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41화
머나먼 태양계에서 벌어지는 작고 작은 전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든 차원에 퍼진 즈음.
멸망을 앞둔 0.1차원 태양계의 안타까운 사정에 공감한 사람들은 무언가 도울 수 있는 게 없는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헤매기 시작했다.
“사람이면 제발 차원 청원합시다!”
“차원 연합은 인도적 파병을 개시하라!!”
제대로 된 인권 단체는 물론 그런 집단에 소속된 적 없던 시민들 역시 거리로 나와 행진을 시작했다.
이번에 한해 그들의 공감 능력은 선택적으로 발휘되지 않았다.
크기는 작아도 자신들과 같은 지성체들이 사는 세상이 멸망하게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개입을 꺼려하던 정치인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본인 공군 장교고 0.1차원 파병 지원 마려운데 부대 편성 언제 함?]
[오 나는 다른 차원의 작은 친구들을 위해 나의 신께 신실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얄라하비비. 아둠바드에서 사랑을 담아.]
[0.1차원 사람… 앙증맞고 귀여운…!! 신체 축소 기술 완성해 여행갈 것인!! 그 전까지 꼭 살아남아야 하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각 차원의 지성체들이 보낸 나노이 태양계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번역 마법을 통해 범차원 인터넷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들이 함락되면, 다음 차례는 우리야.]
벌레와 다를 바 없는 크기지만 끔찍한 살상능력과 맷집을 가진 괴물이 무리를 지어 나노이를 침공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나노이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 우주 괴수는 그들의 별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모든 공포는 상대적이다.
0.1차원 태양계에서 촬영된 우주 괴수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공포와 위협에 깊이 공감했다.
자신들이 봤을 땐 한없이 작은 괴물이 똑같이 살아 움직이며 사고하고 감정을 지닌 나노이의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이고 있는지 인지했다.
멸망을 부르는 거대하고 물리적인 위협.
심지어, 나노이가 함락되면 위험한 우주 생명체가 다른 차원으로 퍼져나갈지도 모른다.
한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0.1차원을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정부, 기업, 민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고안해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금방 깨닫게 되었다.
“무리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절대 0.1차원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개입할 수 없어요.”
0.1차원의 특수한 환경은 다른 차원의 생명체가 태양계에 발을 딛기만 해도 망가질 정도로 작고 섬세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기술 수준 격차는 어림잡아 수 세기 정도는 날 겁니다. 네, 물론 나노이가 더 발전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죠. 대통령 각하께선 여태껏 뭘 들으신 겁니까.”
0.1차원의 생명체는 인력을 거부하는 기술이 적용된 복장을 착용하거나 탑승하는 비행선 내부의 중력을 조작할 수 있다.
고로 그들은 다른 차원으로 외출해도 자신들보다 훨씬 거대한 생명체가 지니는 인력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타 차원의 평범한 생명체나 그들이 만든 인공물이 0.1차원에 진입하는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노이 태양계에선 우주에 떠 있는 차원 관문이 어지간한 별보다 강력한 인력을 지니고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질량이 큰 물체는 거기에 비례해 인력을 갖게 되는 까닭이다.
나노이의 연구자들이 개발한 인력을 배척하는 기술은 어디까지나 작은 크기를 지닌 그들을 위한 물건.
일반적인 생명체의 몸에 이를 적용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
혹여나 무리해서 억지로 0.1차원에 진입했다간 강력한 인력에 행성의 운행이 영향을 받아 우주의 질서가 붕괴한다.
정치인들이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우주 괴수를 격퇴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했다간 나노이 태양계가 망가진다.
하지만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간 0.1차원의 지적생명체가 거주하는 모든 행성이 우주 괴수의 제물이 되고 만다.
개입을 해도, 하지 않아도 수많은 목숨이 사라지는 최악의 시나리오.
일각에선 어차피 0.1차원을 구하긴 글렀으니 강력한 펄스 폭탄을 터뜨려 우주 괴수만이라도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나노이는 마지막 방벽이 되어 우주 괴수와 함께 산화하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더라도 우주 괴수의 침공을 막고 싶었던 여러 차원의 강경파들은 타 차원 거주 중인 나노이 연기자를 고용했다.
[부디, 저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여러분의 앞길에 영원히 지식의 빛이 함께하길.]
눈물 연기와 나노이의 전통문화와 아무런 상관없는 급조된 핸드사인이 인상적인 영상은 산불처럼 인터넷을 휩쓸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걸 미친 의견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나노이의 각오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그들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어, 형제. 우리에겐 그들이 쉴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어.]
[나노이 사람들의 명예를 더럽힐 순 없어. 만일 내가 저기 있었다면 나 또한 우주 괴수에게 당해 죽는 것보단 다른 차원의 친구들에게 목숨을 맡겼을 거야.]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보자마자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영상에 등장한 여인이 실제로 0.1차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찍은 것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나고 자란 연기자라는 주장과 근거가 몇 번씩 제시되었지만.
나노이를 구할 수 없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대중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했고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안녕. 이 메시지는 나노이에서 직접 보내고 있어. 우린 지금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중이야.]
[나는 오늘 수면제를 먹고 푹 쉴 생각이야. 일어났을 땐 이 모든 일이 끝나 있길 기도하면서.]
[그러니까 모든 우주의 친구들, 하나만 부탁할게.]
[이 모든 고통을, 두려움을, 단숨에 끝내 주었으면 해.]
[더는 두려움 속에서 잠에 들고 싶지 않아.]
프록시 서버를 사용해 나노이 행성의 IP로 등록된 싸구려 감성팔이 게시글에는 죽지도 않은 작성자를 애도하는 추모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기억할게!!]
[└우린 영원히 친구야…!]
[└언젠가 내가 자식을 낳으면 말해 줄 거야. 나노이 사람들은 용맹했고 어떤 위협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았다고. 너희들은 진정한 영웅이야.]
[└오늘은 오래 묵혀 둔 위스키를 마실 거야. 이날을 언제까지나 기억할게. 너희가 생각날 때마다 그 희생에 감사하며 살아갈 거라고 맹세할게. 약속이야.]
댓글을 단 이들은 평소부터 자신의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부류의 머저리가 대부분.
의견을 주도하는 소수는 당연히 0.1차원의 태양계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을 몰살시켜서라도 자신들의 세상에 우주 괴수가 들어오게 두고 싶지 않았던 강경파들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댓글이 셀 수 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돈 한 푼 들지 않는 싸구려 동정심을 쾌척하며 죄책감을 덜었다.
몇몇 이들이 주장했던, 나노이의 난민을 받아들이자는 의견은 차원 관문을 열어 우주 괴수를 맞이하자는 소리라고 호도되며 매몰차게 파묻혔다.
심지어는 차원 장력이 얇은 키키와이 모처에서 우주 괴수에게 은행원이 습격당하는 걸 목격했다는 익명의 제보까지 나오면서 사람들은 더욱 공포에 시달렸다.
당연히, 이는 차원신용금고 구D 파벌의 총애를 받는 김지안이 거액의 대출을 성사시키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타 파벌의 공작이었다.
[더는 무리야. 방법이 없어.]
[우리가 뭘 해도 나노이를 구하진 못해. 봐. 강경파 놈들은 신호를 하이잭하거나 전파 재밍까지 시작했어.]
[나노이 사람들이 진실을 알리지 못하도록 차원 간 통신을 막고 있는 거야.]
[녀석들, 전쟁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견딜 수가 없어….]
[다들 현장을 모르는 거다! 전장을!]
진심으로 나노이를 구하려고 하던 사람들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절망했다.
[싸늘한 시대라고 생각하지 않나?]
사람인 이상 모두가 자신의 안녕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그들은 지성을 갖고 태어난 이상 누구든 어느 정도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있었다.
이미 여론은 나노이를 우주 괴수들과 함께 멸망시키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은 정치가들은 민중에게 등을 떠밀리는 듯한 모양새로 펄스 폭탄 사출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은 지지율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스위치를 누를 짐승들이었다.
[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려 하고 있어.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그야,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살인으로는 고통을 알 수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는 마치, 큰 각오와 책임이 따르는 고통스러운 결정 끝에 행한 것처럼 생색을 내리라.
[인간의 가능성이 작디작은 자기만족을 위해 짓밟히는 건 참을 수 없어!]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리가 바로 차원 연합이다…!]
성토하는 소리가 들려 와도 사람들은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죄책감과 연민, 그리고 하찮은 만족감과 약간의 안도.
모두가 제각기 다른 감정을 품으며 나노이가 맞이할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강력한 권력자들이 사전에 협의를 마친 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차원 연합 상임이사 차원 대표 회의를 2주 앞둔 그 날.
사건이 일어났다.
대중과 정치인 등, 수많은 이들이 세 치 혀로 한 세상의 운명을 정하려 들던 사이.
0.1차원의 정예들은 준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당신만의 콜로서스를 소장하세요!>
처음 광고 영상이 업로드되었을 때, 썸네일을 본 사람들은 그것이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멋진 디자인의 로봇 피규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재생 버튼을 누른 순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굉장해, 이 녀석… 움직인다!!]
그것은 전쟁 병기였다.
실제로 나노이의 사람에게 우주 괴수와 맞설 힘을 줄 수 있는, 궁극의 무기.
<콜로서스 마크 원, 시범 운용 개시.>
<차원 관문 돌입.>
레이저포를 탑재한 드론들이 우주 괴수의 진입을 막기 위해 대기 중인 차원 관문 앞.
시범 운용을 전제로 제작된 나노이의 거대 로봇은, 0.1차원에서 벌어지는 우주 전쟁의 판도를 뒤엎으려 하고 있었다.
<저! 에이스 파일럿 아프로의 영상을 보고 계신 범차원의 고객 여러분께선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꼭꼭 부탁드립니다! 크라우드 펀딩 많이 참여해 주세요!!>
영상 속 어딘가 못 미더운 인상의 눈썹이 진한 쾌남 파일럿이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며 유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한 마케터가 시키는 대로, 고향 별을 걱정하는 마음을 억눌렀다.
“기다리고 있어, 엘리제. 이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돌아갈 테니까.”
혼신의 힘을 다해 엔터테인먼트의 문법에 충실한 연기를 펼친 에이스 파일럿은 다시금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을 노려보았다.
시야 한쪽에는, 결혼을 앞둔 연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프로, 콜로서스 MK-1, 갑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BGM에 파일럿의 심장 박동을 함께 새기며, 콜로서스는 우주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진녹색 우주 괴수 따위보다 세 배는 빠른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