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36화

기능 고장을 일으킨 엘라마를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저어, 이야기가 잘 보이지 않는데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거대 우주 괴수까진 알아들었는데 그다음 갑자기 귓속에 이명이 울려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듣지 못했다.

사우 박사의 비행선은 불만스러운 표정의 홀로그램 이모티콘과 함께 메시지를 사출했다.

“죄송합니다. 처음 듣는 단어가 많아서….”

<어쩔 수 없군요. 처음부터 다시 들려 드리겠습니다.>

사우 박사가 그렇게 답한 직후 홀로그램 메시지가 비디오를 역재생시킨 것처럼 움직였다.

-나노이 행성과 이웃 별들이 속한 은하계는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거대 우주 괴수들의 습격이 지금도 우릴 위협하고 있죠.

-우린 행성을 수호할 초거대 로봇 시리즈를 양산할 계획입니다. 필요 예산은 최소 40조 굴덴을 예상하고 있으며 상환 방법은….

“…….”

다시 말하는 게 귀찮았는지 과거의 채팅 로그를 복붙한 것처럼 한 번 쏘아낸 홀로그램 메시지가 그대로 공중에 표시되었다.

상상했던 이상으로 효율을 중시하는 듯한 성격. 솔직히 말해서 정나미가 떨어지긴 하지만 아까 괴수인지 뭔가 하는 무서운 단어가 튀어나온 걸 보니 일단은 더 얘길 들어 봐야 할 것 같다.

“요약하면, 괴물이 은하계를 침략하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솔직히 말해서 평화로운 33차원의 휴양지에 살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우주 전쟁으로 흘러가니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진짠가?

정말로 저쪽 차원에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몇 번을 말씀드리지만 실제 상황입니다.>

내가 영 못 미더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눈치챈 사우 박사가 새로운 홀로그램 메시지를 출력했다.

“…….”

건조하고 간결한 메시지.

감정의 조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나열된 문자와 그것이 나타나기 전까지 걸린 시간은 충분한 진실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많이 큰가요? 괴수인가 하는 그거?”

우주 괴수라는 우스꽝스러운 명칭과 달리 저들이 상대하고 있는 적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

아무리 저들이 사는 나노이 행성이 출장소의 차원 관문보다 작다고 해도, 그 별을 위협하는 괴물 역시 내 손톱만 할 거란 보장은 없다.

어쩌면 나노이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행성과 맞먹거나 그보다 거대한 생명체인 내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끔찍한 생물일지도.

<그렇습니다. 거대할 뿐만 아니라 그 약점에 관해 연구할 방법도 없어 곤란해하는 중입니다.>

“미지의 괴물, 이라고 하면 되려나요?”

<그렇습니다. 최근 출몰하기 시작했는데 살아 있는 샘플을 손에 넣기엔 너무나도 강력한 놈들이다 보니….>

“그랬군요.”

하긴,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은 괴물을 쓰러뜨릴 방법을 알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터.

아무리 나노이의 기술력이 뛰어나다 해도 이건 전혀 별개의 문제다.

애초에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벌 때까지 적에게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주둥이가 행성에 꽂히는 순간 모두가 몰살당할 판이니.

<나타났군요. 특수 개체의 신호입니다!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한 줄의 홀로그램 메시지가 투사되었다.

“특수 개체? 그건 무슨―”

기능 고장을 일으켰던 엘라마가 냅다 얼굴을 구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수입니까?!”

나도 덩달아 당황해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째 사우 박사가 말한 괴수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고객님들을 대피시켜!! 그리고 경비원을 불러라!!”

엘라마가 심각한 얼굴로 소리치길래 냅다 밖으로 뛰쳐나가려다 멈춰 섰다.

“경비원이 우주 괴수보다 강해요?”

“…….”

완전 영감님이잖습니까, 그분.

사람이랑 싸워도 제압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괴수랑 붙었다가 초상 치르면 어떡하려고.

분노한 유족한테 칼빵 맞는 건 분명 저 인간이 아니라 내가 될 것이다. 응. 틀림없다.

<조심하십시오, 놈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포식자입니다!>

다행히도 내가 경비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움직이기 전에 사우 박사가 경종을 울렸다.

덕분에 나는 최대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우주 괴수는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행성의 내핵을 빨아먹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주둥이가 단단한 드릴 형태로 발달해 있는데―>

“설명은 됐으니까 어딨는지 좀 알려 주세요! 제 눈엔 안 보인다고요!!”

방금 설명 들으니까 다시 경비원 영감님을 모셔 오고 싶어졌다. 돌아가시면 엘라마의 책임이겠지.

그나저나 아까 비행선이 투명하게 변해 모습을 감췄던 것처럼 우주 괴수인가 하는 놈들도 의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끔찍한 놈들.

일격에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거대 괴수가 은밀 기동까지 하면 그건 너무 사기잖아!

<놈들의 날개는 강력한 충격파를 만들어 냅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그런 소릴 해도 괴수인지 뭔지 당최 보이질 않는데 어떻게 피하라는 겁니까.

애초에 충격파면 내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빠를 텐데.

나 여기서 죽는 건가.

산재 인정받을 순 있으려나?

“앗 따가!”

갑자기 목덜미를 찌르는 통증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을 얹었다. 그리고.

-찹

뭔가 딱딱한 물건이 손바닥에 닿은 것 같다.

여름철에 자주 경험하던 감촉과는 조금 다른데.

설마.

“…….”

-왜애애애앵!!!

울려 퍼지는 모기 날갯소리.

분명 아까까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지간한 놈보다 세 배는 큰 소리를 발하고 있다.

“무슨―”

당황했지만 서둘러 양 손바닥을 휘둘렀다.

-짝!

아까 한 대 쳤는데 왜 안 죽은 거지.

무슨 모기 생명력이 이러냐.

“잡았나?”

“예.”

하지만 마주친 두 손을 펼친 순간 나는 경악했다.

손바닥에 조그맣게 번진 핏자국.

그것은 모기의 몸에서 터져 나온 게 아니라 내 손에서 흐른 것이었다.

-왜애애앵!!

모기는 다시 기운차게 허공으로 비상했다.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김지안. 문 닫아.”

“네? 닫혀 있는데요?”

“빨리 자물쇠 잠그라고.”

“왜요?”

“특수 설계라 잠그면 완전 방음 시스템이 가동한다.”

그런 설계였던 건가, 이 방은.

“근데 갑자기 왜―”

“됐으니까 시키는 대로 해.”

내가 문을 닫자마자, 엘라마가 책상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허공에 대고 발포했다.

-타앙!

“악! 뭐 하는 거예요!”

“바닥을 봐라.”

미친놈인가 싶어 시선을 아래로 떨궜는데 그대로 형체를 유지한 채 움직임을 멈춘 모기의 시체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적 괴수 격추!>

<특수 개체의 생명 활동이 정지!>

<완벽하군. 스텔스 모드를 해제하게.>

<스텔스 모드 해제!>

-우웅!

사라졌던 우주선이 다시 나타난 다음에야 나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거 죽은 거예요?”

손으로 쳐도 안 죽는 모기라니,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참….

“그렇겠지. 외피가 딱딱해도 충격으로 내장이 터졌을 거다.”

배율이 높은 돋보기를 가져와 살피자 진녹색의 몸뚱이에 눈이 하나만 달린 끔찍한 머리통이 보였다.

“괴수 맞네요.”

꼭 건담에 나오는 자쿠처럼 생겼지만, 어쨌든.

* * *

잠시 후.

핀셋으로 ‘우주 괴수’의 시체를 집어 휴지 위에 옮겨 둔 내 입에서 맨 처음 나온 말은 이거였다.

“총 맞았는데도 상처 하나 없는 건 너무하네요. 이런 모기가 여기저기 퍼졌다간 진짜 저희 싹 다 멸망할지도.”

사우 박사의 비행선은 우주 모기, 아니, 나노이 기준 거대 괴수가 내 목에 낸 상처를 소독하고 특수한 혈청을 주입해 주었다.

처음엔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만일 우주 괴수에게 물린 사람이 이 혈청을 맞지 않으면 서서히 전신의 혈액이 응고되어 죽는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본인이 방금 죽을 뻔했다는 자각은 있는 겁니까. 대담하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되는군요.>

보아하니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게 어지간히 멍청해 보인 모양이었다.

글자 사이사이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 오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긴, 당장 멸망이 코앞까지 다가온 저들 입장에선 썩 좋게 보이지 않겠지.

“그나마 소장님이 빨리 잡아 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혈청, 정말 감사합니다.”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부작용 같은 건 없는 거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우주 괴수는 차원 관문이 연결될 때 생긴 작은 틈새를 통해 0.1차원의 우주 공간에서 6-2차원으로 건너온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린 방역을 핑계로 영업을 중지하고 고객님들을 돌려보냈다.

차원 관문은 굳게 폐쇄되었고 엘라마가 연락해 부른 전문 업체의 직원이 가져온 소형 드론이 건물 안에 남아 있던 모기… 가 아니라 우주 괴수를 가느다란 레이저로 태워 소각했다.

“요즘 기술이 발전해서 다행이네요.”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이쪽 차원으로 저런 무서운 해충이라고 해야 하나 괴수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저런 놈들이 건너오는 일도 가끔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방역 업체가 레이저포를 장착한 드론을 데려와서 정밀 감시 시스템으로 발견한 0.1차원의 거대(…) 우주 괴수를 잡아 준다고 한다.

근데, 저런 끔찍한 벌레가 건너오면 물려 죽는 사람 꽤 나오는 거 아닌가?

<그 기술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정밀 부품을 저희가 설계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신가요?>

“그랬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상당히 자부심이 느껴지는 문면.

이런 데에도 0.1차원의 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원체 저기 사는 사람들의 크기가 작다 보니 정밀 부품 가공이나 나노 머신 제작 등 특수한 분야에서 활약한다고 들었긴 했다.

헌데 이런 데에도 그들의 손길이 닿아 있을 줄이야. 천성 공돌이 집단임이 틀림없다.

근데, 왜.

그런 좋은 기술 가진 사람들이 저 모기 하나 박멸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거지?

-타아앙!

-타탕!!

-카앙!

“히이.”

갑자기 사무실 밖에서 거나한 총소리가 울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하얀 털의 미노타우로스 비슈티 과장이 든 리볼버에서 초연이 피어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총구가 겨누고 있는 건 라즈마 과장.

평소 쓰고 다니던 유리 헬멧이 깨져 본체인 영혼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실례. 우주 괴수가 그쪽 어항에 붙어 있길래 처리했소.”

실눈을 가늘게 뜬 비슈티는 노골적으로 기분 나쁘다는 듯 혀를 차고 있었다.

“축복받은 은 탄환이 통하지 않다니. 고위 언데드였나.”

“…구E의 선전 포고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위험한 벌레를 핑계로 경쟁 파벌 에이스를 살해하려 하다니.

저 양반 조용해 보이더니 총 갖고 다니는 위험인물일 줄은 몰랐다.

엘라마가 서랍에 권총을 넣어 둔 것도 저 꼴이 나는 걸 걱정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피슈우우우

그나저나 라즈마 과장, 가스 새는 소리와 함께 영체가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는데 저거 죽는 거 아닌가. 이미 언데드니까 죽어 있긴 하지만.

“거기 둘. 농땡이 그만 피우고 들어와.”

“…알겠소.”

“뭐, 이 빚은 나중에 갚는 거로 하죠.”

보다 못한 엘라마가 그들을 불러들인 다음에야 둘은 대치를 멈추고 상담실로 들어왔다.

그렇게 시작된 긴급 회의.

어째서인지 비정규직인 창구상담사 플루토도 같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진 들었겠지만 위험한 우주 괴수가 이쪽 차원으로 건너오려 하고 있다. 그리고 0.1차원에서 역시 여기 계신 사우 박사님의 고향 나노이 행성을 위협하고 있지.”

“그리고 같은 은하계에 속한 다른 별들도요.”

“…….”

“…….”

과장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정확히는 비슈티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라고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한쪽은 죽은 지 좀 오래 지난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전쟁터에서 구르다 온 군인이다 보니 죽음에 관해선 남들보다 무감각한 것이겠지.

특히나 그 죽음이 자신의 실적과 상관없는 대출 신청 고객인 데에다 그들이 요청한 액수가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은.

“제기랄. 은행원이라는 놈들이. 고객님의 위기에 공감하지 못하면 어쩌겠단 거냐. 됐으니까 나가서 차원 관문이나 지켜보고 있어. 벌레들이 들어오면 안 되니까.”

“은행원이 아니라 방역 업체의 일이지 않습니까 그건.”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라즈마 과장은 툴툴대며 다시 밖으로 나갔지만 비슈티는 팔짱을 끼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뭐 하냐, 넌.”

“일단은 나도 살아 있는 생명인지라. 위험한 일은 이미 죽은 사람에게 맡기지 않겠소?”

“…….”

비슈티는 어느샌가 손에 흰 면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으깨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있었다.

그는 휴지를 한 장 뽑아 책상 위에 깔고는 들고 있던 물건을 올려 두었다.

-꿈틀

“…….”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아이작과 흥미롭다는 듯 주시하는 플루토.

“대출은 전공이 아니지만 이런 쪽으론 고객님께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내 능력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소.”

돋보기를 가져와 그것을 관찰한 나는 조용히 감탄했다.

“오오….”

확실히, 이거라면 사우 박사님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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