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42화

콜로서스 프로토타입이 출격하기 일주일 전.

키키와이 모 빌딩 15층.

사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스튜디오에는 냉담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때려치웁시다. 시발.”

화를 내고 있는 건 주렁주렁 장신구를 달고 있는 마른 체구의 사내였다.

그는 마케팅 전문가 엔디미온이 로렐트리의 거물 영화인 매스터한트 감독의 인맥을 빌어 데려온 연기 지도자.

“못 해 먹겠네.”

내 연봉의 열다섯 배, 그러니까 엘라마 식으로 말하면 ‘15김지안’의 몸값을 받는 전문가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선생님. 그러지 마시고 딱 한 번만 더요. 제발.”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는 내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일단은 버텼다.

<…….>

어렵게 모셔 온 연기 지도자 앞에서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는 건 깔끔하게 각이 잡힌 장교복을 착용한 한 명의 사내.

그는 유한 회사 콜로서스 로보틱스가 아직 프로젝트 콜로서스였던 시절 나노이 우주군이 배출한 최고의 파일럿.

이름은, 아프로 사스인가 그랬던 거로 기억한다.

홀로그램으로 나와 연기 지도자 같은 일반적인 크기의 지성체와 같은 신체 사이즈로 투영된 아프로.

그 모습은 전형적인 듬직한 장교의 이미지를 그대로 생생하게 현실로 옮겨 둔 것만 같았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방금 부분에서 잘못된 부분을 알려 주셔도 될까요.>

그는 엄격한 연기 지도자 앞에서 팔과 몸 사이에 정모正帽를 끼운 채 부동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딱히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친구는, 일단 자기 연기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게 문제 같은데….”

연기 지도자의 말대로였다.

방금 전 질문도 반항 같은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거다.

그래서, 왜 그림에 그린 듯한 참군인을 수많은 명배우들에게 스승이라 불리는 업계의 중진께서 연기를 가르치고 있는가 하면.

“근데, 아프로 씨 아니면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그건 그쪽 사정이잖아요….”

그의 말대로였다.

아프로를 여기로 불러내 군인의 본래 업무와 상관없는 짓을 시키는 건 콜로서스 로보틱스의 사정이었다.

“기술과 스타성이 양립하지 않는 건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인 케이스는 본 적이 없다고요.”

게다가, 그 잘난 기술마저 지금 상황에 필요한 연기력이 아니라 로봇을 조종하는 기능이니.

연기 지도자는 신경질적으로 멋들어진 넥타이를 풀어 헤쳐 바닥에 내던졌다.

“아, 선생님. 여기서 포기하시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내 알 바 아니라니까!”

우리가 아프로 사스에게 연기를 가르치고 캐릭터성을 만들어 주려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사우 박사의 비행선엔 나노이 태양계 전역에서 선발된 우수한 파일럿들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아프로 사스는 개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앞선 콜로서스 조종 시뮬레이션에서 프로토타입 기체와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기록했다.

2위와의 격차는 그야말로 압도적.

즉, 프로토타입의 실전 테스트에서 기체의 성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건 아프로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은 어디까지나 참여자가 즐겁게 돈을 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강한 기획.

이 펀딩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모든 차원의 사나이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할 강렬한 캐릭터성이 필요했다.

허나,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진 몰라도 뼛속까지 군인다움이 배어 있는 이 남자를 상대로 대중이 선호하는 스타성을 심어 주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굴도 호쾌한 느낌으로 잘생겼고, 키도 크고 체격이 다부지긴 해서 여성층에게 인기는 많을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우리가 찍는 게 가X 사X이 같은 거면 군인 냄새 충만한 예능이 아니라 펀딩 참여자들에게 보여 줄 생생한 전투 영상과 콕핏 블랙박스 영상이라는 거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양산형 기체를 몰고 다니는 건 대부분 고도의 훈련을 받은 장교나 부사관이다.

하지만 그들이 군복 입고 평범하게 전투에 임하는 영상을 보여 줘 봤자 사람들은 열광하지 않는다.

조종석에서 일언반구 없이 담담하고 쿨하게 주어진 괴수를 학살하는 것만으론 고객층에게 어필할 수 없다.

필요한 건 카타르시스.

내면의 해방.

완벽한 대리만족.

뭇 사나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무언가.

우주 괴수를 학살하며 영혼을 내던지는 듯한 음량으로 필살기의 이름을 외쳐 줄 비현실적인 영웅이야말로 사람들이 그리는 파일럿의 모습.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다.

가장 우수한 파일럿에게 열혈 로봇 애니메이션 주인공과도 같은 캐릭터성을 덧입혀 살아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삼으리라고.

로봇과 이를 조종하는 조종사는 한 쌍이다.

로봇의 디자인이 멋지게 뽑힌 이상, 쇳덩이와 일심동체가 되어 움직이는 조종사 역시 개성과 컨셉을 공유해야만 한다.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본인도 모르는 거 같고 은행원 형씨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거 같으니 내 한마디만 할게요. 이봐, 거기 군인 친구?”

<중위, 아! 프! 로! 사스!>

“아니 시발, 관등성명 안 대도 되니까 내가 시키는 거 딱 하나만 해 봐요. 알겠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나노이에 헌신하는 임무라면 어떤 것이든 수행하겠습니다!>

“갑자기 정치적 중립이 왜 나오고 그래? 됐고, 노래 한 곡조 뽑아 봐요. 지금 당장.”

<예! 알겠! 습니다!>

아프로 중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힉! 갑자기 뭡니까!”

연기 선생은 그것이 자신을 치려는 동작인 줄 알고 움찔했다.

홀로그램이 너무 생생한 데에다 동작이 쓸데없이 절도 있던 탓이었다.

하지만 대한의 건아인 나는 그것이 특정 직업군에 속하는 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전 취하는 준비 자세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군가를 실시한다! 군가는 우주군 행진곡! 요령은 힘차게! 반동 준비! 반동 시작! 하나 둘 셋 넷! 군가 시작!!>

“…….”

“…….”

<우~ 리는 나노이안# 하늘~ 의 사나이♬ 외우주에 목숨 걸고 젊음 태운다♭ 겨~ 레의 성층권을 지키~ 는 우리♩ 콜로서스 가는 길에 행~ 성이 있다#>

원곡을 알 순 없어도 음정의 상당수가 엇나간 군가.

작곡가가 들으면 높은 확률로 각혈할 거란 사실은 제쳐 두고도, 노래하라고 시켰더니 군가가 튀어나오다니.

내 고향 3-1차원 지구에선 쌍팔년도에도 이딴 개그는 치지 않았다.

“보면 알겠지만, 이 친구 웃기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것 같네요….”

“근데 이런 애를, 입 잘 터는 열혈 로봇 파일럿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일주일 동안? 그게 마케팅 팀이 내놓은 최선의 캐릭터야?!”

“저 봐서라도. 아니,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하시고―”

“닥쳐!!”

사람 하나는 무슨.

이번 일이 성공하면 사람 하나와 동일한 체적의 나노이 태양계 사람들, 그러니까 최소 수백억 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쪽은 자원해서 할인가에 일을 맡아 준 앤디미온과 달리 돈 받은 만큼 일하는, 좋게도 나쁘게도 딱 프로다운 사람.

자기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인 만큼 먼저 냈던 견적보다 일이 까다로우면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해는 간다.

실제로 잘나가는 데에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인 것도 저 자의식 과잉 선글라스랑 기타 등등 패션을 보면 알 수 있으니까.

“못 하는 건 못 하는 겁니다. 아니 무슨 연기하는 사람도 아니고 군인을 데려오고 그래요?”

“그건….”

“뼛속까지 각 잡힌 참군인 데려와서 무슨 열혈 에이스 파일럿을 만들어 두라고. 참 나 어이가 없어서…. 그것도 일주일 동안?”

“죄송합니다.”

“연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다만, 이번 일을 성공시키는 데엔 저런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하다.

이젠 간곡하게 부탁해 보는 수밖에.

“쉽지 않은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선생님께 부탁드린 거고요.”

“그쪽이 뭘 아는데요.”

“일주일 내로 문외한을 한 명의 배우로 길러 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

이젠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린 사내는 잠시 나를 노려보다 말을 이었다.

“아는 사람이 그럼 이딴 소리를 하는 거예요? 은행에서 나왔으면 다야? 돈이면 뭐든 되는 줄 알아?”

“그럴 리가요.”

고개를 젓거나, 시선을 떨구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당당하게, 그의 눈총을 받아 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은 도대체 뭡니까. 네?”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라면, 그리고 아프로 씨라면.”

내가 외근을 나와 스튜디오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차원신용금고에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려 간 사우 박사와 그녀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채무 상환을 돕기 위함이다.

내 고객은 사우 박사지 연기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유한회사 콜로서스 로보틱스가 돈을 주고 고용한 외부 고문이다.

이 사람과 연기 지도에 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건 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가 자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콜로서스 로보틱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전문 분야에 특화되어 있어 사람을 접하는 데에 능숙치 않다.

고로, 필연적으로 그들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매끄럽게 교섭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기 힘들다.

이를 위해선 외부에서 온 고급 인력들과 소통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걸 맡아 줄 앤디미온은 마케팅 팀과 회의 중이다.

고로, 비정한 연기 지도자와 수업을 진행 중인 이 가엾은 에이스 파일럿과 나노이 태양계를 위기에서 구해 내기 위해선 내가 나서는 수밖에.

“당사자인 내가 못 해 먹겠다는데 뭔가 뾰족한 수라도 있수?”

“네. 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계속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던 아프로의 눈에 경악한 기색이 떠올랐다.

당사자들이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낱 은행원인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믿을 수가 없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모자를 쓰고,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을 살아가며 개성을 억누르고 지휘권에 복종하길 강요받는 군인이라는 생명체의 생태를.

그리고, 군인이라는 이름의 각지고 딱딱한 틀에 갇힌 그들의 영혼과 진정한 품성을 해방해 자유롭게 하는 방법 역시도.

“가능하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은행과 은행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신용은 생명과도 같은 것. 이런 중대사를 눈앞에 두고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하도 진지하게 말해서일까.

계속 화만 내던 연기 선생이 조금은 누그러진 표정으로 돌아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이 목석같은 남자한테 어떻게 사람 냄새 나는 표정을 짓게 만든다는 겁니까. 연기 밥 오래 먹은 나도 그런 건 배운 적이 없는데.”

나는 대답 대신 전화기를 꺼내 주소록에서 사우 박사의 번호를 검색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기 전, 아프로 중위에게 물었다.

“나노이의 우주군은 징병제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음, 여기까진 한국이랑 비슷하고.

“적합한 신체 조건과 정신적으로 건강한 시민을 남녀 가리지 않고 추첨으로 선발해 수년 동안 복무시킨다던데.”

<선발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무 기간이 총 몇 년이었죠?”

<2년입니다.>

2년. 이것도 사우 박사에게 사전에 들은 대로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대까지 얼마나 남으셨는지 알려 주셔도 될까요?”

<저는 2년 사병 신분으로 근무를 마쳤고. 최근 장교로 단기 복무를 신청해 3년 더 군에 몸담기로 했습니다.>

찾았다. 수상한 부분.

“장교 근무를 결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적성에 맞는다든지.”

<행성을 위해 헌신하는 데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

무언가 사정이 있는지 잠시 망설이던 아프로는 머뭇대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습니다.>

“행복하시겠군요.”

<하지만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한 전 군이 아니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

역시.

좋아서 군 복무하는 건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뭐가 문제였는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의 대화로 확실히 답을 얻었다.

“그 문제, 제가 해결해 드리죠.”

-삑

짧은 신호음이 끝나고 수화기 너머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 지안 씨. 무슨 일이세요?>

“박사님. 박사님께선 현재 나노이 행성 의회의 유일무이한 전권대리자 자격으로 6-2차원에 체류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네. 그건 맞는데요… 그건 갑자기 왜…?>

예로부터 뼛속까지 군대 문화가 스며든 참군인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방하는 방법은 단 하나.

정말로 자주국방에 뜻을 세운 군인이라면 안 되겠지만.

그 소수를 제외한 이들이라면.

“금일부로 아프로 사스 중위를 조기 전역시켜 주십사 합니다.”

<…네?!>

<자자자잘 못 들었습니다?!>

계급장 떼고 군복 벗겨서 민간인으로 만들어 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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