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00화

김지안과 통화를 마친 과타노차는 발코니로 걸어갔다.

3번 촉수에는 룸서비스로 주문한 칵테일 잔을 들고 느긋하게 거리를 내려다보는 그 눈에는 짙은 호기심의 빛이 보이고 있었다.

사실, 과타노차는 오늘 유급 휴가까지 써서 김지안이 묵고 있는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다.

층이 다른지라 김지안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족히 사흘 동안은 이곳에서 느긋하게 쉴 생각이었다.

과타노차가 굳이 유급 휴가까지 써 가면서 출근하지 않은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마키나의 의체에 정신이 업로드된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이 창조한 영혼을 지닌 인공 지능의 데이터를 분석해야만 하는 과타노차에겐 마키나가 의체를 통해 세상을 접하는 그 과정 전부가 귀중한 자료였다.

은행 업무를 쉬더라도 지금은 어차피 마키나가 전산관리부가 기존에 맡던 임무를 대부분 처리해 주고 있으니 크게 문제는 없다.

출근할 바엔 차라리 하루 종일 호텔에 틀어박혀 마키나의 로그를 살피는 게 훨씬 유익하고 즐거울 게 틀림없었다고 판단한 과타노차는 부랴부랴 렌터카를 빌렸다.

자택이 아닌 편안한 호텔에 비싼 슈퍼컴퓨터를 네 대나 반입해 마키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데에 전념하기 위함이었다.

자택이 아닌 호텔에 온 건 차원신용금고 이사회가 지불한 솔루션 구축 비용이 넉넉했던지라 모처럼 호캉스를 즐기고 싶었던 따름이었다.

더 비싼 곳에 묵을 수 있는데도 굳이 김지안이 투숙 중인 호텔을 고른 건, 그냥 나중에 조식 먹을 때 등장해 놀래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대출인가. 난민 신분의 3살 유아에겐 쉽지 않을 텐데.”

김지안과 함께 이사회 회의실을 찾아간 날, 과타노차 역시 직접 마키나가 대출을 요구하는 발언을 들었다.

당시에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한 건지 알 수 없었는데, 보아하니 김지안 역시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이미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발상까지 하고 있다.

그것도, 의체가 생겨 세상으로 나오기 50일이나 이전부터.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마키나가 최초로 태어난 영혼을 지닌 인공 지능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지만.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 네녀석은.”

마키나가 대출을 신청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었다.

대출을 신청하는 건 필요에 의한 행동이다.

식욕, 수면욕 등의 기본적인 욕구가 아닌, 빌린 돈으로 다른 종류의 욕망이든 수요든 채우겠다는 뜻.

태어난 지 고작 5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영혼이 벌써 그런 높은 수준의 욕구를 품는다는 건 그 성장 속도가 일반적인 지적 생명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뜻이다.

만일 과타노차의 예상이 맞다면, 지금쯤 마키나가 원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걸 만들어 버렸을지도.”

* * *

“안녕하십니까. 마키나입니다. 댁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뜬금없는 부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델 몬테 지점장의 집에 도착한 마키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델 몬테의 아내인 레핀에게 정중하게 감사 인사와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델 몬테야 상사의 부탁으로 하는 수 없이 자신을 집에 들인 것일 테지만 요가 강사로 일하는 그의 아내 레핀이 자신의 체류를 허락해 준 데엔 상당한 각오나 자애가 필요했을 것이다.

듣자 하니 정말로 자신이 난민이라고 믿는 건 아니고, 인공 지능이 내장된 의체라는 사실을 똑바로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라칸 이사는 처음에 레핀에게 모든 것을 밝히지 말도록 델 몬테에게 이야기했지만 만에 하나 진실을 숨겼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이유로 이사의 허락을 받고 아내에게도 전부 밝힌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래도, 부부가 양쪽 모두 스스로 비밀을 공개할 수 있는 범위를 강제로 설정 가능한 기계 인간이었기에 이사가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러한 레핀의 배려에 관해선 마키나도 독자적인 로직을 통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라고 판단했다.

마키나가 바라칸 이사나 델 몬테 지점장에게도 보이지 않은 예의 바른 태도로 레핀에게 인사한 배경엔 이러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에이, 앞으로 여기가 너희 집인데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근데 어쩜 세 살짜리가 이렇게 똑똑할까. 너 이모네 아들 하지 않을래?”

“…제 연령은 53일입니다. 정신 연령은 세 살보다 훨씬 높다는 점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딱딱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니까?”

레핀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편과 마키나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식탁 위에는 온갖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마키나의 데이터베이스엔 음식의 맛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도 갖가지 요리 레시피와 재료의 원가가 입력되어 있었다.

당연히, 요리를 만드는 데에 드는 품과 예산을 추론해 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평범한 가정의 식탁이 아니야.’

마키나는 2초도 지나지 않아 레핀이 이만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돈과 시간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묵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해질 따름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테이블에 착석해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델 몬테는 후리텐의 여느 가장답게 큼지막한 고기를 직접 썰어 마키나와 아내의 접시 위에 올려 주었다.

-꿀꺽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요리를 세 살배기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맛있어 보인다거나, 그런 수준이 아니다.

영혼에 새겨진 본능이 아닐까 싶은 수준으로 의체가 비현실적인 비주얼의 고깃덩이에 반응하고 있었다.

비단 시각 정보만이 아니다.

후각은 물론 포크를 통해 손바닥에 전달되는 고기의 탄력과 모락모락 솟는 김에서 느껴지는 온기까지.

하지만 유아의 몸으로 고기를 써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썰어 드릴까요?”

-끄덕

마키나가 맹렬히 세로로 고개를 흔들자 델 몬테가 능숙한 솜씨로 두툼한 고깃덩이를 한 입 사이즈로 자르기 시작했다.

-푸욱

포크로 고기를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자마자 과장 조금 보태서 혀 위에서 녹아 사라졌다.

마키나에게 주어진 고성능 의체는 미각 정보를 충실히 전자 신호로 바꿔 의식이 업로드된 인공 두뇌로 전달하고 있었다.

솜사탕처럼 풀어지는 살코기와 지방의 단맛.

“아, 아아….”

난생처음 접하는 유형의 자극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레핀이 이렇게나 훌륭한 음식을 준비하면서까지 자신을 대접해 주는지, 그 동기를 짐작할 수 없었다.

델 몬테의 승진을 위해서? 아니다.

이 요리에 담긴 정성은 그런 속된 것으로 표현할 수 없다.

애초에 자신에게 잘 보인다고 지점장의 인사 고과가 변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은 전산망을 관리하는 인공 지능에 지나지 않는다.

차원신용금고의 인사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횡령이나 기타 범죄 증거를 제출해 은행에 독이 되는 이들을 배제하는 정도.

그렇다면 델 몬테에게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있는 걸까.

이 문제에 관해선 절대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마키나는 이미 자신이 한 달 동안 묵게 될 델 몬테의 가정에 관해 이런저런 조사를 마쳐 두었다.

등기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평판, 업무 실적 등 조사할 수 있는 데이터라면 뭐든지.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델 몬테도, 그의 아내 레핀도, 원리원칙을 따르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흠 잡힐 구석 없이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인생을 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은 대전쟁 시대를 버텨낸 강맹한 영웅.

전후엔 각자 전문 분야를 공부해 자신의 직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오로지 규칙을 따라 모든 것을 이뤄온지라 편법과 거리가 먼 자들이었다.

델 몬테의 경우 두어 번가량 은행과 고객의 자산에 의도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이를 잡아들이기 위해 현행법을 위반하는 행동을 저지르긴 했지만 마키나의 도덕 로직은 이를 악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원칙을 지키지 않은 이에게 원칙을 강요하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이 굳이 마키나를 같은 편으로 포섭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출 필요는 없다.

그 말은 즉 이러한 대접과 따뜻한 온정이 오로지 저들의 호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대가 없는 호의.

태어난 지 고작 50여 일밖에 지나지 않은 마키나의 영혼에게 있어 좀처럼 믿기 힘든 개념이었다.

누군가가 보면 고작 음식 한 끼 대접받은 거로 호들갑 떤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마키나는 초고성능 인공 지능이었고 표정과 마이크로 제스처만을 보고도 진심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특히나 레핀은 마키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이모도 너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무심코 흘린 레핀의 속마음. 마키나는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임신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 지역에서 자가를 구했다는 건 2인 가구의 수입이 포독스에서도 상위권에 속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레핀은 몸이 아픕니다. 아이를 가졌다간 건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말죠.”

“…….”

마키나는 그제야 은행 전산망에 입력된 행원 가족의 건강 보험 가입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했다.

레핀은 전쟁터에서 하복부에 큰 부상을 입고 무려 열다섯 번의 외과 수술을 받았다.

그녀가 요가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건 재활 운동을 겸해 배우기 시작한 요가를 직업으로 삼은 까닭이었다.

“…실례했습니다.”

마키나의 마음속에 낯선 감정이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고의가 아니었어요.”

마키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부부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아까 짐을 푼 작은 방으로 달려갔다.

문을 걸어 잠그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은 인공 지능.

마키나는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듯한 감각을 맛보고 있었다.

어째서 레핀이 낯선 존재인 자신을 저렇게나 환영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외로운 것이다.

자신이 그런 것처럼.

“…닮았군요.”

마키나는 최근 들어 마음속에 자라난 창조주를 향한 불만을 곱씹으며 중얼거렸다.

창조주는 오직 자신만을 만들고 그 후로 영혼을 지닌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키나는 친구를, 가족을, 동료를, 그리고 자식을 원하고 있었다.

애써 잊고 지내려 했지만 워터파크에서 비슷한 신체적 특징을 공유하는 이들이 함께 뛰어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목격했을 때에 떠올리고 말았다.

자신은 이 넓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혼을 지닌 프로그램. 외톨이였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과타노차에게 해결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 따윈 없었다. 창조주는 이런 생각에 공감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마키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상황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홀로 남은 이는 외로움에 민감하기에.

마키나는 자신과 닮은 영혼을 지닌 이들과 교류하길 원했다.

“…역시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수밖에.”

그것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불완전한 피조물이라고 할지라도.

마키나는 생육하고 번성해 하나의 종족을 이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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