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43화

키키와이 모처의 상가 건물 1층.

관리자의 허락 없이는 오직 필터링된 공기만이 오갈 수 있는 완벽하게 밀폐된 무균 공간.

태양의 자외선마저 창문의 특수 필름을 통해 걸러지는 이 공간에선 일반적인 크기의 지성체가 육안으로 절대 식별할 수 없는 작고 작은 생명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초고성능의 현미경으로도 확인이 어려운 그들은 이 좁고 좁은 상가 공간 안에 그들만의 생산 단지를 만들어 냈다.

아무리 작은 먼지라고 해도 이곳에서 일하는 나노이인들보다 크다.

사전에 김지안의 도움으로 설치한 정전기 그물이 없었다면 공장 건물에 비산한 먼지가 날아와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리라.

“가동부 점검 완료했습니다.”

“좋아. 단원자 금 반응로 냉각 상태 확인해.”

고작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완성된 공장은 바쁘게 가동되며 생산 준비를 마쳐 가고 있었다.

“프로토타입 외부 장갑 제작 공정 89% 이상 완료!”

“느려! 당장 내일이 출격인데 테스트할 시간도 없잖아!”

“서두르겠습니다! 14시간 이내에 내구도 확인 가능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10시간! 그 이상은 못 기다려!”

“예스 닥터!”

사우 박사의 지휘 아래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

콜로서스 로보틱스의 직원들은 한계를 넘어선 속도로 업무에 집중해야만 했다.

파일럿들이 가혹한 훈련을 하고 있는 만큼 그들이 탑승할 콜로서스를 제작하는 자들 역시 몸과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참이었다.

“반응로 이식 완료. 시험 가동 개시. 반응로 주위의 직원은 속히 안전거리를 확보하길 바람.”

강화 유리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반응로 시험실에 있던 직원들이 밖으로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오퍼레이터가 스위치를 눌렀다.

-기잉!!

바닥에 누운, 6-2차원의 지성체의 손바닥만 한 초거대 로봇 콜로서스의 프로토타입 기체의 눈에 불빛이 들어왔다.

“에너지 효율 양호. 단원자 금에 손상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터져서 공장 날아갈까 걱정했는데 31.0477%는 어떻게든 뚫었네.”

“그게 무슨 소리죠?”

“무슨 소리긴. 우리들이 68.9523%의 확률로 죽을 뻔했다는 소리지.”

“…확률이 그렇게 낮은데 왜 알려 주지 않으셨어요.”

“알면 안 할 거잖아?”

오퍼레이터는 그제야 떠올렸다. 사우 박사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종종 합법 카지노에 다닌다는 사실을.

“그럼 그걸 지금 굳이 말씀하시는 이유는?”

“너희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

“성공했으니까 됐잖아? 왜. 불만 있어?”

오퍼레이터는 고개를 젓고 다시 업무에 돌입했다.

초고성능으로 제작된 프로토타입의 카탈로그 스펙을 실현하기 위한 동력원은 나노이에서만 생산되는 특별한 황금, 단원자 금이었다.

특히나, 프로토타입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초거대 비행선의 동력원으로 사용되던 단원자 금을 꺼내 이식한 특수 반응로.

비행선이 사용하던 단원자 금은 콜로서스 한 대를 움직이기엔 과분할 정도의 에너지를 품고 있었지만 최대한의 성능을 보여 주기 위해선 방법이 없었다.

단원자 금은 특수한 보관 방법을 취해야만 하는데 반응로에서 꺼내 다른 반응로에 넣을 땐 열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이번 이식에 성공한 것도 사우 박사의 세심한 주의력이 이뤄낸 기적과도 같은 일.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력원을 잃은 비행선은 고철덩이와 진배없다.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비행선을 영영 사용할 수 없게 되니 배수진을 쳤다고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가상 신경망 동기화 기능 준비 완료!”

“파일럿의 뇌에 가해지는 자극을 확인해야 해. 충격 신호 시뮬레이션 바로 진행해.”

“전뇌에 백업해 둔 뉴런 네트워크 가동 시작하겠습니다. 실물 대뇌와의 유사성 99.8% 이상입니다.”

“역치는 최대로 조정.”

“최대로 말입니까? 일반인이 견딜 수 있는 영역이―”

“아프로 씨라면 가능해.”

잘라 말하는 사우 박사의 말에 작업 중이던 오퍼레이터가 말을 잃었다.

“버틸 수 있을까요?”

“못 버티면 죽겠지.”

“…….”

“안 맞으면 되는 거잖아?”

“…남의 집 자식이라고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요.”

“내 남자만 아니면 돼.”

“…….”

“농담이고. 아프로 씨라면 할 수 있어.”

“하긴 그 사람 실력이라면.”

아프로의 훈련을 참관한 날의 기억을 떠올린 오퍼레이터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실전에선 반응 속도 느려지면 죽어. 아파도 생존율을 높이려면 이게 최선이야.”

사우 박사는 그렇게 말한 다음 홱 돌아섰다.

표정만 보면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지만 그녀와 오랫동안 일해 와 언니 동생 같은 관계를 유지 중인 오퍼레이터는 그 심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캐치했다.

“박사님. 걱정되시는 거죠?”

“내가 왜. 콜로서스는 완벽해. 반드시 승리할 거야.”

“언니.”

“…밖에서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파일럿이 죽을까 봐 무서운 거죠?”

“…….”

사우 박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우주군 파일럿들을 사지로 내모는 건 전부 행성 의회의 전권대리자인 그녀가 결정한 일이었다.

아무리 전쟁에 나서는 게 군인의 일이라지만,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기체의 성능을 최대한 올리는 것이 전부.

한 명이라도 많은 군인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돕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전파 재밍만 아니었다면 콜로서스에 직접 탑승시킬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어쩌겠어. 이게 전쟁인걸.”

의미심장한 박사의 말에 오퍼레이터가 고개를 떨궜다.

그녀의 말대로 나노이인들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세상을 파괴하려는 괴물을 상대로.

그리고 그들의 세상을 제물 삼아 자신의 세상을 지키려 하는 자들을 상대로.

“어쩌겠어. 내가 다 짊어지고 가야지.”

사우 박사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오퍼레이터는 반대쪽에 있던 유리 벽에 비친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붕괴되기 직전의 댐처럼, 박사의 눈은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쏟아내려 하고 있었다.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는 여자 한 명이 짊어지기엔 무거운 짐.

자신이 그 짐을 나눠 들 수 없다는 사실에 오퍼레이터는 그저 말없이 어깨를 움츠렸다.

타인의 희생을 뒤에서 지켜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사실에 한없이 무력감을 느낄 뿐이었다.

<사우 박사님. 마이크 켜져 있어요.>

바로 그때.

스피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호텔에서 사우 박사를 설득했던 3-1차원 출신 은행원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일이 바빴던 탓에 통신 채널을 열어 둔 채 잊고 있던 모양이었다.

“바, 바로 끌게요. 죄송해요.”

<잠깐만요.>

놀란 오퍼레이터가 통신을 끊으려 했지만 김지안의 목소리를 들은 사우 박사가 이를 제지했다.

<다른 건 아니고, 하나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일이죠?”

<마침 박사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던 이야기와 상관이 있습니다.>

“……?!”

<전파 재밍 때문에 원격 조종이 불가능해 파일럿들을 콜로서스에 직접 태운다고 하셨죠?>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목소리로, 김지안은 천천히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 왔는지 말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받아들일게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일까지 준비 마쳐 둘게요.”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다 들었을 때.

“고마워요… 지안 씨.”

사우 박사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 * *

민간인,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민-간-인.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 앞니를 두드린다.

민. 간. 인.

세상에 태어나 돈도 빽도 없이 통장 잔고가 20만 굴덴 이하였던 그는 민, 그냥 백성 민民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효자였다. 부대에선 중위. 서류상의 이름은 아프로 사스.

그러나 전역해 가족의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민간인이었다.

“충성, 중위 아프로 사스, 무사히 복무 마치고 전역했습니다.”

사우 박사의 용단에 의해 단 하루 만에 겨레의 아들에서 사스 부부의 아들로 돌아온 아프로는 감격을 견디지 못하고 카메라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비밀리에 치러진 전역식.

아프로가 가족에게 보여 주기 위해 찍은 영상 편지는 사실 아직 고향인 나노이성에 보낼 수 없었다.

나노이와 타 차원의 통신은 현재 차단되어 있다.

현지 거주자들의 상황이 민간인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차원 간 통신 채널에 지속적인 재밍이 가해지는 까닭이었다.

범인은 0.1차원의 태양계와 우주 괴수를 한 번에 소멸시켜 모든 리스크를 지우려 하는 각국 강경파들.

그렇기에, 전역한 아프로를 필두로 한 파일럿들은 두 가지 버전의 영상 편지를 녹화해야만 했다.

하나는, 자신이 우주 괴수와의 싸움에서 장렬히 전사했을 경우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내질 영상.

그리고 두 번째가 승전보와 함께 집으로 갖고 돌아갈 영상.

전자의 경우 행성이 날아가면 영상 편지를 봐줄 소중한 사람들 또한 사라지고 만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파일럿들은 착잡한 마음을 품은 채 두 가지 영상을 녹화해야만 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네가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난 아마도―”

아프로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에게 보낼 비디오 레터에 모든 감정을 토해냈다.

우주의 먼지로 화할지도 모르는 자신을 대신해 메시지를 전해 줄지도 모르는 영상.

당연하지만 그는 이런 짧은 영상 따위를 보내는 게 아니라 건강한 몸으로 그녀를 안아 주고 싶었다.

다시 한번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집안의 빚 때문에 장교를 지원한 이후로 훈련에 참가하느라 바빠 그녀와 거의 만나 보지 못했다.

얼마 안 되는 연간 휴가를 간신히 짜내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그 행복한 계획마저 우주 괴수들의 침공에 의해 연기되고 말았다.

놈들을 멸종시키지 못하면 나노이와 그들의 태양계는 계속해서 멸망의 위협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미 군인의 신분이 아닌 민간인이 된 아프로였지만 그에겐 여전히 선발된 파일럿으로서 전투에 임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의무라고는 해도 이는 아프로가 자원한 임무였고 외압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과 연인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낼 자신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만큼 그를 비롯해 이번 전쟁의 ‘참전 용사’들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약속되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제대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나노이 행성 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군인 연금과 우대 금리 대출까지 받을 수 있다.

원한다면 그대로 군에 남아 초고속 진급 코스를 밟는 것 역시 가능하다.

“…….”

전쟁터는 가장 죽음과 가까운 곳이지만 장시간에 걸쳐 적을 섬멸하는 방법을 익혀 온 군인에게 있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은 바로 이 싸움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실감이 아프로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나기 시작했다.

두려움, 그리고 그에 맞서는 감정들.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습―”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다 나 까가 튀어나온 걸 깨달은 아프로가 잠시 입을 틀어막았다.

“…알 것 같네요.”

지난 일주일 동안 그에게 연기를 가르친 선생이 강조해 온 포인트는 단 하나였다.

그동안 군복과 규율에 의해 억눌려 있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되찾는 것.

군대는 지시를 따라 하나의 생명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법이고 아프로 사스의 몸에는 규율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좁은 침대, 낮은 천장,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된 군화.

할당된 공간에서 모든 일상이 통제되고 주어진 임무만을 꾸준히 수행하는 생활이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우주군 장교로서 지내 온 수년 동안 명령을 따르는 데에만 전념해 오던 남자는 지금.

그동안 군에서 느껴 본 적 없던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

나노이를 짓밟으려 하는 괴수를 향한 분노.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

훈련을 통해 쌓아 올린 기량에 대한 자부심.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부담감.

사지로 향하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계속 품고 있어야 하는 공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고양감.

-두근

실전 테스트까지 남은 시간은 23시간.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이 존재하는 우주 공간으로 뛰쳐나가려 하는데, 어째서 이리도 흥분되는 걸까.

죽을지도 모르는데….

고향의 연인과 가족에게 먼지 한 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꾹

굳게 쥔 아프로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부정할 수 없었다.

아프로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태양계를 끔찍한 고통에 빠뜨리던 가증스러운 존재를 자신의 손으로 찢어발길 기회가 왔다.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감각.

살아 있다는 실감이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하이해지기 위한 약물 같은 건 필요 없다.

연기 지도를 받으며 공부한, 3-1차원의 매체에 등장하던 여러 파일럿 주인공들처럼.

자신도 열띤 고함을 지르며 우주 괴수의 무리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말 것이다.

“후욱… 후욱….”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열기.

다른 사람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그대로 콕핏에서 발산한다면.

무사히 실전 테스트에서 살아 돌아와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다면.

다른 차원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이 간절함은 반드시 닿는다.

“할 수 있어.”

나노이는 구원받을 것이다.

-지이이잉!

그때였다.

아프로의 통신 단말이 신호를 수신한 건.

-삑

<아프로 중위. 아니, 오늘부턴 아프로 씨였죠.>

“사우 박사님?”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들어 주세요.>

이어진 이야기의 내용은 아프로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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