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37화
듣자 하니, 그동안 나노이의 사람들이 우주 괴수에 대처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했다.
괴수가 둥지를 튼 건 대략 한 달 전.
그 위치는 같은 태양계에 속한 또 다른 행성이라고 한다.
그 별의 크기는 나노이보다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하는데, 우주 괴수들은 그곳에서 알을 낳고 숫자를 불려 다른 행성을 침공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나노이는, 그 첫 번째 타깃이었다.
생태에 관해 알려진 정보가 그다지 없는 상황에서 유독 괴수들의 목적만큼은 나노이의 사람들에게 확고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건, 놈들이 행성에 날카롭고 단단한 드릴 주둥이를 꽂아 내핵을 빨아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0.1차원의 가엾은 과학자들과 연구자, 그리고 군인들은 우주 괴수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괴수를 상대하기 시작한 지 고작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듣기엔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차원 관문을 통해 다른 차원의 방역 업체를 불러들이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건 만유인력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나 할 법한 발상이다.
행성이 차원 관문보다 작은 마당에 방역 전문가가 우주복을 입고 0.1차원으로 들어갔다간 그가 태양보다 거대한 탓에 다른 별들의 중력장을 흐트러뜨리게 된다.
결과, 행성들의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 등에 모두 영향을 주게 되고 최악의 경우 빙하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우주 괴수 구제 작업 동안 행성과 달의 거리에 변화가 생겨 해일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햇빛을 가린 탓에 행성의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행성 인구 전체를 죽음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리스크 치곤 얻을 수 있는 게 얼마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방역 작업을 진행하는 인력 역시 다양한 위협에 노출되게 된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태양이다.
어떻게든 0.1차원에 들어갔다 해도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태양에 가까이 갔다가 우주복이 녹아내리거나 최악의 경우 죽어 버릴 수도 있다.
아무리 작다 해도 태양이 뜨거운 건 어느 곳이나 매한가지니까.
그게 아니면 우주 괴수의 타깃이 되어 빨대를 꽂힐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놈들의 주둥이는 행성의 지각을 뚫을 정도로 단단하고 날카롭다.
우주복은 결코 작업자들을 지켜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곤충 구제 전문가들이 0.1차원에서 활동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주 공간에서 방역 작업을 진행하는 데엔 크고 작은 제약이 존재하는 데에다 활동 자체가 해당 태양계의 지적 생명체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국제 차원 관문 관리국이 타 차원의 생명체가 0.1차원으로 건너가는 것을 엄금하는 건 분명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나노이 행성 사람들이 우주 괴수의 씨를 말릴 방법이 없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본다.
나노이의 기술력은 대단하다.
문제는, 그들이 연구에 쓸 살아 있는 우주 괴수의 샘플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것뿐.
그렇다면, 우리가 괴수의 표본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박사님, 이거 샘플로 쓸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휴지 위에서 꿈틀대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라 비행 능력을 상실한 우주 괴수였다.
비슈티는 말도 안 되는 정밀 사격으로 날개만을 쏴서 놈을 떨어뜨린 것이다.
아깐 그저 라즈마 과장을 어떻게 해 보려는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내다본 행동일 줄이야.
“날개만 쏘아 떨어뜨렸소. 업체 쪽에선 드론을 시켜 레이저로 태워 버리는 듯해서. 이쪽이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소.”
그의 말대로였다.
평범한 사람은 모기를 손바닥으로 때려죽이거나 쫓아내기 마련이다.
여기서 더욱 나아가면 연기를 피우거나.
전기가 흐르는 그물로 태워 죽이거나.
어쨌든 갖은 방법을 써서 모기를 죽인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모기를 살려 두진 않는다.
잡은 모기에게서 날개만 떼어내고 고문하는 건 어린아이나 할 짓 없고 정신 나간 어른이나 하는 행동.
심지어 요즘은 전자와 후자 모두 모바일 게임에 심취해 있어 벌레 괴롭히기 같은 구시대적인 취미 생활에 빠져들지 않는다.
그동안 우주 괴수가 다른 차원으로 건너온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개체의 샘플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레이저포가 달린 드론을 동원해 확실히 죽이고 있었기에, 그동안 제대로 된 샘플이 없던 거다.
“약점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니 이 기회에 하나 연구해 보면 어떨까 싶소.”
<놀랍군요!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사우 박사는 몇 줄의 메시지로 우린 알아먹을 수 없는 기술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비행선을 몰아 우주 괴수에게 다가갔다.
반짝이는 복안이 비행선을 쫓고 있었지만 녀석은 그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날개를 잃은 지금 놈이 움직일 수 있는 건 모가지와 다리뿐.
비행선은 쉽게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몸통에 다가갈 수 있었다.
<좋았어, 바이털 체크!>
<바이털 체크! 생체 신호 양호합니다!>
<아주 좋아. 훌륭해.>
사우 박사의 흡족함이 묻어나오는 메시지에 이어, 곧바로 지시와 호응이 오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제공받은 귀중한 샘플의 해부를 시작한다. 절대 대상이 사망하지 않도록 생명 유지 장치를 상시 가동하고 모니터링하도록!>
<예스! 닥터!>
<외부 갑각 절개부터 시작하겠다. 총원 지정된 위치로.>
<위치로!>
비행선에서 뻗어 나온 아주아주 자그마한 원형 톱날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괴수의 배를….
“아, 저 비정규직인데 이런 그로테스크한 것까지 봐야 하나요. 이건 좀. 으음.”
국어책을 읽는 듯한 평평한 말투로 선언한 플루토가 회의실을 나섰지만, 아이작은 토하고 싶은 걸 애써 참는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싫어 죽겠는데 일이라 참고 억지로 관심을 보이는 느낌.
물론, 이건 은행원이 할 일이 아니긴 하다.
그래서 나는 사우 박사가 엄청난 속도로 내리는 지시 아래 진행되는 환상의 모기 해체 쇼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솔직히 돋보기만 치워도 작아서 잘 보이지 않긴 하는데, 그냥 기분이 그래.
<호오. 그런 거였군.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
<신경절을 건드리지 않도록. 그래. 바로 그거야. 녀석의 뇌를 살피는 거다.>
<딥 러닝 프로세스와 연결해! 놈의 신경망을 그대로 본떠 업로드하는 거다!!>
<굉장하군. 오로지 우주에서 벌어지는 고속 전투만을 상정해 만들어진 생명체. 누가 이런 걸 만들었는지 궁금해질 따름이야.>
<과거에 부흥했던 문명이 남긴 생체 병기가 따로 진화를 이룬 건가…!>
<어느 쪽이든 흥미로운 생명체야.>
.
.
.
쉴 새 없이 허공에 쏟아져 나오는 홀로그램 메시지가 어느덧 그치기 시작한 즈음, 사우 박사의 비행선은 괴수의 머리에 연결해 둔 가느다란 실 같은 케이블을 뽑아냈다.
<덕분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약점을 파악하신 건가요?”
<네. 나머진 이 녀석들의 외갑각을 꿰뚫을 무기를 장비한 초거대 로봇을 양산하는 것뿐.>
“…네?”
<귀 은행의 도움으로 40조 굴덴의 예산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나노이의 로봇 군단은 우주 괴수의 둥지가 자리 잡은 불락미니에 행성을 초토화시킬 수―>
아니, 약점까지 연구 끝났는데 왜 결론이 같은 건데요.
* * *
결국 사우 박사는 우리에게서 원하는 도움을 얻지 못했다.
아무리 행성이 위험하다고는 해도 40조 굴덴은 물리적으로 예산적으로 빌려줄 수 없는 액수의 거금이었으니까.
만일 은행에 40조 굴덴의 돈이 있다 해도 이사회는 대출을 승인해 주지 않을 것이다.
나노이 행성은 정말 너무 작아서 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크기를 자랑한다.
특산물은 딱히 없고, 오로지 우수한 과학자나 공학자를 배출해 내는 뛰어난 인재풀 하나로 다른 차원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별.
하지만 이 쥐똥만 한 별을 지키기 위해 40조 굴덴을 태우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박사의 상환 계획이 비현실적인 건 차치하고 액수가 너무 커서 무리다.
은행은 고객에게 돈을 빌려줄 때 늘 돌려받지 못하게 될 최악의 경우 역시 상정하며 리스크를 관리한다.
하지만 40조 굴덴은 상환받지 못하는 상황 자체를 상상해선 안 될 정도로 큰 액수다.
즉, 대출 자체가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리스크.
아니, 애초에 그만한 돈이 차원신용금고에게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린 사우 박사의 대출 신청을 거절해야만 했다.
다만 그렇다고 그와 부하들이 성과도 없이 위험한 괴수들이 돌아다니는 우주 공간을 지나 집으로 가는 위험을 무릅쓰게 둘 순 없었다.
하여, 우린 그에게 당분간 6-2차원에 머물며 차선책을 같이 고려해 보는 게 어떨지 제안했고 박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시그니처 스위트룸의 열쇠입니다.”
귀빈과 그의 일행은 아이작의 배려로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5성급 호텔, 래리어트 키키와이의 최고층에 묵게 되었다.
엘라마는 나를 그들과 동행시켰는데, 그 이유는 이쪽 세상의 기준으로 치면 한없이 작고 작은 박사와 그 일행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
‘내일 아침까지 현실적인 타협안을 준비해라. 40조 굴덴의 대출은 불가능하지만 나노이 행성이 멸망하게 두었다간 그동안 대출해 준 돈을 전부 손실로 상계해야 하니까.’
그의 목적은 나노이 행성을 살릴 수 있도록 현실 감각도 금전 감각도 없는 박사에게 나를 붙여 적절한 계획을 같이 수립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아.”
예산 40조 굴덴으로 슈퍼 로봇 군단을 만들어서 벌레들을 조지겠다는 사람을 상대로 무슨 말을 해야 설득할 수 있을까.
애초에 나는 공돌이도 뭣도 아닌데 이야기가 통할지부터 의문이다.
“로봇이라….”
비행선을 타고 박사 일행이 방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홀로 세면대 거울 앞에서 중얼거렸다.
저 인간, 그냥 지가 로봇에 로망이 있어서 저러는 게 아닐까.
진짜 꼭 로봇이어야 하는 걸까.
그게 정말로 필요한가.
왜 다들 이족 보행 로봇 못 만들어서 난리인 거지?
“슈퍼 로봇 대출 오메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40조는 아니더라도 수백억 정도는 융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걸로 로봇, 만들 수야 있겠지.
약점 연구도 끝났으니 로봇이든 우주 전투기든 만들어서 모기들을 조지면 된다.
근데, 은행원인 나로선 로봇이고 나발이고 이 위기가 지나갔을 때 빌린 돈 어떻게 갚을지 상환 계획이나 똑바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은행은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까.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저러는 건가? 아니면 만화나 애니려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어?”
로봇. 우주 괴수.
이 대결 구도를 써먹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찾았다.”
상환 방법, 이거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