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58화
창구상담사 플루토의 친언니인 오커스 디스파테르가 키키와이에 온 건 금요일 저녁.
일반적인 가족이라면 언니가 동생을 만나러 오는 건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속한 집안은 좀 더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었다.
6-2차원을 비롯해 범차원 세계에는 여러 명문가가 존재했다.
오랜 옛날 ‘마’ 자로 끝나는 성씨를 부여받고 만민이 표면적으로나마 평등해진 지금도 지위를 지키고 있는 옛 귀족은 물론.
그들에게 지위를 내렸던 구시대의 지배자인 신들 역시.
제각기 자식을 낳아 가문의 명맥을 이어왔다.
디스파테르 가문의 후예인 두 자매는 12차원에 뿌리를 둔 신의 핏줄을 잇고 있었다.
다만, 오커스와 플루토는 여느 같은 세대의 신들처럼 개방적인 교섭을 선호하던 윗세대의 무책임한 행동 탓에 각자 다른 이를 어머니로 두었지만.
흔히 말하는 배다른 자매.
하지만 그렇다고 적통과 사생아를 나눌 수는 없었다.
12차원에서 통용되는 법의 기틀을 다진 건 옛 신들이었고, 그들은 오래전부터 중혼을 허락하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신의 혈통을 물려받은 위대한 존재.
그리고 이런 핏줄을 이은 새로운 세대에겐 윗세대의 입김이 작용하기 마련이었다.
결국,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내고 있던 오커스와 플루토는 공공연하게 가문 내에서 파벌 싸움을 벌이던 어른들의 손에 의해 갈라지고 말았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건 오커스를 위시한 집단이었고, 차기 당주로 플루토를 추천하던 원로들은 권력을 잃었다.
애초에 원인은 플루토가 그쪽 방면에 뜻을 두지 않은 데에 있었지만.
그렇게 두 사람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집에 살고 있어도 심리적인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관계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특히나 입장이라는 것이 생기고 만 이상 오커스는 쉽게 동생인 플루토를 친근하게 대할 수 없었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래서, 언니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을까?”
그걸 알고 있던 플루토는 못내 반가운 마음을 감추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그동안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은 오커스에게 약간의 섭섭함을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건….”
모든 이들의 앞에서 늘 당당하게 행동해 온 오커스지만 동생의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됐어. 언니는 몰라도 나는 보고 싶었다는 것만 알아둬.”
당돌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플루토는 다시 씨익 웃고는 오커스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왔다.
현세에 강림한 여신이 거하는 장소치곤 굉장히 검소한 장소.
TV와 가전제품 몇 가지, 그리고 노트북과 게임기 외엔 이렇다 할 물건이 보이지 않는 비좁은 거실을 보고 오커스는 말을 잃었다.
오커스는 합병 이전 디스파테르 신용금고를 이끌었고 지금도 차원신용금고 행장의 자리를 지키는 사회 고위층.
게다가 그녀는 돈을 딱히 아끼고 다니기보단 의식적으로 자신의 부를 흩뿌리기 위해 노력하는 유형의 여신이었다.
“생각보다 비좁군.”
“나보고 맨날 이쪽 세상에서 생활하는 데에 익숙해지라고 하던 사람이….”
“내가 사는 집은 물려받은 게 아니라 직접 돈을 벌어 산 것이다만.”
“알겠어. 하여튼 잘난 척은. 옷 좀 편한 거로 갈아입을래?”
플루토가 말하자 오커스는 자신과 동생의 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현재 입고 있는 복장은 평소처럼 타이트한 정장 바지에 3피스 슈트.
심지어 가죽 장갑까지 끼고 있다.
“음….”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느라 땀이 찬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
허나 오커스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여행 가방에 들어 있는 건 전부 지금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옷이었으니까.
“혹시 또 같은 옷만 챙겨온 거야?”
플루토가 허탈한 표정으로 묻자 오커스는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 집 들를 생각인데도 정장만 챙겨오는 사람은 언니밖에 없을 거야.”
“딱히 오래 있을 생각은….”
“와, 오랜만에 만났는데 사람, 아니, 여신 엄청 섭섭해지려 그러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플루토는 언니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오커스에겐 묘한 고집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적인 때와 사적인 때를 가리지 않고 남의 앞에 설 때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려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살아온 세월과 달리 젊은 외모를 유지하는 여신인 그녀는 은행을 이끌기 위해 강인한 면모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이 복장은 그런 다짐의 발로였다.
거대한 조직인 차원신용금고를 이끌기 위한 결심 그 자체.
그래도, 타인이 아닌 가족의 앞에서라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행동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작은 바람이 플루토에겐 있었다.
굳이 그것을 입에 담진 않았지만.
“일단 내 옷 좀 빌려줄까?”
오커스는 플루토와 자신의 몸을 번갈아 보았다.
플루토는 비교적 마른 편이었고, 자신은 그보다 굴곡이 있다.
다만, 둘의 키는 얼추 비슷하다.
후줄근한 평상복이라면 못 입을 일도 없을 것이다.
-끄덕
“자. 여기. 츄리닝.”
…그런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
“어… 좀 끼네?”
“…….”
“아니야. 언니 살 안 쪘어. 안심해. 내가 사이즈 작은 거라니까. 봐봐, 허리랑 종아리 남잖아. 다른 데가 너무 꽉 끼는 거라고. 안심하래도?”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체형의 차이 탓에 옷을 갈아입는 데에 고초를 겪은 오커스는 지친 듯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영차.”
-털썩
그 옆에 나란히 붙어 앉은 플루토는 친언니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살포시 기대고는 대화를 이어 갔다.
“좀 순서가 이상해지긴 했는데, 키키와이엔 무슨 일로 온 거? 얼마 전 공항 쪽에서 언니 기운이 느껴지길래 분신 보냈는데 금방 돌아갔더라고.”
“아아. 그건, 엘라마에게 빌려줄 게 있어서 말이다.”
“흠. 바빴나 보네.”
디스파테르의 차기 당주로 선택받은 이후로 계속해서 교육을 받아 온 탓에 남성적인 말투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언니가 못마땅한지 플루토는 혀를 짧게 찼다.
“아직도 가족끼리 그런 말투 쓰기 있기야?”
“미안하다….”
은행과 다른 곳에선 카리스마가 넘치는 행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 그녀였지만, 나이가 조금 차이 나는 여동생 앞에선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플루토는 가만히 오커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미안하단 소리 그만해도 된다니까. 나 한 번도 언니 원망한 적 없어. 삼촌들이 잘못한 거지, 언니가 나한테 못되게 군 건 없잖아?”
“…….”
매번 이런 식이었다.
오커스는 업무와 연관된 것을 제외하고 모든 관계에서 서툴렀다.
그런 언니를 이해해 주는 건 언제나 동생인 플루토의 역할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그녀이기에,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바보이기에.
아무 예고 없이 집에 들어와 동생을 기다리는 상식 외의 행동을 취했음에도 플루토는 화를 내지 않았다.
애초에, 이 집의 비밀번호와 열쇠를 언니에게 쥐여 준 것도 플루토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플루토는 굳이 오커스에게 어른스러운 척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어릴 적 언니의 품에서 칭얼대던 것처럼.
“가끔씩 이렇게만 찾아와 줘. 지금은 그거면 돼.”
몇 년 만에 오커스와 나란히 앉아,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일 뿐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 키키와이 며칠 만에 다시 온 이유. 아직 못 들었는데. 나 보러 온 거 맞지?”
“음… 절반은?”
“쳇.”
너무나도 솔직한 오커스의 대답에 플루토는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왠지, 오커스가 굳이 집까지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사람 때문에 온 거지. ‘눈’을 가진 남자.”
김지안 대리.
플루토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고 오커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동생이 창구상담사 하는 와중에 아무도 모르는 화가 하나 데려와서 정규 행원으로 꽂아 두는 건 선 넘었지.”
플루토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가 아닌 걸 알면서도 오커스는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일 시작했을 때 같이 나왔으면 지금쯤 못해도 부장 직함 달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라곤 못 하겠네. 그랬으면 대머리도 내 밑에서 일하고 있었을지도.”
“대머리?”
“어. 엘라마 차장.”
-피식
동생의 투정을 들은 오커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꿈도 야무지지. 엘라마한테 일 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 사람 상사한테도 엄청 들이받아?”
“상사보단 부하를 훨씬 부드럽게 대하는 거로 아는데.”
“…부드럽게?”
플루토는 퇴근 전 서류철이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던 것을 떠올렸다.
엘라마를 대머리라고 부른 자신의 과오는 까맣게 잊은 뒤였다.
“사고방식이 부드러워서 노동 기준법을 무시하는 건가….”
“엘라마가?”
“어, 어어…. 아니야.”
플루토는 말꼬리를 흐렸다.
상대는 자신이 여신인 걸 알고도 험하게 대하는 유일한 인간이다.
행장인 오커스에게 고자질한 게 걸리면 무슨 짓을 벌일지 상상이 가지 않아, 키키와이 다차원 출장소에서 매일같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다차원 출장소 내에서 벌어지는 세 파벌의 신경전에 관해 각색을 조금 더해 오커스에게 이야기하는 게 플루토의 한계였다.
“예상은 했지만 쉽지는 않네.”
오커스가 자신의 친동생인 플루토의 정체를 숨기고 출장소에 심은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키키와이 다차원 출장소는 그녀가 진행하는 행내 융화 정책의 최전선.
세 파벌의 실세들이 충돌을 반복하면서도 결국은 하나의 팀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 초기 목표였던 만큼 이번 콜로서스 로보틱스 관련 대출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파벌 간의 자잘한 견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보고서를 통해 파악하고 있었다.
구C와 구E의 간부가 진행한 방해 공작의 증거를 얻은 덕에 두 파벌을 견제할 수단이 생긴 건 다행이었지만, 파벌 간의 경쟁을 완화한다는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렇기에 오커스는 궁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김지안은 어때? 잘하고 있어?”
자신이 직접 3-1차원에서 찾아낸, 특별한 힘을 가진 남자가 출장소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지.
“그 사람?”
뜬금없이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바싹 가까이 대고 묻는 언니가 부담스러웠던 플루토는 한 손으로 오커스를 밀어내며 되물었다.
“응.”
“신경 많이 쓰이나 보네.”
“엘라마가 출장소로 데려간 건 뜻밖이었어서.”
김지안은 충분히 유능한 인재였고, 그에 더해 세 파벌 간에 일어나는 불화를 억누르는 완충재로 삼을 수 있다는 게 부하들의 의견이었기에 행장인 그녀도 엘라마가 그를 출장소로 데려가는 것을 반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애초에 그녀가 김지안을 발탁해 특채 면접에 불러낸 데엔 실력이나 스펙 같은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걱정되는구나. 모처럼 언니가 ‘빼앗긴 눈’을 가진 인간을 찾아냈는데, 곁에 두지 못해서.”
오커스가 찬 안대를 플루토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기회를 봐서 데려갈까 해. 내 눈이 닿는 곳으로. 린딘의 본점으로.”
오커스는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의안이 차지하고 있는 한쪽 안와가, 결여의 흔적이, 오늘따라 유난히 쓰라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