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65화

키키와이 경찰청에서 출동한 폭발물 처리반이 뇌관이 잘려 나간 로켓을 처리한 지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신혼부부를 데리고 은행 밖으로 나왔다.

짧은 대화였지만 대략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진 파악할 수 있었다.

‘장인어른일 겁니다. 아니면 아내의 다른 형제일지도.’

‘난 오빠네 누나들 짓인 줄 알았는데?’

서로 상대의 집안이 암살자를 고용한 게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은 어떤 의미에선 신혼부부답게 날카로운 대립을 이어 가고 있었다.

“벌써부터 삐걱대는데 괜찮으려나요.”

내가 묻자 엘라마가 정색하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네가 결혼을 안 해 봐서 모르는 거다. 신혼부부 중에 상대 가족 욕 안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기혼자셨군요.”

“왜. 꼽냐?”

“아뇨, 그 성격 감당하는 사모님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서.”

-퍽

“아악.”

엘라마가 내 허벅지에 니킥을 꽂았다. 아파서 주차장까지 경찰들 엄호받으며 걸어가는 내내 절뚝거려야만 했다.

경찰들 웃음 참는 거 다 봤다. 킹받네, 증말.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솔선수범해 두 사람을 차에 태운 건 라즈마 과장이었다.

여러 대 세워진 업무용 차량 중 어디에 태울지 안 그래도 걱정이었는데, 먼저 나서 준 게 조금 의외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즈마 과장님이 저러니까 좀 신기한데.”

저 양반이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위해 찾아온 고객을 제외한 누군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어쩌다 암살자가 노리는 두 사람을 스스로 에스코트하겠다고 나선 걸까.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였다. 내가 중얼대는 걸 듣고 옆을 지나가던 아이작이 대답한 건.

“왜. 차에 또 무서운 거 날아올지도 모르잖아. 저 사람 인성이면 우리한테 짬 때렸을 것 같은데. 최소한 자기가 운전하려 들지 않는 게 자연스럽다고.”

“글쎄. 내 생각엔 일부러 저러는 것 같다만.”

아이작은 무슨 생각인지 직접 운전대를 잡고 날 조수석에 태웠다.

차 문을 닫고 업무용 차량이 줄지어 출장소 주차장을 나서기 시작한 다음에야 녀석은 마저 말을 이었다.

“자신은 언데드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는 거겠지.”

“듣고 보니….”

“이렇다 할 리스크 없이 도박이 가능한 거지.”

“도박… 그런 거였군.”

대충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

“부잣집 도련님이랑 아가씨니까 보험 걸어 두는 거군.”

당장 돈 없다고 은행에 대출받으러 오는 사람이어도 미래의 고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도움을 주려 하는 거겠지.

역시 셈이 빠른 남자다.

언젠간 집안의 재산을 물려받아 자신에게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상담하도록 할 생각인 거다.

아마 지금쯤 차 안에서 잡담하는 척 이것저것 정보를 캐려 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벌써 자신이 위험한 역할을 도맡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노골적으로 영업을 시작했거나.

이미 한 번 죽은 몸이니까 암살에 휘말리게 되더라도 잃는 게 없어 가능한 짓이다.

같이 있던 부부가 죽어도 자신이 문책당할 일은 없고 성공한다면 미래의 큰손 고객을 얻을지도 모르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애초에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발상.

십여 년은 더 있어야 자기 고객이 될지도 모르는 젊은 부부에게 벌써부터 영업을 거는 걸 보니 시간관념이 나 같은 인간하곤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일단은 가 보자고. 고객님들 죽게 놔둘 순 없으니까.”

그렇게, 위기에 처한 은행원들이 모는 검은 세단의 행렬이 키키와이의 해변가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

“…그러게.”

엘라마 이 인간은 목적지 왜 안 알려 주는 건데.

불안하게시리.

* * *

바이나우스와 레오니아브 가문의 본가는 그레이트 후리텐의 북부와 남부 끝에 각각 위치하고 있었다.

두 가문은 전해져 내려오는 초콜릿 제작의 비법부터 사용하는 카카오 원두의 산지와 종류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다른 건 비단 초콜릿과 관계된 것들만이 아니었다.

저택을 세울 때 레퍼런스로 사용된 건축 양식, 애용하는 시계의 브랜드, 만년필, 그리고 입는 옷까지.

서로를 혐오하는 만큼이나 그들은 모든 면에서 상대와 차이점을 두려고 했다.

혁신을 추구하는 레오니아브와 전통을 강조하는 바이나우스.

그들의 선조에 관한 이야기는 비단 호사가만이 아니라 여러 차원의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한때는 작은 가게에서 함께 일하던 그들이 어느샌가 업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고급 초콜릿 프랜차이즈가 된 그들에겐 어두운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악마와 계약했다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와 거래했다는 이야기라든지.

라이벌 관계가 이어지는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뒷세계의 인간을 고용해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있다든지.

물론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단기간에 브랜드 평판과 가맹점의 숫자를 쌓아 올리며 성공 신화를 쌓은 두 가문을 질투한 이들이 꾸며댄 것이었다.

하지만 두 가문의 구성원은 세간의 소문 중 일부가 진실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부단히 달콤한 초콜릿으로 세상을 유혹함으로써 가문의 이름을 포장했다.

배후에선 계속해서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면서 말이다.

“해묵은 앙숙입니까. 가문 단위로 원수지는 일은 흔치 않은 것 같은데. 200년 동안 대대로 증오를 물려받는 건 조금 비현실적인 게 아닐까 싶군요.”

“직접 전쟁을 경험한 세대보다 나중에 태어난 세대가 적국을 더욱 미워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잖아요.”

“…….”

왠지 모르게 많이 들어 본 얘기 같다. 기분 탓인가.

“게다가 이미 레오니아브와 바이나우스의 불화는 브랜드 가치 형성에 여러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라이벌 구도를 좋아하며 양쪽의 상품 모두 구매한다는 걸 깨달은 이후론 계속해서 자신들의 역할에 몰입하더라고요.”

“꼭 프로레슬링 같네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것 같다.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며 살아온 두 집안은 어느샌가부터 자신들의 역할에 과도할 정도로 몰입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상업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퍽이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 결과, 이 두 남녀의 자유연애와 결혼 시도가 방해받게 되었다.

자기 가족에게까지 암살자를 보내게 되는 걸 보니, 과몰입은 굉장히 해로운 게 틀림없다.

“그나저나 여기 진짜 써도 되는 건가요?”

느긋하게 앉아 있던 엘라마에게 묻자 그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본점에 미리 얘기해 두었지.”

“용케 허락해 줬네요.”

“당연하지. 저번에 VVIP 고객님이 호텔에서 암살당할 뻔했는데. 이번에도 누가 다치면 행장에게 직접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 네. 그러셨구나.”

양아치가 따로 없군.

물론, 아군이니까 이럴 땐 환영이다.

“그래도 두 분께서 안심하고 계셔서 다행이에요.”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는 충분히 이들 부부에게 안심감을 주기 충분한 곳이었다.

우리가 안가로 고른 시설은 호화로웠고, 사방이 뚫린 창밖에 보이는 건 오로지 바다뿐.

주위에 건물이라곤 우리가 있는 10층짜리 리조트 호텔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 위에 뜬 자그마한 섬.

주위에 선박이 돌아다니지 않는 이곳에는 충분한 식량과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건 시설을 관리하는 인원이 전부.

황금연휴인지라 사람이 북적대긴 하는데 모두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다.

관리자들 역시 몇 번씩 여기 와 본 엘라마와 다른 두 과장이 얼굴을 알고 있다.

이런 곳까지 암살자가 숨어드는 건 아마도 어렵겠지.

상황이 정리될 때까진 우리도 여기서 푹 쉬면서 업무를 볼 생각이다.

테러에 당한 직후 바로 은행에 출근하긴 좀 그렇잖아.

이런 까닭에 나는 이따 다른 행원들이랑 함께 차원 관문을 통해 전산 단말 등 중요한 물건을 이쪽으로 옮겨 올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딘가 하면.

바로 키키와이 모처에 위치한 전용 안가였다.

정확히는, 본도에서 배로 30분 걸리는 무인도에 위치한 차원신용금고 행원과 관계자만이 출입 가능한 리조트.

언제 암살자에게 감시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디젠과 미놀리 부부를 무사히 피신시키기 위해 엘라마가 택한 방법은 조금 극단적이었다.

사전에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은 외진 지하 주차장에 저번에 써먹은 이동식 차원 관문을 설치.

그리고 나서 업무용 차량 네 대를 차례차례 통과시켰다.

마지막으로 차원 역장을 차단하는 텐트를 회수하고 관문을 폐쇄하면 끝.

닫힌 관문은 같은 주차장에 세워 둔 낡은 용달차에 실어 한동안 키키와이 각지를 돌아다니게 만들어 두었다.

암살자가 찾아와도 그 자리에는 무엇 하나 남아 있지 않으니 추적은 불가능할 터.

정리하자면, 차원 관문을 건너온 곳 또한 우리가 출발한 6-2차원 키키와이였다.

차원 관문으로 꼭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같은 차원으로 이동할 때에도 긴급 시엔 사용이 가능하다고, 본점과 키키와이시 정부의 허가를 받아 뒀으니 문제가 없다나 뭐라나.

-철썩

-차르르

파도가 모래 위를 휩쓰는 소리가 들려오는 이곳은 본도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은행 소유의 무인도.

본래는 행원 복지 차원에서 장기 휴가 때마다 이용 가능한 리조트로 본점의 높으신 분들도 오는 곳인지라 상당히 공들여 관리되고 있었는데.

엘라마가 본점 간부들에게 저번 나노이 사건을 들먹여 행원과 고객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언제든 차원 관문을 통해 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다.

처음부터 차원 관문을 통해 무인도로 가지 않고 굳이 차에 태워 신혼부부를 대피시킨 건, 혹시라도 암살자에게 은행을 공격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판단.

이중으로 암살자에게 혼란을 준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준비를 마쳐 둔 건진 모르겠지만, 과연 최연소 차장의 자리는 고스톱 쳐서 딴 건 아닌 듯했다.

그 짧은 순간에, 이런 꼼수를 생각하다니.

저런 잔머리는 확실히 본받을 만하다.

숙소와 요리, 그리고 다른 여러 서비스들 모두 어지간한 키키와이의 고급 호텔에 꿀리지 않는 행원 전용 리조트.

과연,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 건지 아디젠과 미놀리 부부는 나와 달리 두리번대는 일 없이 차분하게 티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대출 심사를 진행하는 동안은 이곳에서 안전하게 묵으실 수 있을 겁니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대출 한번 받으러 왔다가 암살 시도에 직면하는 건, 웬만해선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나마 이곳이 외부와 격리된 섬이고, 키키와이와 여길 오가는 정기 연락선도 전부 지정된 인원만이 탑승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어 안심하고 있긴 하다만.

이것도 아까 전까지 나랑 아이작이 라운지에서 맛있는 거 먹이면서 둘을 달래느라 진땀 좀 뺀 덕에 가능했던 거고.

뭐, 설명이야 그럴싸하게 해 두었지만, 다시 암살자가 찾아오면 곤란하다.

대출 심사 준비하면서 가능한 한 대비해 두는 수밖에.

“이따 은행 들를 때 감시카메라에 찍힌 영상 가져와야겠어.”

내 곁을 소리 없이 부유하던 콜로서스와 아이작이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긴가.”

추적 장치를 켜 타깃의 위치를 확인한 요하네는 멀리 떨어진 섬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일반적인 인간의 시력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무인도.

하지만 그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시력으로 섬에 세워진 건물을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망원경처럼 늘어난 안구 덕이었다.

“변신하면 연락선에 탈 수 있겠지만, 그래 갖곤 재미가 없지.”

자유롭게 신체를 변형시키는 특수한 종족의 후예인 요하네에게 있어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세상 어디에도 내게서 안전한 곳은 없다는 사실을 알면 무슨 표정을 지으려나.”

난공불락의 요새에 숨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타깃에게 겁을 주어 부부의 관계를 파탄 내는 것을 상상하니 제법 흥분되었다.

“안심해. 당신들을 죽이진 않을 거니까.”

사디스트 암살자는 남들이 보든 말든 옷을 입은 그대로 모래사장을 걸어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누가 보면 자살하려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 행동이지만.

갑작스레 그의 등에서 솟아나기 시작한 지느러미가 이를 부정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지느러미는, 벌써부터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꿈틀대고 있었다.

“죽도록 무서운 악몽을 꾸게 할 뿐이지.”

머지않아 혼란에 빠질 사냥감들을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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