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64화

은행 습격이 발생한 지 15분이 지난 즈음.

키키와이 동부에 위치한 모 빌딩 지하 주차장에선 두 사내가 만남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은행에서 대전차 로켓을 발사한 오크 암살자, 요하네.

나머지 하나는 그에게 몇 년째 무기를 판매 중인 어인魚人 암거래상, 가가멜이었다.

“이야, 대단해. 어떻게 그런 감쪽같은 가짜를 구해 왔대?”

“영업 비밀을 쉽게 알려 줄 순 없지.”

사실과 달리, 요하네는 폭발하지 않은 로켓을 가짜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에 만족을 표하고 있었다.

그가 받은 의뢰는 아디젠과 미놀리에게 겁을 주어 이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절대로 대상을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이 의뢰인의 당부.

고로, 요하네는 어디까지나 그들을 놀래키기만 할 생각이었다.

암살을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없는 대신 계속해서 경찰의 추적을 피해야 하니 평소보다 난이도가 높은 임무.

이런 종류의 스릴을 즐기는 그에게 있어 이번 일감은 나쁘지 않은 여흥이었다.

다만, 요하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기상 가가멜의 표정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어떻게 된 거지. 은행과 함께 두 연놈이 날아갔어야 했던 건데.’

요하네가 우연히 바이나우스와 레오니아브 집안 사람들에게 각각 두 연인을 찢어 놓으라는 의뢰를 받은 것처럼, 가가멜 역시 다른 이의 사주를 받고 있었다.

‘기억해 두세요. 그 둘은 가족에게 암살당하는 겁니다. 피붙이가 부리는 암살자의 손에 죽게 되다니, 비극이 따로 없군요.’

가가멜에게서 요하네의 새로운 일거리에 관해 들은 ‘그 남자’는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을 들이밀었다.

무기 상인인 가가멜이 요하네와 거래할 때 그에게 살상력을 지닌 무기를 주도록 말이다.

“…….”

가가멜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사내에게 막대한 액수의 빚을 지고 있었다.

사채를 탕감해 주겠다는 유혹을 거부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제안을 거부한 사람이 이 얘기를 퍼뜨리게 두는 것보단 당장 빌려드린 자금을 전부 회수하는 쪽이 리스크가 덜하겠죠.’

-파스스

사내가 탕감을 조건으로 내민 제안을 거절한 고객은 동결 건조되어 바스러지고 말았다.

자신에게 돈을 빌려 간 고객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모습을 보고 나니 두려움이 앞섰다.

‘도와주실 거죠?’

타깃에게 겁만 주도록 요구받은 요하네에게 살상력을 지닌 ‘진짜’ 무기를 제공하도록 요구받은 가가멜은 사채업자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자신과 몇 년이나 함께 일해 온 요하네를 배신하게 되는 것이라고 해도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다음은 뭘 써 볼까? 죽거나 다치지만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놀려먹어도 되는 거잖아?”

아무것도 모른 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요하네의 얼굴을 보며 가가멜은 착잡한 속내를 감췄다.

요하네에겐 미안하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어때.”

가가멜은 챙겨온 금속제 슈트 케이스를 열어 안에 고정되어 있던 약병을 꺼냈다.

“두드러기, 발진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물건이야.”

“가벼운 독극물이다, 이 소리지?”

“그래. 소량의 경구 투여 갖고 죽진 않아.”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병에 들어 있는 무색무취의 액체는 치명적인 독극물이었다.

요하네는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니, 이 독을 타깃이 입에 댈 음료나 음식에 섞을 것이고 지효성 독은 두 타깃을 죽음으로 이끌 것이다.

만일 요하네가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다면 너무 많은 양을 투여한 거라고 둘러대거나 타깃의 체질을 탓하면 된다.

요하네에게 이번 일을 맡긴 의뢰인은 두 명이다.

그들이 요구한 사항은 ‘겁을 주어 두 사람이 이혼하게’ 만드는 것이지 죽이는 게 아니다.

요하네는 뒷세계에서 널리 알려진 거물 암살자이고 몸값 역시 비싸다.

그에게 일을 맡겼다는 건 의뢰인 역시 상당한 지위와 재력을 가진 이라는 뜻이다.

죽이는 대신 이혼하고 싶어질 정도로 겁만 주라는 의뢰는 상당한 섬세함과 용의주도함을 요구한다.

오히려 암살자에게 있어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의뢰.

그만큼 프로 중의 프로인 요하네를 고른 것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요하네가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둘을 찢어 놓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인다면?

그의 명성은 땅에 추락할 것이며 의뢰인은 책임을 물으려 할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암살자를 고용해 요하네를 추적하려 들지도 모른다.

확실히 꼬리를 자르기를 위해서, 혹은 죽여서는 안 되는 타깃을 죽인 암살자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그렇게 되면 요하네에게 자신을 찾아와 따질 여유 따윈 없을 것이다.

“너무 심하게 굴진 말라고. 죽어 버리면 곤란해진다면서.”

“노력해야지. 이런 재밌는 일감 흔치 않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요하네는 의뢰인에게 추적당하게 될 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요하네가 자신을 원망한다 해도 달리 방법이 없다.

“필요한 거 생기면 다시 연락할게.”

요하네는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차에 올라탔다.

가가멜은 매연을 뿜으며 멀어지는 세단을 지켜보며 표정을 구겼다.

오랫동안 이어진 단골과의 관계를 끝낼 때가 오고 말았다.

“티켓부터 끊어야겠군.”

이번 일로 요하네가 죽지 않기를.

궁지에 몰릴 그가 자길 죽이러 오지 않기를.

그렇게 바라는 게 가가멜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 *

“흥미롭군요.”

가가멜의 연락을 받은 사채업자 하텐은 작게 웃으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예상대로 쉽게 회수해 갈 수는 없나 보군요.”

오래전, 그는 차원신용금고의 전신인 디스파테르신용금고에서 퇴출되었고 생존을 위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직 은행원이 사채업자로서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텐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뒷배와 계약을 맺었다.

‘당신의 힘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라도.’

그는 수많은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고가의 이자 혹은 담보를 회수하며 자산을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 이상으로 그가 사랑했던 건 금기를 범한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지성체들의 영혼이었다.

-지이잉

하텐이 권능을 사용하자 공기 중의 수분이 저절로 모여 작은 얼음덩어리로 변했다.

투명한 얼음 조각 안에는 나이 든 고대 엘프의 얼굴이 보였다.

강렬한 감정을 품은 채 사망한 오래된 영혼.

그가 빌려주었던 돈의 액수 이상의 가치를 지닌 이 영혼은 33차원에서 돈을 돌려받는 대신 회수한 것이었다.

원래 목적대로 세계수에 깃든 별의 신령을 빼앗는 건 불가능했지만, 살다 보면 분명히 다음 기회가 있을 터.

“흐흠.”

하텐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허공에 생겨난 얼음 조각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톡

금이 간 얼음 조각에서 새어 나온 영혼의 정수가 위스키가 담긴 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직무권능에 더해 신의 대척점에 위치한 존재와 계약해 얻은 힘은 강력했지만, 하텐을 완전히 타락시켰다.

그는 더없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목적은 쾌감 외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아아….”

황홀하다는 듯 엘프의 정수가 녹아든 술잔을 바라보고 있던 하텐은 단번에 그것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화아악!

하텐의 주위를 맴돌던 냉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온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하텐의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얼음의 악마에게 저주받은 영혼은 평범한 인간처럼 자극을 느낄 수 없게 변한다.

수백 년은 족히 되는 기나긴 세월 동안 무료함을 견디며 살아온 그에게 있어 유일한 즐거움은 바로 타인의 영혼을 탐하는 것.

“쓰고, 맵군요. 숙성된 감정은 언제나 옳습니다.”

도수 높은 술을 들이켰을 때처럼 강렬한 기운이 목구멍과 코를 뚫고 나왔다.

빼앗은 고대 엘프의 영혼이 생전에 경험했던 갖은 감정이, 삶의 잔재가 하텐의 안에서 소용돌이치다 사라졌다.

신목주교가 품고 있던 탐욕, 분노, 그리고 좌절까지.

복잡다단한 풍미를 자랑하는 독한 포도주와 같은 맛이 입안을 감돌다 배 속으로 흘러 들어가며 크나큰 만족감을 남겼다.

찰나의 즐거움.

하지만 이 행위만이 하텐에게 생生을 실감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타인의 생명을 대가로 그 어떤 환락이나 약물보다 강력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능력.

하텐은 자신이 먼 옛날 계약한 상대와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자조 섞인 웃음을 뱉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머지않아 음미하게 될 새로운 영혼에 대한 기대감이 그를 고양시키고 있었다.

“200년 동안 완벽하게 숙성된 영혼의 맛. 기다려집니다.”

술과 함께 삼킨 영혼의 영향으로 아련한 추억들이 하텐의 머릿속에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바이나우스와 레오니아브의 시조가 제각기 자신들의 가게를 열기 전의 이야기.

그들이 갈라서기 전, 작은 점포에서 함께 카카오 원두를 가공하던 시절의 이야기.

둘의 사이에 끼어들어 관계를 부수고, 창업을 위한 자금을 빌려준 건 하텐이었다.

빚을 제때 돌려받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변덕이었다.

한 번 깨진 관계가 몇 대에 걸친 원한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당시의 하텐을 부추겼다.

“완벽한 선택이었어요. 당신들을 고른 건.”

모든 것은 하텐이 원했던 대로 흘러갔다.

셀 수 없는 하텐의 개입에 의해 두 가문의 악연은 수백 년 동안 이어졌고, 시조가 세상을 하직한 이후에도 후손들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골은 계속해서 깊어져 갔다.

그 누구도, 자신들의 조상이 악마의 힘을 지닌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계약서는 여전히 유효했고, 마법으로 처리된 금고 안에 잠들어 있다.

돈을 빌린 당사자가 죽어도 후손들이 이자까지 모든 빚을 상환해야 하는 것이 계약의 내용.

만일, 거부한다면 문답무용으로 그들의 영혼을 징수할 수 있다.

애초에 제대로 갚으려 해도 장장 200년 동안 쌓인 복리를 감당할 수는 없는 법.

이번 일만 끝나면 최고로 감미로운 술이 완성될 것이다.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불상사란 바로.

아디젠과 미놀리의 결혼으로 인해 두 가문이 오랜 원한을 버리고 다시 손을 잡는 것.

“…뭐, 별일 없겠죠.”

바이나우스와 레오니아브는 최고의 암살자를 고용해 집안의 막내들을 갈라놓으려 하고 있다.

죽이지 않고, 겁만 주어서.

그러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암살자의 계획에 개입해 둘을 이혼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이겠다는 것이 하텐의 계획이었다.

두 사람이 암살자의 ‘실수’로 죽게 된다면 그동안 법률과 체면에 의해 묶여 있던 양가의 증오는 둑을 부수고 터져 나올 것이다.

그때가 바로, 하텐이 고대하던 ‘수확의 날’.

자신은 때를 기다렸다가 완벽하게 준비된 영혼들을 회수하면 된다.

첫 암살 시도가 어쩌다 실패한 건진 모르겠지만, 상대가 요하네인 이상 두 남녀를 지켜 낼 수 있는 자는 없을 터.

33차원에선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차원신용금고의 행원들에게 방해받았지만, 이번엔 확실히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200년 동안 기다려온 한 잔….”

빈 잔 너머로 보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얼음의 마인은 조용히 군침을 삼켰다.

“과연, 어떤 맛이 날까요.”

머지않아 손에 들어올 먹잇감이 가져다줄 행복을 상상하는 그의 얼굴엔 섬뜩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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