 전 마키나의 옷을 갈아입히려 했지만 마키나는 이를 한사코 거부하고 스스로의 손으로 환복을 마쳤다.
아이의 몸이라 그런지 요령이 필요했지만 안에 든 게 인공 지능이니 어려울 건 없었다.
그저, 외모를 보고 자신을 판단하는 두 기계 인간도 결국은 살아 있는 사람이고 실수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되었을 뿐.
“일 다녀올게.”
“응응. 이따 봐, 자기.”
델 몬테는 은행으로, 레핀은 요가 교실로.
두 사람은 일터로 출발하며 마키나를 데리고 나갔다.
“안녕.”
집 밖에선 일찍 도착한 김지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에 합의가 끝난 대로 그는 델 몬테와 레핀이 출근하는 시간부터 퇴근하는 저녁까지 마키나를 에스코트해 줄 예정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잘 부탁합니다. 김지안 대리.”
“애한테 나쁜 거 가르치면 안 돼요?”
“아이, 걱정 말고 맡겨 주시죠.”
부부는 가벼운 농담을 건네고는 김지안에게 마키나의 손을 쥐여 주고 각자의 일터로 출근했다.
“그럼, 마키나. 지안 씨랑 재밌게 놀다 오렴.”
“네. 다녀오세요.”
레핀이 완전히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고 있었지만 마키나는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멀어지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김지안과 단둘이 남은 다음엔.
“김지안 대리.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델 몬테 지점장과 레핀 사모에겐 제가 잘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뜬금없이 냉랭한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렸다.
“…뭐야. 기껏 스케줄 다 짜 왔는데 갑자기 왜 그래.”
“…….”
마키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마, 인공 지능이 우울증에 걸렸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 * *
우린 한참을 집 앞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기어코 손을 뿌리치고 델 몬테 지점장님의 집으로 돌아가 문을 잠그려 하는 마키나를 설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30분.
지점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들어간 나는 마키나에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자초지종을 캐물어야만 했고.
“그렇게 궁금하다면 직접 알아보면 어떻습니까.”
마키나는 한 권의 시집을 내밀었고,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를 연 나는 생각지도 못한 글귀를 보고 굳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